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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전반기 교역자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이번 워크숍 주제는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 연쇄 반응)이었습니다. 체인 리액션은 원료가 되는 화합물에서 생성물이 얻어지는 과정이 몇 가지 소반응의 조합으로 성립하고, 하나의 반응(연쇄 개시반응)이 시작되면 그 생성물(라디칼, 이온 등)이 다음 반응을 일으켜서 연쇄적으로 진행되는 반응을 말합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의 눈덩이가 다른 눈덩이와 뭉쳐서 큰 눈덩이가 되고 그 큰 눈덩이들이 구르고 뭉쳐서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으로 말입니다. 즉 엔트로피(entropy, 높은 에너지, 높은 확률) 법칙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워크숍의 주제를 체인 리액션으로 정한 이유는, 지금의 새에덴교회에 머물고 싶지 않고, 오늘의 새에덴교회라는 성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교역자들에게 강의를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반기에 거룩한 눈사태를 일으키고 거룩한 생명과 부흥의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조별로 발표를 하게 하였습니다. 토의와 발표는 첫날밤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부교역자도 힘들었겠지만, 전체를 총괄하고 지휘하는 담임목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저녁에 워크숍이 끝나고 주전골 계곡을 걷기도 하고 온천 사우나를 하기도 했으며 스크린 야구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원도에 가서 계곡 길을 걷고 온천도 즐기고 스크린 골프나 야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저도 이런 낭만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제가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고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점심 먹고 한 15분 정도 걷고 오긴 했어요. 그런데 옆에 함께 걷던 선 목사님이 “저녁 워크숍이 끝나고 주전골 계곡 끝까지 걸어가 볼 수 없습니까?”라고 했지만, 저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늦게 잠들면 다음 날 워크숍을 인도할 능력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사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30분까지 앉아서 워크숍을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것도 체리(체인 리액션의 줄임말)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잠을 청했지만, 이따금씩 꿈을 꾸고 또 잠에서 깨어날 때는 계속 ‘체리’생각만 나는 것입니다.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생각만 났습니다. 그렇게 잠을 청했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 통성기도 시간까지 잘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끝나고 나서라도 주전골 계곡을 걷고 싶었지만 춘천에 들러야 하는 일정 때문에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색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 또 춘천에서 교회로 오는 길에 마지막 수련회 7강과 8강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교회에 돌아와서도 ‘체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교역자 워크숍을 다시 한번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주중에 하룻저녁이라도 다시 모여서 더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기보다는 놀기를 좋아했고, 사춘기 시절에는 문학소년 내지는 낭만 가객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워크숍 전후로 저는 이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레임이 가득가득 밀려오는 것입니다. 마치 가슴 속에 밀물이 밀려오는 것처럼 '체리'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어떨 때는 부담감으로, 어떨 때는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강원도에 가서 낭만적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그럴 환경이 못 될 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가 자제를 한 거죠.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자리는 낭만보다 부담감이 더 크고, 현재의 즐거움보다 미래의 설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체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제가 오색을 떠나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장년여름수련회를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오색을 한 번 찾아오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과 그 기나긴 주전골 계곡을 걸어보겠다고 말입니다. 그 다짐이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저는 반드시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주전골에 12폭포까지 걷고 오리라고 다짐해 봤습니다. 물론 '체리'가 주는 부담감과 설렘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부디 후반기 사역에는 우리 새에덴교회에 '체리'의 바람, '체리'의 파도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체리'의 바람과 파도가 불어올수록 담임목사의 자리는 더 고독하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더 무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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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체리, 꿈을 꿔도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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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마움과 송구함에서 시작한 밤 기도회
- 우리는 해마다 6월이 오면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18년째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교회가 하다 보니 뿌듯한 마음도 생기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갖습니다. 이 일이 1, 2년도 아니고 18년을 해왔으니 목사와 성도들의 마음에도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교회만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일이요, 표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경제가 힘들다고 해서 제가 거의 헌신을 강요하거나 강조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올해대로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이 헌신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해외와 국내에서 참전용사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실추된 한국교회의 신뢰도와 이미지를 고양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행사였다고 평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행사가 끝나고 나면 어디 가서 푹 좀 쉬면서 여름수련회 말씀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너무 송구하고 미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특별 밤 기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밤 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특별한 헌금이 나오거나 제가 특별한 사례비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몸과 마음을 구별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수요일에는 낮 집회와 저녁기도회를 또 다른 말씀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모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억지로 동원한 것도 아닌데 본당 1층이 거의 차도록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차량 돌아가는 시간이 다 됐는데도 성도들이 집에 가려고 생각을 안 하고 계속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제가 전한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겠죠. 