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우리가 원하는 것들
2021/03/08 10: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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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목사(한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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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부터 지금까지 본능적으로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존재했다. 자연과 싸우고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이 서로를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불편한 관계를 하며 지내왔다. 남녀의 차별과 신분의 차별, 그리고 인종의 차별을 당연시 하고 수많은 비극과 불평등의 세월을 보내 왔다.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조절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상대를 멸시하고 자신의 부속물처럼, 같은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왔다. 이런 역사를 이루는 텀욕과 욕망은 여전하다. 많은 문화와 학문과 과학 등 문명을 거듭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악하고 거짓 됨 모습은 계속된다. 이성을 강조하든, 종교를 앞세우든 나와 이기적 집단들의 행복이 강조되고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상대는 하나의 먹잇감으로 처리한다. 전력이라는 것을 두고 죽이고 ,전쟁을 하며, 연극이 아닌 실제적 살인을 멈추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많은 체제를 말하고 사상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의 비열하고 악랄한 실태는 갈수록 더 잔인하고 교활하다. 정의와 사랑을 말하지만 이것은 이리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양의 가죽에 불과하다. 코로나가 어디서 시작되었고, 언제 종식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혹은 생태계의 파멸의 연장선에서 세계적 현상이 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여전히 인간들은 영토 싸움, 패권 싸움, 무역 싸움들을 포기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범죄 할 수 있는 각종 상업적 사업들을 홍수처럼 만들어 놓고 그러한 범죄자들을 수용할 감옥들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오늘 날 코로나의 재난은 인간의 탐욕과 모순적 삶의 양태의 결과이다. 분단 상황에서 여전히 우리는 미국에 의존되어 있거나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미 행정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예속적 눈치와 이해관계를 따져야 한다. 한반도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로 우리는 일제의 강제 병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의 해로부터 40여 년간을 일제 식민통치를 거치고 1945815일에 광복과 해방을 맞이한 그날 이후 우리는 미소 강대국에 분할된 분단체제를 살게 되었다. 북의 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남의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 이전의 해방공간의 미군정의 3년의 시간은 분단의 종속화, 제도화를 반영구적으로 울타리를 둘러 친 치욕의 강화였다. 일제 때보다 더 긴 신식민의 세월이 시작된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는 이러한 영구적 식민통치를 고집하는 미국과 새로운 세계 패권으로 부각된 중국의 싸움에 샌드위치가 되어 매우 어려운 역사적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세계화는 질병의 세계화도 이루었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추구로 그 종국을 예측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내적 분열과 반민족 세력의 잔재들로 인하여 진정한 민족과 나라의 정기를 회복하기는 매우 어려운 가운데 있고 자본과 권력의 깊은 유착은 사회적 양극화의 골을 깊고 넓게 확대 재생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의 형국에서 이러한 경제적 , 문화적, 사회적 양극화는 건널 수 없는 계곡이 되고 있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 현장들 속에서 노동자는 죽어 가고 있고, 그들의 생명과 인권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세계 경제 10대 대국이라는 양적 발전을 해 왔지만 여전히 노인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1등 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 역시 사회적 경제 양극화의 결과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는 체념적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는 분명히 깊은 우울증과 각종 질병에 빠져 있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도사려 있다. 교육의 인성과 윤리 도덕은 상실되고 인간 본질의 회복은 요원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들 역시 세상과 사회를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세상과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반사회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동안 성장 일로를 달려 왔던 교회 세력들은 코로나를 지나며 그 고통들을 수용할 여유를 완전히 상실한 광란의 몸짓을 하고 있다. 물론 교회 구성원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가 분단세력들과 친일 세력들, 반민족과 반역사적, 반민중적, 약자들의 삶을 애써 외면해 온 자기 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은 처참하기도 하다. 한국의 교육의 역사가 정부관리를 목적으로, 혹은 정치와 정치의제를 실현하는 것으로 일관하여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자본과 권력에 편승하고 의존하며 자기 배부름을 꾀해 온 결과로 진정한 사회적 나눔과 분배의 이웃 사랑에 역행 해 오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고 거대한 예배당을 건축하고 그 웅장한 울타리 안에 교인들을 가두어 놓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협박을 통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을 도모해 온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반성서, 반 예수 그리스도를 모색해 온 것인데, 그런데도 코로나의 재난 속에서 여전히 회개의 진실성을 보이지 않고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말해 온 것처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검찰공화국의 해체와 친일과 독재의 잔재들이 청산 되어야 하고 동시에 진정한 성서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없고서는 미래의 희망을 창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서의 한 분 하나님,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성령님은 수천수만의 신이 되어 이 땅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정통의 철저한 회개와 반성이 없으면 이단 사이비들의 약화는 쉽지 않다. 우리 모두의 정직한 나로 돌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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