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감사의 종류와 신앙의 수준’ (눅 17:11~19)
2020/11/14 14: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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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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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11절 이하에는 나병 환자 열 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한 촌에서 예수님을 만나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들을 보신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깨끗하게 해주시고, 나병환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모두는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7)

 

열 사람 가운데 자신들은 선민이며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던 9 명의 유대인들은 아무도 감사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개 취급했던 사마리아인은 한 명 뿐이었는데 감사한 것입니다. 9명은 믿음은 있었지만 감사는 없었습니다. 감사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사람에 따라 세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나병에서 건짐 받은 9명의 유대인들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들 생각에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하지만 우리도 그 안에 포함되는지도 모릅니다. 이웃 간에는 작은 친절도 감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모님의 사랑에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감사하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나를 구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 이를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며,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우리 부모님께서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였겠구나.’라고 생각을 못 합니다. 그래서 보답할 마음을 쓰지 못 합니다.

 

감사의 또 하나는 보이는 감사입니다. 자신 보기에 잘 된 일, 자신의 뜻에 맞는 일에는 감사할 수 있지만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바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감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 비하여 한 단계 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나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 지금의 스페인 쪽으로 떠납니다. 그로 인하여 바다에 심한 풍랑이 임하고 결국 요나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자 풍랑은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죽게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고래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만듭니다.

 

죽을 줄 알았던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삼일 밤낮 지내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2:9). 고래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외칩니다.

 

그의 외침을 들었던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왕을 포함하여 남녀노소가 회개하게 됩니다. 애초에 니느웨 전도에 대한 반감이 컸던 요나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그대로 망하기를 원했는데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노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떼씁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금새 원망 불평을 쏟아내고 맙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이거나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될 때는 감사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원망 불평을 쏟고 맙니다.

 

세 번째 감사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욥이 자녀와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잃었을 때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0-21).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신앙의 정도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지만 감사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은혜에도 감사를 모르는 사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에만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불행처럼 보이는 일에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신앙 수준이 다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중심으로 감사를 잃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높은 경지에 이른 신앙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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