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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재)내 번민의 모든 것
    내 번민의 모든 것 정 신 재 아내가 징징 운다 격자무늬 문을 반쯤 열고 해 달라는 거다 겨우내 못했던 가사(家事) 마룻바닥에 핀 버짐과 함께 헤벌어진 팬티가 하품을 하고 아내의 엉덩이가 남아 있는 검정 스타킹의 고뇌 그렇다 세탁기를 거쳐 구겨진 빨래는 탈탈 털어야 하고 밀린 청소가 거수 경례를 하는 사이 멋진 시 한 구절이 베란다 턱 밑을 내려다 보는 거다 알고 싶다 당신과 나 사이 내가 좋아 저 돈벌이도 안 되는 시가 좋아 오늘 따라 아내의 무 다리가 짧아진 미니스커트 안에서 바짝 날이 서 있는데 어떡하나 내 뜬구름 잡는 짓 잘 울리는 법고가 된 심장 앞에 원고 마감 날자는 잔뜩 엎드려 있고 나가서 돈 벌어 오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멋진 시 한 벌 골라내야 하는데 그나마 나를 받쳐 주던 변기가 고장나고 목을 빳빳이 세우는 기사의 견적서 자격이 박탈된 로토는 휴지통에 머리를 쳐박고 심술난 아내의 설거지 소리는 고층빌딩을 오르고 읽어야 할 시편은 바닥에 다리를 뻗고 누웠는데 영감(靈感)의 도깨비는 절망의 쌍코피를 터뜨리고 자본이 눈을 번득이며 거리의 간판을 순시하는 동안 너, 많이 컸구나 번민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도서> 3:22). 필자에게 주어진 “몫”은 글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린도후서> 8:11,12). 주님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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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8
  • (정신재)두물머리
    두물머리 이 삼 헌 마음 시린 날이면 양수리 두물머리로 가 보게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몸을 섞으며 하나로 태어나는 곳 물안개 자욱히 산을 휘감고 아침 해가 느티나무를 물속으로 밀어 넣으면 그리운 사람 고인돌 밟고 걸어올 걸세 한밤 내 고운 잠 자고 수련이 배시시 문을 여는 안개를 걷어내면 수초들이 우아하게 머리 감는 곳 달개비꽃, 능소화 나팔꽃도 고개 올려 시샘하지만 그리운 사람 바람 밟고 걸어올 걸세시인은 “마음 시린 날” 두물머리로 나아가 그리운 사람을 맞고 싶다고 고백한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하여 바다같이 넓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합심合心을 상징하는 제재로 많이 애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여 보면,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의 뜻과 합하여 사는 것이 참 이치일 것이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린도전서> 6:17). 나의 영이 주와 합할 때 생명이 있는 변화가 이루어진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마서> 3:24)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로마서> 5:11)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허물로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에베소서> 2:5)음을 믿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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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 (정신재) 산행
    산행 山行 권 용 태 길이 없다고산을 내려오지 말라길이 보이지 않으면길을 열고 오라산길이 열리면무거운 짐 내려놓고굴곡의 길 가지 말고곧은 길 따라어둡기 전에 내려오라더 오를 길 없거든그리움이 소진消盡되기 전에꽃 한 송이 들고 내려오라.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아내가 책만 읽는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얘기가 나온다. 조선 시대 양반의 무능함을 풍자한 모티프다. 말씀이 생동하지 않는 신자의 모습은 허생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말씀이 생동하는 삶을 살 때 그 삶이 멋지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의 한국 교회에 생동하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한다.필자는 얼마 전 몽골에 비전 트립을 가서 보았던 K선교사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미국의 큰 회사에서 임원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몽골에 자신의 재산을 거의 쏟아붇다시피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겨울에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하루에도 십여 차례 예배당 난로에 석탄을 넣어야 하는 고충 속에서도 복음 증거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잔잔한 평안이 넘쳐흘렀다. 그가 뿌린 씨앗으로 인하여 그가 울란바토르의 빈민가에 세운 ‘주심 교회’에는 성경 공부를 하는 교인들이 많았다. 이를 통해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끌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권용태의 「산행」은 신자에게 주어지는 달란트와 길을 생각하게 한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열고 오”란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길만 길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것 말고도 영혼이나 정신이 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반드시 있다. 성령이 인도하시면 “길을 열고”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에게는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꽃 한 송이”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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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8
  • (정신재)빈 컵
    빈 컵 박 목 월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를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조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얼마 전 필자의 아버지 추도식이 있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까지도 생생히 내 옆에 계시던 분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당신이 안 보이니, 거실의 어딘가에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허전함으로 인하여 슬픔이 막 솟아오르려 할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다가오는 이미지가 있었다. 온유한 얼굴로 이웃에게 언제나 미소를 흐붓이 흘리시던 아버지. 당신은 신앙심이 돈독한 분이셨다. 개척 교회에 퇴직금의 일부를 털어 헌금을 하여 교회 건축에 앞장섰고,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몸에 배신 분이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신앙심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 신앙심은 오늘의 나에게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소중한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추도식 날, 이 유산으로 인하여 형제들은 우애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하늘 나라에 가신 아버지가 우리 형제에게 내려 준 행복이었다.박목월 시인은 교회 장로였다. 시인은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우리를 채우시는 분이다. 