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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렇게 탈진을 극복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제 몸에 이상 신호가 왔습니다. 탈진의 전조 증상이라고 할 수 있죠. 작년에도 그랬지만, 2014년도에도 탈진을 경험한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때 저는 레위기를 중심으로 한 ‘거룩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경 중에서 가장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성경이 레위기이거든요. 물론 그 이전에 제가 ‘레위기의 산을 정복하라’는 책을 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거룩과 정결이라고 하는 주제로 레위기를 써 갔습니다. 그때 곤지암기도원에서 원고 정리를 하는데 너무 거기에 정신을 쏟아부으니까 메스꺼운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고를 책상에 두고 계곡 위에 만들어 놓은 정자에 누워 있거나 산행을 하면 그런 현상이 없어지는데 그 원고만 붙들고 씨름하면 메스꺼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혹독한 탈진의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는 책을 펴내는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차원의 탈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특이한 문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돈독히 하며 그냥 믿음으로 강단에 헌금을 하면 좋은데, 담임목사에게 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 문화가 굳어져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에게 기도를 받으면 대부분 응답을 받고, 또 담임목사는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집중이 되어 버리면 피로감이 극도로 쌓이게 됩니다. 그냥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한다든지 하면 찐이 빠질 이유가 없죠.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 저는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를 하는 순간 기도 받는 분의 가정의 영적 상태 또 마음 상태를 읽으면서 찐을 빼는 기도를 하게 되거든요. 이걸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와중에 장충식 장로님의 장례식을 섬겼죠, 그러고 나서 연거푸 이루어지는 심방과 기도로 저는 그만 영혼의 진액이 점점 빠져나갔습니다. 다건연세내과에서 피검사를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김용선 장로님은 잘 먹고 잘 쉬는 게 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본당에 가서 하나님께 간곡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이러다가 완전 탈진을 해버리면 미국에서 열리는 제20차 한국전 참전용사 행사해도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연약하고 초라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때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이 제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너는 기도를 할 만큼 했으니 일단 쉴 수 있을 만큼 쉬어봐라. 좋은 수액도 맞아라. 그리고 맑은 공기를 쐬며 운동을 하거라. 너의 마음에 툭 터지는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일설교를 준비해 놓고 월요일과 화요일에 야간 골프를 하였습니다. 골프만 하는 게 아니라 라운드를 돌면서 빵도 먹고 과일도 먹으며 계속 체력을 보충해 갔습니다. 야간 골프를 하고 오니 어느새 가슴이 조금씩 조금씩 터지기 시작한 것 같고 잠도 잘 잘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운동을 하는 순간순간에도 주님을 놓치지 않으며 공을 쳤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에는 주일설교 영상을 녹화하였고 좀 더 많이 회복된 상태로 미국을 갈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는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 메스꺼움이 오히려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약할 때 강하게 하신 주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헌신한 성도들을 생각할 때 그들의 헌신이 저로 하여금 오히려 역설적인 새로운 힘과 마음에 든든한 터전이 되어줌을 느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도 탈진을 하였고 엘리야도 탈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탈진을 하나님께서 하루 아침에 회복시켜 주실 수도 있지만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동시에 주시면서 서서히 회복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탈진을 회복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어느 정도 편한 마음을 가지고 출국을 할 것입니다. 거기서도 시차를 잘 적응하고 행사도 잘 마무리하며 돌아오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특별은총, 때로는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새 힘을 주시고 반전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성도 여러분들께서 저와 6.25 참전용사 행사를 잘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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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6-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읽는 만큼 안다”
