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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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 학자들은 인간의 분노가 동물의 격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동물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분노가 동물의 격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분노는 종의 생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진화된 본능이라는 것이다. 동물생태학자인 로렌즈(Lorenz)는 그의 저서 공격에 관하여에서 분노에 대하여 인성론적 접근을 위한 논조를 펼치며 분노를 타고 나는 것으로 보았다. 로렌즈와 같은 동물학자들은 공격성을 종의 생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진화된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격성을 동물과 인간에 내재하는 투쟁본능이라고 정의하고 자신의 생계와 영토를 위한 싸움, 번식에서 최우수자가 되기 위한 경쟁, 공동체 내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힘의 지배에 의해 공격성이 나타난다고 하였다.로렌즈의 공격적 본능에 대한 대부분의 주장은 군집개념에 기초하며, 동종의 많은 동물들과 함께 작은 공간에 놓인 동물들은 필연적으로 공격적으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에 대한 이 동물적 견해를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이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정서의 뿌리가 하등 동물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진화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식을 택했음으로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가설 속에서 만들어진 비뚤어진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진리인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창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동물들을 비롯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려야 할 존재라고 말씀한다.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1:26-28),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등동물을 포함한 피조물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복종하고 예배하며 살아야 할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가 어떻게 포악하고 살인마가 되었는가? 최근에는 세 모녀를 살해한 악랄한 인간의 모습이 TV 화면에 보도되었다. SNS를 통해서 알게된 소녀를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택배 배달원으로 가장하여 집안에 들어가서 세사람의 가족을 차례대로 죽였다. 이 사건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크나큰 충격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동물적 행동을 지닌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는 곧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인간이 지닌 한계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최초의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였다(2:17,3:1-7).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범죄하게 되었다. 이 범죄의 결과 인간본성에 전적인 타락을 가져왔다(6:5; 14:3; 7:18). 그 죄가 인간의 전인(全人)에 전염됨으로써 본성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이 없게 되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14:4; 17:9; 7:15-20; 8:5-8; 4:17-19). 인류의 조상인 최초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의 후손인 인류에게 부패한 본성을 물려주게 된 것이다.

 

인간의 창조와 타락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분노는 그 본질상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부패와 오염의 영향아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적인 본능이 아니라 창조된 인간의 타락한 본성 안에서 분노문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여 죄에서 자유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분노감정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분노는 동물적인 충동으로서 다스릴 수 없는 정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다스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잘못된 분노는 정상적인 삶의 패턴을 무참히 파괴해 버린다. 삶의 기초가 되는 가족간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부모와 자녀 간에, 부부간에, 이웃과 이웃 간에, 국가와 국가 간에도 분노로 말미암아 갈등을 일으켜서 궁극적으로 전쟁에 이르게 한다. 이제 분노를 분오를 성경으로 다스리는 믿음의 시대를 유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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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칼럼] 잘못된 분노를 다스리는 키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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