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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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치열한 대선이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무한의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국민들에 있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최고조에 끌어 올렸다. 대선은 국민들에 있어 어떠한 선택을 하던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예정된 결말이지만, 이를 알면서도 매주 사게 되는 복권처럼 혹시나 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사전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35%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그토록 배신만 당해왔던 선거에 다시 한 번 희망을 걸고 있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 아무도 희망을 책임지지 않은 시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통령 선거조차 한 판의 도박처럼 모험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은 교회의 존재 가치에 대한 본질적 회고를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 하나님 품에 안긴 시대의 지성 고 이어령 교수는 소강석 목사의 시집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의 발문에서 교회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의 위기는 시대의 위기요. 역사의 위기로 종결된 경우가 많다. 시대와 역사를 위해서라도 교회는 끊임없이 정화되고 정신적, 사상적 샘물을 흐르게 하는 깊고 푸른 우물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지난 역사에서 언제나 시대의 최후의 양심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본질적으로 부여한 사명이자 역할이었다. 교회가 무너진 시대가 온전한 적이 없었고, 반대로 교회의 부흥은 곧 그 사회와 국가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70~80년대 기적과도 같은 부흥을 이룰 때, 국민들은 교회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반복된 전쟁이 가져온 배고픔과 가난, 성숙치 못한 민주주의에 따른 시대의 혼란과 억압 속에 갈 길을 잃은 국민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보며, 앞으로 전진했고, 미래를 일궈냈다. 교회 자체가 복음이었고, 국민들의 삶에 스며든 희망이었다.

 

대선 정국이 뜨거워지며, 한국교회 역시 줄 서기에 한창이다. 1번과 2번이란 별반 다를 바 없는 숫자를 오가며, 치열한 눈치전을 반복하고 있다. 서로의 선택을 두고 정치권의 당사자들 못지않은 이전투구를 펼치며, 스스로 이번 대선의 최고 수훈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사이 고 이어령 교수가 말했던 푸른 우물은 점점 오염되어 버렸다. 바닥 끝까지 보일 듯 투명했던 푸르름은 이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탁수(濁水)가 되어 그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교회의 위기를 시대의 위기라고 했던가? 스스로의 과오로 시대를 위기로 몰아넣은 교회가 이제는 더 큰 욕심으로 마지막 양심마저 저 버리려 하고 있다. 어느 순간 아무도 교회를 보며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요 근래 한국교회는 누구를 택해야 하나?” 란 질문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누구를 택할 때 한국교회에 좀 더 유리하며, 한국교회에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득한 물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 역사적 의의를 생각하며, 이 질문의 본질적 오류를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구를 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누가 되든 상관없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에 대한 물음을 먼저해야 한다.

 

어떠한 공격도 견뎌낼 굳건한 교회,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불의한 탄압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정의로운 교회, 스스로 예배를 지키며 성도들을 보호하며 국민들에 신뢰와 지지를 얻어내는 희망의 교회를 구축할 수 있다면, 굳이 이번 대선에 교회 스스로의 운명을 내던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물음의 해답은 결국 한국교회 대통합이란 주제로 귀결된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진정한 원 리더십으로 시대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어떤 불의한 상황이 닥쳐도 국민들을 보호하며, 시대에 여전히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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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선 #한국교회 #대통합, 그리고 ‘푸른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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