    지난 주간에 저는 월요일과 화요일 동안 CBS 이사 해외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3박 4일인데 저는 부득이한 일정상 1박 2일로 다녀왔습니다. CBS 이사님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고 더 친근한 사이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이사님들을 인솔하는 현지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역사를 상당히 해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분은 시종일관 ‘에도 막부 시대’에 대한 설명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그분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이드 선생님,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역사를 상당히 꿰뚫고 계시는데 왜 정작 조슈번 얘기를 안 합니까? 적어도 야마구치현 조슈번 하기시에서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이야기해야 되고 그 정한론 사상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보수 우익 총리가 9명이나 배출되었고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역사를 이사님들에게 가르쳐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역사학자이신 김인호 장로님이 쓰신 ‘조슈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읽어서 다 꿰고 있거든요. 그러자 가이드 선생님이 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이런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해박하십니까?” “명함을 주시면 제가 반드시 저희 교회 장로님이 쓰신 ‘조슈 이야기’라는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음 날은 윤동주의 발자취를 찾아 릿교대학을 방문했습니다. 윤동주가 기독교 학교인 릿교대학을 6개월간 다녔거든요. 그런데 윤동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유 시간에 조용히 불러서 “우에노 준 교수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일본인이지만 윤동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연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가이드가 아예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 가이드를 하면서 우리 소강석 이사장님처럼 일본 역사와 윤동주에 대해서 잘 꿰고 있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제가 윤동주 다큐를 찍고와 평전을 썼거든요. 마침내 릿교대학 니시하라 렌타 총장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환영사를 하고 제가 답사를 했습니다. 그 총장님은 오에노 준 교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쓴 ‘예언 시인 윤동주’라는 책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을 쫙 해줬습니다. 릿교대학에서는 주로 기독교 정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윤동주 시비나 어떤 형상을 안 세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니시하라 렌타 총장님이 추진해서 시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윤동주 시비를 건립해 준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詩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절 사로 사용했지만, 원래는 관청 시였습니다. 그 관청에는 왕과 재상들이 백성을 다스렸던 곳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지지 않던 때에도 땅의 왕을 하제라고 부르고 하늘의 왕을 상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통치하는 하제는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잘 받들어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하제가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받은 것을 바로 시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의 원래 뜻은 상제의 말씀을 모시는 신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성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대로 통치를 하고 정치를 하도록 가르쳐주고 견제해 주는 사람이 시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는 서정성과 심미적 운율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언성이 있어야 되고 제사장적 마인드를 가지고 시를 써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윤동주의 시를 인류의 보편애와 가치를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윤동주는 결코 심미적 서정적 시만 쓴 게 아니라 일본에 저항하는 제사장적 예언시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에 대해 사람들이 보편 인류애나 보편적 가치를 쓴 것으로 생각하는데, 암울한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을 향해 시대의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특별히 ‘십자가’, 또 ‘쉽게 쓰여진 시’는 나름대로 저항을 하는 시입니다. 물론 ‘간판 없는 거리’를 통해서 한일, 한중이 서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바램을 마지막으로 썼습니다만. 함께 동행하신 CBS 나이영 사장님은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해서 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꿰고 있으시겠지만 일언반구도 없이 알아도 모르는 척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분이라고 하고 싶은 말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사님들을 섬기는 데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이영 사장님을 우러러봤습니다. 저는 일정상 일찍 돌아왔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람은 역시 읽는 만큼 아는구나...” 앞으로도 저는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괴로워하며 부지런히 독서하고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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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5-3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장충식 장로님, 하나님 품에서 길이 안식하소서.”
