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6(수)

칼럼
Home >  칼럼  >  기독시선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독시선 기사

  • (경현수)아버지의 바지랑대
    아버지의 바지랑대 김 경 수어느날 아버지는바지랑대를 높이 세우고빨랫줄을 매셨다그 위에는 말씀들이 넉넉한 햇살을 끌고젖은 영혼들을 말리고 있다피눈물에 절은 기도들이하얗게 부서지자당신은 바지랑대를 더 높이 올리셨다빨랫줄에 걸려 있는 시름들이덩달아 올라가고초라했던 나의첫 기도는저만치 끝자락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춥고 움츠린 영혼가난하고 허기진 사람들간간히 널려있는 배부르고 살찐 옷가지들지나가는 낮달이 기웃기웃빨랫줄에 걸린 사연들을 읽고 있다시인은 늘 새롭고 유니크한 시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김경수 시인이 상재한 새 시집 ‘기수역의 탈선’에서는 퍽 도발적인 시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어 페이지를 넘겨본다. 또 다른 색깔의 신앙시가, 고전적 풍경화를 펼치듯 다가오는 ‘아버지의 바지랑대’는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지난 삶이 애틋하고 그립게 다가온다.바지랑대가 빨랫줄을 추켜올리는, 아버지의 절절한 기도가 그렇듯 하늘에 올려지는 놀라운 은유가 절창이 되고 있다. 슬픔이나 기쁨도 색깔이 있다. 하얗게 빨랫줄에 걸린 흰 빨래, 달큰한 슬픔이 바지랑대를 타고 곡예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일상을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아버지다. 쌓이고 쌓이는 기도는 바지랑대 끝을 너머 더 높이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고 있지 않는가. 그 시름은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털어내고 있다. 무릎 꿇어 기도한 바짓가랑이, 땀에 절은 속옷도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말리고 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삶도 함께, 바지랑대 끝에는 아버지의 소망이 걸려있다.햇살을 보시며 하나님은 하얗게 널어놓은 아버지의 사연도 읽고 계신다.
    • 칼럼
    • 기독시선
    2019-12-23
  • (경현수)꽃 지는 것 옆에서
    꽃 지는 것 옆에서 박 재 삼1이젠 얼마 안 남은 꽃 질 일 밖에 안 남았네.꽃대들이 서 있을 그 일 밖에 안 남았네.마음이 착해 물 같은 마음이라 하고,그래 그 마음을 주는, 물 주는 朝夕이라 하고,가만히 피어나면 꽃은 어떻게 피던가,몇만 년 후에도 그것은 모를 일일레.그러나 시방 보아라,지는 꽃잎 두어 잎 저걸 보아라.무슨 모양인가를우리의 물빛 마음은 비추어 알아내는 것이다.2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를그야말로 어떻게 알겠는가.그러나 바야흐로 이별하며 있는 지금 멀찌기오히려 손 흔들며 보여 오는 사랑의 모습......꽃대밖에 꽃대밖에 더 남겠는가.꽃이 지면 어쩌랴, 그냥 떨어진 꽃잎 하나 주워 입술에 대어보는 일로, 하늘이 맑고 푸른 가을날 박재삼 시인의 시 한 편 읊조리면 그늘진 마음, 시름까지 푸르게 씻어질 듯, 그리운 그의 시편들은 평범한 삶에서 이끌어 내는 口語體의 시어들이 물비늘 같이 반짝이며 생동감과 친근감을 주게 된다. 삼천포 바닷가의 청소년 시절은 가난과 슬픔, 울음, 한이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음에도 그 영혼은 맑고 눈빛도 선하여 아름다운 시인이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 성경 시편 23편을 즐겨 암송하며 다윗의 시를 기리던 그의 생전의 모습은 더할 데 없이 귀하게 기억된다. 말년에 중풍병으로 어눌해진 시인의 음성이 쟁쟁하게 들리기도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향한 그의 고백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웠던가, ‘꽃 지는 것 옆에서’ 詩 전문에서 시인의 예지는 놀랍다. 여호와의 섭리를 겸손히 바라보는 일, 꽃이 지고 꽃대만 남아있을... 우주만물이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아는, 몇 만 년 후에도 꽃은 가만히 피어나고 어떻게 피는지를 시인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시방, 곧 지금 보아라, 우리의 사랑도 그렇다.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온 사랑은 어느새 이별을 준비하며, 사랑은 오는 듯 다시 되 돌아 가리라고.
