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칼럼
Home >  칼럼  >  기독시선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독시선 기사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4
    주님은 성직자나 장로들에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자녀 옆에 계신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행적을 보아도 주님이 그를 선택하여 세계적인 사도로 세우신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럼 주님은 어떻게 당신에게 임재하시는가. 바울의 경우를 살펴보자.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은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키셨다. 그는 다메섹에서 변화되기 이전에는 주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자였다. 주의 제자들이 그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주님은 그런 사울에게 정면으로 대응하였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3-5). 이를 보면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을 이루신 후 성령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하심을 알 수가 있다. 성령이 함께 하실 때 바울은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부터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럼 주님은 바울에게만 임하였는가. 주님은 베드로에게 꿈을 통하여 세계적인 비전을 가지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고, 바나바에게 바울과 동역하는 일을 맡기셨다. 주님은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도록 인도하셨고, 바나바가 자기 재산을 주님께 바치고 전도하는 일에 힘쓰게 하였다. 주님은 그 제자와 사도들에게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셨다. 주님이 동행하셨기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며, 주님이 계획하셨기에 한국인들이 일제 식민지 현실과 전쟁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 주님이 인도하셨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무역 대국이 될 수 있었으며, 주님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도록 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 땅의 800만 기독교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속의 껍질을 벗고 그 진정성을 회복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이를 보면 주님은 몇몇 성직자나 장로들에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재하심이 분명한 것 같다. 주님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입재하신다. 나는 한때 성담론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약간의 글 쓰는 재주도 있던 작가였다. 그리하여 성의 본질을 알기 위하여 수많은 이론 서적과 야동을 보았고, 시낭송회 등을 찾아다니며 나의 글재주를 뽐내기도 하였다. 나의 딴따라 기질은 대중을 웃겼고, 산문집 『내 마음의 풍경화』(시문학사, 2016)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늘 질문이 따라다녔는데, 그것은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는가’ 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면 바울처럼 그 음성을 들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때에 따라서는 주님이 옆에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시선의 변화였다. 어느 날 아름다운 여성과 사귀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졌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라”(<로마서> 8:35-39).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 안의 부정적인 욕망을 물리칠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성령이 나를 통하여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셨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로마서> 8:13-16)내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택하시고, 그분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믿음은 그분이 나를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이 나와 동행하시는데, 내가 어찌 죄를 지을 수 있으리오. 성령이 사탄 마귀로부터 나를 보호하시는데, 내가 어찌 영적 전쟁에서 이기지 않으리오.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나는 욕망을 이길 수 있었고, 나약함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동행하셨던 주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나를 행복과 평화의 길에 들어서게 하신다. 할렐루야.
    • 칼럼
    • 기독시선
    2018-09-13
  • (경현수)이런 사랑이면 좋겠다
    이런 사랑이면 좋겠다 배 상 호 사랑이 좀 무거웠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파도가 요동쳐도 움직이지 않는 천 년 요새 같은 사랑이면 좋겠다 사랑이 좀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앞뒤로 막혀 헤어나지 못하고어둠에 물들어 방황하고 있을 때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자유롭게 속삭일 수 있는부담 없는 사랑이면 좋겠다사랑이 좀 쉬웠으면 좋겠다빈부도 귀천도 따지지 않고뜨거운 마음과 진실한 믿음 하나로조건 없이 통할 수 있는 사랑이면 좋겠다사랑이 좀 어수룩했으면 좋겠다알아도 모르는 척하고미워도 내심, 안으로 삭이면서좀처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참을성 있는 사랑이면 더욱 좋겠다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통념적, 사람과 사람의 사랑은 복잡하고 미묘한 역학 관계로 얽혀있다. 흔히 아가페적사랑, 필리아적사랑, 애로스의 사랑을 운운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아가페 사랑은 그 가치를 최상으로 꼽고 있다.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아닐까,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존재의 궤적이 되지 않을까, 소년과 같이 순연한 시인의 심상이 현학적이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질박한 사랑을 담담하게 형상화 시켜놓았다,좀 무거웠으면 / 순수 했으면 / 사랑이 좀 쉬웠으면 /조건이 없었으면 /사랑이 좀 어수룩했으면 /드러내지 않았으면 / 참을성 있는 사랑을 , 원하고 있지만 어디 그리 쉬울까- 잔잔한 강의 흐름처럼 깊은 강은 소리내지 않고 흘러가듯 모두 강물 같이 유속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 두물머리 강줄기 合一 되듯 우리들 사랑도 그렇듯 이어가면 어찌 않 좋을까....
