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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를 아는 늑대 이야기
    어느 날 한 몽고족 남자 아이가 산비탈에서 늑대 소굴을 찾아냈다. 아이는 급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얼마 후 아이와 할아버지는 사냥총을 들고 동굴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한참 지키고 서 있는데 갑자기 임신한 어미 늑대가 동굴 앞에 나타났다. 어미 늑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새까만 총구멍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가 총을 쏘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만류했다. ‘사냥꾼일지라도 무자비하면 안 된다. 그만 돌아가자’ 반년 뒤 아이는 숲속에서 커다란 곰을 만났다. 당황한 아이는 아무렇게나 총을 쏘았다. 곰의 급소를 맞히지 못하면 쓰러뜨리지 못한다. 곰은 아이를 덮쳤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홀연히 나타난 두 마리의 늑대가 곰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늑대는 맹공격을 했고 곰은 쓰러졌다. 아이는 목숨을 구했고 곰까지 잡게 됐다. 아이는 이 늑대가 반년 전에 놓아준 늑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다. 우리는 동화 속에서 늑대는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잔혹한 동물로 보지만 사실 늑대는 은혜를 알고 보답할 줄 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늑대는 사냥감을 잡았을 때 맛있는 부분은 임신한 늑대와 이빨이 다 빠진 늙은 늑대에게 양보한다고 한다. 하물며 늑대도 감사하며 보답할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어떤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출생시부터 부모님과 선생님, 노인들의 각별한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오늘 날 우리가 이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그들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은 노인이 되어 고독, 가난, 질병 등으로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 소천을 당할지 모르는데 합당한 예우를 갖춰 은혜를 감사하는 이들이 많지 않는 것 같다. 참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이는 배은망덕한 것이다. 왜 젊은이들은 노인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첫째, 성경을 보자. 하나님께서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서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 19:32)는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를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감사는 나와 타인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즉 감사는 부유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종의 처세학이며 생활 속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개인적인 매력을 증대 시킬 수 있고,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감사와 자비는 친척지간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면 겸손해 지고 온화해지며 고상하게 인격이 변하기도하며, 큰 꿈을 이룰 수도 있고, 부유한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있다. 이처럼 감사의 미덕은 나와 타인 모두 유익하다.젊은이들이 노인을 선대하려면 어떻게 할까? 성경을 보면 ‘가족처럼’ 대하라고 권한다(딤전 5:1-2). 곧 연세 드신 노인들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섬기라고 한다. 어떤 샘지기 노인의 이야기이다. 알프스 산맥의 동쪽 기슭 오스트리아의 조용한 숲속 한 마을 원로회에서 계곡 위쪽의 샘들을 청소하기 위해 노인을 고용했다. 그 샘들은 마을에 여러 가지로 유용해서 나무들과 잔가지들을 치워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년간 노인은 샘물 위에 떠다니는 낙엽과 죽은 동물들, 그리고 더러운 쓰레기들을 제거하고, 맑은 물이 잘 흐르도록 수로를 깨끗이 청소했다. 그래서 마을은 번성했으며 유명한 관광휴양지가 되었다. 물레방아는 밤낮으로 돌아갔으며 농지에는 끊임없이 물을 댈 수 있었고 오염되지 않는 물 때문에 사람들은 건강했다. 마을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의 예산결산심의회가 열리는 가운데 한 위원이 ‘샘지기에게 지급되는 봉급’이라는 항목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누가 이 사람을 고용 했어요? 누굽니까? 봉급만 축내는 사람이 아닙니까?’ 위원은 잠시 멈췄다가 말을 계속 이었다. ‘이 노인이 없어도 샘물은 안전하고 깨끗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사람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장황한 설득으로 위원들은 노인을 해고했다. 그 후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을이 오자 샘물에 낙엽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흙이 쌓였으며 때문에 물의 흐름도 느려졌다. 또 마을로 흐르는 냇물이 누런색을 띠는 듯 하더니 얼마 지나자 색이 더 짙어졌다. 그리고 한 주가 더 지나자 냇물 양쪽 둑에 물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또 냇물에서는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물레방아가 멈추었다. 그러자 관광객이 떠나고 아이들은 병이 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마을 원로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그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그 노인을 해고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고 다시 노인을 복직시켰다. 다행히도 몇 주 만에 샘물이 깨끗해지고 물레방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고 아이들도 더 이상 아픈 일이 없었다. 마을은 다시 생명을 회복했다고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8-11-09
  • 맥스웰 몰츠 박사(MaxWell Mallz(M.D)의 성공의 이야기
    세계적인 인물로 존경 받고 있는 맥스웰 몰츠 박사.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암스테르담 대학, 파리 대학, 로마대학 등에 재직했다. 성형외과 의사로 수많은 상담과 수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은 외모의 교정보다는 ‘실패’와 부정적 신념으로 왜곡된 내면의 자아 이미지를 바꾸는 ‘마음의 성형수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변화와 자아혁명을 위한 성공 실천 프로그램을 창안하는데 몰두했다. 1960년 의학을 포함해 생리학, 심리학, 미사일 유도 기술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가, 운동선수, 세일즈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분석결과를 집약, ‘맥스웰 몰츠 성공의 법칙’이란 책을 냈다. 실제로 이 책은 수많은 성공사례를 소개 함으로써 ‘기적’의 책이라는 평을 얻었고, 이 책 이후에 나온 자기 계발서 중 그 어떤 책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특히 최근까지 골프 선수, 올림픽 선수 등 스포츠 감독과 선수 등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스포츠 심리학의 뿌리는 바로 이 책이다. 