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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현수)강릉 연가 4
    강릉 연가 4 이 성 교어딘지 모르게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대관령 산줄기가 쭉 뻗치고있어 힘이 절로 솟았다누가 강릉을 하늘에 올려놓고제일강산 이라 하였는가때로 가다 날이 흐리면햇빛을 불러 따스하게 하고바다를 불러 마음 파랗게 한다강릉은 생명의 바람을 일게 하는 곳영원히 안식을 찾아 눈감게 하는 곳한여름이 서둘러 온 듯 부드러운 연초록의 신록도 짙은 푸르름으로 변신을 해 가고 있다. 이 여름은 무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第一江山이라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__ 경치가 좋기로 첫째갈 만한 곳이 강릉이라고 옛 선인들이 일컬어 왔으니, 청량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 앞에 ‘강릉 연가’의 시 전문은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 시인의, 서정적 향토색 짙은 노래는 많은 독자들게 감명을 주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시적 장치도 배제한 시의 全文에서 보여지 듯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그러나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다. 절제된 시어에서 그 행간을 넉넉하게 오가며 함께 思惟하게 된다. 배낭에 책 한 권 넣고 대관령을 넘는 기차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詩 한 편은 대관령을 넘어 동해안에서 바다와 바람과 솔향기와 순박하고 정감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 놓고 江陵으로 떠나고 싶은 계절 앞에 와 있다. 햇볕으로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파랗고 때 묻지 않은 하늘과 바다를 마음에 담고 동해안 해안 도로에 도열한 해송을 만나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시인이 노래한 ‘영일만을 바라보며’에서 길게 돌아간 그 해안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시인의 고향이며 안식이 있는 곳, 일상에서 쌓이는 내적 갈등이나 고뇌도 시인의 즉물적 현상인 산과 강,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일체되어 창조적 비의를 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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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7
  • (경현수)이웃
    이웃 신 을 소벽과 벽 사이에갇혀 있다서로 알 수 없는 간극의높이와 거리숨통만 조금 열어 놓고숨어 있다잴 수 없는 마음들이사막이다낙타라도 있어야옆집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참 정겨운 이름이다. 이웃은, 옛 선인들은 핏줄보다 더 가깝다는 의미로 이웃사촌이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이미 옛말이 되고 말았다. 고층 아파트가 도시를 이루고, 아파트를 받들고 있는 필로티의 기둥과 기둥 사이 텅 빈 공간으로 바람만 들락거리고, 한 낮은 인적도 드물어 적막하다. 간혹 우체부가 다녀간 듯 회색 우편함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곳이 요즈음 사람 사는 마을이다.스산한 풍경은 아파트뿐 일까, 뜰에 입양된 우아한 적송이나 백일홍 나무도 외로운 자태로 뽀얀 하늘만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은 더욱 쓸쓸하다. 옆 집, 아랫집, 윗집 모두 콘크리트 벽으로 견고히 막혀있다. 현관문을 나서도 이웃과 맞닥뜨리는 일은 쉽지 않은데 드나드는 시간도 각각이니 문 닫고 들어가면 인기척도 없고, 시인은 폐쇠된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애틋한 페이소스로 깔아놓고 있다. 옆에 있어도 멀리 있고 위에 살아도 보이지 않는 그 時空이 멀다. 오순도순 모여 살던 이웃이 그립다. 담장 너머 호박 시루떡이 오가고 푸성귀 한 웅큼도 나누어 먹던 이웃은 어디로 갔는지, 사막에 낙타가 걸어가 듯 우리들의 삶은 사막이 되어 가고 있지나 않은지..., 옆집으로 들어 갈 또 다른 문은 어디 있는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비유의 말씀을 시인은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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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0
