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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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12:2~3).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에 주의를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무리 외식을 해도 속에 있는 것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입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약 육 개월 전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나서는데 교회가 포함되어있는 건물 뒤, 아파트 부속 어린이 놀이터에서 몇 몇 학생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저씨 혹시 축구공 보셨나요? 방금 전 저희들이 축구하다가 공이 그곳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좀처럼 보이지 않아요.” 전 주차장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본 후 없는데? 정확하게 어디쯤이야?”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곳이요.” 하면서 정원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더니 한 학생이 담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축구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담을 넘은 학생에게 주의를 주고 집으로 갔습니다.

 

지난 번 비가 많이 내리면서 건물 맨 아래층 창고에 빗물이 줄줄 세었습니다. 업자를 불러 그동안 정원처럼 사용했던 공간의 초목들을 파내고, 흙을 퍼내고 방수 작업을 하였습니다. 다 완료된 후 전 그곳에 들어와 주변을 살폈습니다. 살피다가 어느 한 곳에 눈이 꽂혔습니다. 뾰족한 쇠로 된 울타리와 놀이터 구조물 사이에 축구공이 끼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먹고 숨기려고 해도 힘든 그곳으로 공은 날아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감춰진 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때가 되면 반드시 알려지게 됩니다. 사람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기 치거나 횡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자주 들려오는 소식들 곧 라임, 옵티머스나 성추행 사건들이 그것을 말합니다.

 

5: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 조상들은 호연지기를 이루기 위하여 신독 곧 혼자 있을 때에 더욱 삼갔습니다. 그래야 지극히 크고 넓은 마음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사탄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고 여리고 큰 성을 점령합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만 함께 계시면 어떤 대적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기충천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라는 작은 성쯤이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싸움에는 만 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삼 천 명이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지없이 패하고 맙니다. 그 싸움에서 36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최고 사령관 여호수아는 장군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줄줄이 책임을 따지며 문책인사를 단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드린 것뿐입니다. 그러자 해저물녘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7:10~12).

 

도적하고 사기한 자를 제비 뽑은 결과 아간이 뽑혔습니다(7:18). 아간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무게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그의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에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은밀한 일은 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행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6:3!4). 선행도 반드시 드러납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가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기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드러나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갚음 받는 선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께 받는 선에 대한 상급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남의 은밀한 일에 대한 것입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25:9~10). 상대방과 변론하다가 불리해지거나 일방적으로 몰리게 될 때 그들의 과거를 들춰냄으로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 자신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참으로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밀한 일에 대하여 세 가지 예를 들어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은밀한 죄, 두 번째는 은밀한 선행, 세 번째는 남의 은밀한 죄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은밀한 것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고 죄일 경우 참회로써 주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사하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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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드러난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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