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혜암 유홍렬 박사(1911-1995)
2021/10/17 16:1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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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 연구소장/ 대신대 전 한국교회사 교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독창적 위상 업적 남겨

개화론 내지 근대화론적 입장에서 천주교회사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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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근간으로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혜암 유홍렬(惠庵 柳洪烈) 박사는 1911321,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정자리 둔지라는 마을에서 아버지 유인희(柳寅曦)와 어머니 박윤병(朴閏秉) 사이에서 태어나 199561484세로 서거했다. 본고에서는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있는 박광용이 쓴 유홍렬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와 그 특성이란 글을 의지하여 약술코자 한다(교회사연구 438).

 

유홍렬을 학자로서의 생애를 시기에 따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기는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 유서깊은 성리학 종가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6살 때부터 서당에서 소학(小學)을 배우고 8세부터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19353월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사를 받은 시기이다. 1919년에서 1925년까지는 고향인 장단고등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5년부터 1930년까지는 서울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부터 19353월까지는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사학과에서 지도교수인 일본인 스에마쯔(末松保和) 3인의 한국사 전공교수의 지도아래 한국사학 전공자로 수업을 받아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2기는 대학을 졸업한 후인 1935년부터 3년 간 경성제국대학 조선민속학 연구실 조교로서 진단학회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역사학자로서 학문활동을 한 1960년 초반까지이다. 조교 시절에는 아카바(秋葉降), 아카마쯔(赤松智域) 교수의 조선 무속연구에 참여하여 열두거리 굿의 무당 노래<巫歌>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36년 장면을 영세대부로 하여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이후부터 한국천주교회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37년 서울교구장 라리보 주교로부터 달레의 불어판 한국천주교회사(1,2)를 선물 받아 독학으로 읽기 시작했다. 19384월부터 1945년까지 천주교재단 계열학교인 동성상업고등학교 사회생활과 교사로 봉직했다. 194510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로 임명되어 진단학회 이사를 맡으면서 대학교수로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87월엔 서울대학교 정교수로, 19506.25전쟁 때는 현역 공군으로 14개월 복무하였다. 전쟁 후 서울대학교로 돌아와 국사편찬위원을 역임하고, 1956년 미 국무성 초빙교수로 하바드대학에서 수학한 이래 국제동양학자 회의, 국제역사학 회의 등 구미 각지에서 개최되던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한국학의 세계화에도 기여하였다.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 대학의 교육행정가로도 두각

그의 한국사 연구는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조 사회에 대한 규명 작업에서 시작해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종합 이해와 정리로 이어졌고, 또 한국천주교순교자현양회를 맡고 있던 윤형중 신부의 요청으로 19492<조선천주교회사>(상권)를 집필하였고, 1975년에 <증보 한국천주교회사>(하권)를 간행함으로 오늘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3기는 4.19 학생혁명 직후인 19607월부터 2년 간 서울대학교 교무처장, 상과대학장서리, 총장직무대리 등을 맡으면서 교육행정가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 19669월부터 1967년까지는 대구대학 학장으로 부임해 청구대학과 통합하여 오늘의 영남대학교를 출범시켰고, 19683월부터 1976년까지는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원장 및 총장을 역임하였다.

 

유홍렬 박사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는 개신교 쪽에서도 비슷하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 호교론적인 입장에서 복음전파사와 순교사(殉敎史)와 선교사(宣敎史)로 기술되고 설명되어져 내려온 것을 부인키 어렵다. 이는 조선 시대의 천주교회사가 지니고 있는 특성 그리고 교회사 연구가 지닌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가톨리시즘에 입각한 호교론적 관점에서 천주교회사 정리

여기서는 유홍렬의 천주교회사 연구의 위치와 특성을 파악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식민지 경영론적 탈교론(脫敎論)이다. 해방 이전 일본 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조선 왕조를 부정할 수 있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식민지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데 전력을 다한 관()학자 출신들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다. 조선 왕조의 멸망의 은인은 외부에서 오는 근대적 생활 체험이기도 한 천주교회조차 받아들이지 못해서 결국 망국에 이른 조선인 수준 탓이라고 하였다.

 

둘째, 복음선포적 호교론(護敎論)이다. 1874년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천주교회사를 출간한 프랑스인 달레(Ch, 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 서설은 복음선포를 서술의 기준으로 삼는 호교론적 성격의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 교리 자체가 인도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평등사상에 입각해 있어서 개화 개방적이기 때문에 조선의 폐쇄적 봉건적 정부가 박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호교론적 관점이다. 호교론적 서술은 신학과 역사학을 두 개의 기둥으로 하는 교회사의 한 기둥이 있고, 한국천주교회에서는 기본적 성격의 순교사라는 점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셋째, 민중종교적 호교론이다. 가톨릭의 교리 또는 교회 조직이 민중종교(民衆宗敎)라는 성격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봉건정부가 박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데 두는 연구의 흐름이다. 이에 대해서 조광(趙光) 박사는 당시 사회 변동의 과정에서 천주교 신앙은 이 변동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새로운 사상의 담당자들은 대부분이 비특권적 민인(民人)들이었다. 그들의 천주교 신앙생활은 기존의 성리학적 사회체제에 대한 반역으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 행위는 일종의 민중종교운동의 양상을 띄며 전개되어 나갔던 것이다(조광, 조선후기 종교사연구 서문,1988).

 

하지만 당시 대다수 천주교인들은 하늘의 뜻<天命>, 군주권<王權>, 삼강오륜<전통사회윤리>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박해자들이 그렇게 뒤집어 씌었을 뿐이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유교적 개념의 올바른 학문<正學>, 진실한 길, 하늘을 공경함<敬天>들과 충돌하기 보다는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질의 존재 인정, 동시에 영혼과 천주의 존재도 인정해야"

넷째, 문화론적(문화적응주의) 호교론이다. 천주교회는 어느 체제이든 거기에 들어가서 복음화 시켜야 함으로 교회운동 자체는 근본적으로 문화론적으로 체제 내의 운동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땅의 천주교우들이 한국 전통사회, 전통사상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교회를 건설하고 싶어했던 주체적 자발적 노력 자체를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의 연구는 오늘날 현실적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못하다.

 

다섯째, 근대화론적 호교론이다. 물질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영혼의 존재와 천주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가톨리시즘(Catholicism, 교회 밖에서 행해지는 가톨릭 신앙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관에 입각하고 베른하임(Bernheim)의 문화적 발전 관계를 밝히는 과학이 역사학이라는 정의를 받아들이는 유홍렬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달레 교회사 이래의 호교론적 연구의 흐름을 잘 이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가톨릭대학교 박광용 교수는 "유홍렬의 한국천주교회사의 특징은 그가 원래 성리학 사상 연구자로서 출발했으면서도 성리학을 우리 민족의 올바른 신앙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피해한 온천으로 파악하고 이를 자각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조선천주교회의 역사였다는 관점 곧 개화론적 내지 근대화론적 입장에서 교회사를 서술한데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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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작성자명 님ㅣ2021.10.17 22:43: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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