  • (경현수)후박나무를 읽다
    후박나무를 읽다 이 우 림매물도 대항마을엔 삼백 년 된 후박나무가 있다.사람들의 오랜 쉼터, 후박나무는대항마을 사람들의 교회팍팍한 사람들의 숨, 후박나무는대항마을 사람들의 절차돌 같은 아이들의 놀이터, 후박나무는별 꿈 비행기 선생님바람의 음표를 기억하는 후박나무는섬의 역사를 나뭇가지 흔들림으로 기록한다섬은 산이다산에는 나무가 산다나무는 해海품길로바다를 품고사람을 품고바다에 빠진 달을 품고어둠에 잘려나간 집게발을 품고파도가 놓아주지 않는 절벽의 멍을 품고품고품고품고 품고품고품고저 후박나무, 섬을 끌어안고 나를 끌어안고후박나무를 끌어안고끌어안고끌어안고 끌어안고끌어안고끌어안고 있다꼬돌개 지나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넘이 볼 수 있다고저 후박나무 알몸으로 앉아 있다 남녘의 외로운 섬 저녁답의 풍경이 그윽하다.후박나무에 석양빛이 내려와 반짝이며 파도음을 듣고있다. 나무는 전설속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매물도의 후박나무는 섬의 성주(城主)가 된지 오래다. 거구의 당당한 위용은 태풍도 다스리고, 바다를 잠재운다. 달빛아래에서는 길 잃은 고깃배의 등대가 되기도 한다. 후박나무는 산이 된 매물도를 안다. 전설이 되어버린 나무는 숱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달이 빠진 바다를 품고 풍어를 기원하며, 매물도의 安寧을 푸른 素祭로 하늘에 올린다. 시인은 후박나무의 성품을 알아버렸다. 그 타고난 형질을 가만히 읽고 있다. 후박나무가 매물도의 어머니가 된 까닭을 시인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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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6
  • (경현수)땅의 입
    땅의 입 배 정 순 비 오는 날 밭에 나가면땅의 입이 보인다. 떨어지는 빗방울들쪽쪽 받아 마시는땅의 입이 보인다.호박잎이 세수하고 난 빗물도오이가 먹다 흘린 빗물도남김없이 받아 먹는 땅의 입.비 오는 날 오이랑 호박 따러 갔다가땅의 입 밟는 게 미안해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었다.땅을 밟는 것도 미안해하는 동심의 시심이 놀라운 감탄을 불러준다. 조금씩 병들어가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암울할 것 같은 미래를 염려하지만, 시의 전문은 자연을 곧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체임을 귀띔해 주고 있다. 한겨울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은 푸석 푸석 하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와 풀들도 지쳐 있는 듯 삭막한 들판과 산들이 적막하지만, 곧 땅은 큰 입을 열고 물을 벌컥 벌컥 마시리라, 아 -하 땅도 입이 있구나, 시인은 땅의 입을 보았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듣고 있고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된다. 커다란 입으로 빗물을 마시고 온갖 생명들을 그 품에서 보듬고 키우고 있다. 호박잎이 세수한 물도 오이가 먹다 흘린 물도 소중하게 받아 먹는 땅, 촉촉한 흙을 뚫고 봄의 생명들이 돋아나기를 기다린다. 성경에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대로 땅은 호흡하고 빗물을 마시고 백설기 같은 흰눈을 먹고 떨어진 꽃잎과 나뭇가지와 이파리도 포근히 품어 새 생명을 만들 흙으로 갈무리 한다.해마다 어린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게 하고, 고물고물 개미들은 성을 쌓게 하고 다람쥐는 땅의 품에 도토리를 묻어 두는 것을 지켜보며 땅은 큰 입으로 웃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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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5
  • (경현수)지구본