    • 칼럼
    • 기독시선
    2018-09-01
  • (경현수)祈願
    祈願 김 동 명 主여,여기 無花果나무 한구루 아직 한번도 열매를 맺어보지는 못하였아오나그렇다고 찍어 버리시지는 마옵소서새봄을 맞어말은 가지에 물이 오르고잎이 퍼드러지면날새들의 쉬임터는 될만 하오니 또한 땅우에 고요히 흔들거리는 푸른 그늘을지나는 길손들은 반겨 하오리니 主여열매를 맺을줄 모른다고찍어버리지는 마옵소서. 작열하는 여름날, 민족 시인 김동명의 시 芭蕉가 절로 읊조려지는 계절이다 강원도 강릉이 낳은 시인, 남국의 꽃 파초가 치맛자락 같은 잎사귀 위에 솟아 붉게 타오르고 동해의 푸른 바다가 파도소리를 들려주며 밀려오는 듯 하다. 그의 시 ‘기원’ 도 뜨거운 여름날 비유적으로 무화과가 은유적 대상으로 의인화 되어 간절한 기도의 시로 형상화 되어 함께 무릎 꿇게 된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태7:9)’ 라고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 기도문은 하나님께 직설적 간구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화려한 수사나 변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가엾은 나무가 베어져 버리지않게 간구하는 신실한 시인의 기도문이다. 비록 쓸모없는 존재일 찌라도, 우주만물 주께서 만드신 것 중에 열매 없는 초라하고 무가치한 나무 , 이 비유적 무화과나무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번도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 다시 힘주어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땅 위에서 흔들거리는 푸른 나무로 지나는 길손과 이웃의 그늘과 위로가 되기를 기원한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8-27
  • (경현수)아침 스냅 한 컷
    아침 스냅 한 컷 김 지 향 서정마을 아침 추녀 끝에 밤새 매달려 자던 뱁새 몇 마리 도르르 미끄러진다 햇빛을 따먹으려 하늘로 치솟는다 방금하늘은 명주실 한 필을 흘려버렸다온몸이 빛으로 태어난 서정마을 아침머리에 조금 남은 이슬을 털고아침은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켠다 나지막한 산이 기지개를 켠다나지막한 산이 아침을 받아 먹는다산도 입을 열고 새파란 산새 몇 마리 날려 보낸다포르릉- 새들은 햇빛 속을 헤엄친다멍청히 서서 쳐다만 본다햇빛 립스틱 바른 새들이 활짝 이슬 문 나뭇잎을 퉁기며 간다 마악 배꼽을 굴리기 시작한 하늘을 두들기며까불까불 리듬을 차며 갈잎을 따서물고 간다새벽 기도 마치고 오는 아낙네 몇은 신기한 눈빛으로 산과 숲, 하늘과 온갖 생명이 눈을 뜨는 아침이다. 피사체를 생생하게 스냅 사진으로 포착 한 듯 입체적 구도로 펼쳐 보인다. 온몸이 빛으로 태어난 서정마을은 어디 쯤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이 마을이 이라고...,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있다. 주제인 ‘스냅 사진 한 컷’은 어원적 의미에 이미 이 시에 담을 은유로 엿보인다. 없어질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스냅 한 컷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체의 숨은 비의(秘義)를 알아내고 감탄한다. 언어가 스프링과 같이 튀어 오르고 있다. 찬란하되 수선스럽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행간에 빠져든다. 뱁새 몇 마리 / 하늘은 명주실 한 필을 흘려버렸다/ 나지막한 산이 아침을 받아 먹는다 / 새들은 햇빛 속을 헤엄친다. 모든 존재들이 드넓은 우주의 주역이 되어 영롱한 시경(詩境)에 잠겨들게 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우주 만상은 새롭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침과 저녁의 빛깔이 변화무쌍 하지만 이 또한 순간에 지나간다. 서정마을 아침의 아름다움도 흐르고 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라고 지혜자는 고백하지 않았는가, 순간의 사진 한 컷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8-09
