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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현수)프레디알의 아침
    프레디알의 아침 오 동 춘 새파란 하늘이 닭소리에 열려오고 아침부터 여행가는하얀 구름산등성을 넘고 있다마을의 집들보다더 큰 키를 자랑하듯상록의 나무들이집 지킴이로 우뚝마당가에 서 있다 인정이 따사로운우리 한국인처럼민박하는 나와 아내그리고 선교사 딸을 잘도 보살펴 주는루마니아 여자 노인참으로 자상하고 정답다 이틀 밤 묵고 가는이 아담한 아파트창을 열면 흰 눈을 머리 인 푸른 산이 다가오고하늘은 산뜻한 거울로우리 마음 비춰준다우상 다 물리치고 영적으로 가슴 열리는루마니아 고운 나라에그 분 축복 사랑이 넘치도록절절이 기도하는 우리 앞으로은혜 꽃피는 하늘이조용히 걸어 오고 있다새벽 닭이 푸드득 홰를 치며 산마을의 아침을 연다. 한국의 시골 마을이 아닐까.루마니아의 프레디알 마을의 풍경이 생생하다.시인은 敍景詩 한 편을 펼친다. 사람 사는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다. 자연 또한 비슷한 모습이다. 때 묻지 않은 동유럽의 한 산촌 마을의 아침 구름은 일찌감치 산등성을 너머 여행을 떠나고 있다. 나그네 보다 먼저 산등성을 넘고 있다니...푸른 산은 의연히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위용을 뽐내고 있어 삼복 더위와 씨름하는 이 나라에선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더군다나 정다운 파란눈의 할머니, 아름다운 인심은 어딘들 다를까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인정이 복음의 씨앗으로 심어져 프레디알 작은 마을에 집들 보다 더 큰 복음 나무가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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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22
  • (경현수)농부와 시, 그리고 산딸기
    농부와 시, 그리고 산딸기 이 명 희농부의 하루는 기도하는 詩다바람 이는 들녘에뿌리는 씨앗 밭고랑 따라 맨발로 흙을 덮는 손길그 기도 하늘에 허리를 펴고 태양을 단비를 구하는 눈물 파릇이 떨리는 “!___ , 새싹!!”골진 주름에 번지는 하얀 미소 노을 지고 쉬어가는산비탈 풀섶알알이 빨간 향기“산딸기___너를 가꾼 이는 누구지?” 자연은 詩의 모태(母胎)가 된다. 넓고 풍성한 대지에서 농부는 시를 짓 듯 농사를 짓고 또 가꾼다. 가장 창조적인 일이지 않을까, 시 전문에서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감사의 울림이 들린다.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의 작품 ‘만종’을 떠올린다. 황혼이 지기 시작하는 저녘 들녘에서 농부 부부가 삼종 기도를 드리는 평화로운 모습은 감명의 극치를 더해준다, 기도하는 농부의 모습은 경건하고 비 할 데 없이 아름답다. 하늘이 주실 복을 생각한다면 누구나 머리 숙여 기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밭고랑의 작은 씨앗이 흙을 뚫고 솟아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자연의 법칙은 누가 만들었을까 , 금년은 참 오랜 가뭄과 폭우 등 많은 자연의 변곡점을 지나며 농부들은 마음 조리며 들녘에 서서 더 겸허히 기도하지 않았을까. 어느 것 하나 그 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음에... 농부는 시로 기도 드린다. 노을 지고 쉬어가는 산비탈 풀숲 까지도 시인은 되묻고 있다. ‘산딸기야 너를 가꾼 이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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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11
  • (경현수)불타는 단풍
    불타는 단풍 김 소 엽 당신이 원하시면 여름날 자랑스러웠던 오만의푸르른 색깔과 무성했던 허욕의 이파리들도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혈육의 가지를 떠나 빈 몸으로당신 발 아래 엎드려허망의 추억까지도당신께 드리오니당신의 피로 물들여 주소서 바람이 건듯 불면당신의 음향으로내 젖은 영혼이 떨리게 하시고노을이 찾아들면육신은 더욱 고운 당신 빛으로황홀한 색채를 띠우게 하소서푸르른 나는 가버리고당신이 내 안에 뜨겁게 살아서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하시고머언 훗날어느 순결한 신부의일기장 속의 연서로 남아당신의 사랑으로 물드는한 장 불타는 단풍이게 하소서 시인의 시는 기도이기를 원한다, 오로지 모든 자랑과 오만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위(無爲)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열정과 허욕과 자아가 살아서 꿈틀대던 모든 나날도 그 분 앞에 내려놓고 생애를 돌아본다. 붉은 단풍잎은 제단(祭壇)아래서 고백성사를 한다. 