    지구본 이 철 건 찡그리고 있는 지구본 하나 책상 위에 있다 일회용 컵이 미안했을까휴지통에 구겨진 채 머리를 처박고 있다가만히 지구본에 손을 대면 표면에 달라붙은 미물 같은 생지구본이 두르고 있는 지도는 그을리고 흠집이 나 있다가만히 지구본에 귀를 대면 약한 것들의 가여운 울음소리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게 될 그날은 정말 언제인가녹슨 페인트 같은 구각이 벗겨지고지구가 새 지도를 입을 날이 손가락으로 지구본을 돌리면 의로운 울음에서 새 시대의 광선을 잣으며우주만 한 바퀴를 돌리는 이가 보인다봄이 오고 있다는데, 아직 봄이 멀다. 책상 위의 지구본에서 어딘가 숨어 있을 막막한 계절의 거리를 재어 본다. 찡그리고 있는 지구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알아채었으니, 지구본 앞에서 장엄하고 신비로운 땅 끝까지 의 여행을 꿈 꾼 적도 있겠지만, 지구촌 곳곳이 음울하다. 아프리카 적도 위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에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어 물과 생명의 근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희끗 희끗 잔설이 엎드려 있다니 안타깝다. 가만히 지구의 숨소리를 듣는다. 광활한 궁창에는 뽀얀 매연이 가득해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가축과 들짐승과 새와 모든 생명체의 약한 신음소리와 울음도 들리는 듯 둥근 지구본을 가만 가만 돌다 보면 죽어가는 불쌍한 생명들의 체온을 느낀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아야 될 것은 우주의 주인이신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의 섭리가 거무죽죽한 舊殼을 벗기시고 새롭게 회복되어 唱和하는 노래 들려오리라고...시인은 ‘우주만 한 바퀴 돌리는 이가 보인다’라는 시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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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2
  • (경현수)언니의 텃밭과 치매
    언니의 텃밭과 치매 김 윤 희가물 가물 요즈음 보이지 않는 남펀의 안부 묻지만 몇 번이나 묻느냐면서 주위에서 손사래 친다 몇 개월 전 세상 떠난 남펀 영정 사진 기억이 없어 묻고 또 묻는다 알려줘도 금방 잊어버리고점점 정체가 없는 터널로 빠져드는 것은 도무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평생 제자리 깊은 생에 펴서 남편과 살았던 시골집그 마당에는 그녀의 텃밭이 있다마당에는 각종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나비들이 이 꽃 저 꽃 춤추고텃밭에는 고추 토마도 상치 시금치 자라고하루 종일 텃밭에 씨 뿌리고 풀 뽑고 물 주고 잔디 깍은그녀의 행복 텃밭에는 시간이 정지된 듯하였다어느 날 남편과 병원 다녀온 후 요양원 생활은 모든자유는 갇히고 텃밭이 없는 그녀의 삶은 밤이나 낮이나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것인데생각의 실타래는 엉킨 과거와 현실은타다 남은 심지 같기만 하다시골집은 날마다 꿈속에만 머물고점점 알 수 없는 지우개는 삶의 끝자락까지 따라오지만 시골집 마당 햇살은 눈부시게 옹기종기 앉아 있다햇살은 주인 없는 텃밭에도 매일 찾아올 것이다 치매를 앓는 환자의 모습은 안타깝다. 뇌세포가 손상되거나 노화가 원인이라고 하는 병, 매일 매일 세포가 조금씩 죽으며 소멸되어 가는 데도 어쩔 수 없이 견디며 순응해야 하지 않는가, 누구나 거쳐 가야 할 生의 과정이 아닐까, 짠하고 긴 여운이 남는다. 시는 단지 그 시작품 안에서 독자의 마음에 흡입되어야 한다고 믿고 싶다. 장황한 평설(評說)이나 주관적 감상은 되레 사족(蛇足)이 되지 않을까 화사첨족 이란 말을 떠올린다. 시인은 치매를 앓는 언니를 심리적 거리를 두지 않고 사붓 사붓 형상화 시켜놓고 있다. 함께 공감하며 아린 정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젊은 날의 아름다운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시골집과 햇볕이 환하던 마당과 텃밭에서 사랑하던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러나 누가? 무었이? 그 형체를 지우는지, 그의 삶의 끝자락 까지 따라가며 지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이제 환등(幻燈)을 켜고 살아가고 있다. 옛날의 아름다웠던 성(珹)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으로 우리들의 종착역에서, 새로운 환승 티켓을 들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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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8
  • (경현수)당신은 아시잖아요
