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홍정길 목사의 교회개척 동참 40년 동고동락… 김현승 시인 만나 문학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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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창조문예를 1977년 2월 창간하여 20여년 동안 단 한 번의 결간(缺刊) 없이 발행해 온 임만호 장로는 기독교문학 발전을 위해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해 왔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어온 문학에 대한 꿈으로 인하여 시(詩)인이 되었고, 출판인에서부터 순수 문학지를 창간하기까지, 그리고 그의 또 다른 계획과 다짐을 들어 보았다.-

-임만호 장로의 성장 배경
임만호 장로(75세)는 1940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가덕교회에 출석하였다. 주일학교에서 배우고 닦아온 신앙은 지금까지 성실한 삶을 살게 한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어린 시절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이 작사한 노래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저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내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주님 고대가’를 눈물 흘리며 감명 깊게 부르면서 가슴 설레는 교회생활을 하였다. 성경공부와 새벽 기도에도 열심을 다했다. 당시에 새벽기도에 함께 했던 친구 중 17명이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사와 선교사가 되었다.
임 장로는 중학교 시절에는 당시 ‘기독시보’라는 주간 신문에서 신앙시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주여 어서 오소서’라는 제목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학생들 앞에서 시를 발표하고 국어 선생님은 함평문화원에서 문학공부도 시켜주었고 작품집도 만들어 주었다. 고교시절에는 문예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문학에 대한 흥미와 동경을 갖게 되었다. 이로부터 문학에 소질을 인정받게 되었고, 함평 지광원(고아원)의 원가(院歌)를 비롯하여 서울밀알학교 교가,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학교 교가 가사를 만들기도 했다.

-김현승 시인을 만나 문학의 길
임 장로는 당시에 숭실대학교 철학과에 다니고 있던 친구 홍정길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정신으로 설립된 숭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무사히 끝내고 복학한 때에 고향 교회 홍순호 장로(홍정길 목사의 부친)의 편지에서 “우리 정길이와 같이 기독교대학인 숭실대학교에 다니게 되어 기쁘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 학기에 3만원씩 장학금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임 장로는 “죄송하지만 함평 지광원에 고아들을 위해 써주십시오.”라고 정중한 거절을 하였고, 홍 장로는 “만호란 녀석이 훌륭한 고집쟁이군”하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시를 써온 임 장로는 입학 후 문학청년으로서 당시 대학국어를 담당했던 김현승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시절에도 시를 많이 습작했음에도 김현승 시인은 불호령 같은 책망과 함께 매우 유익한 가르침으로 문학에 정진하게 해 주었다. 마침내 학보에 시가 게재되자 김현승 시인은 “시를 많이 읽고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라”면서 격려를 해 주었에 지금의 시인 임만호 장로가 있게 된 것이다.

-김준곤 목사 만나 CCC 사역 참여
1970년 임 장로가 재미있게 직장생활을 할 즈음에 홍정길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홍 목사는 당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간사로 설립자이신 김준곤 목사와 함께 대학생 복음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홍 목사는 임 장로에게 학원복음화와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설명하고 김준곤 목사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김준곤 목사는 임 장로를 만나 CCC의 거룩한 비전을 설명하고 CCC가 당면한 사업 중 회관건축을 하기 위해 법인을 설립하였다면서 “임 선생은 제가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학원복음화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예비해 놓은 인재입니다. CCC에서 재정담당을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김 목사의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꿈이 임 장로를 감동시켰다. CCC에 합류한 임 장로는 대학에서 전공한 경영학이 CCC재정을 담당하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이때 CCC회관을 건축한 경험으로 반포 남서울교회 건축과 남서울은혜교회가 밀알학교를 건축할 때에 건축위원장을 맡아 헌신했다. 임 장로는 CCC에서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 요원강습회와 한국교회역사상 최대의 행사였던 ‘엑스폴로 74’대회 등 큰 행사에 준비를 맡아 역할을 감당하면서 열정을 다했다.