    • 칼럼
    • 기독시선
    2019-11-25
  • (경현수)아름다운 단념
    아름다운 단념 배 환 봉 단풍은 며칠을 불타는 가슴이더니어찌된 고뇌일까불안한 내일보다야얼핏 고운 꿈 안은 채그냥 내려 쉬고 싶었을까고뇌 끝에엷은 바람 끝으로타오르던 정열 다 허사인 줄설령 몰랐다 해도 가는 길 조용히 잠들고 싶은그리 체념한 듯이제야 다 버리고천지 아무데나 내려 쉬는단풍, 그 단념이왜 이리 평안한 것이냐“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이며 모든 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의 고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성경구절이다. 사람이 집착하는 모든 가치는 가을날의 붉은 낙엽, 단풍과 같은 것이 아닌지, 시인은 ‘아름다운 단념’ 시 전문을 통해 하나님의 우주만물의 질서 앞에 깊이 묵상하고 있음을 공감하게 된다.결실의 계절,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추수의 풍요로움을 누리지만 이 땅에서의 유한한 삶은 인간의 한계일 수밖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일이 궁극적인 가치이며 존재의 의미임을 전도서에서 또한 깨우치게 된다. 단풍 또한 자연의 이치로 알게 된다. 바람에 흔들려 떨어질 낙엽은 그 찬란한 절정도 허사인 줄 아는 듯, 떨어져 흙으로 매장되어도 또 다른 생명으로 피어날 것이다.가을날 조락의 자연 앞에 시인은 섭리를 안다. 떨어지는 단풍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왜 평안한지 조용히 고개숙여 묵상하면 다 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9-11-18
  • (경현수)광장
    광장 최 경 호광화문 광장에서 길을 잃었습니다모두 어디로 갔을까텅 빈 광장 빈 하늘로 비둘기 몇 마리한 번도 중심으로 날아 본 적 없는 우리는태극기 흔들고 촛불이나 들까남은 건 몸둥이 하나 그마저 거부되는 시대섹스저넬리언 혹은 세 번티즈*인사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했습니다당신과 난 쫓겨난 거리의 반려동물사람 있는 광장에서 서정시라도 읊어보려 했는데 인사나 하고 가려도 사람이 없어 그냥 광장을 돌아 어디로 가야 했습니다순전히 광장은 너희들 거리너희들 이름으로 고발해라 퍼붓는 소나기 *sexagenarian or seventies, 60대 혹은 70대시 한 편을 만난다. 짙은 암유(暗喩)를 뚫고 다가오는 전문의 무게감 있는 감동이 시를 읽는 이유를 알게된다. 난삽한 거리 혹은 혼잡한 인파를 등 돌리고 경쾌하게 우회로로 도착한 시원(始原)이다. 제목 광장이 주는 대중에게 익숙한 통속적 의미를 이미 던져버린 시에서 전달되는 미적 가치와 진실이 요란하지 않고 격조 높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은 시민의 마당, 광장은 늘 인파로 가득차고 함성과 깃발이 누구를 위하여 펄럭이고 있었는지, 소란스러워도 혼자다. 아이러니하게도 텅 비어있다. 누군가에게는 광화문은 거부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정숙(靜寂)이다. 다시 우회로로 돌아가야 하는 시인의 이름을 잃은 한 나그네 혹은 애지중지 애무하다 쫓겨난 거리의 반려동물이다. 컹컹 짖어도 울림이 없는 넓은 광장, 세 번티즈에게 눈길을 교감하는 일은 없다. 광장은 누구의 거리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바람이 어디로가 몇 백 바퀴 돌아들고 청계천이 한강을 흘러 돌아 회귀하는 날, 누군가의 유순한 신발과 섹스저넬리안의 백발과 푸른 깃발이 함열하게 되리라고.