저는 정말 6.25 참전용사 행사에 헌신하고, 또 보훈음악회에 참석해 줬던 분들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빚진 자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밤 기도회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은혜와 격려와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게 저의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저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즐겁고, 또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기도회였습니다. 왜냐면 성도들이 무언의 요구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은혜를 원하고, 또한 새로운 갈망함의 눈빛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충 원고를 준비했다가도 원고를 버리고 다시 설교를 준비할 때도 있었습니다. 대충 준비했다가는 자칫 시간이 길어지고 성도들을 지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약을 하면서도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사를 더 갈망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강단에 올라갈 때까지 말씀을 준비하며, 또 내용을 축약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올라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요일까지 ‘성령 축제의 밤’을 하려다가 목요일에 마치고 금요일에는 ‘솔로몬 성경 인물 시리즈’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인격으로 존재하신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를 강조했지만, 가을밤 기도회 때는 성령의 권능과 능력 그리고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많이들 나와주셔서 감사하고 갈수록 많이 모이는 성도들로 인해 저는 은근한 부담감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에게 고마운 마음에서,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이런 밤 기도회를 자진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목사님도 몇 주 좀 쉬세요”라는 권고를 많이 들었지만, 한 주간 밤 기도회를 인도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고 가뿐하고 가벼운 것 같습니다. 다음 주는 또 전반기 교역자 수련회를 인도해야 하고 8월 초가 되면 전교인여름수련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부담감과 압박감은 더해가겠지만, 그 후로는 더 많은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이 있게 되겠죠. 모든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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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마움과 송구함에서 시작한 밤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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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은 아쉽지만 소망이 더 크죠”
- 지난주 목요일에 저희 교회를 섬기던 최해규 장로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요일 오후에는 위로예배를 드려 드렸고, 금요일 오후에는 입관예배를 드렸으며, 토요일 점심에는 하관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최진경 장로님이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위중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해달라고 오신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약간 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미국에 가 있을 때 최해규 장로님이 천국 가시면 누가 장례식을 인도해 줄 것인가... 물론 부목사님들이 있지만, 어찌 제가 마음으로 스승처럼 존경했던 최해규 장로님의 마지막 길을 그들에게 맡기겠습니까? 그분은 평생을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시면서 올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각종 민방위훈련이나 군부대를 다니면서 효와 충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언어생활도 자제를 하시며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도 세월이 흘러서 노환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장남인 최진경장로님이 저에게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목사님, 제발 우리 아버님이 90세까지만 살면 좋겠습니다. 85세의 연세도 단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욕심으로는 90세까지 붙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는너무나 잔혹한 고통이 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붙들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제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아버님께서 90세까지 산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지금 아무리 위중하다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도의 감동의 확신이 오는데 제가 미국 가는 일정 중에는 하나님이 불러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제 확신을 믿으십시오. 만약에 제 감동이 틀려서 미국 가기 전에 최 장로님이 돌아가신다면 제가 미국 일정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제가 자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도 혹시나 해서 최 장로님께 전화도 드리고 또 교구 전도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말 건강 상태가 호전이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사히 미국 일정을 마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진경 장로님이 그날따라 보고 싶어서 아버지를 면회했는데 면회하고 바로 그 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들임을 인지하고 눈인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으셨으니 임종을 하신 것이죠. 제가 그 사연을 듣고 원주에서 달려와 위로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예배 후에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장례예배가 천차만별인데 아쉬움이 있거나 껄껄껄 잘했으면 좋았을 걸 등 마음 아픈 장례식도 있는데요. 오늘 장례예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이별의 아픔은 있으나 감사가 있고 고인이 되신 최해규 장로님이 잘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나 세상에나 특히 자녀들에게나 성도들에게 모범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진경 장로님의 인사도 감동이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께도 교회에도 더 잘하겠다는 인사가 너무 은혜스러웠습니다. 이별의 아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며느리와 손자의 모습도 인상이 깊더라고요. 이건 불효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님이 너무나 인생을 잘 살아내신 것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느껴지는 눈물이었어요.” 저도 위로예배 때 이런 말씀을 전했죠. “저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누가 제 장례를 치러야 될지 모르지만 우리 소 목사님이야말로 정말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안식을 얻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하는 설교 그대로 누군가가 제 장례식에 그런 설교를 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장례식에서도 저를 아는 성도들이 이별에 대한 아쉬움뿐만 아니라 삶을 위대하게 살고 하나님의 사역을 잘 일구신 존경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합니다. 저도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 천국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1도 없어요. 어떻게 남은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있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해규 장로님의 천국환송예배를 하면서 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목사 되기를 너무나 잘했지. 내가 목사 안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방탕하게 살았으면 내 영혼이 지옥에 가지 않을까.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과 천국의 상급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며 살아야지.” 그렇습니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것은 천국 소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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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은 아쉽지만 소망이 더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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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
