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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사는 우리”
- 제가 두어 주 동안 설교하고 축도만 했지 바깥에 나가서 일일이 성도들과 악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설교를 부목사님들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예배 때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저한테 와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종암중앙교회 장로이고 권사였습니다. 그런데 용인 쪽으로 이사를 와서 한동안 종암중앙교회를 다니다가 너무 멀어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새에덴교회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장로님 부부는 그걸 알고 나서부터 우리 교회로 오기로 작정을 하고 등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2주 동안 새가족 영접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에 본인들이 저에게 와서 부부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다 등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심기도 하시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네요. 종암중앙교회로 가는 게 맞지만 거리상 거리가 너무 머셔서 어쩐대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네요. 제가 얼마나 조경대 목사님을 잘 섬긴 줄 아세요? 교회 오실 때마다 축도로 모셨고 평일에 오셨을 때도 한 번도 빈손으로 보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바쁜 중에도 조경대 목사님의 천국환송예배를 제가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조경대 목사님께서 살아생전에 애써 심고 양육하고 훈련시켰던 이런 중직자를 저에게 보내주시네요. 정말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세심하시고 정확하신 분이셔요.” 제 방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니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라는 글을 읽은 게 기억이 났습니다.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는 물질과 에너지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동일하다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 법칙에 의하면 질량으로 규정되는 모든 보이는 물질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물질 자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창조주의 은혜, 창조주가 제정해 놓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지 않습니까?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갈6:7-8)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을 잊어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응답하셨다 하더라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어느 누구든지 1개월이나 2개월 만에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10개월 동안 마리아의 몸에 계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창조의 법칙입니다. 사과 씨를 심으면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사과 열매를 맺을 때까지 과수원 지기에게는 크로노스적인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의 결재가 나타난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제원호 교수님에 의하면 이미(already)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현실 가운데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걸 아직(not yet)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영적인 강도가 있습니다. 그게 사탄입니다. 사탄이가 자꾸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변형을 시키거나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반드시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갈6:9) 저는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를 통해서 심고 거두는 법칙, 물리학적으로는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정말로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 것은 저 역시도 이미와 아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아직이라고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함께 이 글을 읽으면서 한번 이렇게 외쳐보면 좋겠습니다. “내게 아직의 축복이 남아 있어. 내게 아직의 은혜가 남아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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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사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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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수련회
- 지난 목요일에는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며칠 동안 죽을 먹어도 설사를 해서 몸을 가눌 힘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일 밤예배까지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주일 1부 예배 설교를 2부 예배 때 영상으로 전했지만요.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주일에도 설사를 했지만 설교 때는 참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일 밤부터 본격적으로 그동안에 쌓였던 긴장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쏟아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자다가도 침대에 설사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영양수액을 맞고 피검사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검사 결과가 영양실조 혹은 영양 불균형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다 문제가 없는데 탈수로 인한 영양실조, 영양 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긴 며칠 동안 탈수를 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평생 처음입니다. 너무나 기진맥진해서 잠을 잤는지 눈을 감고 있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비서인 송종호 안수집사가 와서 저를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짜고짜 물어봤습니다. “지금 몇 시요?” 그랬더니 “1시가 넘었습니다.” “왜 이제 나를 깨워! 주일예배는 어떻게 하고? 주일예배 드려야 되잖아!” 송 집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은 주일이 아니라 목요일입니다.” “그러면 수련회 준비해야지! 왜 이제 깨워요?” 송종호 안수집사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련회는 지난주에 했잖아요.” “아, 그런가...” “2시에 손님도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송종호 집사의 말에 약속된 일정이 생각이 났습니다. 비틀거리며 차에 타는 순간 “아, 나는 잠을 자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온통 수련회 생각뿐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 무의식상에서 주일 2부 예배를 영상으로 설교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여름수련회에 대한 긴장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말할 순 없지만, 저에게 스트레스를 준 몇 가지 원인이 있었거든요.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려니 악한 영이 저를 흔들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요나처럼 욱할 수도 없고요. 욱할수록 저는 더 사명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자다가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여름수련회를 외쳤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욱하는 성질을 이겨내야 합니다. 욱할수록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 안에 요나 콤플렉스를 이겨야 합니다. 요나보다 더 큰 분을 만나며 요나서 5장의 사명 감당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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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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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성도님이 얼마나 내게”
