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 한원주 선생님 편안히 쉬세요
2020/10/08 12: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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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삼 교수(전 한세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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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 한원주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 속에서 얻은 선교적 교훈을 기술하고자 한다. 선교지에서 어렵게 귀국한 나에게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선교지에서의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하고 싶어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터라 날마다 힘든 생활을 해야 할 때였다. 나 자신이 아픈 것은 참으면 되지만 어린 자녀들이 몸이 아파 힘들고 어려울 때는 부모로서의 마음이 무너진 때였다. 그 때에 서울의 서대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교정 한쪽에 선교병원을 여시고 한원주 선생님은 진료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아픈 자녀들을 대리고 한 선생님을 방문 하였을 때에 선교사의 호주머니 사정과는 상관없이 치료를 해 주셨다. 그 후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았고, 독립문 근교로 선교병원이 옮겨간 이후 까지 선생님의 진료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서 언젠가 TV를 통해서 얼굴을 뵈었지만, 오늘 아침 그 분이 소천하신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여러 기관에서 한원주 선생님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실렸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분이셨다. 한원주 선생님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규상과 대한애국부인회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며 항일 투쟁을 도운 모친 박덕실의 여섯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의 영향을 받은 한원주 선생님은1949년 고려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 의사의 길을 걸었다. 1959년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물리학자이자 국비 연수생으로 발탁된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시카고병원에서 인턴을, 메릴랜드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원호병원에 취직했다. 196810년 동안의 미국생활도 청산했다. 가난한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먼저 귀국한 남편을 따랐다.

 

10년 동안의 서울 개원의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1978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지난 생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 선생님의 고백은 "배움이 없던 때 저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은 이웃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1979년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에 터를 잡고 의료봉사에 나섰다. 1982년부터는 환자의 정서나 환경까지도 치료의 영역으로 포괄하는 당시로서는 선진 개념인 '전인 치유진료소'를 열었다.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는 물론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도왔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삶을 살다보니 마음이 행복했다. 30년 가까이 의료선교의원에서 봉사의 길을 걸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2008,은퇴를 결심했다. 치매·중풍·파킨슨병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고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이 한 회원을 초청했다.

한 선생님의 마지막 봉사 기관이었던 매그너스요양병원은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들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라는 한 회원을 위해 원하는 그 날까지 진료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들 곁에서 눈 높이를 맞췄다. 손수 노래도 가르쳤다. 작은 배려와 관심은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선생님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지금껏 기부하고 있는 단체가 10곳이 넘는다. 2017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한 제5회 성천상 상금 1억원도 기꺼이 내놨다. 성천상 시상식에서 한 회원은 "남은 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사로 그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큰 의사는 역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말하자면 토털 힐링을 하는 그 상태가 큰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역시 우리 의사가 가야할 길은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선생님은 97일까지도 환자를 진료했다. 노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지만 "평소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에 따라 9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930, 추석을 하루 앞두고 영면했다. 별세 전 자녀들과 영상통화에서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세 마디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한원주 선생님! 그동안 선교사 가족들을 위해서도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에서 준비된 면류관과 함께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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