- 댈러스에서 열린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기기 위해 참으로 오랜만에 주일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대신 홍윤기 목사님께 주일설교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저녁에 집사람이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이번 설교에는 목사님이 갓생시리즈를 계속하시되 6.25와 관련된 예화를 삽입하여 영상으로 녹화해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당장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내가 홍윤기 목사님께 모든 걸 맡겼는데 어떻게 그걸 번복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자꾸 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기도해 보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화를 끊고 기도를 하니까 아닌 게 아니라 성령의 깊은 감동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와 함께 저는 부랴부랴 설교 원고를 준비하였습니다. 제 목적은 메타버스처럼 제가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같이 느껴지게 하는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녹화를 할 때에도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당일 현장에서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모습을 잘 편집하면 좋은 설교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죠.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분들은 영락없이 제가 현장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아니, 현장에 있는 분들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욕심을 내보았습니다. 그래서 1, 2, 3, 4, 5부 예배 앞과 뒤는 별도로 녹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장의 모습을 배합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감독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시간상 방송과 유튜브로 나갈 3부 예배를 중심으로 영상 편집을 감독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방송실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시간 유튜브로 주일 1부 예배 설교를 듣다가 편집이 잘못된 걸 발견했습니다. 1부와 3부 설교의 첫 부분이 꼬여버린 것이죠. 그래서 당장 방송실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까, 방송실에서도 2부, 3부, 4부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시 살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신경이 바짝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까지 자지 않고 2부, 3부까지 다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아니, 모든 예배를 다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약을 먹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홍 목사님께 “4부는 더 이상 참여를 못하니 알아서 예배를 잘 인도해 달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든 지 40분도 안 되어서 다시 깼습니다. 그래서 4부 예배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4부 예배 현장에서 말씀에 집중을 하고 잘 듣는 젊은 형제, 자매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하였는데 30~40분 지나서 또 깼습니다. 그래서 5부 예배 설교를 모니터링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방송과 유튜브에 나갈 편집본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이제는 진짜 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예배 때 설교를 할 이재훈 목사님과 문자를 나누고 다시 약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요? 이재훈 목사님이 설교할 때 쯤에 다시 깬 겁니다. 그래서 이재훈 목사님 설교를 다 들었습니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나니까 미국은 환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댈러스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서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날 저녁도 잠을 못 자고 행사를 하고 주일설교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제가 봐도 두 눈은 충혈 되고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주일설교를 마치고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생각해 보니 제가 봐도 저는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설교 녹화만 안하고 왔어도 이 정도까지는 신경을 안 썼을 텐데 점검을 하느라 너무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동행한 김종대, 이철휘, 서정열 장로님께서는 예비역 장군 입장에서 볼 때 “호국보훈의 달에 아직까지 이런 설교는 없었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긴 저도 생각해 보니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6.25의 사례를 들어서 적용하는 이런 깊은 설교는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밤을 지새우며 저녁예배까지 함께 드린 것도 근래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생각해 봐도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새에덴의 교회지기인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는 귀국하자마자 수요 오전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대명 비발디 콘도에 가서 3,500명이 모여든 전국장로회 부부수련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호텔 특실을 거부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이기 때문이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저도 남은 생애를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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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쩔 수 없는 교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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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나님께 영광, 성도들에게 감사”
