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강성률 목사.jpg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5:7~9).

 

제가 부교역자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번은 새로 오는 교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분은 어릴 때는 교회를 잘 다녔다고 했습니다. 6.25 이후에 미국인 선교사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는데 교회에 가고플 때면 외할머니가 "너의 부모님이 예수 때문에 죽었는데 그 예수를 믿겠느냐?"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에 세뇌되어 70세가 넘도록 시험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게 되자 예전에 믿었던 예수님을 떠오르며 스스로 교회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분의 외할머니께서 믿지 않는 분이라 그러셨겠지만 사람의 권면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 분의 외할머니께서 얘야, 세상에서 가장 복이 무엇인 줄 아느냐? 예수님 믿다가 고난당하고 죽는 복이란다. 그 복을 너희 부모가 지금 하늘나라에서 누리고 있단다. 얼마나 좋은 일이냐? 또 자녀인 너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보살펴 주겠느냐? 너희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그 정신을 본받도록 해라.”라고 말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순교하셨다는 것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살았을 텐데 잘 못 권면한 사람으로 인하여 신앙에서 떠나게 되고 한 평생을 원망과 불평, 상처 속에서 살아간 것입니다.

 

사무엘하 9장과 10장에는 각각 므비보셋과 하눈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은총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로 말미암아 다윗에게 은총을 입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가 다윗에게 은총을 베푼 덕택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베풀고자 한 은총을 받아들인 자세는 두 사람 사이 너무나 차이가 많고, 그 결과 역시 말할 수 없이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베풀고자 하는 은총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유산을 모조리 받을 수 있었고, 왕자처럼 다윗의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은총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은총을 전달해준 이스라엘 신하들의 수염 절반과 의복을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냈습니다. 다윗의 노여움을 예상하고 아람나라들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 결과 암몬과 아람사람들 모두가 다윗의 군대에게 패하여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하눈이 그렇게 한 이유는 신하들이 그에게 한 잘 못된 권면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그 주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 신복을 보내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삼하10:2). 신하들이 다윗의 진의를 믿지 못하고 오해하여 참소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14:15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저의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신중하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결코 의심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믿고 찬송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36:24).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행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고 찬송 받으실 일입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자녀들의 행복을 도모하듯이, 우리 하나님 역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불행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단지 우리가 영적으로 어려서 이해하지 못한 포장지일 뿐, 안에는 은혜와 복이 담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말씀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는 자신에게 권면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살피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비롯된 권면은 회개를 시키고, 살리는 일,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지만 육신으로 비롯된 권면은 상대의 영혼을 망치고, 실망시키고, 낙담하게 하며, 또한 세상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처럼 밖에서 오는 권면은 물론 자신 안에 생각으로 주는 권면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 가까이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올바른 권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