    • 칼럼
    • 기독시선
    2019-10-25
  • (경현수)다시 산에서
    다시 산에서 이 준 영산을 본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을 본다아니, 어제도 보고그제도 본 산인데어이 오늘에사산이 산처럼 보이는 것일까산을 보되 산의 깊은 마음 읽지 못하고산을 보되 산의 지혜로움 느끼지 못하고산을 보되 산의 인고를 짚지 못해어제도 그제도한갓 뫼로만 훑어 본내 눈의 흐림이어아, 우둔한 내 마음의 닫힘이어어제도 본 산그제도 본 산오늘은 저 산의 큰 품열려 있음을 본다 동일한 사물과 환경도 시간에 이끌려 통시적 객체였을 뿐, 일상에 늘 가까이 있던 산이었음에, 시인은 느닷없이 ‘산을 본다‘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았던 산인 듯- 이, 역설을 읽게 된다. 여태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의 품과 같았고 仁者와도 같은 산을 비로서 보았다. 산에 들어 나무와 숲과 계곡과 새들의 지저귐도 들었을 텐데, 수 많은 산의 시간이 시인의 시간 속에도 축적되어 있었지만, 산은 산이고 거기 있는 비스듬한 오르막길이고 비탈에 선 나무들이었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사계절이 거기 있었을 뿐이라고 이제 무심했던 산의, 우주적 秘義와 무한한 신비와 크고 웅대한 산의 품 자락과 숨소리까지 듣는 귀와 눈과 가슴이 열리고 있다. 우둔함도 깨우치는 무한한 희열이-
    • 칼럼
    • 기독시선
    2019-10-17
  • (경현수)대봉감
    대봉감 최 영 욱지난 여름의 무더위가 키웠을까지리산 푸른 바람이 달았을까저리도 붉고 달게 매달려지리산 푸른 달빛이 개치나루로 하동포구로 흘러드는길을 밝히는 가로등이었다가악양골 인심 좋은 농부들 웃음이었다가허공을 두리번거리는까치들 밥이었다가이 가을을 내 손 안에 통째로 얹히고 마는아직 달이 뜨지않은 악양골 어느 누마루에서보았네 온 골을 밝히는 저 따뜻한 호롱불들.열대아라고, 대지는 계절의 적군이 되어버린 여름, 속수무책이 되고 있었다. 폭염이 땅을 점령하고 시뻘건 깃발을 꽂아두더니, 역시 전쟁은 믿을 만하지 못한 것 인 듯, 문 밖의 선들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다. 아- 가을이네! 라고 외쳐도 보고 싶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고백한 가을날의 시에서 그 위대한 여름은 포도송이를 더 달콤하게 하고 온갖 과실열매를 거두게 하고 있다.남녘의 하동 땅에 가을은, 섬진강의 은비늘 물살과 지리산의 푸른 바람과 악양골의 햇살이 만들어 낸 붉은 대봉감이다. 개치나루로 하동포구로 흘러드는 달빛의 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기도 하고, 달이 뜨지 않은 까만 밤에는 악양골을 밝히는 붉은 호롱불을 켜고 있는 것을... 하동의 시인 최영욱은 보았다.아무도, 하동 땅 섬진강의 가을날을 가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푸른 달빛이 개치나루로 하동포구로 흘러드는 그믐밤의 호롱불이 된다. 찬 서리 내린 어느날 까치밥으로 다시 환생하는 저 붉고 달콤한 대봉감이... 서걱대는 시인의 손 안에 잘 익은 가을을 통째로 얹어두고 있다는데.
