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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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삼하22:30).

 

삼하22:30절 이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말씀이 여러 절에 나옵니다. ‘의뢰’(30), ‘방패’(31), ‘바위’(32), ‘요새’(33), ‘구원의 방패’(36), ‘구원의 바위’(47) 등입니다. 이러한 힘, 배경을 의지하고 다윗이 행동한다는 말씀이 4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47절부터 51절까지가 하나님께 대한 찬미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갔더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뢰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어떻게 도우셨을까요?

 

적군에 달리며 성벽을 뛰어 넘도록 했습니다(30). 다윗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34), 그의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셨습니다(35). 다윗의 걸음을 넓게 하셨으며, 그로 실족치 않게 하셨습니다(37). 다윗이 원수를 따라 멸하도록 하셨으며, 저희를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않게 하셨습니다(38). 원수들로 등을 다윗에게로 향하게 하시고, 그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습니다(41). 적군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밟아 헤치도록 하셨습니다(43). 이로 인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7),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 하리이다.”(50). 그러면 이제 이런 의뢰는 어디서 비롯됩니까?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하나님께 대한 의뢰는 하나님을 아는데서 시작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103:7).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십니다.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에 나타난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1:19~20). 역사 속에서 하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말 탈 자 일천도 없을 만큼 미약했던(36:8) 히스기야 군대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5천을 쳐서 죽였습니다(37:36).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 제자들이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새 그물을 던졌으나 잡힌 것이 없었습니다. 날이 새어 갈 때에 어떤 분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은 그 분의 말을 듣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기가 들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 때 제자들 중 요한이 말하였습니다. “주시다.”(21:7). 누구도 주님이신 줄 모르고 말을 들었지만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보고 주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지금도 성도들에게 형편에 따라 나타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행사를 통하여 알리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길을 통하여 자신을 알리십니다(25:1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고전1:18). 십자가의 길은 말씀을 순종하는 길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지 알 수 없지만 순종해 보면 알게 되는 길입니다. 안병모 목사님은 처음에는 김현봉 목사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현봉 목사님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하니 김현봉 목사님이 받은 성령을 자신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줄 알지 못하다가도 믿음의 선진들, 선배들이 어떻게 행하였는지 살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징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문 역시 좁은 문입니다(7:13~14).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84:5~7) 라고 말합니다. 시온의 대로라고 합니다. 주님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하셨는데 고라의 자손들은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상호 모순 같습니다. 그러나 모순이 아닙니다. 좁은 문, 좁은 길 같지만 일단 순종하고 들어오면 넓은 길, 넓은 문입니다. 이유는 은혜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이라는 간판만 보고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넓은 길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자신이 어떠한 분임을 알리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리신다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알리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되면 거룩한 교제가 되며 사귐이 됩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과 슬퍼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이 악을 조금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격체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양심을 쓰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에 덕을 실행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벧후1:5).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고전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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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의뢰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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