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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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아담을 오실 분의 모형(type)이라고 가르친다(5:14). 아담이 모형이라면 오실 분은 실형(antitype)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살게 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본문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는 않은 자에게도 사망이 다스렸으니 ...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아담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거역하여 결국 죽게 되었지만, 아담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본적도 없고, 따먹지 말라고 명하신 말씀을 들은 적도 없고, 그것을 먹은 적도 없는 자들이 아담처럼 죄인으로 취급되어 아담처럼 죽게 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왜 세상 사람들이 아담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도 아담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결국은 죽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2장은 이 사건에 대한 배경과 그 구체적인 전말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접근하기 전에 창세기 1-2장은 만물의 기원을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 어떠한 조직과 질서가 있는 가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창세기 1:1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첫째 날에는 빛을, 둘째 날에는 궁창을, 셋째 날에는 땅과 식물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어 첫째 날 지으신 빛의 세계를 주관하게 하시고, 다섯째 날에는 둘째 날에 창조하신 궁창의 하늘을 나는 새, 물에서 살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땅위서 살 갖가지 짐승을 창조하신다. 따라서 1-3일에는 빛과 궁창과 땅이라는 영역을 창조하시고, 4-6일에는 이 영역을 다스리고 보살펴야 할 해와 새와 물고기, 그리고 짐승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대신하여 그가 창조하신 모든 세상을 다스릴 그의 대리통치자로 그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드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다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만물을 볼보고 다스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인 사람이 있고, 그리고 사람 아래는 만물이 있다. 특히 창세기 2:1하늘과 땅과 그 만물이 완성되었다라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끝맺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만물이라는 말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콜 츠바암이라는 특별한 어휘를 쓰고 있다. 이는 모든 군대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지으신 세계를 일종의 군대 조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연대성 원리가 작용되는 조직이다. 따라서 이 창조 기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도 하나님-사람-만물이라는 상명하복의 철저한 권위 체계가 있는 조직 세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어 그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시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따먹어도 좋다고 허락하시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절대로 따먹지 말라고 명하심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의 위계질서를 세우시는 것이다. 사람이 비록 모든 피조물의 우두머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되며 그 명령을 거역할 때는 죽음이라는 응분의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실과를 따먹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시는 것을 보면 사람과 만물 사이에도 대리통치자로서의 권위와 관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연대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17-19).

 

이와 같은 연대 책임이 수반되는 위계질서는 고대 근동의 종주와 속주 사이의 계약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위체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사람-만물의 관계를 특별한 언약관계로 간주한다.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권위를 무시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아담뿐만 아니라 아담의 수하에 있는 모든 만물이 다 아담과 함께 저주를 받는 것은 아담과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적 연대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왜 우리 인간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아담이 받는 죄벌을 똑같이 받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가 창조 시부터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죄의 피를 물려받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아담처럼 죽음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담과의 안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되고, 사망의 권세 아래 갇히고, 결국은 아담과 함께 죽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언약적 연대성의 원리 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며,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5:12)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담을 본적도 없고, 아담이 지은 죄를 지은 적도 없지만 아담처럼 죄의 누명을 쓰고 죽는다는 것은 억울하지만 우리는 태생부터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억울한 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죽음이라는 언약적 저주를 그가 창조한 만물에게 퍼붓는 것이 어쩌면 너무 잔인하신 잔인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을 희생시키며 죄인들을 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것은 죄는 벌하시지만 죄인을 살리시는 그의 정의와 사랑과 인애를 볼 수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죽게 되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살리는 원리를 적용하여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려고 하신 것이다. 말하자면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을 세워,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여 새 아담의 순종하는 의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계획을 염두에 두시고, 아담과 여자와 뱀을 불러놓고, 이들에게 불순종에 대한 죄를 문책하고 죽음을 선포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원복음을 주시는 것이었다(3:15-19).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역사 가운데 점진적으로 보여주시고, 결국은 처녀의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아담과 그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또한 목숨을 내놓기만 하면 그가 과연 아담의 죄 값을 완벽하게 대신 치렀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부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결국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지는 가운데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다(27:51-53).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들의 죄 값을 온전히 치르고 죄로부터 해방시켰음을 증명하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인 죄의 장벽을 완전히 허물어지고, 거두어지고, 회복되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동시에 무덤에 있는 자들이 일어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과 장사가 확인되기까지 예수께서는 무덤에 사흘간 더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과 부활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새 아담으로 세워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세상을 여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이 언약적 연대성의 원리를 염두에 두며, 아담을 가리켜 오실자의 모형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성경에서 모형”(type)이라는 말은 앞으로 이루어질 사건이나 사람 혹은 물건이나 원리 등을 가리키는 말이고 실제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실형”(antitype)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아담이 모형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형이고, 새 아담이 되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며 다스리는 왕이었듯이, 이제 새 아담 예수님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왕이 되시고, 모든 만물의 우두마리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이다(1:15-20). 우리가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아담과 같은 죄인이 되고, 아담처럼 죽는 것은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 새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8:5).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사망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예수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의 왕이 되는 것이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구원의 문제를 바로 언약적 연대성이라는 틀 안에서 믿고,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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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 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60] 선하신 하나님(엡 2:10) 아담, 오실 분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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