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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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9:1).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블레셋을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쫓아내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공과 의를 행함으로 적당한 사람을 적당한 장소에 배치시키는 행정조직을 완비하게 되었습니다(삼하9:15이하). 그러자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사울의 아들이자, 목숨처럼 다윗을 사랑해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버리지 말라. 하고”(삼상18:14~15). 비록 요나단은 전쟁 중에 죽었지만 그 후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하고 물은 것입니다.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월요일 70대 후반인 한 성도로부터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감사주일 아침 예배당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바닥에 부딪히기 바로 직전 갑자기 누군가 그분의 몸을 껴안고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인지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일으켰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분의 입에서 감사가 터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의 도움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도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세상에 대한 집착이 쓸모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상,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분은 평소에도 구제와 성도 섬기는 일을 잘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타내주시니 영광의 하나님을 본 아브라함처럼 버릴 권세가 생긴 것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인하여 그 자매를 보호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면 다윗이 요나단에게 베푼 은총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며, 자신은 전달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은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조부 사울의 밭을 므비보셋에게 다 줄 뿐만 아니라(7), 그가 장애인임을 들어 경작할 종들까지 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9~10). 왕조가 바뀌면 이전 왕조는 멸문지화를 당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려라고 하겠습니다. 고려 왕조가 무너지자 후환이 두려운 이성계는 직접 나서지 않고 정도전을 통하여 이전 왕족들을 없애는데 바빴습니다. 강화도나 거제도에 모여 살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불러 모아 배에 구멍을 뚫어 놓고 중간쯤 가다가 침몰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아있는 왕씨들은 숨어 지내거나 옥씨나 전씨처럼 한자 획을 더하여서 성을 바꿔 지내기도 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면 사울 후손들을 남겨두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불씨가 남아있다면 언제든지 복귀운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고 또한 요나단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고 그대로 므비보셋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이 큰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은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항상 그의 상에서 식사를 함께 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므비보셋을 자신의 친 아들처럼 귀히 여기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은총입니다.

 

3:1 이하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이를 일어서게 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돈을 바랐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때 앉은뱅이에게 돈 만원을 전해주었다면 좋아하고 인사를 꾸벅하였을지 모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이라고 말했을 때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가장 좋은 것을 앉은뱅이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은과 금을 그에게 주었다면 결코 일어서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를 서게 만들었습니다. 다시는 구걸하지 않고도 스스로 일하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은총 중에 가장 큰 은총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성도들이 자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은총은 집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차도 아닙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앉은뱅이를 걷게 하신 것처럼 그 이름이 살아가게도 하고, 되게도 하고, 필요한 것만큼 건강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는 집을 장만하여 주는 것이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많은 유산을 물려준들 자녀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 개개인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장 소중한 기업이고 또 자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자녀를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기르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주일학교 시절에는 비교적 잘 출석하던 학생들이 대학에만 가면 출석률이 저조해집니다. 그만큼 자아가 자라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녀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도록 부모는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4:19). 가장 중요한 교훈은 본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자녀가 그렇게 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힘을 써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부모의 마음과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사랑하게 해주십니다(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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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하나님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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