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용재 백낙준 박사(1895-1985)
2021/06/15 12: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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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 연구소장/ 대신대 전 한국교회사 교수)

“한국교회사 연구 1세대 선두 주자”

미 예일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개신교사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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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본지에 20171월부터 만 3년 동안 예장(합동) 역대 총회장 열전을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사랑과 성원을 입은 바, 늘 감사하게 생각하던 차에 본보로부터 한국교회 안에 있는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의 열전 의뢰를 받고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첫째는 자료 수집의 문제요, 둘째는 집필대상 선정의 문제요, 셋째는 집필대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로 자문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중견 학자들과 고인(故人)이 된 분들은 본인들이 남긴 1차 자료와 후학들이 남긴 기념논총이나 학회지나 연구지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 기술하기로 하였다. 또 신진 학자들에게는 설문지를 발송해 회수하여 정리하기로 하였다. 이 외에도 기존에 간행되어 있는 교회사 관계 사전과 기독교백과사전 등을 참고하고, 또 각 학회에서 간행한 자료를 참고키로 하였다.

 

이 교회사가 열전의 중요 핵심 인물에 관하여는 우리 기독교 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 측의 학자들까지 아우르는 시야를 확대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국내 각 신학대학들과 일반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여러 학회지나 대학교수 논문집 등에 교회사에 관한 글을 발표한 연구자들과 또는 지방에 거주하면서 각기 처한 지역교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간행했거나 관련 논문이나 글을 쓰는 분들까지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다행하게도 대전에는 한국침례교사학회(회장 임공열 목사), 부산에는 부산.경남교회사연구회(회장 박기영 목사), 대구에는 대구.경북교회사연구회(회장 손산문 목사)가 있고, 서울에는 각 신학대학 교수 중심의 한국교회사학회(회장 박창훈 박사),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송현상 박사), 한국기독교사학회(회장 박용규 박사), 현대교회사연구소(소장 박명수 박사) 등과, 천주교 측에는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 등의 관계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현재 약 100여명의 자료가 확보되어 있다.

 

용재 백낙준박사

필자가 용재 백낙준(庸齋 白樂濬) 박사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1958년 서울에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상경했을 때, 그 해 가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주최로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신학공개강좌 모임에서였다.

 

용재는 189539일 평북 정주군 관주면 관변동에서 백영순(白永淳)€4형제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그는 평생동안 교육과 종교 및 정치 분야에서 한국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한국 최초의 참의원 의원과 의장으로 31개월간, 또 문교부 장관직을 제외하고는 생애 대부분을 대학과 국학(國學)운동과 기독교교육과 인물양성에 큰 업적을 쌓았고, 오늘의 연세학원의 주춧돌과 기둥을 세웠다.

 

기독교대학인 연세대학을 한국의 국학연구 중심대학으로 손색이 없게 만든 것은 당대의 유명한 최현배 김윤경 정비석 홍이섭 등 쟁쟁한 학자들을 연세동산으로 불러 오늘의 연세국학연구원이 있게 만든때문이다.

 

본고에서는 한국교회사 연구 제1세대 학자로써 용재가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한국교회사를오늘의 학문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단단한 기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예일대학교에 수학하고 작성한 논문이 <한국개신교사>(A History of Protestant in Korea, 1832-1910)이다. 이 논문은 평양숭실대학에서 영어 원문이 간행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와서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어논문이 재간행된 바 있다. 이 원서를 필자인 용재가 1973년 여름에 후학들을 위해한글국역으로 개정 보완하여 츨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제자 민경배 박사가 지적했드시 용재의 <한국개신교사>는 선교사 중심 일변도로 쓰여졌고, 참고도서 역시 한국 측의 자료를 전혀 참고하지 아니하고, 미국 측의 영문 자료에 기초한 소위 선교사관(宣敎史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기독교회사의 기초 한국개신교사