무성한 인간의 죄성이 불 태워지기를 염원 한다. 한 분 만이 알파와 오매가인줄 안다. 불 타는 단풍은 하나님게 드리는 아름다운 소제(Grain offering)가 되고 있다 고운 밀가루와 한줌 기름과 유향을 섞어 단 위에 불사르는 산 제사가 되기를 간구한다. 나는 없고 그 분만이 육신과 영혼을 붉게 물들이고 점유하고 계시는 절정의 시간, 그 황홀함을 交感하면서 낮게, 더 낮게 무성했던 푸른 잎들은 시들고 단풍잎이 타고 있다. 나는 없고 그 분 만 계시는 곳, 나의 모든 불타는 사랑으로 소제 드려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하시는 오직 한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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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5
  • (경현수)어머니와 시계
    어머니와 시계 박 말 희 바늘 커서 좋기만 한데,주웠다는 것 같다백원짜리가 땅바닥에 굴러다녀도 줍지않는 아이들그 동전 보다 못한 시계를 차고유모차에 폐지 같은 시간 싣고힐렁힐렁 시계 약 끼우러 가는 어머니줄 갈아 놓으면 바늘이 멈추고 약 끼워 놓으면 유리에 수증기 끼고,기침 재워 놓으면 다리가 아프고 링거라도 한 대 맞고 나면 시퍼렇게 멍이 드는내다 팔지도 못할 놈의 시계내다 버리지도 못할 놈의 노인네손목에선 꼭 나처럼 인정머리 없는 초침이 툴툴대다 제풀에 주저않고말았나 보다노모와 시간은 닮아 있다.어머니의 젊은날의 흔적은 사라져버리고 지금은 낡은 시계와 같이 멈추었다 가고 느리게도 가고 있다, 시침과 분침이 제 멋대로 시간 밖을 서성댄다. 아무도 눈 길 주지 않는 외 딴 섬이다. 시계도 노모도 온전치 못하다. 약을 끼워 놓으면 줄이 고장 나고 유리는 수증기로 동공이 흐려지고, 어머니의 다리는 삐그덕 거리고 링거 주사 바늘은 되레 시퍼런 상처로 남는다.노모는 어디서 주워온 낡은 시계를 차고 약을 끼우러 간다. 굴러다니는 동전 한잎 가치 보다 못한... 내다 팔지도 못할 놈의 시계. 내다 버리지도 못할 놈의 노인.시계와 어머니는 공존의 관계다 인정머리 없는 시인과 초침은 툴툴거리며 빠르게 그들의 시간을 건너 간다.시인은 이 역설의 슬픔을 잠잠히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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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1
  • (경현수)인생은 악보
    인생은 악보 이 경새는 날개 있어야하늘 날고연은 꼬리 길수록 높이 난다음표도 꼬리 있어야빨리 날고 춤추며꼬리 많이 달릴수록빠르게 하늘 나는 법을 안다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다가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질 줄 아는 겸손사람은 욕심 버려야하늘 나는 법을잘 나는 법을 안다사람은 꿈을 꾸면정상 향해 달려갈 때도 있지만때로는 밑바닥에 낙엽 되어밟히는 겸손도 배울 줄 알아야 한다음표는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도쉴 줄 아는 여유사람도 어려서 기다가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늙으면 기어가다 쉬는 온음표아니, 영원한 쉼표가 되겠지인생의 사전적 설명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존재론적 물음에 인간은 후련하고 명징(明徵)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흔히 비유로는 인생은 나그네다, 쏜살 같다, 인생은 여행이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도하며 한바탕 봄 꿈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회자되면서 극히 비감(悲感)적 주석을 달고 있다.성경에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有限)함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모든 육체를 풀과 꽃에 비유하며 창조주의 섭리를 알게 해주며 그 정의를 내리고 있다.시인은 인생(人生)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악보라는 메타포(metaphor)로 리드미컬 하고 경쾌하게 암시하고 있다. 빠르게, 느리게, 천천히, 한 박자 늦게, 낮게, 높이- 음표의 꼬리 갯 수를 헤아리면 자신도 헤아릴 줄 알까? 낮아질 줄도 알고 높이 올라 갈 줄 아는 지혜, 그리고 겸손할 줄도 알고 지칠 때에는 쉬어가는 긴 호흡의 온음표 달고 삶을 관조하는 여유도 악보에서 배운다.새는 날개 달고 연은 꼬리를 달고 인생도 아름다운 악보 꼬리를 달고 하늘과 땅의 것을 연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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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8
  • (경현수)희망