- “♪ 성도님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 헤어져 있다가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 성도님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 헤어져 있다가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중략) 사랑해요 사랑해요 / 주님 은혜 사모한 사람 /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 왜 이리 눈물이 나요” 이는 2024 장년여름수련회 첫 시간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올해는 최초로 오크밸리와 교회에서 이원화로 수련회를 했습니다. 저로서는 코로나 때보다 더 긴장하고, 애간장에 녹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오크밸리 현장으로 오신 분들도 소중하지만, 개회 예배 때부터 본당과 동탄 지성전에 참석한 분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사실 유튜브로도 시청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첫날 저녁부터 성도들이 본당 1층을 꽉 채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그냥 울먹했습니다. 어떤 기자는 저에게 “왜 이렇게 목사님답지 않게 긴장하십니까, 여유를 갖고 하세요.”라고 말하며 갔지만, 여유를 가질 수가 없는 게 교회에서 차량을 운행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제가 그 시간에 맞추어 설교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본당에서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하는 성도들은 과연 얼마나 소통이 되고, 얼마나 은혜가 잘 전달이 될 것인지... 그러면서 동시에 또 현장에 있는 성도들의 눈동자와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긴장을 안 할래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섬기며 봉사하는 준비위원과 봉사 요원들, 또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헌금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목요일 저녁이 피크였을지도 모릅니다. 수요일 저녁은 수요저녁예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목요일도 교회당 본당을 거의 다 가득 채웠고, 오크밸리 현장에서는 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의자를 다시 더 좁게 깔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 설교 분량이 가장 많았습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많은 부분을 생략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원고를 줄이고 있는 중에 집사람이 저한테 전화로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은혜받고 있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맘 푹 놓고 설교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준비한 내용을 대폭 줄이고 생략하기 위해서 살을 베어내는 마음으로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작곡한 노래로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원고를 봤더니 그 노래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원고를 수없이 보고 또 봤는데 왜 그걸 발견하지를 못했는지...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생각해 봤습니다. “문학과 예술이 영원한 미완성인 것처럼 설교도 마찬가지구나. 그렇게 준비하고 그렇게 애를 태웠는데... 하긴 그런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 시간은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런데 다음날 새벽시간 뿐만 아니라 폐회예배 설교도 아쉬웠습니다. 설교 준비는 A+였는데 전달은 B+ 정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이 폭서에도 아무런 사고없이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은혜이고 또 은혜였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새에덴의 성도님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교회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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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성도님이 얼마나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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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긴장과 설렘 사이에서”
- 우리 교회는 신년이면 신년축복성회를 하고 또 여름에는 장년여름수련회를 해 왔습니다. 코로나 기간에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올해는 아주 특별한 여름수련회입니다. 오크벨리와 교회에서 이원화로 진행하거든요. 순장 모임인 ‘새순이 나르샤’에서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자고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교회에서 본당을 가득 채우며 여름수련회를 했거든요. 그런데 2022년도에 수련회를 끝내고 미리 계약을 했거든요. 그리고 그 계약을 연장하여 작년에는 교회에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해약을 하면 계약금 외에 1억을 위약금으로 물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억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올해는 이원화로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오크벨리에 참석하는 인원보다 교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더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쉬움 반, 기대 반이죠. 물론 교회에 참석한 인원이 오크벨리에 다 오신다고 하더라도 공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자리, 한 장소에서 함께 은혜받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요. 그래서 내년에는 교회에서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원화로 하다 보니까 긴장과 설렘 사이에서 아쉬움 반, 기대 반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다른 해에도 설교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죠. 그런데 올해는 정말 더 많은 진액을 쏟았거든요. ‘선재 업고 튀어’라는 드라마가 한창 중일 때 저는 ‘요나 업고 튀어’라는 주제를 정해놓고 말씀 속에 있는 보화와 진리를 얼마나 캐고 또 캐냈는지 모릅니다. 내년에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준비해서 어떻게 전달할지 걱정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원화로 하려고 하니까 긴장과 설렘 사이에서 아쉬움 반, 기대 반의 마음이 큽니다. 현장에 참석을 하시든 교회에서 영상으로 함께 하시든 말씀의 은혜가 참 시원한 생수처럼 쏟아질 것입니다. 현장에 오신 분들이 어찌 수련회에 참석을 안 하시겠습니까마는, 어쩔 수 없이 못 오신 분들도 교회에 꼭 참석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이 글을 쓰는 밤에도 산들바람이 불어와 창가에 산들산들 들어옵니다. 그 바람이 제 마음을 더 긴장과 설렘의 숲길 사이를 걷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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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긴장과 설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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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전인적 재충전의 기회”
