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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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분노로 가득찬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분노는 어떠한 특정한 사람들을 통해서 올수도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과 자유롭지 못한 활동에도 있지만, 공직자들의 땅 투기로 말미암아 생긴 병일 수도 있다.

 

필자는 오늘 분노가 가진 사전적 의미를 먼저 설명함과 아울러 우리가 이러한 분노를 예수님은 어떻게 처리하셨는가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분노의 사전적 의미는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또는 자기 요구의 실현을 부정 및 저지하는 것에 대한 저항 결과 생기는 정서이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성내다’, ‘저항하다처럼 동사적 표현을 통해서 분노의 주된 성질인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드러난다는 점인데, 사실 일상에서 분노는 단어의 사용으로 의미가 전달되기 보다는 표출된 인간의 행동양식에 의해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의 개념을 명사적 표현으로만 한정시켜 정의하는 것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분노의 영어식 표현인 ‘Anger’는 노르웨이의 ‘angre’에서 유래되었다. ‘angre’는 고어로서 ‘affliction’,고통이나 고뇌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분노의 독일 단어인 ‘anger사악한, 위험한(wicked)’의 의미를 지닌 ‘arg’에서 유래되었는데, 불의한 자극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말한다. 분노는 그 어원적으로 볼 때, 불쾌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원한이나 격노, 분개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추가적으로 분노에 관한 관용적인 표현을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분노는 두 눈을 부릅뜨다또는 눈이 뒤집히다와 같은 신체변화와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분노가 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 하거나 그 대상에게 공포감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분노는 주먹을 불끈 쥐다또는 이를 갈다와 같이 공격적인 행동과 연결되어 나타나는데, ‘주먹은 인간의 신체부위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씹는 것을 속성으로 주먹과 함께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분노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이성적인 부분비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비이성적인 부분은 욕구적인 부분으로서 욕망’, ‘기개’, ‘소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특징으로써 욕망은 이성적인 부분과 융화되지 못하는 반면 소망은 이성적인 욕구이자 이성적인 부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개는 분노와 관련된다. 그렇다면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분노를 얕잡아 보임을 당해서 그에 대해 보복하려는 욕구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분노의 특징은 보복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복을 그저 개인의 욕심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상대방을 비롯한 제3자 모두가 당사자가 느끼는 모욕에 대해서 인정했을 경우에만 허용되어진다고 본다.

 

, 정당화 될 수 있는 분노는 어디까지나 모욕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침해했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거친 뒤 그것이 명백한 사실로서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게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욕구 차원을 넘어 일어난 분노는 정의로운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정의 움직임에 한해서 분노를 이해하지 않고 보복이라는 측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노가 합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이끌어내어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있어서도 타당한 행위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님도 때로는 분노의 감정을 갖고 사람들을 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 던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도 말씀을 하셨다. 이와 같은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신앙에 대한 평가를 가감 없이 판결하는 모습이라고 필자는 본다. 결국 우리들도 잘못된 사회적 풍조 앞에 주님처럼 가감없이 평가하고 교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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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칼럼] 거룩한 분노를 활용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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