저서로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미래, 피그말리온 박사’ 등이 있으며 강연과 세미나, 상담 사례집, 오디오 및 비디오 테이프 등을 남겼고, 이 유산들은 사이코사이버네틱스 재단에 계승, 연구되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래 3,000만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50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자기 계발서의 최고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반세기 넘게 이어진 독자들의 한결 같은 찬사는 이 책이 수천만 명의 인생을 바꿔놓았음을 입증한다.(WWW.Psycho- Cybemetics,com)그는 어떻게 대성 했을까? ‘어릴 적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 집에 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의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말과 젊은 성형외과 의사가 뉴욕에서 간판을 걸고 개업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사람들의 의견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의대에 다니면서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 살려고 하는 시기였다. 그때는 참 배고픈 시절이었으며, 감기를 비롯한 갖가지 질병에도 시달렸다. 하루에 12시간은 일한 것 같다. 그때 어디서 돈이 생겨 집세를 지불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열정과 나를 계속 일하도록 해준 확고한 끈기가 있었다. 의대시절 그날 벌어서 의학 서적을 사기 위해 코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해부용 시체를 구입하기 위해 점심을 거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한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었고,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나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나는 실연을 극복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 일이 내게 일어났던 일 중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불가능을 이기고 성공 하였다.우리가 긍정적인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사람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인간관계, 일 자신에 대한 태도, 그리고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까지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세상을 보는 필터가 결정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우리는 맑고 투명한 필터로 세상을 보게 된다. 세상의 걱정거리나 문제점을 보는 동시에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가능성 역시 볼 수 있다. 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어둡고 흐릿한 필터로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무얼 보든 간에 모든 것이 뒤틀려 보인다. 더 나쁜 것은 인생의 긍정적인 전혀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영혼을 좀먹는 일이다. 이는 자신의 날개를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태도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을 지배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암암리에 자아 이미지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사용해 온 사고 유형을 중단하고 매번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확신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빌4:13)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님께 털어놓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과 담력과 열정과 용기와 확신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 칼럼
    • 목회자
    2018-10-19
  •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까?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에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기념관 벽의 외관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념관장은 관리자에게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조사 결과, 기념관의 외벽에 묻어 있는 비둘기의 분비물을 제거하기 위해 독성이 강한 세제를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관리자는 비둘기가 많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관광객들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비둘기는 계속 날아들었다. 도저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관리자는 외부 컨설팅회사에 문제 해결을 의뢰했고 컨설팅회사는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이 밝혀졌다. 제퍼슨 기념관에 유난히 비둘기가 날아드는 것은 기념관 벽에 서식하는 거미들 때문이었다. 거미를 잡아먹기 위해 비둘기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거미를 박멸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좀처럼 효과가 없었다. 원인을 추적해 보니 밤마다 숲에서 떼 지어 날아오는 나방들이 거미들의 왕성한 서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나방들이 기념관으로 날아든 이유는 기념관에 켜둔 대낮처럼 밝은 전등 때문이었다. 이 기념관은 주변 건물보다 2시간이나 먼저 점등, 나방들이 날아들기에 더할 나위없는 좋은 조건이었다. 컨설팅회사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조명 점등 시간을 주변 건물보다 1시간 늦게 점등할 것. 이로써 모든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했다. 주변건물 보다 1시간 늦게 점등 하니 나방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나방들이 없어지니 나방을 잡아먹으려 했던 거미들도 가버렸으며, 거미들이 없어지니 비둘기들도 없어졌고, 비둘기가 없어지니 분비물도 없어졌으며, 분비물이 없어지니 독성 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더불어 건물도 훼손되지 않았고, 인건비도 훨씬 절감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 흔히 남보다 못한 환경을 탓하거나 주변의 누군가의 방해와 잘못 때문이라고 하고, 혹은 지독히 운이 없다고 치부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일로 절망에 사로잡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면 그것에는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찾다보면 해답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위인의 성공적인 삶이 부럽다면 그가 어떻게 성공하게 된 원인을 찾아 그것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기업가 루돌프는 원래 농부였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금광 열풍이 불자 아무런 생각 없이 휘말려 들어갔다. 산골짜기에서 죽도록 일했지만 황금을 찾지 못했고 고생만 했다. 대신 그곳의 기후가 매우 건조해 갈증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광 채굴꾼들은 물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고, 심지어 목마름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은 ‘물 한 컵과 금덩어리를 바꾸자’고 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목표를 바꿨다. 