-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원 없이 쓰임 받았습니다. 저는 10대 후반 소년 때부터 쓰임 받았거든요. 하나님 앞에 부름받아 교회를 나가고 예수님을 영접한 날부터 저는 교회에서 활동하고 자는 것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이런 표현을 하기는 뭐 하지만, 고3 때도 학교에 있는 것보다 교회에 있는 게 더 즐거웠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교회에서 활동하고 교회 가서 잤습니다. 그러다 신학교를 간다고 집에서 쫓겨난 후 20대 때는 진짜 풍운아의 삶을 살았습니다.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 모진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한 나무로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식년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 10여 년 전 탈진 증상이 왔습니다.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수액을 한두 번 맞아서는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김용선 장로님이 약을 지어주면서 “좀 쉬어주어야 합니다. 약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하시는 것입니다. 며칠 쉬니까 또 고비를 넘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새순이 나르샤, 전반기 교역자 워크숍, 킹덤맨, 피어라 봄까지 연이어서 주관을 하고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도 교계연합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공개 모임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요즘 다시 탈진을 느낍니다. 지난 화요일에 오산리기도원에서 열린 OCCK성회에서 중화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2천여 명 모이는데 어떻게 설교를 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올라가니까 또 그냥 팔팔 날았습니다. 그런데 집회를 마치고 내려오니까 다시 허기가 졌습니다. 고기를 먹어도 허기지고 탈진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김용선 장로님이 한약을 지어 오셨습니다. 또 목요일에는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수액도 맞았습니다. 수액을 맞으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옛날 오색그린야드에서 교역자 워크숍을 할 때 쉬시려고 오신 몇몇 목사님들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목사님, 쉬엄쉬엄하세요. 우리처럼 쉬어 가면서 하세요. 우리가 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쉬러 온 것입니다. 목사님도 언젠가는 지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산행을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낮에는 덥고 찌는 날씨였지만 산에 오르니까 역시 산 공기는 달랐습니다. “산 공기와 도심의 공기가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시멘트를 밟지 않고 흙을 밟으니까 이렇게 온몸이 가벼울 수가 없어. 산 공기를 마시니까 이렇게 가슴이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어. 왜 이렇게 좋은 산행을 몇 주 동안 못했단 말인가.” 내 마음 흙이 되어, 바람이 되어 이 상쾌함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수련회를 위해서라도 한 주 쉬려고 했는데, 또 외부일정이 있네요. 그러나 장년여름수련회에 가면 마음껏 은혜를 누리고, 산 공기를 마시며, 전인적 재충전의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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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전인적 재충전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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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음 세대의 리더가 될 누군가를 위하여”
- 얼마 전 월간목회 발행인이신 박종구 목사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고 김창인 목사님 추모집을 내는데 추천사를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요청을 받고 한참 망설였습니다. 제가 김창인 목사님 밑에서 부목사를 해본 적도 없고 또 가까이에서 모셔본 적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저 딱 한 번 뵌 것은 그분이 천국 가시기 전에 휠체어를 타고 계실 때 인사를 드린 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긴 망설임 끝에 이런 추천사를 조심스럽게 썼습니다. “저는 김창인 목사님을 가까이에서 한 번도 모셔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딱 한 번 천국 가시기 전에 휠체어를 타셨을 때 인사를 드린 적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목회 사상과 영성, 설교관이 제 안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옛날에 CBS 라디오 강단을 통해서 그분의 설교를 접했습니다. 맑고 청명하고 때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교를 하시다가 찬양을 부르시고, 청중을 향하여 조용하고 거룩한 울림으로 파문을 일으키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정말 청교도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영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성장에 눈을 뜨셔서 수십 년의 미래를 보시고 강남으로 교회를 이전하여 우리 교단의 가장 큰 교회 중 하나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오늘날 저도 설교를 하는 걸 보면 그분의 설교 혼과 정신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저도 설교를 하다가 찬양도 하고 또 간증을 합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한 번도 부목사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목사님이 저술하신 기독교 예식서를 아마 수십 번을 더 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의 결혼주례, 성찬예식은 다 목사님의 저술을 기본으로 해서 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좀 가까이 모시고 사역을 배웠더라면 얼마나 큰 영광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비록 방송과 활자를 통해서 만났지만, 그분의 스피릿과 영성이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멀리서 존경해왔던 목사님은 떠나셨지만, 그분의 목회 영성은 아직 제 안에 잠들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모시지도 못한 제가 추모집의 추천사를 쓴다는 것이 송구해서 진짜 무릎 꿇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행여 이 추천사가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한국교회의 큰 거목이요 거성이신 고 김창인 목사님의 추모집 발간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목사님이 남기고 가신 깊고 맑은 목회 사상과 영성이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슴에 향기롭게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저 또한 제가 알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에게 조용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고 한 권, 한 권 찍는 책 그리고 유튜브와 방송으로 전해지는 한 편의 설교를 더 성실하게 준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죽은 이후에도 지인들에 의해서 저의 추모집이 출간된다면, 제가 김창인 목사님을 생각하듯,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서라도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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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음 세대의 리더가 될 누군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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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전반기 교역자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이번 워크숍 주제는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 연쇄 반응)이었습니다. 