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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장난 시계
- 고장난 시계 임 만 호지리산 산정을오르는 길목초가삼간 산(山)집 하나노부부 옛 살림네발 밥상 사발 몇 개산나물 푸성귀로봄을 차려놓고가끔은 맞는 벽시계를 쳐다본다“저놈의 시계는 고장도 잘 나는 디우리네 세월은 고장도 없네.”오늘 하루 가는 세월산그늘 가져오고호롱불 밝히면노부부 저녁상에세월도 같이 간다주름진 얼굴들을미소로 쳐다볼 때진달래는 소리없이꽃물이 든다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지리산 산정을 오르는 길목 우거의 노부부가 시적 주체가 되었다, 시를 읽는 순간 따듯한 정감과 아름다운 비감을 불러 일으킨다.네발 밥상 앞에 소박한 푸성귀로 밥상을 차려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은 적막하지만 행복한 시적 구도다. “저 놈의 시계는 고장도 잘 나는 디 우리네 세월은 고장도 없네.” -절창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넘보는 듯 아찔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살아 가고 있다, 어쩌면 신의 영역을 기웃거리고 있는 듯, 위기감과 불쾌감을 불러오고 있지만 피조물이 만든 어떤 사물도 불완전 하며 영속성이 없고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만들어낸 우주의 법칙은 고장도 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부부는 알고 있다.그러나 어쩌랴 푸념이라도 해야 맘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봄날은 아름답게 꽃물을 들이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벽시계는 시간을 멈추어 놓고서도 태연스레 시치미를 떼고 있다. 능청스런 정경이다, 시간이 멈추어 한 몇 년 쯤 사람들은 여전히 젊고 나뭇잎도 푸른빛으로 남아 있다면 환상적인 일일 테지만, 노부부는 서로 주름진 얼굴을 연민으로 바라보며 꽃물 드는 봄날을 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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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장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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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향 은백양 나무
- 고향 은백양 나무 강 정 화바닷바람이 우 하고 몰려오면일제히 넘어지는 시늉을 하고산바람이 와 하고 덮치면일제히 스러지는 시늉을 하고한 순간도 외눈 팔지 않고타는 목마름으로 고향 길목을 지키고 섰네익숙한 몸짓으로 시간을 셈하며 그림자를 누이고비오면 흠뻑 취한 듯 뿌리 깊이 열정을 갈무리하고마른날 제 곡조로 신명나게 추는 춤사위 잔잔한데나 얼마나 떠돌아야 홀로 고향 지키며흐르는 구름에 깊은 시름 실어 보내고바람에 생채기 나지 않는 흔들림으로닿을 수 없는 피안을 꿈꾸는 은백양 나무 되려나.바닷가 어디 쯤 백양 나무 직립(直立)해 있는 숲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파리 뒷면이 백양의 흰 털 같이 덮여 있는, 일명 은사시 나무라고도 하는 은백양(銀白楊)나무는 가장 서정적 우리 정서가 담긴 나무가 아닐까? 하얀 수피가 달 그늘 처럼 늘어선 숲, 그 곳이 시인의 고향이다. 바닷바람이 숙명인 듯 은백양 나무를 가르며 지나간다 나무는 순순히 순응하며 넘어지는 시늉을 하고 바람과 화해하며 비파 소리도 낸다. 또 산바람이 와아 덮치면 소나기 소리를 내며 그의 영지(領地)를 지킨다. 온갖 눈 비바람과 폭풍까지도 달래며 나무들의 고향인 시인의 고향을 지켜내고 있다. 때로는 힘들고 고달픈 삶을 신명나는 춤으로 우주적 시간을 쌓아간다.어디에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춤사위는 생명의 신비로움으로 안겨든다. 시인이 지키지 못하는 고향을 은백양 나무는 묵묵히 지키고 있다.바다와 산을 아우르며 춤도 추며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가끔 은백양 나무로 살아가고 싶은 시인의 꿈은 어디 쯤 있을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피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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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향 은백양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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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눈물