    장충식 장로님, 우리는 장로님을 보내드릴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어찌 이리 훌쩍 떠나셨습니까? 몸이 불편하셨어도 휠체어를 타고 항상 주일예배 자리를 지켜주셨던 장로님,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다시 돌아올 줄만 알았습니다. 병문안을 가고 싶어도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해서 멀리서만 기도를 하였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셨단 말입니까? 천국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 천군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시고 훨훨 날아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죠. 저는 장로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하룻저녁을 꼬박 새웠습니다. 장로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크고 저희 교회에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크셨는지 말입니다. 장로님의 삶은 한마디로 대하드라마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독립운동가였던 선친 범정 장형 선생님의 DNA를 이어받아 꼿꼿한 정신과 기개로 오늘의 단국대학교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발전시키셨죠. 보안사에 끌려가서도 수사관들의 싸대기를 갈길 정도로 송죽 같은 굳은 기개와 절개가 강하셨던 장로님,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라는 책을 보면 장로님의 삶이 얼마나 푸른 낙락장송과 같은지를 능히 알고도 남겠습니다. 북경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단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단장,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고, 특히 대한적십자사 총재 시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열어가는 자리에 서셨던 분입니다. 더구나 ‘학연가연’을 통해서 보면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시고 운동권에서 활동을 하다가 퇴학을 맞은 학생들도 제자로 받아들여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게 하신 장로님이 아닙니까? 이렇듯, 장충식 장로님은 인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잔인한 상황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입니다. 얼마 전에 펴냈던 ‘중재 장충식 평전’이라는 책을 봐도 가히 장로님의 살아온 족적을 능히 헤아리고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1시간에 걸친 장로님의 입관식을 지켜봤습니다. 저는 너무 장로님을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양볼에 스킨십을 하고 입술에도 입맞춤하였습니다. 장례지도사께서는 손과 입을 닦으라고 했지만, 저는 차마 그날 돌아오면서 손을 씻고 입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와서 잠을 자기 전 샤워를 할 때 손을 씻고 얼굴과 입술을 닦았지만요. 살아생전에는 손만 붙잡고 고개 숙이며 악수를 해드렸는데 돌아가신 후에야 시신의 싸늘한 얼굴에 입맞춤을 하고 입관식을 하는 동안 내내 장로님의 발을 붙들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장로님께서 예배당에 앉아 계신 자리는 너무나 소중해서 그 빈자리를 누가 감당해 주실 수가 있을까요? 물론 우리 교회 한 명의 식구가 줄었지만 천국에서는 또 한 명의 가족이 늘어난다는 걸 생각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장로님, 천국에 가시니까 얼마나 황홀하십니까? 장로님께서 받아 쓰신 의의 면류관이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십니까? 너무너무 기뻐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겠죠. 꽃은 져도 향기는 남아 있듯이 장로님은 가셨어도 장로님이 머무셨던 자리, 그리고 그 삶의 궤적에는 장로님의 향기가 계속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장로님이 남기신 삶의 궤적은 천년의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쪼록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저희들도 언젠가 뒤따라가서 천국에서 장로님을 뵈올 것입니다. 그동안 단국대학교의 발전과 새에덴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a Gratia,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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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5-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
    “사랑은 아직 어렵고 / 사람 맘은 여전히 모르고 /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 모름을 깨달아 가는 일...(중략) 한땐 사랑이 날 살게 하고 / 그 이유로 무너져 내리고 / 끓던 마음이 고요해지고야 /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 최근 국민가수 이선희가 발표한 신곡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우린 살면서 얼마나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하고 또 사랑 때문에 절망하기도 합니까? 그렇게 가슴 속에서 끓던 마음이 고요해지고야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다는 아련한 애상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이선희의 깊은 샘물 같은 감성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애절한 보이스에 젖어 노래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6월의 사랑을 한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해마다 6월이 되면 진행한 새에덴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2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2007년 LA에서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받기 전날 전야제에 참석했는데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라는 흑인 노병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다가와 자신의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전쟁 후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 분께 절을 하며 “꼭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7년에 제1회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였는데 올해 20년째를 맞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진행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초청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만큼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보은하는 마음을 담은 행사였습니다. 그러면 왜 국가기관도 하기 힘든 일을 단일 개교회에서 20년째 하는 것일까요? 