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한 해가 또다시 저물어 간다. 십 수년째 퇴보를 반복하며, 벼랑 끝까지 떠밀렸던 한국교회가 연초 야심찬 포부를 다지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역대급 재앙이 재도약을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바닥까지 추락한 지금의 현실을 마냥 코로나 탓만 하기에도 머쓱한게 사실이다.

 

코로나는 오히려 한국교회가 그나마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연합운동의 몰락을 증명했을 뿐이다. 한국교회는 위기 앞에 심히 무기력했다. 뻔히 속 보이는 정부의 반기독교적 정책과 불평등한 방역조치 앞에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더 비참한 것은 정부가 부는 휘파람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1년 내내 내부 총질만을 해댔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한국교회의 예배는 정부의 구령에 맞춰 50명 이하, 20명 이하로 축소되며, 자위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국교회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의 무자비한 폭격 앞에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트집잡기식의 옳고 그름의 다툼이 계속되며, 한국교회는 스스로 나아갈 바를 잃었다. 과거 한기총(보수)NCCK(진보)로 양분되던 한국교회의 건강한 정치적 대립은 그 균형이 깨진지 오래다. 한국교회의 골수 보수로 유명했던 인사들마저 지난해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비난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고, 반대로 성경에서 명백히 금하고 있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근본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동성애나 포괄적차별금지법 앞에 충분히 이성적이며, 성경적인 반대를 놓고, 극보수, 극우 프레임을 씌워, 한 편으로 몰아 버리는 것이다. 그간 중립적 보수, 중립적 진보를 주창하던 합리적 기독교의 씨를 말리려는 듯 양 극단에서 중심으로 퍼붓는 포화는 심히 저급했고, 치욕스러울 지경이었다. 왜 한국교회는 이 지경까지 되어야 했는가?

 

정치 이념을 초월해야 할 기독교를 놓고, 그 태생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가리는 말도 안되는 논쟁을 벌이는 시대가 왔다. 인간이 만들어 낸 한낱 정치 이념 속에 하나님을 가두는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찾는 이들의 이율배반적 행위는 만인의 하나님을 그들만의 하나님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하나님과 기독교의 근본 개념마저 바꾼 이 모든 일이 놀랍게도 단 1년 만에 일어났다.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 그토록 자랑했던 기적과도 같은 부흥의 결과가 이토록 저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또다시 맞이하는 새로운 1년이 심히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매주 희망과 절망을 반복해 주는 서민들의 로또처럼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기대하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또다시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최악을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역시 도무지 지우기 어렵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한국교회에 있어 선택지는 단 하나 연합이다.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진리를 바로 세울 단 하나의 구심점이 세워져야 한다. 이는 미룰 수도, 묵과할 수도 없는 사명이자, 유일한 살 길이다. 온 몸에 암덩이가 퍼져, 이를 한시라도 빨리 도려내야 할 텐데, 언제까지 감기 따위의 치료법을 놓고 고민할 수는 없다. 고작 감기에 고민하는 동안 우리 몸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갈 뿐이다.

 

새해 멀리 보고, 큰 걸음을 내딛자. 수 십명의 사공이 서로를 잡아끌며 제자리를 빙빙 도는 조각배가 아니라, 능력있는 선장이 이끄는 한국교회라는 거대하고 튼실한 방주를 다시 구축토록 하자. 한국교회는 새해 연합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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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한 해 보낸 한국교회, 새해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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