- 눈물 박 이 도이젠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사소한 일에도 감동할 줄 아는 축복음악을 듣고 있다가 눈시울을 훔치고사람을 만나면서도 등을 돌리고눈물, 눈물을 닦는다야외수업을 하던뒷산, 화성교에서도나는 눈물을 보여주었다한 낮엔 부끄러워사람들 앞에선 면목이 없어은밀히 찾아낸 골방에서눈물의 의미를 생각한다.팝 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을 기억한다. 한 여성의 웃고 있는 듯 하나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이 눈물은 어떤 호소력으로 묘사 되었을까? 이 작품은 무려 715만$에 팔렸다고 한다.눈물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여러 가지 감정 중에 가장 거짓 없는 내적 자아를 드러내 주는 암시일런지 모른다. 슬픔이나 기쁨이 절정에 이르면 눈물이 주르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린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노라면 울 시간조차 허락되지 못한다. / 이제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고 / 시인은 고백한다.각박한 현실도 느긋이 내려놓고 멀리도 가까이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따뜻함이 모든 것에 사랑과 연민을 보내게 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가 수업을 하다가도 눈물을 보인다. 맑은 영혼의 눈물은 축복이다. 조용히 엎드려 기도할 때도 작은 일에도 감사할 때에도 눈시울이 뜨겁다. 눈물은 가장 겸허한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예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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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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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노란 샌들 한 짝
- 노란 샌들 한 짝 이 혜 선리나는 난민촌에 살고 있는 열 살 소녀다구호센터에서 트럭이 오면어른들은 서로 좋은 옷을 차지하려고 힘껏 손을 뻗는다발돋음하는 짧은 팔, 억센 팔들 틈에 끼어잡히는 대로 일단 당기고 본 리나의 손에노란 샌들 한 짝맨발로 살아온 리나의 갈라터진 한쪽 발에파란 꽃이 달린 노란 샌들 한 짝가슴에 피어나는 노란 해바라기 한 송이폭격맞아 불타버린 초등학교헌 가마니 깔고 흙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던,넓은 운동장에 ‘언니, 같이 가아’구호품 깡통을 손애 든 리나노란 샌들 한 짝 신은 리나가 웃으며 손을 내민다.제목에서 언뜻 다가오는, 예감적 환희와 슬픔을 접하게 하는 시다, 캐런 린 윌리암스와 카드라 모하메드가 지은 ‘노란 샌들 한 짝’ 을 배경 모티브로 쓴 시 임을 시인은 밝히고 있다. 지구촌은 전쟁과 폭력과 분쟁으로 삶의 현장은 비극적 아픔이 끊일 줄 모른다.가슴 아프고 애잔한 모습을 이 길지 않은 시 전문에서 선연히 보여주고 있음은 시인 만의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품성이 만들어낸 작품임을 유추 하게 된다.지구 건너편의 비극적 현장의 인질이 되어버린, 어린 리나의 삶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돌이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란 샌들 한 짝 이나마 결코 놓을 수 없는 절박한 생명의 존엄을…. 노란 샌들의 의미가 더욱 확충되며, 반세기도 더 지난 한국전쟁을 오버랩 시키고 있다. 전후(戰後)의 우리의 아픔의 기억을 심화 시켜 심리적 거리가 합일(合一) 되어 따뜻한 연민과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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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노란 샌들 한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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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별층도(別層圖)
- 별층도(別層圖) 정 공 채예리야 어머니 계시니아뇨 아버지만 계세요아버지 회사에 나가시지 않니벌써 그만 두고 산에만 잘 가요그래 무얼 먹고 사니하나님이 음식을 감사하게 주셔요오라 어머닌 예배당에 가셨구나네 나는 주일학교에 가구요아버진 나가시지 않니한 번도 나가시지 않았지만 곧 나가시게 될 거예요착한 우리 아버지거든요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거예요산에 가서 무얼 하니묘지를 순례하며 시를 쓴대요묘지를 순례하다니나도 몰라요 삼각산이랑 도봉산이랑집에서 가깝거든요그래 갖고 집을 언제 사지집이 없어도 하나님이 주신대요주인이 가을에 이사 가란다면서네 방 한 칸 있는 데가 있대요아버지 회사에 나가셔야 할 텐데안 나가도 괜찮아요, 혼자 일하는게 더 좋대요하긴 여태 회사에 나가도 집 한 칸 마련 못한 사람이니까우리 아빠예요우리 아빤 그래도 행복하대요엄마도 웃어 주고요그래 맞았다 너희 집은 행복해예리도 꽃같이 예쁘고 너희 오빠도 착하구우리집엔 하나님이 계세요해바라기도 한 송이 피어 있구요자문 자답의 우수( 憂愁 )의 시인은 말갛고 흰 그의 적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있다.가난하고 청빈한 삶은 스스로 선택한 길 이고, 그 분의 섭리인지도 모른다.세상의 모든 작고 소박한 것들이 기쁨이고 눈물겨운 행복이다 물신.( 物神)이 격랑 처럼 휩쓸며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시대에, 시인은 묘지를 순례하며 삶과 죽음의 간극(間隙)을 아름답게 투사하고 있다.묘비를 순례하는 하며 시를 쓰던 시인의 삶은 그 궁극적 지향점이 하나님게 있음을 명징하게 투영시키고 있다 ,해바라기는 하나님을 향한 향일성의 환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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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별층도(別層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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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꽃비