-문서선교의 사명을 위해
임 장로는 CCC에서 후회 없는 사역을 마치고 1976년 선교적 사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문서선교에 나서 출판사와 서점을 동시에 개업하였다. 주위에서는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되기를 권유했으나 임 장로는 CCC의 정신대로 순수성을 가지고 평신도로서 민족복음화 사역을 하기로 다짐했다. 문서선교를 하면서 묵묵히 교회를 섬기고 싶었던 것이다.
도서출판 크리스챤서적과 아가페서적이라는 서점을 서울 후암동 입구에서 개업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문서선교의 보람을 체험했다. 영업도 순조롭게 성장해 크리스챤서적은 600여 종의 기획출판과 타 출판사 출판물을 총판하면서 중견 출판기업으로 성장했다.

-기독문학잡지 ‘월간 창조문예’ 창간
임 장로를 한국시단에 추천해 준 김신철 아동문학가는 “자네가 출판으로 돈을 좀 벌었다는 소문을 들었네. 한국에 기독교인이 천만 명을 넘지마는 월간 기독문학잡지 하나 없으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네. 이 일을 한번 해 보시게”라고 세 번이나 임 장로를 찾아 권유했다고 한다. 여러 친구 지인들을 만나 의논해 보았으나 임 장로의 고민은 깊어졌다. 적자가 날 것은 뻔한 일이지만 출판사 일에 조금만 업무를 더한다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대사에서 문학의 변천을 종교적으로 분석하면 고려 474년 역사는 불교사상이 배경이었고, 이조 500년은 유교사상이 이어갔다. 일반매체에서는 유교적인 작품은 인정하면서도 유독 기독교적 작품은 종교적 이유로 게재를 꺼린다. 노벨문학상 70% 이상을 유럽과 미국이 차지한 것도 심사위원들이 기독교적 문화권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을 배경으로 창조문예는 1997년 2월에 창간호를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창조문예가 창간 된지 얼마 되지 않아 IMF 사태를 맞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크리스챤서적에서 출판한 39권이 되는 전집 ‘알버트 반즈’주석 250세트를 할부 영업을 하는 분이 매입해 주어 극복할 수 있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창조문예는 금년 7월 234호를 발간하기까지 한 번의 결간도 없이 발행되어 왔고, 직원들의 인건비도 지급 날자를 넘겨 지불한 일이 없다. 출판과 잡지라는 사업이 어렵고 힘이 드는 문화사업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경영학을 전공한 임 장로에게는 기업경영의 특별한 노하우(Know-how)가 있는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격언을 좋아한다는 임 장로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창조문예는 역량 있는 작가들을 계속 발굴하면서 문학상( 창조문예문학상, 종려나무문학상, 아름다운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우수한 작품집을 발간한 작가에게 상금과 상패를 수여하고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격려, 지원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창조문예가 문학적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더욱 교계에서는 진주처럼 그 진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각 장르별로 배출한 신인작가는 262명에 이르고, 이들은 한국문단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창조문예는 2009년, 2012년, 2016년 3회에 걸쳐 ‘문화관광체육부 선정 우수콘텐츠 잡지상’을 수상하여 저력을 보여 주었다.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임 장로는 “기독교 월간문학잡지로서 위상이 높아진 것에 걸맞는 사명감으로 크리스챤 문인들이 기쁘게 참여하고 발전적인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장소와 통로가 되는 문학지로서 튼튼히 자리매김하고자 한다”고 다짐한다.

-앞으로의 비전과 역할
임 장로는 문학공원 조성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명성 있는 문인을 모시고 추모하며 역사를 기리는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앞으로 매우 좋은 명승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기독교 문학인들의 신앙적인 시와 작품을 집대성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윤동주, 박목월, 김현승, 박두진, 황금찬 등 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어온 인물들을 열거한다. 이는 신앙과 교육에 큰 도움이 되고 복음전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작가 12인이 모여 성경 66권 창세기부터 책별 신앙적 시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일본 기독교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한 동북아기독교작가 모임이 24년이 됐는데 작품을 통해 복음전도의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도 말했다. 임 장로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주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김형원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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