  • (경현수)의정부행 막차를 타고
    의정부행 막차를 타고 이 삼 헌 찢어진 의자가 서럽다.덜컹거리는 의정부행마지막 차창 너머로 빗물이 씻긴다.도봉의 푸르름에 취했다지만미아리 고개 넘어 수유리 그리고 50년 밀리다 보니서울에서 멀다 청량리 지나 석계역역사등도 꺼졌다.더러는 졸음에 겨워 기대고더러는 돋보기 너머로구겨진 신문을 읽는다.가난이 훈장이라는 술 취한 아저씨도 입을 다물었다.서울의 고단한 하루 짐을미처 내리지 못하고 열차는 길다.총총히 막차에 몸을 싣고내가 가진 건 근면과 끈기 뿐 내일이면 첫차를 타야 하는 것을꼴찌로 사는 것이그렇게 서러운 것만은 아니다.비 멈추고별이 쏟아진다.오랜 세월 기다리는 아내여오늘 밤엔 그대 치마폭에별을 쓸어 담아 길을 밝히세 당신은 의정부행 열차를 타 보았는가? 서울에 인접한 위성도시 의정부, 도시인의 삶이 끈끈하게 묻어나는 우리 모두의 원형의 공간이 그려지는 곳이 아닐까, 자정이 가까운 시간 앞에 의정부행 열차는 급하다. 열차도 의자도, 승객까지도 비틀거림을 곧추세우고 있다. 편히 쉴 곳 작은 집으로 가는 길. 시인은 열차 안 ‘찢어진 의자가 서럽다’고 절규하지만 왜 의자만 서러웠을까? 도봉산의 푸르름과 늠름한 산의 위용偉容도 어둠이 감싸고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만이 풍경을 채우고 있다. 이제 열차가 지나는 석계역 역사도 불이 꺼졌다. 시인은 곳곳에 남루함을 펼쳐 보인다.구겨진 신문과 돋보기 술 취한 사내의 독백도 왠지 침묵이다. 밤의 고독을 선명하게 들춰 보인다. 시인에게 삶은 속절없이 아리고 슬프다. 꼴찌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마음 달랜다. 내일 아침 열차꼬리는 되레 앞자리가 되어 달려 갈 것이라고, 차창에 뿌리던 밤비도 멈추고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린다. 자정이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여, 긴 세월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어도 이 밤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치마폭에 담아 銀河를 운행하듯 반짝이는 내일을 열어가게 될 것이라고, 밤이 어둡지 않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7-26
  • (경현수)별과 고기
    별과 고기 황 금 찬 밤에 눈을 뜬다그리고 호수에 내려 앉는다물고기들이입을 열고 별을 주워먹는다.너는 신기한 구슬고기배를 뚫고 나와그 자리에 떠 있다.별을 먹은 고기들은영광에 취하여구름을 보고 있다별이 뜨는 밤이면밤마다 같은 자리에내려앉는다밤마다 고기는 별을 주워먹지만별은 고기 뱃속에 있지 않고먼 하늘에 떠있다.한 편의 시에서 찬란한 繪畵的 흐름이 꽃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별과 호수 그리고 물고기의 프레임은 행복한 상상력을 건져 올리게 된다. 전설의 동화 한편에 담긴 이야기로도 들려 온다. 별빛이 한 줌 프리즘을 통해 밤을 밝히며 속삭이고 있다. 깊은 밤 별들이 호수에 내려 앉는다 물고기들은 그 별들을 주저함 없이 줏어 먹는다. 별들은 밤의 요정이 되어 호수 위에 다시 반짝이며 떠 오른다 .물고기와 고기는 숨바꼭질을 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호수와 물고기 그리고 별들의 영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결코 죽음으로 가지 않을 생명체로 하늘에 떠 있다. 별을 먹은 고기는 永生의 기쁨에 영광을 구름 위 하늘 멀리 올리고 있다.시인은 아름다운 抒情을 내면 깊숙이 종교적 의미로 병치시켜 놓고 있다. 이제는 별이되어 먼 하늘에 떠 있지 않을까?