체인 리액션은 원료가 되는 화합물에서 생성물이 얻어지는 과정이 몇 가지 소반응의 조합으로 성립하고, 하나의 반응(연쇄 개시반응)이 시작되면 그 생성물(라디칼, 이온 등)이 다음 반응을 일으켜서 연쇄적으로 진행되는 반응을 말합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의 눈덩이가 다른 눈덩이와 뭉쳐서 큰 눈덩이가 되고 그 큰 눈덩이들이 구르고 뭉쳐서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으로 말입니다. 즉 엔트로피(entropy, 높은 에너지, 높은 확률) 법칙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워크숍의 주제를 체인 리액션으로 정한 이유는, 지금의 새에덴교회에 머물고 싶지 않고, 오늘의 새에덴교회라는 성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교역자들에게 강의를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반기에 거룩한 눈사태를 일으키고 거룩한 생명과 부흥의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조별로 발표를 하게 하였습니다. 토의와 발표는 첫날밤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부교역자도 힘들었겠지만, 전체를 총괄하고 지휘하는 담임목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저녁에 워크숍이 끝나고 주전골 계곡을 걷기도 하고 온천 사우나를 하기도 했으며 스크린 야구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원도에 가서 계곡 길을 걷고 온천도 즐기고 스크린 골프나 야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저도 이런 낭만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제가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고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점심 먹고 한 15분 정도 걷고 오긴 했어요. 그런데 옆에 함께 걷던 선 목사님이 “저녁 워크숍이 끝나고 주전골 계곡 끝까지 걸어가 볼 수 없습니까?”라고 했지만, 저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늦게 잠들면 다음 날 워크숍을 인도할 능력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사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30분까지 앉아서 워크숍을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것도 체리(체인 리액션의 줄임말)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잠을 청했지만, 이따금씩 꿈을 꾸고 또 잠에서 깨어날 때는 계속 ‘체리’생각만 나는 것입니다.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생각만 났습니다. 그렇게 잠을 청했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 통성기도 시간까지 잘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끝나고 나서라도 주전골 계곡을 걷고 싶었지만 춘천에 들러야 하는 일정 때문에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색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 또 춘천에서 교회로 오는 길에 마지막 수련회 7강과 8강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교회에 돌아와서도 ‘체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교역자 워크숍을 다시 한번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주중에 하룻저녁이라도 다시 모여서 더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기보다는 놀기를 좋아했고, 사춘기 시절에는 문학소년 내지는 낭만 가객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워크숍 전후로 저는 이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레임이 가득가득 밀려오는 것입니다. 마치 가슴 속에 밀물이 밀려오는 것처럼 '체리'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어떨 때는 부담감으로, 어떨 때는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강원도에 가서 낭만적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그럴 환경이 못 될 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가 자제를 한 거죠.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자리는 낭만보다 부담감이 더 크고, 현재의 즐거움보다 미래의 설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체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제가 오색을 떠나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장년여름수련회를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오색을 한 번 찾아오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과 그 기나긴 주전골 계곡을 걸어보겠다고 말입니다. 그 다짐이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저는 반드시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주전골에 12폭포까지 걷고 오리라고 다짐해 봤습니다. 물론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렘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부디 후반기 사역에는 우리 새에덴교회에 '체리'의 바람, '체리'의 파도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체리'의 바람과 파도가 불어올수록 담임목사의 자리는 더 고독하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더 무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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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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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마움과 송구함에서 시작한 밤 기도회
- 우리는 해마다 6월이 오면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18년째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교회가 하다 보니 뿌듯한 마음도 생기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갖습니다. 이 일이 1, 2년도 아니고 18년을 해왔으니 목사와 성도들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교회만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일이요, 표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경제가 힘들다고 해서 제가 거의 헌신을 강요하거나 강조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올해대로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이 헌신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해외와 국내에서 참전용사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실추된 한국교회의 신뢰도와 이미지를 고양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행사였다고 평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행사가 끝나고 나면 어디 가서 푹 좀 쉬면서 여름수련회 말씀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너무 송구하고 미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특별 밤 기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밤 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특별한 헌금이 나오거나 제가 특별한 사례비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몸과 마음을 구별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수요일에는 낮 집회와 저녁기도회를 또 다른 말씀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모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억지로 동원한 것도 아닌데 본당 1층이 거의 차도록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차량 돌아가는 시간이 다 됐는데도 성도들이 집에 가려고 생각을 안 하고 계속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제가 전한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겠죠. 