때론 절망과 체념으로, 때론 꿈과 열정으로 채우신다. 혹 그것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화자에게는 채워질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앙의 샘물”이다. 이 신앙은 때론 장미로 비유되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창조할 수가 있다. 그것은 시가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단다. <말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여기서 십일조는 비단 물질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십일조, 헌신의 십일조, 봉사의 십일조가 주변에 널려 있다. 이로 인하여 마음의 창고가 풍요로워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희열과 화평과 온유와 즐거움과 감동의 십일조를 이웃에게 나누자. 이는 세계에 놓은 경계를 허물고 인류 평화와 일상의 행복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계절이 순환하고, 인간도 순환한다. 생로병사의 흐름이 눈 앞에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진정한 행복은 물질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서로가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올려 놓을 때 행복은 스스로 피어나는 것 같다. 삶과 죽음 경계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신자가 찾아야 할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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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6
  • (정신재)비 오는 숲속에서
    비 오는 숲속에서 정 신 재 우이동 골짜기에 비가 내리고산골짜기 내려오는 심포니 5번안개는 등성이에서 미끄럼타면서바이얼린 현을 추스린다네바람은 오늘 따라 기가 죽어서빗방울 소리만 듣고 있군요창문 열고 바라보는 비에 젖은 山흥분한 낙수물은 클래식 되어장맛비의 폭포수가 싫지 않은지땅 밑으로 숨은 수줍음 찾아하나 되어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낙상을 염려하는 한 떨기 음악수백 년 뛰어내린 꿈을 낚으리비는 물길 따라 도시를 적시는데저렇게 많은 현을 어찌하리오상점의 간판들은 만장을 안고철 지난 장승 되어 울고 있구려첼로와 하프까지 가세하여서바순이 걸러내는 도시의 방귀당신의 입술을 기다리면서벗겨낸 권태를 떨구렵니다넉넉한 시인의 훈훈한 입김당신의 귓바퀴는 낙조가 되고전등처럼 매달린 꿈의 청춘은환하게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하늘과 땅을 잇는 푸르른 선율계곡의 가랑이를 스쳐가네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5)고 말씀하셨다. 그는 두 아내와 그들의 여종을 통하여 믿음의 자손들을 잇는 축복을 받았다. 남녀간의 사랑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축복이다. 주님의 축복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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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6
  • (정신재)살과 뼈는 정직하다
    살과 뼈는 정직하다 유 승 우 살이나 뼈는 거짓을 모른다. 내 무릎의 관절은 요즈음 내 몸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솔직하게 통증을 호소한다. 살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든 아주 작은 가시만 박혀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꼭 밝혀내야만 한다. 살이나 뼈는 마음과 달라서 아무것도 제 속에 숨겨두지 못한다. 숨겨 두었다가는 그것이 암이 되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거짓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만큼 살과 뼈는 정직하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단다. “살과 뼈”가 나이가 들면 노쇠하여 지는 것과 같이, 이 세계에는 분명 천지 창조의 질서가 살아 있다. 비단 육체만이 아니다. 탄생·결혼·죽음과 같은 보편적인 경험 양식이 있고, 꿈을 추구하는 의지와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있다. 생로병사와 같은 삶의 흐름이 있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이 있다. 원죄의식이 있고, 죄에서 벗어나고픈 의지가 있다. 탄생과 소멸이 있고, 순간과 영원이 있다. 신체는 개인이 관리하기 나름이다. “살이나 뼈는 거짓을 모른다”. “살과 뼈는 정직하다”.신체는 창조주로부터 주어졌다.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뇌와 살아 있는 한 박동하는 심장과 이들과 함께 붙어 있는 팔다리와 살과 뼈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존재는 죄에서 벗어나 의와 사랑을 추구하며 영생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한다. 이 길을 알려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율법의 완성”(롬 13:10)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고전 2:12)을 주셨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기회를 주셨다(갈 4:19).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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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30
  • (정신재)차표 없이 온 봄
    봄이 “차표 없이” 오는 것과 같이, 행복도 인간에게 언제든 찾아오게 되어 있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죄 많은 인간이 죄와 허물과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 5:24)고 의롭게 행동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주셨다. 그 비결은 주님을 사랑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게 살게 된다. 나아가 하나님은 그 자녀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에베소서> 1:11)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이루어 영을 따라 행동하게 세우심은 은혜요 행복이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행복을 보는 시선과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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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6
  • (정신재)참회록
    윤동주 시인은 이 시에서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 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한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것은 망국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조국에 대한 죄책감이 결합되어 속죄의식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속죄의식을 잘 형상화하였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이렇게 되뇌이고 있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이와 같이 인간은 속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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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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