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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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주일 이른 새벽부터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것 또 요로결석이 아닌가?’ 새벽 2~3시가 되어 혼자 누굴 깨우기도 그렇고 분당 서울대병원에 간다 한들 금방 시술을 해 주는 것도 아니기에 계속 고통을 참아내다가 서울대병원의 수간호사이신 전현식 집사님의 안내로 24시간 쇄석클리닉을 하는 병원으로 간 것입니다. 거기서도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픈 배를 움켜잡으며 끙끙 거렸습니다. 그때 생각나는 게 불사조였습니다. 저는 젊은 날 불사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사조 같은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불사조는 피닉스(Phoenix)라는 상상속의 새입니다. 이 피닉스(불사조)는 세상에 단 한마리만 존재하는 것으로 아라비아 사막에서 산다고 합니다. 빛나는 진홍과 금빛 찬란한 깃털을 지녔고, 독수리만한 몸집을 지녔는데 음성 또한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 피닉스도 500~600년을 살고나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때 피닉스는 향내를 물씬 풍기는 향나무를 태산처럼 쌓아놓고 불을 지른 다음 자기의 거대한 날개로 부채질을 하여 불길을 절정에 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불길 속으로 스스로 곤두박질을 해 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대한 몸집이 한 줌의 재가루가 되지요. 그런데 놈은 그 재 가운데서도 싱싱하고 더 활기찬 새로운 피닉스의 모습으로 부활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멋지고 활기찬 삶을 계속 삽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새를 가리켜 불사조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 인간 신념과 정신력이 표방하여 상상해 낸 것이 불사조라는 새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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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는 인간 신념의 표상이요 인간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최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고통의 순간에 불사조라는 새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불사조가 되어 이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하더라도 오늘 주일 설교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30~4시간 차를 타고 가서 목포체육관 집회까지 감당해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신념이야 주님을 위해서라면 당장 불길 속에 뛰어 들어서 다시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는 확신이 있죠. 그러나 아무리 내가 불속에 뛰어들 용기와 신념이 있다 하더라도 주일설교를 정상적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확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사조보다 중요한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당장이라도 불 속에 뛰어 들어가라면 뛰어 들어가겠습니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목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단에서 벙벙 뛰면서 집회를 한다는 것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 저는 불사조이기를 포기합니다. 저는 연약한 비둘기만도 못한 종입니다. 아니 주님이 저를 놓아버리시면 저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주옵소서. 은혜를 주셔서 이 시간 요로를 막고있는 돌을 깨게 하시고 통증을 멈추게 해 주셔서 오늘 주일 설교와 목포집회를 은혜로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정말 기도대로 저는 잠 한숨 자지 못한 가운데도 주님의 은혜로 주일설교를 하였고 나머지 예배는 영상으로 대체한 후 마침내 목포로 갔습니다. 그리고 목포 집회도 은혜로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사조보다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저의 신념과 믿음의 깡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오직 은혜, 은혜 위에 은혜를 앞세우며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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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불사조 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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