여기에 덧붙여 필자의 입장에서는 한국선교의 발단으로부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합방한 1910년까지만 서술되고 그 이후의 역사를 기술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고 당시 시대상이 용재가 국내에 자유로이 오갈 수 없는 미국 현지에 머물고 있어서 불가항력적이기도 하지만, 6.25 전쟁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 몸담아 있으면서도 1910년 이후 그가 소천하기 전의 한국교회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크다란 아쉬움으로 남았다. 연세대학교 총장에서 물러난 후 그의 연구 진척을 위해 대학당국에서는 명예총장실을 중앙도서관에 마련해 주었지만, 민의원(현 국회의원)과 참의원 등 여러 곳에서 그를 책상 앞에서만 앉아 연구에 몰두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겼다 하겠다.

 

그의 학위 논문을 지도했던 예일대학의 Keneth S. 라토렛 교수는 용재의 논문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서양사학가의 방법 응용에 능숙할만큼 훈련을 받았음으로 지구력을 가지고 자료를 수색 모집하였고, 그 자료의 비판과 해석에는 객관성을 견지할 줄 아는 기술을 소유하였다.(한국개신교회사 1973, 연세대학교 출판부 p.IV 서문).

 

용재가 한국개신교사를 쓰면서 밝힌 그의 역사관을 보면, 기독교는 그 본질에서 선교사(宣敎史)이다. 또한 반드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상의 교회는 기독교 사상(史上)의 한 중간적 존재이다. 우리 주님이 죽으심으로부터 다시 오실 때가지만 존재하게 되어 있다(고전 11:26). 이 중간적 존재체인 교회의 철두철미한 사명은 복음선포이다. 기독교사는 시작부터 오늘까지선교사로 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한국개신교사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를 외인(外人) 선교사에 의한 피선교의 과정으로 해석하여서만은아니된다. 기독교 2천년사에서 교회의 흥쇠는 교회에서 행한 전도활동의 消長에 있었고 전도활동의 消長은 신도들의 신앙 허와 실에 좌우되어 왔다. 전도는 교회의 지상명령이다.(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서문 같은 쪽 V-ii 참조).

 

그의 입장과 논지는 분명하다. 기독교 역사는 마땅히 선교의 역사이고, 또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용재의 지론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국기독교회사도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 2천년 선교역사의 선상에서 기술되어야 하고, 이런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선교사관(宣敎史觀)에 대하여 민경배 박사는 시각이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사()는 저자 자신이 시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전히 기독교 선교의 확장 역사이며, 따라서 관심의 테두리나 사료의 대부분이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의 교회와 인사들에게서 수집되었다고 하는 일방성을 가진다. 즉 한국교회 쪽의 고백과 증언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개정판) CLS 간행, 1982. p.20)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교사관(宣敎史觀)이란 비판도 있어

그러나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용재가 그 글을 쓰고 있었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여지며, 또 역사란 집필자의 사관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입장에서 보는 견해의 차이일 뿐, 절대적인 사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소위 선교사관은 선교사관대로, 민족교회사관은 민족교회사관대로 장단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료수집과 이용이 오늘날에 비해 현저하게 불리했던 1920년대에 그것도 우리 땅이 아닌 미국에서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하였고, 분명한 자신의 사관을 가지고 서술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이란 모국이 일본제국주의 체제하 병합되어 자유로이 오갈 수 없는 상황아래서 외국에서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오직 교육입국, 자유민주입국을 생각하면서 서양역사를 탐구하여 클라크대학과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연구한 토대 위에 한국개신교사라는 대작을 학위 논문으로 완성한 그의 의지와 학문적인 완성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한국기독교 역사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는한국교회사 기초자료에 근접할 수 있고, 한국교회 역사 정립에 귀중한 공헌임을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연구 결과물이며, 그의 지도교수 K.S 라트렛의 말대로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이 큰 빚을 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러한 공헌을 하였음에도 용재의 선교사관이 당대에 그치고 그의 사관을 이어받은 학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음은 앞으로 한국교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갈 후학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하여 그의 뜻을 이어 1910년 이후의 결여된 <한국개신교사> 속편을 기록해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 사학계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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