    희망 김 지 원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하늘을 보고도나는 신뢰한다밝음이 오리라는 것을감람 새 잎 하나 돋지 않는들판을 보고도나는 기다린다내일이 오리라는 것을아아, 이제 마지막 다독여둔불빛마저 사라졌다그래도 남아 있는작은 불빛갑자기 구약 성경의 에스겔적인 음성으로 매마름과 희망 없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듯-. 아아, 이제 마지막 다둑여 둔 / 불빛마저 사라졌다시의 전문에 깔려 있는 절망을 끝 연에서 반전 시키고 있다. 극히 추상적 개념으로 분류되는 희망 이라는 어휘는 그 반대 상황인 절망적 일 때 떠오르는 단어다.속초에 가면 “희망 길”이 있다, 피난 시절 북에서 월남한 파난민들에게 절망을 딛고 잘 이겨내며 희망을 갖고 살자는 의미를 담은 도로 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절망은 늘 우리 곁을 맴돌지 만 희망이 곧 다가오곤 한다. 나는 신뢰한다 / 밝음이 오리라는 것을 / 매마르고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 나는 기다린다 /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절망을 바라보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어떤 원동력에서 일까? 시인은 알고 있다, 믿고 있다 창조주의 섭리를 품고 살아가고 있기에....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에 내려 앉아 가사 없는 노래 부르네. 그치지 않는 그 노래. -애밀리 디킨즈 디킨즈도 희망은 가사 없는 영혼의 노래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희망은 참 좋은 친구다, 절망을 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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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6
  • (경현수)돌맹이로 알아내기
    돌맹이로 알아내기 이 주 남창문이 열려 있는 걸우린 어떻게 알아내지요?그냥 거기 돌을 던지세요.소리가 났나요?안 나요?음, 그럼 열려 있었네요.지금한 번 더 돌을 던져---한 번 돌을 던져 보세요.쨍그랑안 열려 있었네요!전도서에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지혜자와 우매자의 간극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매자보다 지혜자가 더 우위 있지만 결국 지혜자의 한계를 토로하고 있다. 이 짧은 동시에서 두가지의 간극(間隙)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 맑고 티 없는 한 편의 시가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돌맹이로 알아내기” 제목에서부터 유니크한 우화적 뉘앙스가 엿보여 유쾌한 시 감상을 하며 절로 미소를 떠 올린다. 유리창문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 보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고 열려 있는 듯 해도 닫혀 있을 때가 더욱 많다. 어린이는 무한한 호기심과 미래를 바라보는 순수한 지혜자다, 용기 있는 모험도 주저하지 않는다 두렵지도 않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 본다.돌을 던지고, 애드벌룬도 띄워 보내고 미지의 세계로 무한한 꿈을 꾼다. 아이들에게 닫힌 창에는 돌을 던져 보고 열려있는 창문에는 손을 흔들어보라고 그들의 가능성을 응원하는 시인은 참으로 용기 있고 아름답다. 열려 있는 창이나 닫힌 창도 돌맹이로 알아내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모든 것을 깨닫고 알아내는 지혜의 귀뜸을 살며시 일러줘야지…이솝 우화 같이 나직이 말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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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7
  • (경현수)고향 다락밭
    고향 다락밭 이 경 순사자산 줄기 타고 펼쳐진 월평마을우리들의 마음을 키운고향 다락밭이환히 펼쳐지네창을 열면 억불산 풍경이아른아른 다가와가슴을 어루만져 주네바람에 묻어오는아침 이슬 영롱함멀리서 생명의 노래 들려오네선조들 알뜰히 가꿔온 다락밭오늘도 큰 그림자로 떠 있네눈뜨는 곳마다 고운 햇살향기로운 바람 마구 이네천년의 숨결이 떠밀어 주며추억의 꽃을 피워 주네언어로 풍경의 경치를 그려 놓은 듯, 요즈음 보기 드문 한 폭의 서경시(敍景詩)다.시인의 고향을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아도 반 세기를 훌쩍 넘어 되돌아 간 곳, 우리 모두의 고향의 정경이 담겨져 있어 그 서정의 줄기가 오롯이 마음을 적시고 있다.사자산의 명칭은 장흥에 있고, 강원 영월의 사자산도 있다, 월평마을은 아마 달(月)과도 무관치 않은 아름다운 마을인 듯 싶다.다락밭은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척박하고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모두의 고향이 아닐까? 