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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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빗소리를 따라 잠시 오크밸리 교회 쪽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수련회 이튿날, 아침부터 내리는 비였지만 왠지 언짢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빗속에서 버스도 달리고 기차도 달리며 KTX도 비 사이를 헤쳐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비가 오면 저는 까닭 없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비 구경을 하느라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지금은 드라이를 한 머리 때문에 우산을 쓰고 빗길을 걸어야 하지만요. 지난 주간엔가도 혼자 LG자이 뒷산을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중산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를 맞으며 길을 걷노라면 저는 항상 기억의 강을 건넙니다.

 

이번에는 가락동 개척 교회 시절 강원도 하진부에서 있었던 여름수련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토록 개를 잡거나 소주를 마시는 일이 없도록 신신당부하였건만, 남전도회 회원들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지혜롭게 준비를 했느냐면, 개고기 상에 소주를 사이다병에 넣어 놓고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만 현재는 장로인 김창환 집사님이 저에게 사이다를 따라 준다는 게 모르고 소주를 따라 주어서 들통이 난 것이죠. 젊은 혈기에 제가 어떻게 발끈하였겠습니까? 그러자 그날 밤, 김창환 집사님은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시고 저에게 와서 온갖 추태를 부리며 항의를 하였습니다. 결국은 옥수수밭으로 가서 말할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과거 새에덴교회 여름수련회는 그런 아픔도 있었습니다. 지나온 길마다 엉겅퀴와 찔레덩굴이 저의 두 발과 다리를 얼마나 찔러 상하게 하였는지 모르죠. 그런 엉겅퀴와 찔레숲을 지나 오늘의 장년여름수련회라는 화려한 꽃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장년여름수련회는 규모와 은혜의 질적 차원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수련회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는데, 제가 봐도 대단한 수련회였습니다. 매일 시간마다 자리가 없어서 의자를 더 가져다가 배치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비만 가지고는 운영이 불가능한데 성도들이 풍성한 헌금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외부에서 온 몇몇 분들도 수련회의 규모와 영적 분위기를 보고 감탄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새에덴교회 장년여름수련회는 우리 교회 전통과 문화로 자리매김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수련회 문화의 모델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다음의 교회세대에 물려줄 거룩한 유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목요일 오후, 저는 손녀 현주와 함께 그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화요일 오전은 비에 젖은 꽃잎들이 슬퍼하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목요일 오후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꽃잎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오늘의 이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나기까지는 목마른 고통도 이겨야 했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아픔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년여름수련회가 그랬지요. 지금은 김종대 장로님을 비롯하여 200명의 준비위원들과 100여명의 교역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고 빈틈없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옛날 여름수련회는 제가 다 북 치고 장구를 쳐야 했습니다. 저렇게 화려하게 피어난 꽃잎들도 아픈 기억이 있고 슬픈 추억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오늘의 장엄하고 은혜가 넘치는 장년여름수련회에도 찔레와 엉겅퀴의 가시들로 찢겨진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렇고 보면 아픈 기억과 화려한 축제 사이의 경계는 성난 바다처럼 거칠고 드넓은 것 같습니다.

 

그 날 비가 오는데도 매미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 매미 소리는 저의 귓전에 이런 메시지를 던져 주는 듯 합니다.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하리라, 성을 쌓으면 정녕 망하리라...” 이 말은 징기스칸이 한 말이죠. 징기스칸이 가는 곳마다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했다면 어찌 그 넓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 역시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지요. 끝없는 도전과 응전 속에서 더 나은 수련회, 더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수련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성이 아닌 하나님의 성을 쌓고 세상을 바꾸는 홀리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저는 이따금씩 비가 올 때 마다 기억의 강을 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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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기억의 강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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