“합당한 예배 드리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 이유 상실”
2020/12/14 15: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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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목사의 설교 약화에 있다
 
이 글은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가 11월 30일 백주년기념관에서 행한 한국기독언론협회 제18회 기독언론포럼에서 기조강연으로 발제할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가운데 '예배의 회복' 원고를 발췌해 실은 원고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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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회복

한국교회는 지난 아홉 달 넘게 제대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다. 이 일로 코로나19 방역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교회는 안팎으로 큰 타격을 받아 고통과 침체 가운데로 빠져들고 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예배를 생명으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의 의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장통합 총회가 5월 말에 교단 소속 담임목사 1,135명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 코로나19 설문조사에서 설문 당시 교회의 가장 어려운 점을 39%가 ‘교인들의 주일성수 인식과 소속감이 약해졌다’를 꼽고, 재정 문제(20.8%), 다음 세대 교육(15.3%) 등을 꼽았다. 그리고 코로나19의 긍정적인 면은 44.2%가 현장예배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됐다고 하였다.
지난 6월 말에 리얼미터에 교역자와 교인 2,56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교회의 가장 큰 숙제는 ‘예배에 모이는 교인 수의 감소와 주일성수 약화’를 37.7%가 꼽았고, 예배의 중요성 하락과 신앙 기본 의식 해이, 교회 재정자립 위험 등을 꼽았다. 통계가 없어서 그렇지 코로나 방역 2.5단계 아래 실시했으면 결과는 훨씬 더 부정적일 것이다. 참으로 기막힐 일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다. 모이는 예배, 온라인 예배로 교회끼리 성도끼리 갈등하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코로나 사태 이후의 우리 교회의 미래가 특히 예배 생활이 어둡다.

1. 예배의 간절한 회복
  그동안 우리는 한국교회의 자랑은 성도들의 헌신과 열심,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부흥으로 인한 교인 수와 교회 수 증가, 아름답고 웅장한 예배당과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시설들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이유로 그 많은 성도가 모여 예배하던 자랑스러운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과 교육관들은 텅 비어 있고, 교회의 모임과 예배당이 사회적으로 비방 거리가 되고 혐오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는다. 특별히 자기 교회를 다스리고 계심을 확신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케 하신 하나님은 자랑하지 않고, 교인 수를 자랑하고,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과 시설을 자랑하고,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겉모양에 열심을 내었던 결과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했음을 책망하시어 교회당에서 쫓겨난 것은 아닌가? 강제적으로 모이지 못하도록 함은 예배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기간 두 번이나 하나님이 떠난 성전에 모인 자들을 책망하며 쫓아내신 이유도 건물과 숫자가 아니라 참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셨기 때문이다.
 