    당신은 아시잖아요 배 상 호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당신은 아시잖아요철없이 덤벙대며 좌우를 살피지 않고 떠돌아다녀도내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줄 당신은 아시잖아요 어느날 내가 바라본 세상은내 것이 가장 귀하고내 것이 가장 커 보이고내 것이 가장 높다고 외치고 다녀도당신은 아시잖아요땅에 뒹구는 티끌만도 못한 존재였음을 넓고 넓은 우주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어요내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는 줄오직 당신만이 아시잖아요내가 시장기가 들고당신의 품속을 떠나 방황을 할 때도당신은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고따뜻한 음성으로 불러주신 그 은혜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잊을 수가 없을 거예요 당신은 아시잖아요나의 부족하고 연약함을---우주의 연속적 시간 가운데, 수많은 허위적 자아를 만나게 된다. 시인은 그의 實存의 나약함을 묻게 된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닌 죄인의 기도하는 모습이다. 한량없는 하나님 은혜에 무릎 꿇고 고백성사를 드린다. 내가...내가...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자문자답의 어리석은 물음, 내가 나를 모르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시던 하나님, 그리고 그의 기쁨의 대상이 되었던 인간이었지만 아담의 불순종과 죄성(sinful nature)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아담의 후예에게 다시 새 생명의 은총을 허락하신 한량없는 은혜에 부끄러워도 ‘다 아시잖아요’ 이 모습 이대로 엎드리게 된다.어떤 요란스런 레토릭도 배제한 순연한 시인의 기도문임에 감명을 더 하게 되지않는가, 그런데 나를 구원 하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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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2
  • (경현수)겨울 방학
    겨울 방학 김 현 승 아내는 헌 옷을 꺼내어 다듬고,고드름 녹아내리는 처마 끝에서 나는 포도넝쿨을 자르는 이 시간이 내게는 양지(陽地)와 같이 다습다 오래 잊었던 기억의 검은 아궁이에단풍(丹楓) 같은 불을 피우고,형님의 슬픈 사연이랑 동생들의 가난한 이야기를고전(古典)들에 섞어 읽는이 시간이 내게는 고향에 온 듯 그리웁다보랏빛이나 연두빛 보다는희끗 희끗 이제는 회색이 내뵈는 사십(四十)의 시(詩)를 쓰는이 무렵이 내게는눈 내리는 오후와 같이 칩칩컨만 포근하다.개학도 얼마 남지 않은정월 중순--- 사온일(四溫日)의 어느 날,나는 쓰고 또 읽기를정서(情緖)의겨울은 길고 사상(思想)의 봄은빠르다.방학은 설렌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 길 같이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기차역 플렛폼 앞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 긴 휴식과 자유가 기다린다. 이성적이고 치밀한 계획이나 전략적 도전도 무의미하고 희미하다. 순연한 흰눈이 내린 전원의 풍경이듯 이미 주제에서 따뜻함이 전이되고 있다. 전문의 배경은 반세기 전 쯤의 낯익은 구도다. 가난한 아내는 헌옷을 깁고 매만지면서 겨울을 준비하고 검은 아궁이에는 단풍같이 붉은 불꽃이 타 오른다. 화자(話者)인 시인은 고드름 달린 처마 끝에서 또 다른 계절의 포도원(葡萄園)을 꿈꾸며 포도 넝쿨을 자른다 쉼 없이 유토피아를 갈구하는....고전(古典)속의 이야기는 전설이듯 피어 오르며 겨울은 익어간다. 푸르른 청춘도 지나간 회색빛 감도는, 불혹(不惑)에 다다른 시인은 시를 쓴다. 눈 내리는 오후는 축축하게 젖어 있어도 포근하고 넉넉한 것 같이 눈 내리는 오후의 은유(隱喩)가 새롭다.겨울방학은 속박되지 않는 그래서 그 자유가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하다. 시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인간의 자유함을 구가하는 본성의 형질로 격조 높이 시에 녹아들어 작품 속으로 함께 들어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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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5
  • (경현수)외발 비둘기