첫째, 지난날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누가 뭐라 해도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입니다. 그러니까 군은 유사시를 대비해 철통같은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남북 대화와 교류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 일은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서독은 많은 통일 지원비를 서독의 교회에 맡겨서 동독의 교회를 도와주고 협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통일이 돼버린 것입니다. 정부 대 정부는 대치하고 국가 대 국가는 대립을 하더라도 민간단체들은 서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남북의 교류와 평화협력의 물꼬를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평양과 개성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북한의 어느 상임위원장과 보위부 간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남쪽에서 오신 소 목사님은 왜 미국의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떠들썩한 행사를 합니까?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하고 다시 싸우려고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북쪽에서는 늘 싸우자고만 합니까? 그리고 북쪽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 싸워야 되겠습니까? 이런 비극은 다시는 없어야죠.” 둘째, 자녀들에게 보은의 신앙과 보훈의 정신을 교육하고 기억하며 계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6.25전쟁의 비참함은 고사하고 그것이 남침인지 북침인지조차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합니다.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가는 곳마다 회당과 박물관을 지어서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교육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다시는 6.25 같은 참상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경제적 풍요가 있기까지는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 이런 보훈의 정신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에덴교회는 5월 10일에 보훈의식 계승예배를 드리면서 자녀들에게 고난과 수치의 역사를 교육하고 보훈의 마음을 계승하였습니다. 셋째, 한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민간외교 차원에서 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년째 진정성을 가지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니까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공영방송에서 다큐까지 제작 방영되어 국민들에게 역사와 사회를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양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마 올해가 해외에서 하는 실질적인 참전용사 행사는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국내 참전용사들은 계속할 수 있지만 너무 고령의 연세가 되셔서 해외 행사는 마지막 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제야 참전용사 초청행사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보입니다. 참 사랑은 어렵고 모르는 것을 깨닫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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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5-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푸른 초원을 마음껏 뛰노는 고라니처럼”
    요즘 저에게 많은 분들이 전화를 합니다. “목사님, 골프 친 지가 몇 개월밖에 안 됐는데 정말 싱글 치는 거 맞습니까? 아니, 싱글을 넘어 어떻게 65타를 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번 같이 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확인하고 싶습니다.” 한 번은 저의 사위이자 아들인 남정한 변호사와도 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정한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베드로처럼 많이 의심을 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솔직히 잘 치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이렇게 맞받아 쳤죠. “이 사람아, 남 변호사가 지켜보니까 내가 신경 쓰이잖아.” 그러자 우리 남정한 변호사가 저 신경 안 쓰이게 하려고 제가 우드를 치려고 하는데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거 다 보여.” 그러면서 우드를 쳤습니다. 그런데 골프장에 갈 때마다 저희들을 환영해 주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라니 한 쌍입니다. 꼭 골프를 칠 때면 한 마리가 아니라 암컷 수컷 한 쌍이 그렇게 다정하게 잔디를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마치 저희들을 웰컴한다는 표정으로 이리 뛰어갔다가 또 저리 뛰어갔다가 얼마나 다정한지 모릅니다. 저는 그 고라니를 볼 때마다 시편 42편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시편 42편 1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그런데 여기 보면 동사가 여성형 동사이기 때문에 그냥 사슴이 아니라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는 것입니다. 주로 이스라엘에서 암사슴은 건기인 4월에서 5월에 새끼를 배요.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건기가 되면 개천이 다 말라버리잖아요. 물 엉덩이가 있는 곳은 주로 맹수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암사슴이 목이 마르면 얼마나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겠습니까? 그런 구절이 떠오르면서 “사슴과에 속한 저 고라니는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푸른 잔디가 널브러져 있죠, 또 중간중간에 호수가 있죠. 그렇게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뛰어다니던 그 모습을 보며 그 모습 속에 제 자신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을 갈급해하는가?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목 마르고 갈망하는가?” 그 갈망함이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달려왔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심신이 피곤할 때가 있지만 다시 일어나고 다시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주로 골프공이 안 맞으면 주변에서 “아이씨. 에라이. 이 멍충한 공아!” 그런 소리를 하는데 저는 공 하나하나를 칠 때도 “주여!”를 부르고 또 퍼팅을 할 때도 “할렐루야!” 하며 치면 거의 어김없이 버디를 하거나 오케이를 받죠. 