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올해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가 3개로 나뉘어 드려질 것이 확실시 되면서, 기독교 최대절기인 부활절마저 분열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교계 연합들이 각각 단독주최의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며, 연합이라는 이름 자체를 무색케 했다. 이를 의식한 듯, 한기총에서는 연합예배가 아닌 특별예배란 명칭을 사용했으며, 교회협에서도 자신들의 부활절연합예배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해석을 우려했다.

이는 분열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 분열 속의 적응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부활절연합예배는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의미가 깊다. 한국교회의 장로교단들이 다툼과 시비로 분열을 반복하던 때에도 1년 중 한번 부활절연합예배에서만큼은 모두가 하나 되어 한 목소리로 예배를 드렸다. 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가 분열의 역사를 종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하나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활절연합예배의 분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적응하게 된 풍토는 이제 한국교회의 분열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을 주고 있다.

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를 사회에 대변하고 있다. 1947년 시작되어 해방의 감격을 함께한 것도, 독재로 암울했던 70년대 사회에 민주화의 희망을 심어줬던 것도 부활절연합예배였다. 그리고 지금 한국교회가 분열을 거듭하며,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근심거리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단면도 부활절연합예배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교회 최후의 보루였던 부활절연합예배, 이대로 포기해도 괜찮은 것인가?

부활절연합예배의 태동과 분열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예배는 한국 최초의 공식 선교사들인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목사가 등에 의해 1886년 4월 25일 세례의식과 함께 드려진 것으로 기록된다. 또한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부활절연합예배는 1894년 배재학당 채플에서 열렸다.

현 부활절연합예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제1회 부활절연합예배는 1947년 4월 6일 일본의 신사참배 본산이었던 서울 남산 조선신궁터에서 열렸다. 1946년 가을 창립된 조선기독교연합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신)가 주한미군과 함께 1947년 4월 6일 역사적인 제1회 부활절연합예배를 서울 남산광장에서 개최한 것이다. 당시 해방 이후 안정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 교회 역시 혼란을 겪는 와중에 열린 이날 부활절연합예배는 올해와 같은 1만 5천여명의 성도가 모여 예수 부활과 민족 해방의 기쁨을 함께 했다. 이날 설교는 한국교회의 큰 지도자 한경직목사가 담당했다.

해방 이후 급속도로 분열된 장로교로 인해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도 온전히 치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진보-보수권으로 첨예하게 나뉜 상황이 악화되며 결국 1962년 진보측은 배재학당과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보수측은 균명학교와 덕수궁뜰에서 각각 부활절연합예배를 진행했다.

1973년, 다시 하나된 부활절연합예배

NCC(교회협)가 주관하는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을 거부했던 보수측이 1973년 극적으로 부활절연합예배에 함께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NCC측과 비NCC측이 연합예배를 매년 교대로 주관키로 했다. 이 같은 원칙은 지난 2006년 한기총과 교회협의 부활절연합예배 합의에 반영되어 교회협에서 행사를 주관하면 한기총이 설교를 맡고, 다음해에는 역할을 바꿔 한기총이 행사 주관을 교회협이 설교를 맡았다.

90년대, ‘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 조직

이제껏 부활절예배를 위해 임시로 조직됐던 예배위원회가 90년대 상시조직으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협이나 비 교회협측과의 협의에 의한 것이 아닌, 예배위원회에 매년 참여했던 인사들이 주를 이뤄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이하 한부연)를 조직한 것이다. 결국 부활절연합예배의 주최권을 두고 2000년대 중반까지 한부연과 교회협 및 한기총간의 갈등이 이어져왔다. 결국 2006년 한기총과 교회협의 공동주최를 주장하며, 부활절연합예배의 주최권을 가져왔으나, 그 해 사단법인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가 조직되어 갈등의 여지를 남겼다.

2006년, ‘교회협-한기총’의 부활절연합예배

부활절연합예배의 주최권을 둘러싼 논쟁 중 교회협-한기총의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가 2006년 탄생했다.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는 2006년 첫해 서울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07년~2010년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며, 초대형행사로의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교회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한기총 사태의 여파로 부활절연합예배마저 분열하게 된다. 2012년 당시 한기총에서 비대위를 구성해 반발했던 인사들은 부활절 당일 한기총을 배제한 채 교회협과 함께 정동제일교회에서 교단연합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한기총 역시 승동교회에서 단독으로 예배를 개최하며, 분열의 시작을 알렸다. 다음해 역시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교회협 중심의 교단연합은 새문안교회에서, 한기총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각각 드렸다.

지난해 역시 교회협은 한기총이 아닌 한교연과 예배를 드린다. 교회협과 한교연은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교단연합 주최명으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이는 또다른 분열의 시발점이 됐다.

세 개로 갈라진 ‘2015년 부활절예배’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부활절이 끝나면 해산되었다가, 이후 다시 조직되어 다음연도 부활절연합예배를 준비하는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조직되었던 2014년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그대로 이어와 올해 부활절연합예배를 준비하게 된다.

이에 교회협은 발끈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6년 한기총과 이뤘던 합의를 끌고 나와, 부활절연합예배의 주최권이 자신들에 있음을 주장했다.

교회협은 교단연합측 준비위를 향해 “부활절연합예배의 2006년 합의원칙의 핵심은 상설화에 따른 사유화, 세과시 등의 방지였는데 자칭 ‘2015년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는 이와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교회협은 올해 서울 후암동 루터교회에서 단독으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릴 것을 공표했다.

이로써 2015년 부활절예배는 후암동 루터교회(교회협 주최), 신촌 연세대 노천극장(교단연합 주최), 여의도순복음교회(한기총 주최) 등 세 곳에서 열린다. 이 외에도 사)한부연은 햇빛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교회분열의 상징된 부활절연합예배

부활절연합예배는 앞서 말했듯, 당시의 한국교회 전체 이미지를 그대로 사회에 투영하고 있다. 지금 부활절연합예배가 하나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이며, 분열만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상징성과도 같았던 부활절연합예배에 더 이상 에큐메니칼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활절의 의미도 예배적인 가치도 모두 상실했다는 말과 같다.

현재로 봐서 부활절연합예배의 분열은 앞으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부활절연합예배를 하나로 엮으려는 노력이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라, 오히려 이런 분열체제가 굳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무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과연 부활의 기쁨을 노래할 자격이 있는지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차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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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갇혀 부활의 광명을 보지 못하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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