물을 광산까지 가지고 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농부의 경험을 살려 금광을 파던 삽으로 우물을 팠고 금을 캐는 것이 아니라 지하의 물을 파냈다. 그리고 물을 광산으로 날라 사람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리바이스 청바지의 창시자인 레비 스트라우스도 금광 열풍에 휘말린 사람이다. 그도 루돌프처럼 금광에서 돈을 벌었지만 금을 캐서 번 것은 아니다. 그는 바지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광부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질긴 바지였다. 스트라우스는 천막으로 사용하는 천을 가지고 시험 삼아 바지를 만들었다. 이 바지는 튼튼해서 곧 사람들에게 팔려나갔다. 그는 본격적으로 천막천으로 바지를 만들었고 이 바지는 엄청난 돈을 벌어다줬다. 그리고 그는 ‘리바이스’ 라는 상표를 만들었고 이 상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리바이스 청바지는 오늘날에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상표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성공자들은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어느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성공자들의 3/4이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젊은 시절 비극과 무능력과 좌절감에 빠졌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했던 것이다. 조사 대상자는 정상에 오른 금세기 4백 명의 남녀들이었다.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토마스 에디슨과 엘레노 루스벨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부자들 10명 중 대부분이 가난한 소년기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강인한 의지, 인내, 전략과 좋은 습성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돈을 저축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생에는 순탄한 환경도 있고 역경도 있다. 이 두 가지는 늘 번갈아 나타난다.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에 바람이 사납게 불다가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것과 같다. 우리들의 삶에는 따뜻한 날이 있는가 하면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도 있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로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 칼럼
    • 목회자
    2018-10-05
  • 사람의 열등감 이야기
    전 세계 사람들 중 최소한 95%의 사람들이 열등감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열등감은 성공과 행복한 삶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열등감을 갖고 살고 있을까? 저명한 성공학자 맥스웰 몰츠 박사는 그의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열등감은 한 가지 이유에서 나온다고 주장 하는데 일리가 있어 소개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규범이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 한다.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면 예외 없이 자신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개인의 기준에 들어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고 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참함과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잘못된 판단을 근거로 내리는 결론은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성공이나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기 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어떤 종류도 상관없이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괜한 핑계를 대거나 죄책감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은 ‘나는 아무개처럼 되어야 해’ 또는 ‘나는 그 밖의 다른 사람처럼 되어야 해’와 같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근거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런 오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고정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 개인으로 구성되며,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우수함을 추구함으로써 실책을 만회하려 한다. 그러한 감정은 자신이 열등하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나온다. 즉 잘못된 전제로부터 전체적인 ‘논리적 사고’와 감정이 출발한다. 만일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다면 그 해결책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우월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말로 기분 좋게 느끼려면 남보다 더욱 우월해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통해 보다 좌절하게 되며. 때로는 노이로제까지 겪는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더 많이 노력 할수록 더 비참해 진다’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①외모에 열등감을 갖지 말자. 하나님은 표준적인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예컨대 하나님은 모든 눈송이를 저마다 독특하게 만든 것처럼, 모든 인간을 개인적으로 독특하게 만들었다. 프랭크 슬로터(FranK G. Slaughter) 박사는 ‘자신이 신(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강렬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전적인 확신을 갖고 믿을 때 강인함과 능력이 새롭게 샘솟는다’라고 말했다. ② 환경을 탓하지 말자. 일본의 대기업가 마쓰시다타가 운명 직전 ‘어떻게 성공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네. 첫째, 집이 가난해서 어릴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고생을 했고, 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험을 많이 얻었다네. 둘째,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썼고,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네. 셋째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스승삼아 질문하며 열심히 배우는 일을 하였다네’ 누가 마쓰시다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환경을 탓하겠는가? ③ 우리의 뇌에 미래의 희망을 심어야 한다. 뇌 학자들은 뇌는 밭과 같다고 말한다. 밭에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가 자라고 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자란다. 뇌는 똑 같다고 한다. 뇌의. 미래에 희망을 심으면 희망이 자라고, 절망을 심으면 절망이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미래기억에 절망을 심는다. 우리 주변을 보자. 학식, 명예, 지위, 권력, 재물 등이 있어 살만 한데도 열등감에서 매일 죽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반면, 사는 것이 넉넉해 보이지 않는데도 늘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이들은 자신의 뇌에 희망과 절망의 비율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과 절망의 경계점이 있을까? 