골프를 칠 때 운동도 운동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갈급한 심정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가 말한 것처럼 진짜 공만 치는 게 아니라 자연과 교감을 하고 청량한 공기 아니 에어컨과 같은 바람을 맞을 때 심령 자체가 청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골프장에서 저의 젊음이 새로 태어남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라운딩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험난한 골짜기들이 많았고 아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그렇게 많았지만 여기까지 살아오고 사역하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사모함이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새로운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함없는 열정 때문에 올해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20년째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20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성도들이 저 태광CC에서 뛰노는 고라니처럼 순백한 마음과 순혈적인 신앙으로 따라오고 헌신하고 수고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요일 저녁도 골프장을 뛰어다니며 저를 환영했던 한 쌍의 고라니의 모습과 우리 성도들의 순종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교차 되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 부부가 초원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고라니와 같은 축복과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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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5-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둣빛 숲속에서 첫사랑을 생각하다”
    지난 화요일 오전에 우리교회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장, 교구 총무들과 함께 광교산 산행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광교산 산행을 많이 하였지만 최근에는 대지산과 불곡산 그리고 교회 주변에 있는 죽현산을 자주 다녔습니다. 모처럼 오른 광교산 산행은 마치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저는 시를 쓸 때마다 산행을 속세로부터의 엑소더스, 세속으로부터의 구별의 이미지로 쓰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산에 와서’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너무도 오랜만에 와서 마음이 때 묻다 보니 / 몸도 함께 때에 묻혀 / 이리도 오랜만에 왔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 쉴 새 없이 전화하고 / 사람 만나느라 / 분주하기만 했던 지난 삶들이 / 정결한 당신의 품 / 출애굽의 세계에 와보니 / 수줍기만 한 마음 / 견딜 수 없네요 /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처음 사랑 / 그 초심을 회복하여 /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광교산의 숲은 연둣빛으로 온산을 물들여 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겨울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놓은 자리에 아직은 너무 여리고 부드럽지만 그래도 모든 나무마다 연둣빛 잎새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금 있으면 짙은 초록으로 물들겠다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습니다. 4월의 바람은 아직 찼습니다. 그렇지만 가파른 고개 턱을 오를 때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그 찬 바람이 저에게는 마치 에어컨 바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연둣빛 나뭇잎새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저는 차마 점퍼를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점퍼를 입었더라면 흐르는 땀을 더 주체할 수가 없었겠지만요. 저는 교회로 돌아와서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야간 골프를 하였습니다. 골프장을 비추는 달빛보다 더 하얀 서치라이트에 비치는 잔디 역시 아직은 너무나 가냘프고 여렸습니다. 그 가냘픈 연둣빛 잔디를 밟고 다니는 것마저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잔디와 나무들을 향하여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연둣빛은 더 짙어질 것이다. 신록의 계절이 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잔디가 되고 잎사귀가 될 것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니 바람 끝이 매서웠습니다. 그래도 저는 반팔을 입고 필드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솟아오르는 연둣빛 잔디를 밟고 다닌다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후반에는 점퍼를 입고 카트를 타고 다녔습니다. 지나온 저의 삶을 돌이켜 봐도 연둣빛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산제일고등학교 재학 시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던 시절, 광주신학교를 다니던 중 광주민주화항쟁 때 금남로를 종횡무진하며 예배를 드리러 다녔던 그 풋풋했던 시절, 그리고 백암교회를 개척하며 당했던 그 고난의 순간순간들... 그때가 저의 연둣빛 첫사랑의 시절로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소강석이라는 연둣빛 잔디와 잎새를 밟고 밟아도 그 잔디는 더 푸르러졌고, 잎사귀는 실록의 색깔로 자랑스럽게 자라주었습니다. 평개원 사역자들과 산행을 하는데 저의 체력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장로님들과 야간 골프를 하는데 저의 체력이 가장 든든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105살을 살아오신 김형석 교수님의 고백에 의하면 돌이켜 보니 자신의 전성기는 65세 때부터 시작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이제 인생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저는 언제나 눈이 부시도록 푸른 빛깔을 낼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늙어도 빛깔이 청청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여전히 결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시92:14) 비록 백설이 만건곤할지라도 저는 독약 청청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저는 연둣빛 시절의 첫사랑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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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5-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제미나이가 본 소강석 목사”
