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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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삼하3:16).

다윗은 사울왕의 딸 미갈과 혼인하기 위하여 블레셋 용사의 양피 일백을 사울에게 바쳤습니다. 미갈은 엄연한 다윗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도망자 신세가 되자 사울왕은 그를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 줍니다(삼상25:44).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갈은 발디엘의 아내로 지냈습니다.

 

그 후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움에서 죽임을 당한 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이미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을 넘기기 위하여 다윗 왕을 찾아가겠다고 기별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우선 자신의 아내 미갈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이 듬뿍 든 발디엘이 미갈을 울며 보내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본 남편이었던 다윗에게 다시 보낸다고 하지만 참으로 이 순간만큼은 발디엘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다윗이 사울의 신하였을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기 전 먼저 미갈보다 나이가 많은 메랍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다윗에게 줌으로써 다윗을 싸움에 나가 죽도록 할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 사울은 다윗에게 줄 시기에 메랍을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줍니다.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 바 되었더라.”(삼상18:19). 사울은 자신의 딸까지도 다윗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는데 아마도 그럴만한 기회를 찾지 못하자 아드리엘에게 준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는 배우자가 정해지면 쉽게 바뀔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더욱 엄격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겪은 다윗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지만, 메랍을 차지한 아드리엘 입장에서는 왕이 당시 떠오르는 별 다윗보다 자신을 선택한 일에 대하여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비록 시대는 차이가 있지만 사울의 두 딸을 두고 아드리엘과 발디엘의 감정의 희비가 교차합니다. 아드리엘은 큰 기쁨, 발디엘은 큰 슬픔........, 그 후 다윗의 통치가 한창일 때 이스라엘에 연이어 3년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무슨 연유로 이런 기근이 임하는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삼하21:2).

 

원래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닌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칠족을 멸할 때 그들을 죽이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는데, 사울의 이스라엘에 대한 잘 못 된 열심이 그들의 일부를 죽게 하였습니다(삼하21:2).

 

다윗은 기브온 족속들을 불러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그들이 재앙 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복을 빌어줄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어 주면 하나님 앞에서 목매어 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절친 요나단의 후손 므비보셋은 아끼고, 대신 사울의 다른 자녀나 그의 후손을 내어 주었습니다. 사울의 큰 딸 메랍의 후손, 곧 사울의 사위 아드리엘의 아들은 다섯이나 희생자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다윗과 경쟁하여 사울의 딸 메랍을 차지한 아드리엘, 그 때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때를, 순전히 사울의 사위 된 연유로 아들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이나 잃게 될 줄을, 금쪽같은 아들을 잃은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미갈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울었던 발디엘의 후손은 아무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발디엘은 아마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인간지사 세옹지마라고, 미갈과 헤어지는 발디엘의 눈물이 자손의 죽음을 면할 씨앗이 되고, 왕의 딸 메랍을 차지한 아드리엘의 환호가 후에 자녀를 잃는 설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5:14).

 

슬픔에 처한 자, 고난 당하는 자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위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아야 합니다. 즐거움에 처한 자는 기쁨에 도취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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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아드리엘과 발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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