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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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6).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설상가상 사울의 집안 시므이라는 사람이 독한 말로 다윗을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가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16:8). 시므이의 이 말은 다윗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이 충성된 신하 우리아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말한 사울 왕과 그 집안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옷을 잡아 찢었으며,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조상하였습니다. 요압이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죽였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식하다가 석양에 여러 백성이 나와서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였을 때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삼하3:35)라고 함으로써 그의 눈물과 금식이 진실 된 것임을 입증하였습니다.

 

하루는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이스보셋의 군대 장관 레갑과 바아나가 다윗이 기뻐할 줄 알고 그의 목을 베어 다윗에게 왔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부하들을 명하여 암살자들을 처형하도록 명하였습니다(삼하4:12). 왕조가 바뀌면 이 전 왕족들은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기 쉬웠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백한 다윗에게 시므이의 저주는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내가 아들에게 이렇게 당하니, 이젠 멸망한 사울의 족속까지 나를 무시하는 구나생각하며 아비새가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라고 말하였을 때 그렇게 하도록 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시므이로 보지 않았습니다. 악인으로 가장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0~14). 다윗의 이 말대로 다윗은 압살롬으로부터 어려움을 겪은 후 다시 왕의 지위를 회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험 중에 있는 또 다른 시험은 설상가상이 아니라 흑암 중에 빛이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을 기회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철저히 하나님께 여쭙고 응답 받아 행하였던 그였지만 계속된 사울의 추적에 피곤한 나머지 잠시 믿음이 떨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상책을 좇아 블레셋으로 피하였습니다(삼상27:1).

 

블레셋 왕은 시글락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루는 블레셋 왕이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는 날 다윗과 그의 부하들도 동참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윗 일행은 그들의 거처 시글락으로 삼일 만에 돌아옵니다. 와서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그곳을 침입하여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잡아갔고 시글락은 불태웠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위급해진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블레셋을 추격하면 다시 찾으리라.”는 응답을 받고 용기를 내어 4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찾으러 나섰습니다.

 

가는 도중 들에 있는 애굽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코가 석자인 다윗의 부하들은 다른 사람을 돌볼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흘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애굽인을 다윗에게 데려갔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떡과 물과 무화과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시글락을 불태우고 다윗과 그 일행의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아간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인 그가 병들자 주인이 그를 버린 것입니다. 그 애굽인은 다윗 일행을 아말렉 사람에게 인도하였고 다윗 일행은 아말렉과 싸워 사로잡힌 사람들은 물론 다른 모든 것들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그 부하들이 자신의 처지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돌볼 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인에게 긍휼을 베푼 결과 그들 역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삼상30:18).

 

거의 모든 소유물과 자녀마저 잃고 온 몸이 악창으로 덮인 욥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왔지만 욥이 자신을 변호하자 욥과 상관없는 말들로 그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그들을 번뇌케 하는 안위자라.”고 하였습니다(16:2). 욥에게 찾아온 시험 못지않게 그를 괴롭힌 것은 친구들의 근거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한 시험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욥은 비록 친구일망정 자신과 상관없는 말을 하는 그들이 괘씸하여 하나님께 벌주시기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벗들을 저주하는 대신 위하여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십니다(42:10).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험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시험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종을 보내십니다. 다윗에게는 병든 애굽 사람과 시므이가 될 것이며, 욥에게는 벗들일 것입니다. 천사의 모습으로 온다면 기쁘게 영접할 수 있겠지만 때론 병든 자로, 때론 악인의 모습으로 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더욱 시험에 빠져들거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복을 빌어주는 일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복을 빌어줄 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들도 시험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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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시험 가운데 또 다른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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