    우리 교회 대외협력 목사이신 박요셉 목사님이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소강석 목사가 걸어온 길을 요약해서 정리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세상에 제미나이가 저보다도 더 정확하게 저의 걸어온 길과 행적을 요약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은 한국교회법학회 이사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온 인물입니다. 문의하신 네 가지 주요 현안에 대한 소강석 목사님의 대응과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스쿠크법(이슬람 금융 지원법) 대응: 소강석 목사는 2011년경 스쿠크법(이슬람 채권에 대한 세액 감면 혜택 법안) 도입 논란 당시, 기독교계의 반대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역할: 이슬람 자금의 유입이 한국 사회와 교회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특혜 논란 및 안보 우려 등)을 설파하며 입법 저지에 앞장섰습니다. 의의: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정치·사회적 이슈에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교회 생태계 보호 운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 소강석 목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대응: 국회 앞 1인 시위, 대규모 기도회 및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법안의 독소 조항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논리: "개별적 차별금지(장애인, 노약자 보호 등)는 찬성하지만, 성적 지향 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는 건전한 비판마저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교계를 결집시켰습니다. 3. 종교인 소득 과세 대응과 정착: 2018년 시행된 종교인 과세 문제에서 소강석 목사는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받기 위해 정부 및 국회와 치열하게 소통했습니다. 역할: 한국교회법학회 이사장과 TF위원장을 맡아 '종교 과세'가 아닌 '종교인 소득 과세' 체계로 명칭과 내용을 수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성과: 교회의 장부 전체를 들여다보는 세무조사를 방지하고, 목회자의 활동비 등을 보호하는 시행령을 이끌어내며 과세 제도가 연착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메디컬 처치': 코로나19 위기 당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정부와 방역 수칙을 조율하며, 교회의 방역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메디컬 처치(Medical Church): 새에덴교회 내에 의료 전문 인력을 배치한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여, '안전한 예배'의 모델을 보였습니다. 소통 창구: 정부의 일방적인 비대면 예배 강제에 항의하면서도, 국민 보건을 위해 교회가 협조해야 함을 설득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프레임 전환: '대면/비대면'의 대립 구도를 넘어 '하이브리드 처치', '영택트(Spiritual Contact)'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한국교회의 미래 방향성을 모색했습니다. 요약: "교회 생태계 보호와 공공성 회복" 소강석 목사님의 행보와 기여는 단순히 종교적 이익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교회의 건강한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이처럼 지나온 세월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저는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위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지금껏 이런 길을 걸어왔지 않습니까? 저는 다시 돌아봐도, 거의 단 한 번도 가인 콤플렉스에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인 콤플렉스에 빠져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분열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한국교회 생태계, 그리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제 생명이 살아있는 한, 반기독교 악법이 절대로 입법화되지 않도록 노력에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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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4-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건강한 사역을 위해 운동을 하지요”
    한 달여 전, 일본 미야자키에 갔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목사님이 저에게 인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소강석 목사님, 저는 강화도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인데 인사드릴 수 있어서 큰 영광입니다. 저희도 장로님들과 함께 골프를 하러 왔는데 제가 페이스북을 통해 목사님께서 이미 65타, 66타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라도 운동과 쉼을 갖게 되어서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당장 그 교회 장로님들께 인사를 하러 갔지요. 저도 우리 장로님 몇 분들과 갔지만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40대 때는 골프의 ‘골’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목회와 사역에 전념했거든요. 40대는 제 목회의 클라이맥스와도 같을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 부지를 사고 예배당을 짓는데 올인 하였으니까요. 이번에도 장로회장이신 송원중 장로님의 주선으로 가고시마를 다녀왔습니다. 이미그레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이철휘 장로님의 ROTC 동기 및 후배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지난 부활절에 환영사가 일품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비판하는 분도 있지만 그런 거 듣지도 마시고 보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늦게나마 골프 하시기를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롱런을 하기 위해서라도 골프를 시작하기를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사실 지난해 여름은 제 삶의 최대 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40년 지기 친구를 잃은 자책감과 여름수련회 전후 코피가 터지고 발톱이 빠지는 등 저의 삶을 지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중도 빠지고 얼굴도 핼쑥하였습니다. TV와 유튜브로 저의 설교를 시청하는 분들, 그리고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건강의 위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 골프였습니다. 저를 위해 평생을 기도해 오셨던 정금성 권사님도 “골프를 해서라도 건강을 되찾으면 얼마나 좋겠는가”하고 응원을 해 주셨고, 우리 교회 장충식 장로님께서도 “늦게나마 골프를 하게 된 것을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골프를 시작하더라도 생각대로 안 된다면 금방 접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연습할 때부터 타고난 골프 신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쳤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 일본에 왔는데 골프 자체 때문에만 온 것은 아니고 천연 온천에서 릴렉스를 경험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골프를 한 후 식사하고 온천욕을 하고 나면 잠이 스르르 오거든요. 