희망을 어느 정도 심어야 안전할까? 사실 희망이야 많을수록 좋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다. 프레드릭슨은 2009년 펴낸 ‘적극성’에서 즐거움, 감사, 희망, 자긍심, 관심 등 긍정적 10개를 제하고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의 비율이 3대1일 때가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라고 주장했다. 긍정적인 정서 비율이 높아지면 만족스러운 삶은 살게 되지만 부정적인 정서가 높아지면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된다는 주장이다. 100점 만점에 희망이 70점 이하로 떨어지면 무기력해지고, 다 떨어지면 우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이 공식을 기억해야한다. 우리의 머릿속에 온통 가득 채워야 할 두 글자 희망, 우리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심으면 희망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희망이 그 어떤 절망에서도 우리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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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2018-09-21
  • 행복 이론을 실험한 한 과학자의 이야기
    미국 호프칼리지의 행복 연구전문가 데이비드 마이어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윤리적이며, 지적이고 편견이 적으며, 남들과 잘 어우리고 건강하다고 믿는다. 둘째, 낙천적인 사람이다. 삶을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영위하며 친구나 가족에게 항상 따뜻하게 대하며, 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셋째, 외향적인 사람이다. 개방적이고 사교적이어서 좋은 친구가 많고 인기도 높아 행복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고 했다. 그럼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 될까요? 이제 필자는 행복 이론을 실험한 한 과학자를 소개해 드림으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엘우드 워체스터 박사는 (신체, 마음 그리고 정신)(Body, Mind and spirit)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과학자의 증언을 이렇게 소개를 한다. ‘50세가 될 때까지 나는 불행하고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책도 출간되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우울함과 패배감에 살았다. 아마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은 1주일에 두 차례 정도 나타나는 원인 모를 두통이었을 것이다. 두통이 닥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신사상(New Thought)문학을 접하고 있었으며, 바람직하고 유용한 것에만 주의를 기울리고 나머지는 무시하라는 윌리암 제임스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한 인생관을 던져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말이 좀 의아 했지만 내 영혼이 병들고 점점 악화되어 더 이상 삶을 지속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것을 실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의 가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생각으로 나는 약 한 달간의 의식적인 노력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말하자면 이 기간 동안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제약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과거에 대해 생각할 때는 오직 행복하고 즐거웠던 사건, 해맑았던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영감, 그리고 생활 속에서 천천히 다가온 내 삶만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에 대해 생각 할 때는 일부러 바람직한 요소, 내 가정,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소중한 기회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사소한 사실 등은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는 내가 이해하는 한도 안에서 가치 있고 실천 가능한 야심을 꿈꾸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겉보기에 우스꽝스러울수 있지만, 내 관점에서 볼 때 내 계획에 결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았고 그 밖의 사항을 충분히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1주일 후 그 과학자의 두통은 멈추었으며, 그는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고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 후 그가 존경한 유명한 분이 편지를 보내 조수로 청했고, 그의 책은 모두 출판됐으며, 책을 출판해 주겠다는 재단도 나타났다. 이처럼 행복은 훌륭한 치료약이다. 그러면 행복을 철학적 관점이 아닌 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자. 존 쉰드레(Jon ASchindler) 박사는 행복을 ‘우리가 꽤 오랜 시간동안 유쾌하게 느끼는 정신적 상태’라고 정의했다. 행복은 인간의 마음과 신체에 들어 있는 천성이다.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 보다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건강해 진다. 심지어 우리의 감각기관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 활발하게 움직인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케크체예프(K. kekcheyev) 는 사람이 즐거운 생각을 하는 경우와 불쾌한 생각을 하는 경우에 보이는 반응에 대해 실험했다. 그의 실함에 의하면 우리는 즐거운 생각을 하는 경우에는 더 잘 볼 수가 있고, 촉각 또한 예민해져 미세한 차이를 보다 섬세하게 감지할 있다. 윌리암 베이츠((William Battes) 박사는 즐거운 생각을 하거나 장면을 떠올릴 때 시력이 곧 바로 향상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심신 의학에서는 행복할 때 위, 간, 심장 그리고 다른 내장 기관의 기능이 활발해진다는 점을 증명하기도 했다. 쉰드러 박사는 불행이 모든 심신 의학적 질병의 유일한 원인이며, 행복이 유일한 치료약이라고 말했다. 영어에서 ‘질병’(disease)이라는 단어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dis-ease)를 의미한다. 제발로 오는 성공과 행복은 없다. 행복은 우연히 얻어지지 않는다. 실천하겠다는 의지에 달려있다. 링컨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먹기 따라 행복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인 매튜 채펠 박사는 ‘행복은 순전히 내적인 환경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행동에 의해 개발되는 개념, 생각, 그리고 태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100%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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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2018-09-14
  • 상대의 성격 파악하기
