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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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와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딛자 강물이 그쳤고 백성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너게 되었다. 이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후손들을 위해 열두 개의 돌을 취하여 요단강에 세웠고 또 요단강에서 가지고 온 열두 개의 돌을 그들이 유숙한 길갈에도 세웠다. 본문 1절을 보면 요단강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게 하시고 그들이 건넜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런 체험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서 정신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과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들의 삶을 보며 오히려 걱정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저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며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것인지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쪽이 많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보다 윤리와 도덕은 물론 법까지 더 지키지 않고 독단적이며 이기적이며 욕심이 많은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안에서는 이런 조소의 시각을 보고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교회법과 세상의 법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교회의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고까지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그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세상의 방식이나 내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즉 내 방법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가야 한다. 내 삶에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도록 내 자리를 내어 드린다면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마치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서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신자들을 보고서 이런 반응이 나오도록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도 아니요 그들의 잘남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할례를 하게 하신다. 물론 요단강을 건너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할례를 하게 한 것이다.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다. 4절 이하는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보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행한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언약의 표로 주신 것이 할례이다. 본문 9절에서 길갈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할례를 행하게 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9) 이제 길갈이라는 곳에서 할례를 행하므로 전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기억들, 즉 죄로 얼룩져 있는 수치스러운 일들은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다. 그래서 길갈의 뜻을 굴러가다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고 이제 막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12돌을 취하여 자자손손 하나님을 기념하도록 길갈에서 할례를 하게 한 것이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나 능력, 어떤 조건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가나안 땅에 있는 원주민들과 싸워서 이겨도 하나님이 싸워 주셨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하나님 앞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 주신 사건이 길갈에서의 할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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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웅 교수의 선교칼럼] 여호수아와 선교6 - 길갈(수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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