저는 정말 6.25 참전용사 행사에 헌신하고, 또 보훈음악회에 참석해 줬던 분들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빚진 자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밤 기도회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은혜와 격려와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게 저의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저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즐겁고, 또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기도회였습니다. 왜냐면 성도들이 무언의 요구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은혜를 원하고, 또한 새로운 갈망함의 눈빛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충 원고를 준비했다가도 원고를 버리고 다시 설교를 준비할 때도 있었습니다. 대충 준비했다가는 자칫 시간이 길어지고 성도들을 지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약을 하면서도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사를 더 갈망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강단에 올라갈 때까지 말씀을 준비하며, 또 내용을 축약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올라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요일까지 ‘성령 축제의 밤’을 하려다가 목요일에 마치고 금요일에는 ‘솔로몬 성경 인물 시리즈’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인격으로 존재하신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를 강조했지만, 가을밤 기도회 때는 성령의 권능과 능력 그리고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많이들 나와주셔서 감사하고 갈수록 많이 모이는 성도들로 인해 저는 은근한 부담감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에게 고마운 마음에서,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이런 밤 기도회를 자진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목사님도 몇 주 좀 쉬세요”라는 권고를 많이 들었지만, 한 주간 밤 기도회를 인도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고 가뿐하고 가벼운 것 같습니다. 다음 주는 또 전반기 교역자 수련회를 인도해야 하고 8월 초가 되면 전교인여름수련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부담감과 압박감은 더해가겠지만, 그 후로는 더 많은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이 있게 되겠죠. 모든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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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마움과 송구함에서 시작한 밤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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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은 아쉽지만 소망이 더 크죠”
- 지난주 목요일에 저희 교회를 섬기던 최해규 장로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요일 오후에는 위로예배를 드려 드렸고, 금요일 오후에는 입관예배를 드렸으며, 토요일 점심에는 하관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최진경 장로님이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위중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해달라고 오신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약간 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미국에 가 있을 때 최해규 장로님이 천국 가시면 누가 장례식을 인도해 줄 것인가... 물론 부목사님들이 있지만, 어찌 제가 마음으로 스승처럼 존경했던 최해규 장로님의 마지막 길을 그들에게 맡기겠습니까? 그분은 평생을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시면서 올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각종 민방위훈련이나 군부대를 다니면서 효와 충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언어생활도 자제를 하시며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도 세월이 흘러서 노환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장남인 최진경장로님이 저에게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목사님, 제발 우리 아버님이 90세까지만 살면 좋겠습니다. 85세의 연세도 단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욕심으로는 90세까지 붙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는너무나 잔혹한 고통이 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붙들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제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아버님께서 90세까지 산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지금 아무리 위중하다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도의 감동의 확신이 오는데 제가 미국 가는 일정 중에는 하나님이 불러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제 확신을 믿으십시오. 만약에 제 감동이 틀려서 미국 가기 전에 최 장로님이 돌아가신다면 제가 미국 일정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제가 자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도 혹시나 해서 최 장로님께 전화도 드리고 또 교구 전도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말 건강 상태가 호전이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사히 미국 일정을 마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진경 장로님이 그날따라 보고 싶어서 아버지를 면회했는데 면회하고 바로 그 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들임을 인지하고 눈인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으셨으니 임종을 하신 것이죠. 제가 그 사연을 듣고 원주에서 달려와 위로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예배 후에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장례예배가 천차만별인데 아쉬움이 있거나 껄껄껄 잘했으면 좋았을 걸 등 마음 아픈 장례식도 있는데요. 오늘 장례예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이별의 아픔은 있으나 감사가 있고 고인이 되신 최해규 장로님이 잘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나 세상에나 특히 자녀들에게나 성도들에게 모범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진경 장로님의 인사도 감동이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께도 교회에도 더 잘하겠다는 인사가 너무 은혜스러웠습니다. 이별의 아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며느리와 손자의 모습도 인상이 깊더라고요. 이건 불효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님이 너무나 인생을 잘 살아내신 것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느껴지는 눈물이었어요.” 저도 위로예배 때 이런 말씀을 전했죠. “저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누가 제 장례를 치러야 될지 모르지만 우리 소 목사님이야말로 정말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안식을 얻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하는 설교 그대로 누군가가 제 장례식에 그런 설교를 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장례식에서도 저를 아는 성도들이 이별에 대한 아쉬움뿐만 아니라 삶을 위대하게 살고 하나님의 사역을 잘 일구신 존경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합니다. 