    현대는 빠르게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는 불과 몇 초 안에 상대의 상태를 쉽게 알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그야 말로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세대이다. 하지만 이이러니하게도 서로에 대한 문제는 삶의 현장에서 예전보다 험악하게 더 많이 날로 증가하고 있고 상대와 소통을 하지 못해 마음의 병이 드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다. 그 결과 가정이나 교회나 기업이나 조직들이 이미 붕괴되거나 아니면 붕괴 일보 전에 있는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의 단견으로는 우리가 처음 만난 상대의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소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례로 부부가 결혼 후 처음 부딪치는 것 중 하나가 치약 때문이란다. 치약 짜는 방법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자기야, 치약은 끝에서부터 짜야 해요. 그래? 나는 지금까지 그냥 잡히는 대로 눌러썼는데, 아무튼 노력해볼게..’ 그런데 오랫동안 길들여진 습관이 쉽게 고쳐질 리 없다. 아내는 몇 번을 더 치약 짜는 방법을 설명하지만 남편은 대답만 하고 다시 가운데를 꾹꾹 눌러서 짠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급기야 심하게 다툰다. ‘당신 치약 짤 때부터 알아봤어, 당신은 매사가 대충이야. 매일 고친다고 말하고 거짓말만 하잖아.. 뭐라고, 치약을 아무렇게나 짜면 어때? 그게 대수야? 거짓말? 내가 무슨 거짓말 했어? 당신 아버지하고 같아.. 뭐?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왜 물고 늘어져’ 이쯤 되면 피차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때로는 삶의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이 예화는 우리들이 삶의 현장에서 상대를 잘 파악하지 못해 부딪치는 하나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처음 만난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여 소통을 지혜롭게 잘 할 수가 있을까? 인천 재능대 송진구 교수는 다행히 상대를 한 눈에 파악하는 유용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가장 먼저 1단계로 성격이 급한지, 여유가 있는지를 구분합니다. 그 다음 2단계로 일 중심적인지, 사람 중심적인지를 구분 합니다. 그러면 성격유형이 구별되는데, 그 4가지 성격유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호랑이 형은 우유부단 한 것을 싫어합니다. 앞장서기를 좋아합니다. 리더십이 강해서 추진력이 뛰어나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리더십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유형입니다. *돌고래 형은 냉소적인 반응을 싫어합니다. 쉽게 흥분하고, 충동적 입니다. 낙관적이며 매사에 빠르게 적응합니다. 외모나 성격을 칭찬해 주면 광분하는 타입 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좋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유형입니다. *사슴 형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매우 싫어합니다. 논리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하며, 타인의 비판을 매우 싫어해 매사에 완벽을 기합니다. 정확성이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기 때문에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주변사람으로부터 ‘정확하다’, ‘틀림없다‘ 는 평가를 원하는 유형입니다. *코알라 형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강압적인 지시에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인간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인내심이 많고, 친절합니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하고 주변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에 의사결정을 합니다. 소통을 즐거워합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성실하다’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유형입니다. 이번에는 각 유형별로 칭찬 방법을 소개합니다. *호랑이 형은 추진력이 뛰어나서 믿고 맡길 때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성취력, 추진력, 진취적인 능력을 칭찬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돌고래 형은 외모나 아이디어, 성격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슴 형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논리성과 정확성, 그리고 체계화를 칭찬해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코알라 형은 안정적인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에 팀워크,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 상담 능력을 칭찬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고 대응할 때 소통의 효과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관계도 좋아집니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함’을 의미하는 소통이라는 말처럼 내가 남들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은 큰 위안이다. 그 위안은 커다란 고통과 좌절도 인내하게 할 수 있으며, 자실충동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상대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만 왜 이렇게 힘들게 노력해야해, 정말 불공평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신도 누군가에 ‘상대방’이다. 그 누군가도 당신과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칼럼
    • 목회자
    2018-08-31
  • 지도자는 공평해야 한다
    어느 날 호랑이와 사자가 밀림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늑대는 숲 속에서 손꼽힐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동물이다. 호랑이와 사자는 서로 늑대를 포섭하려고 했다. 어느 날 사자는 늑대에게 “만약 내가 왕이 되면 나는 절대 아무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을 했다. 사자도 슬그머니 늑대를 찾아가 “만약 네가 나를 도와 호랑이를 쫓아낸다면, 나는 너를 밀림의 두 번째 왕으로 임명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손대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면 늑대는 누구의 편에 섰을까? 그는 호랑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자가 그 이유를 묻자 늑대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요구가 까다롭지 않습니다. 단지 공평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도자의 권리는 마치 불과 같아 사람들에게 빛과 열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멸망과 재난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러한 불의 힘은 지도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지도자가 한 조직을 잘 이끌려면 자신의 권리로 조직원들에게 혜택을 주고, 공평해야한다. 미국의 한 심리연구센터에서 2만 여명의 직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지도자는 바로 불공평한 지도자였다. 왜 그럴까? 조직원을 차별 없이 대하고 매사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자신을 공평하고 정직하게 대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조직원은 심리적인 안정과 평형을 얻게 되고 업무에 대한 적극성도 높아진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불공평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지도자의 불공정한 태도는 조직원들의 강한 불만과 불평을 일으킬 수 있고 적극성에 엄청난 손상을 줄 수 있으며 때로는 지도자와 충돌이 생길 정도로 심각해진다. 