    • 칼럼
    • 기독시선
    2019-09-06
  • (경현수)축 도(祝禱)
    축 도(祝禱) 전 봉 건 말끔히 문풍지를 떼어 버렸습니다. 언덕 위에 태양을 거리낌 없이 번쩍이게 하십시오풋색씨의 젖꼭지처럼 부풀은 새싹을 만지게 하십시오어느 나뭇가지 우묵한 구멍에서 꾸불거리며나오는 새파란 벌레를 보게 하십시오.그리고 이제 사람들에게 꽃병을 하나씩 마련할 것을 명하십시오나는 흙으로 빚어 만드오리다그리고 파아란 바람을 보내시어그 속에 꽃들을 서광처럼 솟아오르게 하시어 쌍바라지도 들창도 유리창도집마다 거리마다 모두 맑은 미소같이 풀리게 하십시오오 ! 수없는 나비와 꿀벌의 날게를이제 온 주위에서 서슴치 말고 퍼십시오꽃향 무르녹는 나무 사이에펄럭펄럭승리의 깃발처럼 치마폭 휘날리시어종다리처럼 나의 푸름을오 ! 소스라쳐 오르게 하십시오신서정파의 기수로 알려진 전봉건 시인은 1928년에 태어난 시인이다. 신서정파 의 기수로 알려진 그는 “시를 쓰기 직전의 시인의 상태는 진공 속의 돌맹이와 같다. 돌맹이는 나뭇잎의 섹깔과 냄새가 잔잔하게, 혹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공기 속에서 비로소 눈을 뜨고 호흡한다” 라고 고백했다. 김영랑의 추천을 받은 “축도”는 많은 독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모더니즘적 특성과 관능성은 생명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읽게 된다. ‘풋색씨의 젖꼭지처럼 부풀은 새 싹을 만지게 하십시오’ 직설적 화법이 긴장감과 생명의 경외감을 불러 준다. 꾸불거리며 나오는 새파란 벌레는 얼마나 위대한 창조의 섭리인가? 모든 자연과 생명체는 창조주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시 전문(全文)을 관통하는 이미지와 의미에는 모든 피조물이 화창(和暢)하는 노래가 푸르게 펼쳐진다.
    • 칼럼
    • 기독시선
    2019-08-01
  • (경현수)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피었습니다 김 장 출그 빛깔과 향내는 대단치 않아도그 모양과 자태도 대단치 않아도비탈진 언덕바지무너진 황토밭에 남몰래 살짝피었다 시들어버릴이름 없는한 송이 꽃이 피었습니다거센 비바람에도내리 쬐는 폭염에도굴하지 않고외로움과 고통을 참아내며뻗쳐오르는 바램그는 미천하고 초라한 것 같지만저는 부끄럽고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오직 간절한 소망 하나로한 송이 꽃이 피었습니다.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요-. 빛깔과 향내 대단치 않아도 모양과 자태 대단치 않아도 황토밭, 밭두렁 가에 홀로 피어 있는 들꽃, 누가 가꾸지 않았어도 수수하게 곱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자연, 사람들이 비틀거나 허리를 동여매가나 아무런 속박도 하지 않은, 분재로 만들어 화원 속에 가두어 두지도 않고, 옹색한 화분에 심어 꽃가게 앞에 진열한 꽃송이가 아니다. 비바람과 폭염에도 견디어 내며 오롯이 스스로 핀 꽃,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는 무엇을 하려하지 않고 그러한 대로 피어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얼마나 피어 있어야 하는지, 왜 꽃대가 흔들리는 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아니하는 들꽃은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햇볕과 바람과 비에 젖으며 잘도 피어난다.