    • 칼럼
    • 기독시선
    2018-07-13
  • ( 경현수)갈릴레아 바다
    갈릴레아 바다 정 지 용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때 없이 설레는 波濤는美한 風景을 이룰 수 없도다.예전에 問弟들은잠자시는 主를 깨웠도다.主를 다만 깨움으로그들의 信德은 福되도다.돗폭은 다시 펴고키는 방향을 찾았도다.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主는 짐짓 잠자신 줄을___ .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나의 歎息은 깨달았도다. 렘브란트의 ‘갈릴리 호수의 배’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한 그림이다. 갈릴리 바다와 예수님과 열 두 제자가 탄 배를 형상화시킨 명화로 알려져 있다. 렘브란트의 배는 그 암유적 배경이 ‘갈릴레아의 바다’의 시 전문에서 보여주는 감명을 동일하게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위 시와 렘브란트의 그림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동일한 영적 은혜에 이르게 하고 있다.렘브란트의 배에서는 인간의 어리석고 나약함을 묘사하고 있다. 13명이 승선한 배에서 예수님은 풍랑 가운데서도 무심한 듯 주무시고 계시고 열두 제자의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돛을 붙잡은 사람 누워있는 사람, 아우성을 치는 사람, 두려움에 떨며 뱃전에 엎드린 사람, 예수님을 깨우는 사람....“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 8:26)..,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인 정지용 시인에게도 풍랑 일고 해일이 배를 덮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시인의 가슴은 작은 갈릴리아 바다, 풍랑 일고 파도치는 뱃전에서 두려움과 평화 없었을 때 주님을 깨우셨으리라. 주님이 함께 임재하고 계심을 잠시 잊고 있었음에 주님을 깨움으로 그 믿음은 복되다고 고백하고 있다. 마음의 풍랑은 사라지고 참 평화가 오며...돛폭은 활짝 펴지고 키는 방향을 찾아 다시 먼 항해를 떠나게 된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6-30
  • (경현수)화음 和音
    화음 和音 송 원 발코니의 미니 정원 봄이다 차가운 벽면에 기대고 서 있는 선인장누구든 다가오면 상처를 입힐 기세로 온 몸에 가시를 세우고 있다 사막에서 그랬을까 시크라멘 토피어리 아이비와 함께모아서 심어보았다 꽃과 가시꽃 서로 어우러져 둥글게둥글게 살아보라고어쩌면 가시만 세우고 있다가 차츰 휘청거릴지도 모를 가여운 가시꽃 3월이 밀치듯 들어온다 숲의 나무들의 키가 각각 틀리고 잎사귀가 달라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높낮이가 다른 여러 음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합창은 더욱 그 아름다운 화음에 매료된다. 시인은 화음이라는 주제에 은유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다.원래는 사막에서만 살아야 하는 선인장, 어떤 인연인지 도시의 아파트 배란다의 냉냉한 벽면에 홀로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은 슬프고 아리다. 피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삶을 연민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아열대의 건조지대인 사막에서 이주해 온 선인장은 가시를 곧추 세우고 보호본능인지 까칠하고 방어적이다.시인은 묻는다 사막에서도 그랬을까? 동족끼리 사는 자기 영토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自問自答한다. 시크라멘, 토피어리, 아이비 등 부드러운 친구들을 모아서 함께 살아갈 영토를 만들어준다.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독한 가시로 날을 세우다 지쳐서 쓰러지던지, 스스로 자해할 런지도 모를 일, 둥글게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거라, 불현듯 생명의 달 3월이 햇빛을 거느리고 함께 어울릴 꽃밭으로 밀려 들어온다. 아름다운 화음이 들려온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6-21