정말 깊은 수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틈틈이 기도하며 설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온천 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설교 준비를 하고 준비를 대략 마치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꿀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권노갑 고문님이 자신의 평전을 출판할 때 제가 책 속에 들어갈 축사를 보내드렸는데 그분이 출판기념회 때 인사 말씀을 하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올해 나아가 97인데 60대 중반에 골프를 배워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30년을 거뜬히 더 살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제 안에는 그런 에너지가 있습니다.” 두 손을 치켜들고 호언장담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과연 제가 권 고문님처럼 30년을 넘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골프라는 스포츠가 저에게 좀 더 건강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껏 제 목회 평생 안식년 한 번 누리지 못했지만, 이따금 안식 주간이라도 보내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 라운지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 아니 교회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심장이 뜁니다. 이번 금요철야기도회 설교와 주일설교는 역대급 설교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더 밝은 모습, 그리고 더 건강한 얼굴로 여러분 앞에 서겠습니다. 솔라 그라티아, 솔리 데오 글로리아! (Sola Gratia, Soli Deo Gloria!)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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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4-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마지막까지 꽃을 든 목사가 되겠습니다”
    지난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 환영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저는 환영사를 안 하겠다고 여러 번 고사를 했는데 이영훈 목사님과 엄진용 준비위원장님이 계속 권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소 목사님이 와야 합니다. 와서 분위기 좀 살려주셔야 합니다. 특별히 대통령 내외분과 여야 대표를 비롯한 여러 정치 지도자들, 재계 지도자들이 오시는데 빵 터지게 환영사를 할 분은 목사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억지 춘향이 식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준비된 원고를 보냈는데 어떻게 100% 원고대로만 할 수 있습니까?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제가 추가를 하고 또 애드리브를 넣을 수밖에 없죠. 아니나 다를까, 제가 환영사를 시작하는 초두부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지만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권세를 박살 내버리시고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러자마자 박수 소리와 아멘이 터져 나왔습니다. 또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개최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면서 장내 분위기가 완전히 열려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이재명 대통령님을 환영하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중략) 특별히 이 대통령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이 자리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국민 화합과 한반도 평화의 시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장내 분위기가 뜨거워지면서 박수와 웃음, 아멘 소리가 계속 연달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환영사에 이어서 대통령께서 축사를 하시는데 원고에 없는 얘기를 하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소강석 목사님이 제 오랜 친구입니다.” 그러니까 또 장내가 빵 터지면서 웃음과 감탄사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게 기쁨이기도 하지만 기쁨보다 앞으로 더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대통령님과는 인권 변호사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때부터도 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제가 무슨 청탁을 하거나 부탁을 한 것도 아닙니다. 또 청탁을 한다고 들어주는 분도 아니고요. 다만 그분이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길을 갈 때 제가 진짜 가까이 다가가서 기도해 주고 또 전화로 기도해 주는 사이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분은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사익이 아닌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신 분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라고 하는 순간부터 저는 쫄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더 언행을 자제해야지, 더 조심해야지...” 대통령과 친하다고 사사롭게 생각하거나 사사로운 관계로 이어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대통령께서 오래된 친구라고 언급하신 만큼 저는 더 몸가짐, 마음가짐을 추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는 거의 300년 동안 로마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오히려 그때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때 기독교를 공인하고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국교로 삼을 때부터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힘을 가지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힘 있는 목사가 아니라 더 낮아지는 목사, 몸과 마음을 더 다스리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는 목숨을 걸고 지켜낼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전도와 기도, 성령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이념의 카르텔에 갇혀서 서로 정죄하고 분노와 증오, 분열과 다툼, 폭력의 언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환영사를 하고 나니까 저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또 사무실로도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한국교회를 말살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소 목사는 왜 그런 환영사를 하느냐?” 