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무속 세계에 얽힌 사연들'
2022/07/25 15: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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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천 목사(조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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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2002)에 어느 방송사가 방영했던 TV<장희빈>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즘 한창 재()방영하고 있어서 자연히 그 내용에 끌려 시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회(79~80)에서는 좀 특이한 장면이 나와서 그것에 끌려 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보았던 기억이다. 희빈 장씨가 막례란 무녀를 끌어들여 중전을 음해하는 공작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취선당에 차려놓은 신당에 미리 마련된 중전(왕후 민씨)의 얼굴을 표적삼아 화살을 겨냥해 과녁(눈알)을 명중시키는 짓거리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무당 막례가 몇 차례 화살을 당기다가, 직접 쏘아보라고 희빈 장씨에게 활을 넘겨주니까 거침없이 화살을 당기고 있다. 중전 민씨가 큰 타격을 받아 빨리 죽도록 만들어 보려는 무당 막례의 계획된 만행에 서슴없이 가담하는 희빈 장씨의 잔인한 모습이다. 장희빈은 중전 민씨(인현왕후)가 죽게 되면 그 자리에 다시 자기가 오를 것을 걸기대(乞期待)하며 그런 저주의식을 주저 없이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민씨 사후(死後)에 최숙빈의 발고(發告)로써 밝혀짐으로 인해 그녀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술(巫術)과 부패 권력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로 손을 잡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김동리 작가의 장편소설 <을화>(1978)에는 주인공인 어미 을화와 아들 영술 사이의 기막힌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미 을화(乙火)는 무당 신분이고 그녀의 아들 영술이는 예수교 신자이다. 영술이가 마을 교회엘 들렀다가 우연히 그의 생부를 만나게 된 뒤로, 그가 아비 집에 찾아가거나 머무는 일이 잦아진 것을 극력 반대하는 어미 을화와 아들 영술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게 된다. 어미와의 대립 끝에 영술이 나흘간이나 귀가하지 않는 동안, 을화는 아들의 귀가를 고대하며 식음을 전폐한 채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영술이, 지난 제 감정적 처사를 반성하며 귀가한 다음날 새벽, 을화는 아들의 성경책을 몰래 빼내 불에 태우며 굿을 벌이고 있었고, 이 현장을 목격한 영술이 그 불을 끄려고 근처의 물그릇을 집어든 순간, 을화의 식칼이 아들의 왼쪽 가슴을 찔러버린 것이다. 칼을 맞은 영술은 다음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당에게는 모자지간의 관계조차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무슨 불가침의 영역이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녀의 양심(또는 사랑)이란 것이 그녀 특유의 엑스터시(황홀경)의 유지만큼도 그 자신에게 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서기원 작가의 장편 역사소설 <조선백자 마리아상>(1979)에는 사기장이[陶工] 김신봉이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는 상당히 늦게 예수교도(속칭 천주학쟁이)가 된 편이기는 하지만 신앙만은 아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는 청년 신도이다. 그런데 그의 사기장촌에도 천주학쟁이들에 대한 일대 검거선풍이 불어닥쳤고, 그도 동료 도공들이 먼저 잡혀간 광주목의 관아로 자수 형식으로 걸어들어갔다. 이가환 광주 목사(부윤)의 온갖 회유와 협박, 아니 견디기 힘든 장타(곤장 타격) 등의 악형에도 굴하지 않던 신봉이가 그만 마지막 한 순간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소인은 하느님을 모릅니다.”라고 배교를 선언해버리고 만다. 이는 무당인 장모의 딸, 신봉의 아내가 벌인 고도의 심리전술에 그가 휘말린 때문이었다.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배교자로 만들고서 자기들의 무속 세계로 그를 끌어들여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그녀가 남편이 취조 받는 옥으로 갓난아기까지 안고 들어와서는 남편 대신 자기가 처벌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게 무당인 그의 장모의 머리에서 미리 짜낸 작전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장판(杖板) 위의 아내가 곤장을 맞는 소리, 거기에 놀란 아이의 자지러진 울음소리. 게다가 매질에 축 늘어져 있던 아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하느님 같은 건 모른다고 제발 어서 말씀드리세요.”라고 애걸하는 속에서, 결국 신봉이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무속세계의 끈질긴 대결의식과 그 만만찮은 파괴력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껏 우리는 한 사극과 두 소설 작품들 속에 나타난 무속 세계의 권력지향 성향과 대()기독교 파괴력의 실상 등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이런 것이 사극이나 문학작품 속에 보이는, 그 수준에 그치는 실상일 뿐이냐는 것이다. 이런 무당 이야기들은 결코 작품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실제론 우리 삶의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이다. () 박 정부 시절, 최 모()란 무녀가 국정 책임자를 맘대로 좌지우지하다가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그 책임자도 몰락하게 한 사례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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