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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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삼하1:21).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후에 다윗이 쓴 애가에 나온 한 구절입니다.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원래 칼이나 창, 화살 같은 무기가 방패에 닿았을 때 잘 미끄러져 나가도록 방패에 기름칠을 하던 옛 전사들의 행동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즉 사울의 방패가 사울을 막아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b). 하지만 이 후에도 사울은 여전히 왕의 신분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왕의 지위는 있었지만 왕으로서 권위는 없었습니다. 그가 왕다움이 없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입증됩니다.

 

첫째, 그는 전혀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악신이 들어오면 번뇌하거나 야료하였습니다(삼상18:10). 기름부음을 받은 왕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떠나고 대신 악신이 임한 그는 악신이 충동하는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부여받은 왕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백성들은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다스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데 마음 쓰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보다 여생을 다윗 죽이는 일에 몰두합니다.

 

셋째, 본문말씀처럼 그의 방패가 무용지물이 된 점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18:1-2). 무려 8가지 유사한 말을 빌려 하나님이 그의 방패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이 그의 방패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일에 마음 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쟁 가운데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혀 다릅니다. “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삼상14:5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힘 있고, 용맹 있는 자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된 후 줄곧 의지한 것은 자신의 지혜나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사람을 의지한 삶이 그를 지켜주지 못 한 것입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지위는 있지만 왕의 권위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신자들 역시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벧전2:9). 자기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자신의 죄를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런 지위를 받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82:6).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판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됨이 얼마나 큰 은혜인 줄 모르고 육신을 따라 살아가니 마귀의 지배를 받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약한 신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10:19). 전능하신 분이 그의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여전히 옛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 살아가는 영적 식물인간이 되고 맙니다(3:1).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은 성도들이 범인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 아들의 영, 곧 성령을 따라 살아서 육신과 세상과 마귀를 다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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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왕다움이 없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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