- 꽃비 한 상 완돈암동 네거리아리랑 고갯길엔벚꽃 활짝 피어연분홍 구름 길고개 넘는 지선 버스 기다리는한낮 정류장엔수려한 벚나무만개한 구름꽃하늘 가리고건듯 분봄바람함박눈 설화처럼파란 하늘 수 놓으며벚꽃 비 흩날리고황량한 도심거친 삶 서걱대는민초들매마른 걸음잠시 멈춰가슴 적시는꽃비봄날 벚꽃이 만개한 꽃그늘에 서 보았는가, 그 아름다움과 찬란한 기쁨으로 크게 소리쳐 보고 싶을 것이다. 파란 하늘은 부끄러운지 벚꽃 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니__ .이제는 옛 거리가 되었을 듯한 돈암동 네거리에서 아리랑 고개를 비스듬히 오르는 고갯길 소박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오가는 벚꽃 가득 핀 꽃동네, 길은 왼 통 연분홍으로 채색(彩色)을 하고, 한낮 버스 정류장 앞에 선, 시인은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든 꿈을 꾸고 있지 않았을까, 함박눈 같기도 하고 꽃비도 휘날리는 네거리, 도시의 매마르고 지친 사람들의 발걸음 위에 벚꽃길은 위로와 평온을 주고 있다.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다면 봄은 더욱 아름다운 날이 되겠지, 그 길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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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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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어떤 평화
- 어떤 평화 변 성 희참솔나무 가지 끝바람에 휘청이는데 어미 새 한 마리해종일 벌레 입에 물고둥지로 나르는 저녁아기 새 눈빛 좌우로 반짝이고어미새 부리 끝사랑으로 빛난다지상의 쪽방에서 잠시 셋방살이오밀조밀 벌집에 모여사는그 곳이 마냥평화로운 유토피아의 지상 낙원참으로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세태가 이즈음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닌 가 돌이켜 보게 된다. 평온한 날이 드문 숫한 부끄럽고 불편한 일들이 매일 매일 매체들의 지면과 화면을 채우고 있다. 평화라는 커다란 인류의 공통 명제 앞에 모두 큰 목소리로 외치며 설왕설래 날뛰기도 한다.진정 참 기쁨 참 평화는 있는 것일까? 시인은 아주 작은 평화를 발견 한다 참솔 나무 가지 아래서 가장 창조적 생명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 만상(萬象)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 하는 사람 보다, 더욱 월등한 아가페(agape)적 사랑을 보게 된다. 잠시가 아니라 해종일 쉼 없이 먹이를 새끼들에게 물어다 주는 어미 새의 모습은 신기하고 아름답다.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두려워하지도 염려하지도 않는다. 어미 새의 날개 죽지 아래서 그 따뜻함과 사랑의 눈빛을 믿고 있다. 나무네 집에서 셋방살이 하는 새들의 가족, 얼기설기 엮은 새둥지는 우리가 지향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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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어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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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바람이 돌아오는 겨울날
- 바람이 돌아오는 겨울날 김 율 원사랑방 한 가운데 놓인 화롯불고구마를 묻어두고 빙둘러 앉아동생들과 군침을 삼키며 기다리뎐겨울날 아랫목할아버지의 쿨럭거리는 기침소리고구마 익어가는 냄새 가득 퍼진다방 건너 대청마루에 어머니와 할머니의다듬이 소리가 뒷산을 휘돌아바람보다 빠르게 메아리쳐 온다바람이 휘돌아 오는 겨울날몹시 추운 겨울날 바깥에는 찬바람이 윙윙 거리고, 문득 시인의 의식 속에서는 많은 기억들을 동시적으로 불러내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들의 상실감은 퍽 애잔하다.모든 것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는 추억 한다, 고로 쓴다 ( I reminisce, therefor I write ) 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겨울밤 거실엔 난로가 노랗게 켜지고 방안은 아주 따뜻하다. 바깥에는 바람이 창을 두드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잘 익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은 겨울을 포근하게 해 준다.모든 지나간 것들의 음향과 시선에 닿았던 풍경들이 심화되어 되돌아 온다. 오래전 어릴적 고향의 풍경이 오버-랩 되고 있다. 일상적 삶의 모습이 희화되어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며 잠시 행복해진다. 화롯가의 군고구마 익는 냄새,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 어머니와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과 리드미컬한 다듬이 소리, 뒷산을 돌아 바람보다 빠르게 오는 소리는 시인에게만 들려오는 소리일까? 그 소리는 누군가의 내면의 깊은 곳에 함께 닿아지고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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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바람이 돌아오는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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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낙타가 울고 있다