그러기에 지도자는 공평해야 한다. 조직원 중에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과실이 있으면 벌하여 공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원의 존중을 받을 수 없고, 조직이 단결 될 수 없으며 조직은 결국 물먹은 흙담처럼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공평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할까? 먼저 탐욕을 버려야한다. 왜 탐욕을 버려야 할까? 첫째,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옛말에 ‘길은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것을 계속해 채우려 드는 사람은 결국 갈증 나는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즉 소금물이 결코 갈증을 해갈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목 타게 하는 것과 같이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불러들여 눈으로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로 들어도 차지 않게 된다(잠 1:8).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말하기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고 하였다. 둘째, 죄를 범하고 멸망하기 때문이다. 이에 성경의 인물 바울은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딤전 6:10).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다 보면 십중팔구는 시험과 올무에 걸려들게 마련이다.(딤전6:9) 실례로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판 후 자살하였고(마 26:15~16, 27:5) 게하시는 거짓말로 재물을 취하다가 자신과 자손 대대로 문둥병과 저주를 받았다(왕하 5:20-27). 이 밖에도 우리 주변에서 물질을 탐하다가 거짓말, 절도, 강도, 유괴, 인신 매매, 살인 등을 하는 자들을 수 없이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탐욕의 이름도 부르지 말라 하셨고”(엡 5:3), “탐심을 우상숭배라”(골 3:5)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욕심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죄를 낳게 하고 그 죄는 결국 사망을 낳게 한다(약 1:15). 이는 모든 인류를 사망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단의 교활한 술책이다(창 3:4~5 삼하 11:2). 만일 우리가 그 궤휼에 넘어가 욕심을 제어하지 않으면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결국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 셋째,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켜야 한다(잠 4:23). 사람의 마음은 살인, 도둑질, 음란함, 거짓말 등의 가증하고 부패한 모든 죄악의 근원지이다(창 6:5. 렘17:9-11). 하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그를 온전히 의지하면 우리의 더러운 마음은 정결해 질 수 있고(시51:10) 새롭게 될 수 있다(겔 36:26).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심으로써, 우리로 그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하신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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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2018-08-23
  •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져 버려라
    피곤에 지친 한 여행자가 먼지가 날리는 길 위를 걷는다. 여행자의 어깨 위에는 커다란 둥근 돌이 올려져 있고, 등에는 벽돌로 가득 찬 자루가 매달려 있으며, 머리 위에는 울퉁불퉁한 커다란 호박이 얹혀 있다. 다리는 억센 잡초와 포도 덩굴이 휘감고 있어 휘청거리면서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상상이 되겠지만 이 사람은 아주 불편한 자세로 구부러진 체 천천히 지루하게 절름거리면서 걷고 있으며, 앞으로 나가가고 있다. 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인사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당신은 왜 그처럼 크고 무거운 짊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까?’ 그 여행자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말해 주기 전에는 내 짐들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습니다. 내가 그것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깨에 둘러맨 둥근 돌을 내려 길 한편에 두고 이전보다 훨씬 똑바른 자세로 걸어갔다. 잠시 뒤 누군가가 그에게 왜 벽돌로 가득한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있냐고 물었다. ‘내게 그렇게 말해 줘서 감사합니다. 나는 자루에 무엇이 들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거든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루에서 벽돌을 모두 꺼내 길옆에 놓아두고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길에서 놀고 있던 한 호기심 많은 아이를 만났다. ‘이봐요. 아저씨 왜 다리에 잡초를 칭칭 감고 있나요?’ 그는 주머니 칼을 꺼내서 그 잡초들을 베어 버렸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한 사람의 불필요한 짐의 존재를 그에게 알려 주었으며, 그는 차례로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고 짐을 길에다 버렸다. 마침내 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과 비슷한 키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화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문제가 돌, 벽돌, 그리고 잡초였을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그의 정신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사람의 정신 상태가 건전하지 못한다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이 보낸 악한 영, 즉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빈부귀천, 학식의 유무를 불문하고 모두 악한 짓만 하게 된다. 그렇다. 귀신들린 사람들은 인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대로 무엇을 할 수가 없고, 귀신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귀신의 뜻을 역행하면 여지없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그들은 귀신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실례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보자. 그가 악령에 사로잡히니 교만해졌고 잔인한 폭군으로 변해버렸다(삼상 18:10-11, 22:6-19).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거라사의 광인처럼 악령에 사로잡혀 성격이 사납게 변하여 버리기도 하고(마 8:28-34), 또 어떤 사람들은 거짓 종교를 만들어 가르치기도 하며, 퍼뜨리기도 한다(딤전 4:1-3).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영에 대한 분별없이 아무 영이나 접하므로 귀신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귀신들의 말을 퍼뜨리는 이들이 많다. 이단 사이비들이나 극단적인 종말론 자들이 그 좋은 예들이다. 그들은 전에는 정상적인 성도들이었으나 귀신의 영에 사로잡힘으로 광신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분명히 계시가 임하였다고 주장한다. 