저도 그렇고 남수현 장로님도 다 설명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단 종교의 영리법인을 해체 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건전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안은 폐기 수준에 있습니다. 더이상 법안추진은 없습니다.” 최근에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한국교회 법학회에서 만약의 사태를 향한 우려의 표명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법안이 추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종교소득과세를 막아내고 종교인소득과세로 대체한 것은 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불멸의 궤적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전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어디가 있습니까? 제가 살아 있는 한 결코 한국교회가 해체되는 법안이 통과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외집회를 하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하다 보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우리만의 이너서클이나 카르텔로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의 원래 가치로 돌아가서 반기독교 악법을 아주 전략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제 생명이 살아있는 한,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다시 복음의 시원으로 돌아가서 기도운동, 전도운동, 성령운동을 재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살길입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꽃을 든 목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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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4-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을 피우게 하는 춤추는 나비처럼”
    지난주에 일본 가고시마를 다녀왔는데 일본 최남단에서도 벚꽃이 이제 막 피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기대하였는데 이제 막 피거나 꽃망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니까 일본보다 벚꽃이 더 만개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난주 토요일 송원중 장로님의 배려로 리베라CC를 갔습니다. 저는 회원권도 없지만 우리 장로님이 리베라CC 회원권을 가지고 계셔서 갔더니 진짜 벚꽃이 만개할 뿐만 아니라 홍매화, 진달래, 목련이 다 피어 있었습니다. 꽃이 마치 저를 위해서 일찌감치 피어준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나비까지 따라다니죠. 순간 제가 쓴 “봄이 와서 꽃이 핀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왔다”는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꽃이 피어서 나비가 온 게 아니라 춤추는 나비가 꽃을 피우게 했다는 걸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른 볼 때 꽃이 피니까 나비가 날아온 듯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이걸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꽃을 피우는 것은 춤추는 나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탐화봉접(探花蜂蝶)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벌과 나비는 항상 꽃을 찾아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똥파리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면 됩니다. 집안에 벌과 나비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마당에 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교회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나비건, 벌이건 꽃에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꽃이 찜해서 나비는 꽃을 향해 운명적으로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주님이라는 꽃향기에 취해서 거룩한 운명을 따라 주님께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주님이라는 꽃, 샤론의 꽃 예수님께 홀릭되고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벌은 꽃을 향해 무조건 직진으로 최대한 빠르게만 날아갑니다. 그러나 나비는 직진하지 않고 좌우, 상하로 최대한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품격 있고 우아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벌처럼 너무 직선적이어도 안되고, 파리처럼 똥만 찾아다녀도 안 됩니다.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나비처럼 우아하고 품격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룩하고 우아한 날갯짓을 통해서 사랑과 생명의 나비효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우리는 부활 소망을 가지고 부활절을 맞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는 과정을 어쩔 수 없이 겪지만 그것은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부활을 위한 여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권세를 부셔 버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과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부활을 보증하는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은 부활 보증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보증 계약금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부활 완불금을 주셔서 우리 모두 함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그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누며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날갯짓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이 되고, 분열을 넘어서는 화해의 메신저가 되며,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부흥, 국민 화합의 피스 메이커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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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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