- 낙타가 울고 있다 이 섬낙타가 우는 것을 보았다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다이집트에 있는 시내산 오르는 길붉은 바위로 뒤덮힌 가파른 오르막길을낙타등에 앉아 산을 올랐다급경사의 산길을 오르며 가늘게 떨리는 낙타의다리를 보고 말았다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 보겠다고 오르는 방향에다기우뚱대며 몸을 얹어보지만 소용이 없다낙타는 습관처럼 지그재그로 이어진 돌길을타박타박 올라가는데휘청거리며 떨리는 다리가 슬프고덕지덕지 군살이 덮힌 무릎이 안쓰럽다이 세상 아픔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인지시내산에서 보았던낙타의 눈에 그렁 그렁 맺혀있던 눈물이명치끝을을 자극한다지금도 어디에선가 낙타가 울고있다 모든 생명체는 운다,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이중섭의 그림 “소”에서 눈물을 본다. 퍽 짠한 느낌으로 명화를 감상했다. 시인은 이집트의 시내산을 오르며 낙타의 눈물을 보았다. 누우런 낙타는 왠지, 바라보기 만 해도 슬퍼 보인다 인간이 정복하고 다스리고 있는 포유동물이다. 사막에서 사람과 짐을 나르는 교통수단이 되고있다. 막막한사막을 횡단 하면서 등에는 지방을 저장하는 육봉(肉峰)이 솟아있고 위에는 물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야 하는, 어쩌면 천형(天刑)의 짐을 지고가는 짐승이 아닐까, 그들의 자유로운 의지로 살아 갈수 없는 가여운 모습을 시인은 간과하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다.가늘게 떨리는 낙타의 다리/ 덕지덕지 군살이 덮힌 무릎/낙타의 눈에 그렁 그렁 맺혀있던 눈물이...사막이나 시내산을 오르는 모습은 숨 가쁘고 애처롭다.그러나 사막에서는 낙타 등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야릇한 공존 관계일까 낙타는 지혜를 모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며 인고(忍苦)의 생을 살아가고있다.참으로 희노애락을 느끼는 감정의 동물일까?. 스스로 자책도 해보지만, 아픔없이 살고 눈물 없이 살아가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시인은 위로하고 있다. 낙타는 어디에선가 울고 있지만, 다시 시내산 이나 사막을 꿋꿋이 횡단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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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낙타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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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그댄 몰라도
- 그댄 몰라도 임 경 원내이 가난한 가슴 속에한 사람만조용히살고 있었으면 좋겠다슬플 때 꺼내서위로를 얻고기쁠 때도 꺼내서같이 기뻐하고아무리 해도좋은 생각 떠오르지 않아내 영혼 침잠해 갈 때도마음 속의그대 생각하며이 우울한 마음 다스리고불 꺼진 방 안에 혼자 누워이리 뒤척 저리 뒤척잠 못 이뤄도이 마음외롭지 않도록힘들지 않도록내 이 작은 가슴 속에한 사람만조용히 같이 살아 주었으면좋겠다“거울아 거울 아 누가 제일 예쁘니?” 동화 속의 백설 공주가 되어 버린 시인의 아름다운 독백이 시의 전문(全文)에 드러나 있다.인간의 정신구조 안에 있는 shdow (그림자), 그것이 어둡거나 밝거나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거나 내적 자아 속에 숨어 있어서 외적 세계를 넘나들고 있지 않을까.그댄 몰라도 내 / 이 가슴 속에 / 한 사람만 / 조용히 미래 가상법이 아니라 이미 그 마음 속에 크고 아름다운 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이 시인의고백이 되고 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위로하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하고 있는 그 존재의 의미는 누구일까, 마음 속에 의지하고 있는 절대적 실체야 말로 가파르고 힘든 삶, 영혼 까지도 침잠해 버리는 어려움도 극복할 힘이 되고 있다.멀리 떠나 있는 사랑하는 연인(戀人)일까, 정신적 멘토 일까, 육신으로 오셔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 일까,다의적(多義的) 의미가 부여되는 시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상상력이 동원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분명 혼자 있는 어두운 방안에서 잠 못 이루고 있어도 조용히 속삭이며 함께 있어주는 내면 속에 그는 작은 가슴 속에 커다란 존재로 함께 동행해 주고 있음을 안다. 그대에게 아직도 은밀한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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