몇 년 몇 월 몇 일에 주께서 재림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는 성경이 완성됨으로써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보아야 한다(요일 4:1). 그리고 신령한 은사와 계시를 받았노라고 자랑하는 자들의 그 열매를 보고 그들과 교제를 경계해야 한다(마 7:15-20). 그리고 설사 내가 어떤 신령한 체험을 했을지라도 성경 말씀과 배치되는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을 지배하고 주장하는 것은 귀신만이 아니다. 죄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주장한다. 그래서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하지 못하고 언제나 악한 일만 생각하고 악한 일만 하게 된다. 그들에게서는 우상, 숭배,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 교만, 자랑, 배약, 무자비와 같은 악한 것들만 나온다(롬 1:29-31). 사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 나기 전 상태가 이러했다. 성령으로 중생하기 이전 선을 행하고 싶어도 선을 행할 수가 없었다. 죄가 우리 자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나기 이전의 자신을 고백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나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19-21) 이것이 죄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자의 실상이다. 그러기에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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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2018-08-09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야기
    ‘빅터 프랭클’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 나치가 수백 만 명의 유태인을 감금하고 학살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당했던 유태계 정신과 의사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가스실에서 죽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그는 그곳에서 살아 나온 후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원래 익명으로 낼 생각이었는데, 그의 의도와 달리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교과서는 모두 거짓’ 이라는 사실이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 시간 이상 잠을 못자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수용소에서는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 흙일을 하다가 찰과상을 입어도 동상에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상처가 곪는 법도 없었다. 수용소 밖에서는 옆방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잠이 깼던 예민한 사람도 바로 귀 옆에서 코를 곯아도 잠을 잤다. 생존의 가장 밑바닥에서 유태인들은 동질성을 잃어버리고 파편화 되어갔다.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모든 본능이 표출되었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 한 조각의 빵을 위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 하루하루의 일과였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몇 년 지내다 보면 양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인간의 면모를 보았다. 하루에 한두 번 지급 되는 게 전부인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빵을 자기보다 처지가 못한 이들에게 나눠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것은 수용소 생활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특히 언제쯤 전쟁이 끝난다는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전해지면 근거도 없는 희망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르곤 했다. 그러한 희망은 절망이 보여주는 신기루였다. 수용소에 오기 전 꽤 유명한 작곡, 작사가였던 한 동료는 언제부턴가 그에게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듯’ 조용히 말하곤 했다. ‘꿈에서 누군가 1945년 3월 30일에 고통이 끝날 것이라고 알려주더군’ 그의 말은 ’그날‘ 이후 엄숙해졌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와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나치도 멀쩡했다. 그는 그날 하루 전인 3월 29일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이틀 만인 31일에 죽었다. 직접 원인은 발진티푸스였지만, 빅터프랭클은 이 사건으로 인간의 정신상태가 육체의 면역력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지 절절히 체험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는 일주일 동안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원인은 성탄절에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이들이 그 시간이 왔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절망에 빠진 데 있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죽음을 부른 것이다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목표도, 목적도, 의미도, 없는 사람은 파멸했다. 하지만 그는 나약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했다.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었다.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그는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필생의 원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빼앗겼다. 원고를 다시 쓰기로 하였고,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종이조각 이라도 보이면 요점이 되는 단어를 적어 몸에 보관했다. 그런 목적의 덕분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고 나중에 그 체험을 기반으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치료) 새로운 정신치료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핵심은 간단하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힘들 때마다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한 것을 그곳에서 체험했다. 그는 지난 1997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그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자신을 구원해 주는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위기가 닥쳤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처한 후 나중에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모두 그런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좀 더 적절히 대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최악의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할 수 있다. 상실과, 실패, 괴로움과 슬픔은 인생의 한 부분이며 이런 고통 속에서도 기대감은 살아남아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늘 행복할 수는 없다. 괴로울 때 마다 망연자실하여 낙심하지 말고 기대감을 갖고 살아보자.