  • (경현수)부레옥잠
    부레옥잠 임 희 자 떠도는 잠 속에 부레옥잠이 피어난다. 자줏빛 꽃대궁 세우고, 밖의 세상을 빨아들이고 있다. 검은빛을 띤 뿌리들, 허리를 비틀며 품어 안은 양수를 출렁거린다. 일순간 부푼 가슴은 긴장이 풀리고, 꼿꼿한 중심의 방향이 흔들린다. 스스로 집이 되어 물속에 갇히지 않으려는 듯 몸의 용트림이다. 오랫동안 감추었던 겨드랑이 화끈거린다. 숨막힌 물밑 지루함의 견딤이 없었다면 불 켜진 집의 소통을 모른 일이다. 꼭 서 보고 싶은자리, 피어난 꽃들의 이마엔 푸른빛이 숨 쉬고, 수줍어 뒤척거리는 꽃잎 속으로 따라 들어간 어제의 햇살들이 붉은 촉수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다.어떤 생애든 떠돌지 않는 삶이 있을까, 물에 떠서 사는 꽃, 그 예사롭지 않은 삶 앞에 시인은 문득 시선을 멈추게 된다. 부레옥잠화는 종종 시적 대상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연못이나 담수 습지에서 둥글게 부푼 잎자루로 보랏빛 꽃을 수면 위로 올리고 있는 모습은 신비롭고 황홀하기도하다. 부레옥잠은 잎자루에 부풀게 공기를 채워야 붕붕 떠 있을 수 있음을 안다.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매콩강가에는 수상가옥이 물 위에 떠 있다. 그곳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부레옥잠과 같이 아름다운 애환이 얼킨 끈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레옥잠과 매콩강가의 사람들은 닮아 있다. 강인한 의지와 인내로 수중에 뿌리를 두고 수면 위로 둥근 잎자루에 꽃대궁을 받쳐 들고 겹겹의 보랏빛 꽃을 피어내고 있다. 깊은 못 속에 수장 되기를 거부한다. 바람과 햇빛은 어제 꽃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부레옥잠은 푸른 산소와 바람과 햇빛과 더불어 붉은 촉수를 깃발처럼 세우고 보랏빛 꽃을 물 위에 띄우고 있다.시인은 부레옥잠화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6-09
  • (경현수)별은 뜨지 않아도
    별은 뜨지 않아도 이 용 대 하늘은 잔뜩 흐려 칠흑 같은 산농山農 밤이어도 말씀은 은밀한 걸음으로 와 있다산의 호흡과 강이 읊조리는 노래도 빠짐없이 듣고 있을그분의 임재두 발을 모으고이랑에 귀를 기울인다 만상을 이룬 이가 새움을 돋워낸다 별은 뜨지 않아도 스치는 옷깃 소리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님을바람으로 깨닫는다 산의 호흡과 강물 소리와 바람 까지도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고 있는 시인은 꼭 예언자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무한한 신뢰와 그 경이로운 임재에 시와 노래로 화답하고 있다.별이 뜨지 않아도 수많은 행성이 우주를 운행하고 있음을, 그 아름다움이 보이지않아도... 헤르메스, 비너스, 아폴로 이름을 알지 못하는 별들도 우주를 운행하고 있음을 안다. 구름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고 있을 뿐, 그 뚜렷한 존재를 믿고 있다. 밭이랑에 심은 씨앗이 돋아나는 새싹의 신비로움도 그 분의 손길임을 알고 있다. 깊은 산간, 산농(山農)의 밤에도 은밀히 곁에 계시는 무한한 은총, 정지용의 시 九城洞 을 떠올리는 산간의 밤이다.골짝에는 흔히 /流星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 소란히 싸히기도 한다 캄캄한 밤 별이 떨어져 묻힌 무덤이 듯 고적한 인적 없는 고립된 곳에서도 하나님의 실존을 만난다. 산의 호흡도 강물 흐르는 소리도 神께 드리는 노래다. 몸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작은 신음 소리에도 귀 기울이시고 들으시는 분, 홀로 있어도 혼자가 아닌 별이 뜨지 않는 밤에도 별이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8-06-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