    외발 비둘기 김 혜 경 봄 햇살 가득한 오후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따스한 커피에 머핀 한 조각 든 채 흘린 빵부스러기 갑자기 어디선가 몰려온 비둘기 떼 평화라고 불렀던 새 도심 한 가운데내 발밑이 치열한 부스러기 전쟁을 치룬다가만히 보니 뒤뚱거리며 늦게 도착한 녀석, 외발비둘기그 몸으로 긴 겨울나기를 했구나 깃털에 묻은 얼룩 때그 몸을 이끌고 날개짓으로푸드덕 거린 도시 생활, 누구도 모른다 남 시선 아랑곳 않고안간힘 쓰며 균형잡고 있는(넌 오늘도 살아보려고 하는구나)홀로 선 외발비둘기 공원의 풍경은 한가하고 자유롭다, 벤치에 앉아 잠간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가끔 비둘기 떼가 종종거리며 사람과 벤치사이를 돌아다닌다. 사람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먹이 주워 먹기에만 열중한다. ‘비둘기는 하늘을 날아도 콩밭을 못 잊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多義的 의미가 내포된 비유다. 산비둘기는 산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그들의 언어로 노래하고 또 울기도 하겠지만 어쩌다 숙명인지 도심에 사는 비둘기는 도시인들을 닮은 듯, 왠지 고달퍼 보인다. 무위도식하며 그들의 잡식성을 염치없이 드러낸다. 바닷가 선창가에도 떼로 몰려와서 船客이 주는 과자에 매달려 살기도 하고 광장의 비둘기는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고 먹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광장을 배회한다. 늘 안전사고에도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날개죽지가 부러진 놈, 외눈박이 비둘기, 외발비둘기도 눈에 띈다. 한 쪽 다리를 잃은 비둘기는 가엽고 애처롭다. 장애를 딛고 살아가는 새,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서야 하고 날개짓도 해야 한다. 늦게 도착했어도 먹이 주워 먹는 일에도 게으를 수는 없다. 새야 새야 장하구나. 외발 비둘기에게 팔랑개비 닮은 의족 하나 달아줄 수 있다면... 바램이다. 작은 새 한 마리 앞에 생명의 경외심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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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01
  • (경현수)자연
    자연 정 신 재 도둑이야 소리치면 바보가 되는 도시걸망 지고 오솔길로 차마 들지 못해어설픈 미망의 순수 말뚝에다 묶고 있다.산과 산이 이어진 우뚝한 등성이햇빛은 그런 곳에 내려앉아 노닥거리고단단한 고백의 숲에 머리 풀고 살고 싶다.혈색 좋은 아이의 부라리는 저 눈망울모든 것이 가능한 만물상을 띄워 놓고후미진 그늘을 오르며 산의 흉내 내고 있다.자연을 깊이 들여다 보라 / 그러면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의 천재 물리학자가 남긴 글에서 과학과 철학적 깊이에 경외심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광대무변한-이제 자연이란 시 작품의 주제에 눈길을 모아본다 바람, 여자, 돌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삼다도 제주섬, 도둑도 없고 사람과 사람의 경계가 없고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는 곳 그래서 자연과 인간은 그 形質이 동일하지 않을까, 산과 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우뚝한 등성이에는 햇빛이 내려앉아 놀고 걸망 매고 물질 나간 엄마 대신 바다는 진종일 아기 구덕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숲은 모든 경계를 풀고 바람과 호흡하고 있다. 바람은 검은 돌담을 잘도 넘어 간다. 바람과 돌과 여자는 한족속이다. 광대무변한 자연의 한 빛깔로 채색 된다.자연이란 神殿 / 그 살아있는 나무 두리기둥에서 / 가끔 가끔 神秘로운 소리가 주절주절 새어나오고 있다 / 사람들은 상징의 숲을 지나가고 / 숲은 다정한 눈매로 사람들을 지켜본다 보들레르의 시 交感(교감)중에서 연상 작용을 이끌어내 본다. 사람은 자연의 신비를 알아내며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서로 교감하는 바, 시인의 詩 ‘자연’은 곧 인간과 자연이 혼합되어 자연으로 동화되는 모습을 맑고 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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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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