비탈진 곳에 층이 지게 만든 다락밭, 일명 계단밭이라고도 한다. 척박하고 고달픔이 베어 있는 산간 마을, 그러나 시인에게는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고향일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키우고 / 억불산 풍경이 아른아른 가슴을 어루만지고/ 바람은 생명의 노래를 들려주고 바로 그 고향은 시인을 태어나게 했다, 오갖 비 바람과 햇살은 다락밭의 곡식을 알지게 가꿔줘서 삶의 근간이 되어 주었고, 무엇하나 고맙고 그립지 않은 것이 있을까. 월평마을 다락밭에 억불산 바람이 생명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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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23
  • (경현수)살과 뼈는 정직하다
    살과 뼈는 정직하다 유 승 우살이나 뼈는 거짓을 모른다.내 무릎의 관절은 요즈음내 몸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솔직하게 통증을 호소한다.살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든아주 작은 가시만 박혀그냥 넘기지 못하고꼭 밝혀내야만 한다.살이나 뼈는 마음과 달라서아무것도 제 속에 숨겨두지 못한다.숨겨두었다가는 그것이 암이 되어죽게 되기 때문이다.거짓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만큼살과 뼈는 정직하다.마음의 유로(流路)에서, 희로애락의 감정 보다 더 절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고통의 표현일 것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 그것이 통증의 자각 증세로 엄습해오면 원초적 절규가 따르게 된다. 그 신음소리는 정직하고 슬픈 노릇이다.우리 몸에 생기는 통증(痛症)은, 뇌가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아파요... 아파... 너무 아파요...”뇌와 통증부위는 유기적 시스템으로 활발히 움직이며 대처 한다, 거짓으로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시인은 / 살과 뼈는 정직하다 / 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생명의 탐구에 깊이 몰두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도 하게 된다, 살과 뼈도 정직하지만 뇌조직도 정직하고 부지런하다 이들은 급히 타전하며 위급 상황에 대처한다.살과 뼈의 주인은 서둘러 병원으로 안정된 휴식으로 몸을 돌보며 안정을 취하게된다, 이 놀랍고 신비로운 인체(人體)는 누가 만들어 냈을까? 오묘한 창조주의 솜씨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 몸은 거짓으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더 부풀려 아프다고 아우성칠 수는 더 더욱 불가능하다 , 그저 아픈 만큼 신음하며 치료하며 인내를 배운다, 살과 뼈가 정직한 만큼 나를 향하신 창조주께 호소하며 치유되기를 기도해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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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9
  • (경현수)새벽 기도
    새벽 기도 김 철 교말씀이 계시기 전낮게 드리운 정적 속에황무지를 삽질하는 화전민의 염원무성한 잡초를 태우면어둠 속으로 어둠은 물러가고먼 나라에서 이어질 듯이어질 듯 들려오는 말씀이여기 내 앞에 하나의 등불이 된다맑은 거울에 비쳐오는한 그루의청정한 소나무“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기도는 영원한 염원이고 호흡이라고 한다, 하루가 시작 되는 첫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는 새벽 기도는 더욱 간절한 영적 예배가 되지 않을까, 온 우주가 어둠을 밀어내며 빛으로 다가 오는 시각, 시인은 태초의 시간 속으로 돌아간 듯 경건과 폐부 깊은 호흡으로 전심을 모아 그 분께 무릎 꿇고 엎디어 있다.황무지를 개간하듯 나무를 베어 내고 자갈을 캐어내고 화전밭을 일궈내는 화전민이리라, 마음 속에 숫한 갈래로 돋아나는 이름 모를 무성한 잡초도 성령의 불꽃으로 태우고 있다.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천길 만길 속의 물소리 이듯 ,먼 나라에서 이어지는 소리의 파장, 말씀이 들려 온다 등불이 듯 환하게 밝은 아침을 연다. 그리고 모든 고뇌는 사라지고 정갈한 은총이 눈부시다.그 영혼에 한 그루 청정한 소나무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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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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