저도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 천국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1도 없어요. 어떻게 남은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있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해규 장로님의 천국환송예배를 하면서 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목사 되기를 너무나 잘했지. 내가 목사 안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방탕하게 살았으면 내 영혼이 지옥에 가지 않을까.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과 천국의 상급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며 살아야지.” 그렇습니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것은 천국 소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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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은 아쉽지만 소망이 더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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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
- 댈러스에서 열린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기기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주일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대신 홍윤기 목사님께 주일설교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저녁에 집사람이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이번 설교에는 목사님이 갓생시리즈를 계속하시되 6.25와 관련된 예화를 삽입하여 영상으로 녹화해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당장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내가 홍윤기 목사님께 모든 걸 맡겼는데 어떻게 그걸 번복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자꾸 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기도해 보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화를 끊고 기도를 하니까 아닌 게 아니라 성령의 깊은 감동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와 함께 저는 부랴부랴 설교 원고를 준비하였습니다. 제 목적은 메타버스처럼 제가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같이 느껴지게 하는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녹화를 할 때에도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당일 현장에서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모습을 잘 편집하면 좋은 설교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죠.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분들은 영락없이 제가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아니, 현장에 있는 분들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욕심을 내보았습니다. 그래서 1, 2, 3, 4, 5부 예배 앞과 뒤는 별도로 녹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장의 모습을 배합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감독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시간상 방송과 유튜브로 나갈 3부 예배를 중심으로 영상 편집을 감독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방송실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시간 유튜브로 주일 1부 예배 설교를 듣다가 편집이 잘못된 걸 발견했습니다. 1부와 3부 설교의 첫 부분이 꼬여버린 것이죠. 그래서 당장 방송실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까, 방송실에서도 2부, 3부, 4부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시 살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신경이 바짝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까지 자지 않고 2부, 3부까지 다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아니, 모든 예배를 다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약을 먹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홍 목사님께 “4부는 더 이상 참여를 못하니 알아서 예배를 잘 인도해 달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든 지 40분도 안 되어서 다시 깼습니다. 그래서 4부 예배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4부 예배 현장에서 말씀에 집중을 하고 잘 듣는 젊은 형제, 자매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하였는데 30~40분 지나서 또 깼습니다. 그래서 5부 예배 설교를 모니터링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방송과 유튜브에 나갈 편집본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이제는 진짜 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예배 때 설교를 할 이재훈 목사님과 문자를 나누고 다시 약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요? 이재훈 목사님이 설교할 때 쯤에 다시 깬 겁니다. 그래서 이재훈 목사님 설교를 다 들었습니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나니까 미국은 환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댈러스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서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날 저녁도 잠을 못 자고 행사를 하고 주일설교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제가 봐도 두 눈은 충혈 되고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주일설교를 마치고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생각해 보니 제가 봐도 저는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설교 녹화만 안하고 왔어도 이 정도까지는 신경을 안 썼을 텐데 점검을 하느라 너무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동행한 김종대, 이철휘, 서정열 장로님께서는 예비역 장군 입장에서 볼 때 “호국보훈의 달에 아직까지 이런 설교는 없었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긴 저도 생각해 보니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6.25의 사례를 들어서 적용하는 이런 깊은 설교는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밤을 지새우며 저녁예배까지 함께 드린 것도 근래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생각해 봐도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새에덴의 교회지기인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는 귀국하자마자 수요 오전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대명 비발디 콘도에 가서 3,500명이 모여든 전국장로회 부부수련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호텔 특실을 거부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이기 때문이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저도 남은 생애를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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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