    • 칼럼
    • 기독시선
    2019-07-19
  • (경현수)나무들은 알고 있다
    나무들은 알고 있다 이 향 아 나무들은 시간이 무엇인지를 안다새벽이 얼마나 깊은지 대낮이 얼마나 짧은지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길은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이라는 것도 안다 발은 흙 속에 묻었지만 그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고열 손가락 쪽물에 씻으며 돌아다보는 나무나무들은 땅이 무엇인지를 안다진토의 수렁, 최후의 벼랑에서도서 있는 그 자리를 원망하지 않는다해를 우러러 우주로 통하는 소망을 열고불편하면 할수록그 시간, 그 땅에 발을 묻는다나무는 바람이 무엇인지 물이 무엇인지를 안다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무는 현자(賢者)다. 천체의 운행과 그 법칙도 알고 있으리라고, 시인은 나무가 되어 나무와 함께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자연의 순리를 순응하며 그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고, 숲의 개체인 한 그루 나무가 우주를 지으신 이의 섭리임을 알고 있다.시간과 공간도 가늠 한다. 낮과 밤의 이질적 명암(明暗)도 품고 있다. 시간 밖의 혼돈과 無爲의 어리석음도 용케 알아버린 나무는 흔들리지 않은 채 그의 잎새들을 조용히 손 흔들어 누군가를 보내기도 하고 칼바람도 쓰다듬어 보낼 줄 안다. 묵묵히 서 있는 자리에 깊은 뿌리가 그를 견고히 세우고 있다. 방랑자와 같이 발길을 이리 저리 옮기질 않는다. 우주로 관통하는 햇빛과 바람과 교감한다. 그래서 잠들지 않는 메신저다. 비가 오리라, 눈이 오리라, 강줄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 지 알고 있다. 물을 따라 나서지 않는다. 그의 땅의 깊이에서 목을 추기며 그림자를 지키며 속울음 운다. 사람 사는 슬픔을 흘러 보내고 있다 나무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 칼럼
    • 기독시선
    2019-07-05
  • (경현수)붉은 사과
    붉은 사과 공 계 열 붉은 사과를 딴다 새벽녘 물살을 치고 오르는 물떼새들 사과뿐 아니라 깃털도 붉은 색이다샐비어꽃 뜨거운 날숨이햇살로 붉게 물들었다 사과도 햇살 쪽으로몸을 밀고 나간 것이다그 끈기가 사과를 붉게 익힌 것이다스스로 익히려는 담금질로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달콤하다물떼새가 물살을 치고 오르는 것은 팽팽한 햇살의 힘이다익은 사과도 샐비어꽃도물떼새처럼 햇살 싣고날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이제 내 마음 속잘 익은 사과 한 알 따 보이고 싶다 붉은 사과의 全文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펼쳐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고리로 연결되고 있음을 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땅에 풀과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다고 성경은 일러 주고 있다. 파릇파릇 여린 새싹이 겨울을 뚫고 돋아나서 결실의 계절에, 붉거나 노란 혹은 주홍으로 열매 맺는 이 아름다운 섭리를 안다. 붉은 사과는 통념적으로 인지된 대상이다. 시인은 붉음을 통해 생명의 동질성을 이끌고 있다. 붉은 사과 물새 떼와 붉은 깃털, 샐비어 꽃, 아침의 붉은 해, 가을날의 빨간 샐비어는 얼마나 강인하고 찬란하게 피어있는가, 멀지 않은 조락의 시간 앞에서 그의 본분을 다 하고 있다. 그러나 꽃도 그의 힘만으로는 아름다움을 자랑 할 수는 없음을, 여름내 비와 바람 햇살로 담금질한 정교한 자연의 조화로 극치의 절정의 미를 더하고 있다. 붉은 사과는 천둥과 비바람 속에서 울었다. 해를 향해 지치게 달려온 생애가 벅차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 갈매기의 꿈’에서 비상의 꿈을 꾸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조나단을 만나게 된 듯 잠시 시인의 비상을 보게 된다. 물떼새와 같이 날아오르고 있는 붉은 飛上을__물살을 치고 오르는 팽팽한 햇살의 창화 하는 소리가 퍼지고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9-06-2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