    • 칼럼
    • 목회자
    2018-07-13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인의 지혜서라는 ‘미드라시’(Midrash)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보석 세공사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닐만한 반지를 하나 만들고 그 반지에 글귀를 새겨 넣으라. 내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위대한 일을 이루었을 때, 그 글귀를 보고 우쭐해 하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견디기 힘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는 글 귀어야 한다.” 세공사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고민을 하다가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솔로몬이 말했다. “이렇게 써 넣으세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세공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솔로몬이 다시 말했다.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만약 절망에 빠졌다면, 이내 표정이 밝아지고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항상 원점에 서라는 말이다. 즉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호랑이, 사자, 늑대는 모두 초원의 왕으로 불린다. 이 중 누가 가장 총명할까? 동물학자들은 간단하게 답한다. “호랑이는 힘으로 이긴다. 호랑이는 사냥감을 잡을 때 빠른 속도와 체구를 이용해 사냥감을 입으로 문 뒤 죽을 때 까지 놓지 않는다. 사자는 지혜로 승부를 건다. 사자는 자신을 숨길 줄 안다. 숲이나 작은 언덕 뒤에 숨어 있다 사냥감이 가까이 다가오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몇 초 안에 승부를 낸다.” 맹수들 중 늑대 또한 원점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늑대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몸집이 크지 않고 표범이나 치타처럼 빠르지 않다. 그래서 무리를 이루고 팀워크를 통해 생존을 도모 한다. 특히 무리를 이뤄 꽤 먼 거리까지 추격하는 방법으로 사냥감을 제풀에 지치게 해 사냥한다. 사냥감이 눈앞에서 재빠르게 사라져도 탁월한 후각을 동원해 끝까지 쫓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이 냄새를 흩어놓으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린다. 늑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추격에 나선다. 추격 도중 더 미궁 속으로 빠질 때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차근차근, 치밀하게 쫓아간다. 끈질긴 추격에 대부분의 초식동물은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고 한다. 우리들도 늑대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인생의 목표를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 1977년 서울 우아동에서 도봉산으로 오르는 등산길, 산길을 걷던 40대 후반의 남자가 갑자기 허공을 향해 “나는 나쁜놈입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평일이라 등산객이 없었지만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나는, 나쁜 놈”이라고 소리친 그는 지금 중견그룹인 성호그룹의 수장으로 있다. 창업주인 송재성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 무슨 사연일까? 언제나 대접 받는 공무원이라는 ‘갑’ 위치에서 안주하던 자신과 결별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하게 ‘을’의 자세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업자에게 큰소리쳤던 과거를 떠올리며 ‘나쁜 놈’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퇴직 후 사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돈도, 면허도 없어 일단 대학 선배의 건설회사에 들어가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들이 쓸 때 같이 쓰고, 남들이 잘 때 같이 자고, 남들이 놀 때 놀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힘들지 않는 삶은 없다. 그래서 삶을 의미하는 글자는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약한 식물의 잎이 얼어붙고 딱딱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또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에서 왔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육중한 소가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위험하고 힘든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아는 게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3년간 모은 돈으로 작은 건설 회사를 인수해 오늘에 이르렀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2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상전 의식’을 고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냥 잘해서도 안 되고 남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치열한 사업 일선에서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가 이처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위치 즉 원점을 파악한 덕분 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약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주 극소수만이 자각한다. 어떤 사람이 한번은 부종으로 고생하는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느냐고 묻자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라고 말했다. 그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러기에 우리도 울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각,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은 물론 그동안 맺었던 사회적인 관계도 모두 분해에서 다시 재조립 해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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