2. 교회의 본질인 예배회복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의 소망으로 이 땅에 세우셨고, 그 소망은 합당한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회가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상실된다. 교회는 예배공동체다. 예배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교회마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교회는 모여야 하고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교회의 용어가 아닌 정부가 만들어준 ‘비대면예배’라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요, 생명인 합당한 예배 회복을 위하여 진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속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자랑은 교인 수가 아니요, 건물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인 것이다. 합당한 예배는 아벨의 예배이다.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다.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고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합당한 예배 회복이다. 합당한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과 복음이 아닌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음을 회개함으로 시작된다. 코로나 사태의 기간이 바로 회개의 은혜를 누릴 시간이다. 버리지 않으면 회복될 수 없다.
예배에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예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3. 바른 예배의 회복
개체교회의 공적예배를 관장하는 권세는 개체교회의 당회가 가지고 있다. ‘장로들의 회’는 말씀과 교리, 성례와 치리를 관장할 사명을 짊어진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창설 직원인 사도들에게 위임한 것이며, 이제는 교회 항존 직원인 장로들에게 위임되어 있다(마 28:18-20; 막 16:15; 행 20:28-3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0장). 세상 정부와 공직자는 공적예배 개최와 폐쇄를 주도하고 명령할 그 어떤 권세도 가지고 있지 않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3). 당회는 이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세상 정부와 공직자를 공경할 것도 가르쳐야 한다. 특히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분파주의, 검증되지 않은 뉴스나 루머 전달 등을 엄금해야 한다.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함께 모이는 것이 공적예배임을 가르쳐야 한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영상으로, 각 가정별로 경건회를 할 수밖에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이다. 예배당에서 공적예배로 모이면서, 영상을 함께 송출하는 교회도 많다. 그러나 당회는 영상 경건회, 가정 경건회, 개인 경건의 시간을 공적예배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키거나 대체 수단인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이는 공적예배로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의 피치 못한 차선책일 뿐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온 교회가 결핍을 깨닫고 애통해야 한다. 그럴 때, 공적예배 시행과 참석이 값없는 은혜이며, 얼마나 고귀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사모하게 된다.
한국교회 약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핍박이 아니라 목사의 설교이다. 목사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겔 33:32) 구원과 심판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이다(겔 33:1-7). 책망과 교정의 설교(딤후 3:15-16)는 영혼을 구원하지만, 협박하는 설교는 상처를 준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보다 윤리적으로 더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한다. 이 때문에 목사들은 윤리적인 설교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다. 그러나 윤리적인 설교가 난무할 때, 교회는 언제나 윤리적으로 타락해 왔다. 목사는 도덕?윤리 대신 성도들이 세상에서 도무지 들을 수 없는 것,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윤리성을 회복한다. 심방은 목사의 아내와 여전도사가 아니라 장로들의 사명이다(약 5:14-20).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알아야 돌봄과 치리가 가능하다. 지금이야말로 장로들의 심방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이다. 걱정 대신 심방해야 한다. 직접 방문이 힘들면, 전화로라도 부지런히 성도들을 돌봐야 한다. 영상 경건회에 참여했다고 신앙이 유지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집사들의 사역과 활동이 두드러져야 정상이다. 교회 안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이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사재기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지만, 집사들은 나눔과 베품을 통해 교회를 보호한다.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 장로의 심방, 집사의 위로를 통해 COVID-19 가운데서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참 교회의 보존과 성장을 세상 권력의 이동이 아니라 직분자들의 봉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결론
개혁교회 예배는 그 낱말이 뜻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경배하며, 그를 섬기는 봉사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예배는 앞서 예배의 개념적인 이해에서 밝혔던 것처럼, 예배를 섬김과 봉사의 의미로 이해할 때,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섬김(봉사)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인류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일을 전제로 하여 한 말이다. 이것은 역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계시에 근거해서 한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예배는 봉사의 의미를 전제하여 이제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봉사는 곧 공적인 예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전 삶의 봉사로서 신앙적인 삶을 뜻한다(롬 12:1). 그 때문에 예배신학자 프리드리히 칼브(F. Kalb)는 기독교의 예배를 가리켜서 신앙적인 삶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신앙적인 삶의 근원이 바로 예배에 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기독교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 준 것이다.
그렇지만 예배의 근본적인 출발은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에게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는 계시 의존적 관계에 있으며, 그 중심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배신학자 아담(Adam)의 정의에서도 확인된다. “기독교의 예배와 예전은 먼저 인간 편의 노력에 의한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계속적인 선포와 작용으로써 인간을 섬겨 주시는 하나님의 봉사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취 행위에 대한 응답과 감사로써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적인 행위가 수반된다. 이것은 예배의 주도권이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며,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역시 인간의 참여와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섬김의 열정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한 섬김은 예배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으로 귀결된다. 그 만남은 역시 대화의 과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 대화의 과정은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대한 인간 응답으로써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봉사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교회의 봉사로 전개되는 영적인 대화의 사건인 것이다. 역시 신약신학자인 로마이어(E. Lohmeyer)도 예배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인간의 모든 예전적인 행위는 다만 하나님이 행하신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도 예배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이러한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바르트는 신적인 행위로써 교회의 예배와 인간적인 행위로써 교회의 예배를 강조하였고, 동시에 예배를 하나님이 먼저 주도하신 구원의 계시적인 사건에 따라 행해지는 인간의 반응과의 양면적인 관계의 활동이라 하였다. 실천신학자 브루너(P. Brunner)도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일로서의 예배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교회의 봉사로써 예배를 말하였다. 신약신학자 한(W. Hahn)도 예배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섬김과 예배 가운데서 인간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였다. 바이차(V. Vajta) 역시 일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로서의 예배와 믿음의 일로서의 예배로 설명한다. 스위스의 개혁주의 예배신학자 폰 알멘(J.J. von Allmen)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신 하나님은 기독교 예배의 주체이면서 대상이시고 그는 섬기면서 경배의 대상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예배를 요구하시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말씀하시면서 말씀을 들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탄원하며, 우리의 간청을 들으시는 분이시다”라고 하여 예배의 성격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그리스 정교회의 신학자 니시오티스(N. A. Nissiotis)도 예배란 먼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임재행위로 정의하였다. 즉, 예배는 인간의 주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그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개혁교회예배의 중심으로서 감사의 제물(그리스도의 십자가)은 인간의 대답과 인정에 비하여 절대적인 하나님의 우선권과 행위를 암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의 복음이 선포됨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섬기며, 예배에 참여한 회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의 드림은 자신을 드리는 헌신으로 표현된다. 그 때문에 바르트는 개혁교회의 예배야말로 이 땅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하고, 가장 영광스런 일이라고 역설하였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바른 예배의 실종과 함께 성도의 수가 줄어든 현실에 직면했다. 여기에 대한 바른 대응이 절실히 요청된다.
2019년 한 해 주요 장로 교단들의 목사 수는 2018년 대비 증가했으나, 성도 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이하 예장) 합동 통합 고신 합신과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가 올해 총회 보고한 교세 통계를 살펴보면, 5개 교단 모두 목사 수가 소폭 증가했으나 예장고신을 제외하고는 총 교인 수가 하락했다(예장고신은 세례교인 수로 집계). 교회 수는 예장합동 외 4개 교단이 증가했다.
예장합동은 목사 수가 2만4395명에서 2만4855명으로 460명 증가했다. 교회 수는 1만1885개에서 1만1758개로 소폭 하락했으며, 총 교인 수는 265만6766명에서 255만6182명으로 무려 10만 명이 감소했다. 예장통합은 목사와 교회가 모두 늘었다. 목사는 2만506명에서 2만775명으로 269명 증가했고, 교회는 9190개에서 9288개로 98개 많아졌다. 총 교인 수는 250만6985명으로 전년 대비 4만7242명 줄었다.
예장고신은 목사 수가 7명, 교회 수가 19개 증가해 각각 3876명과 2110개다. 세례교인 수도 늘어 889명이 늘어나 27만8441명을 기록했다. 예장합신은 목사 수가 72명 증가한 2485명, 교회 수는 11개 증가한 972개며 총 교인 수는 13만8968명으로 전년에 비해 4753명 줄어들었다. 기장의 경우 1년간 목사 28명, 교회 2개가 증가하면서 각각 3221명과 1636개였다. 총 교인 수는 1만 2877명 감소한 21만9086명으로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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