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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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왕상2:40-41).

 

운전면허를 딴 후 얼마간 장롱 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득이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 한 형제로부터 연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우회전을 위하여 도로 갓길을 서행하고 있었는데 앞에 가는 차가 갑자기 정차하였습니다. 조금만 비키면 된다는 생각에 핸들을 살짝 좌로 돌려 옆 차선을 걸치려고 하자 조수석에 있던 형제가 저를 저지시켰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앞차가 다시 갈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좌측 차선을 보고 지나가는 차가 없으면 그때 옆 차선을 걸치세요. 조금만 비켜 가면 된다는 생각에 사이드미러도 보지 않는다면 접촉사고 내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왜 타인의 잘못 때문에 우리가 사고를 내야 합니까?”

 

성경에는 타인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술에 취하여 발가벗고 장막에 드러누운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형 샘과 야벳에게 비난한 후 아버지로부터 저주의 경고를 받았습니다(9:22,24,25). 그로 인하여 함의 아들이었던 가나안의 후손은 기브온 족속만 빼고(9:26), 여호수아에 의하여 거의 전멸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이 동족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2:11-12). 애굽 사람은 조금 잘못했지만, 그는 가장 큰 범죄 가운데 하나인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결국 그의 살인이 애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는 애굽에 있지 못하고 부모와 형제 동족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타인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생활할 때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분냄을 인하여 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됩니다(20:12).

 

본문 말씀에서 언급했듯이 다윗을 저주한 후 솔로몬으로부터 예루살렘 밖을 벗어나면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시므이는, 3년 후에 그의 종이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도망가자 그를 잡으려고 예루살렘 경계에 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비록 종은 잡아 왔지만 그가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는 소문이 솔로몬에게 들려왔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경고한 대로 사람을 보내 시므이를 죽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시므이는 타인의 작은 잘못을 고치려다 자신이 사형에 이르는 잘못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왕상2:36-46).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간음한 후 밧세바가 잉태하자 우리아를 전쟁터에 죽게 하고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를 책망하였을 때 다윗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습니다(삼하12:13-15). 그러나 죗값까지 제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죄가 뿌리가 되어 밧세바가 낳은 아들과 암논과 압살롬과 아도니아가 죽는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의 받은 죗값과는 별도로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습니다(삼하12:13). 그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과 계속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의 조부였던 아히도벨은 다윗을 용서하지 못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습니다. 압살롬에게 베푼 그의 모사는 다윗이 심어둔 후세에 의하여 패하여지고, 전쟁의 결과를 예측한 그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삼하17:23). 다윗의 잘못을 복수하려다가 자신은 더 큰 죄를 짓고 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잘못을 고치려다 자신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예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물타기 위하여 저의 행동까지 끌어들였습니다. 그와 저의 상황이 전혀 다른데도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그 상황이 전혀 같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한마디 해줄까 하려다가 하나님께 믿고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저보다 저를 잘 변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쑥 말을 꺼냈다면 죄까지는 아니겠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부덕을 행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2, 3, 4중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죄도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점점 확대될 수 있습니다. 모방범죄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문제는 잘못을 고쳐주려다가, 잘 해결해주려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경우도 우리 감정이 불순한 상태라면 죄를 낳을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1-2).

 

타인의 범죄를 볼 때 우리의 태도가 첫째는 온유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유는 격동 받는 마음 없이 성령이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는 회개할 기회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자신도 시험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시험은 유혹(temptation)을 의미합니다. 자신도 거기에 동조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넷째는 그 사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타인의 잘못 때문에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깨어 근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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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타인의 잘못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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