- 몇 주 전에 우리 교회 평개원(평신도사역개발원)간사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정말 거의 준전도사급입니다. 월급을 받지 않으면서 매일 출근하여 사역을 하고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모임이 끝나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아주 작고 초라한 모습의 내가 담임목사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사역에 함께 동역할 수 있다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버하지 말고 목사님이 은혜로 이루어놓으신 사역의 길에 누가 되지 않는 사명자가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담임목사님을 영적 롤모델로 더 존경하고 도전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하략)” “목사님의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는 선포가 평개원 각 사람에게 촉촉한 단비처럼 내렸습니다. 새에덴의 새부흥을 이끌며 대체 불가한 린치핀이 되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성령의 불처럼 우리에게 뜨겁게 임했습니다. 목 놓아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세계 장자교회의 역할을 하는 새에덴교회를 만나게 됐는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을 만나 이 귀한 사역에 쓰임 받게 됐는지... 하나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하략)” 저는 이런 문자를 받고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평개원 뿐이겠습니까? 거의 모든 교구가 다 이렇게 헌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요일까지 계속 헌신기도를 하고 또 심방을 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이런 심방만 하는 게 아니라 격달로 한 번씩 ‘사랑이를 위한 심방’을 합니다. 정말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찾아가서 구제비를 드리고 기도를 해 드리는 심방입니다. 메디컬처치의 이재훈 목사님께서 동행하셔서 함께 기도하고 의료봉사도 해 주십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는 일이 있는데, 6월 23일 주일저녁에 열리는 보훈음악회입니다. 지상작전사령부의 군악대가 직접 와서 연주를 할 뿐만 아니라 가수 남진, 김의영, 정미애, 테너 박주옥, 소프라노 서선영, 국악가수 오선지 등 최고의 출연진들이 나와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요와 가곡, 판소리 등을 열창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최고의 보훈음악회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 교회 행사가 정말 잔잔한 파도의 영향력을 확장시켜가고 있습니다. 18년째 이어온 참전용사 초청행사 소식을 모든 일간지들이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또 TV조선 뉴스퍼레이드까지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지 않습니까? 혹자에 의하면 지상파 방송 50분 다큐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교회연합신문의 차진태 기자는 ‘새에덴교회 향한 사회적 관심에 한국교회 신뢰도 동반 상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 18년을 이어온 새에덴교회의 진심이 만들어 낸 가장 최고의 가치가 있으니, 바로 '신뢰의 회복'이다. 빠르게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의 처참한 현실과 사람들의 외면 속에 새에덴교회는 교회 본연의 공익적 사명을 200% 수행함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를 다시 되돌아보게끔 했다. (중략) 오늘날 위기를 부르짖는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신뢰의 부재'로 귀결된다. 더이상 교회의 경건함을 믿지 않고, 목회자의 도덕에 기대치 않는 현실은 교회와 목회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오늘날 한국교회의 냉철한 단면이다. 더욱이 좌우, 빨강과 파랑에 극도로 함몰된 일부 교회의 모습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정치 집단으로 까지 비춰졌다. 그런 상황에 언론들을 사로잡은 새에덴교회의 소식은 국민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전도의 문을 여는 확실한 반전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새에덴교회를 향한 사회적 관심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기독교 이미지 상승효과와 광고효과를 동반한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휩쓴 가수 싸이의 연말 뉴욕스퀘어 공연이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듯, 새에덴교회의 보은행사는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재고로 이어지고 있다. (중략)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새에덴교회의 헌신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저는 이 기사를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한 명의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 매체가 정말 도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걸 수많은 국민이 봤을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자긍심 있는 마음으로 출국을 했고 미국에 가서 눈물겨운 보훈행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일저녁에는 정말 어느 교회,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 보훈음악회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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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나님께 영광, 성도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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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8년째 이어온 보은행사 이야기
- 지난 화요일은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TV조선 ‘뉴스 퍼레이드’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태생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저녁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 새벽기도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피곤하다가도 저녁만 되면 눈이 반짝반짝 뜨이고 머리 회전이 팍팍 돌아가는 걸 느끼죠. 그런데 그날은 일찍 일어나서 분명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차 안에서도 졸려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죠. 생방송이란 편집을 하지 않고 즉문즉답을 적절하게 잘 해야 하는 것인데 저는 현장에 강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스튜디오로 들어갔습니다. 물이라도 몇 모금 마시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막상 인터뷰에 응하려고 하니까 목이 많이 잠겨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후회를 하였습니다. “물도 좀 마시고, 목소리도 고르게 발성연습도 하고 들어갈 걸 잘못했구나...” 그런데 끝나고 나올 때 앵커께서 “저도 기독교인입니다. 목사님, 아주 적절하게 잘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수십 건의 문자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내용이 “목사님, 너무 잘 하셨어요. 다큐 50분짜리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요. 목이 잠겨서 몹시 불편했고, 워딩도 100% 만족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꾸밈없이 순수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도 목사다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런 문자가 왔습니다. 이튿날까지 200통이 넘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TV조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플 퍼레이드 시간에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 목회자를 불러서 인터뷰를 한 것이 방송사로서는 큰 결단을 해야 했으리라고 봅니다. 돌아오면서 전날 있었던 평개원 간사들의 모임에 대한 피드백 문자가 몇 개 떠올랐습니다. 이분들은 매일 교회에 출근을 하셔서 몸과 시간과 물질로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어찌 이분들 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김종대 장로님이었습니다. 이분은 18년째 참전용사 초청행사 준비위원장으로 수고해 오셨습니다. 수년 전에 장로님께서는 후두암으로 성대를 잃으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전문 닥터들이 생존하는 것도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굳센 믿음과 강한 신념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후두를 제거하면 음식 삼키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밥을 점심까지 씹어서 삼켰다고 합니다. 또 점심을 저녁까지 씹어서 삼키고, 저녁식사도 주무시기 전까지 씹고 또 씹어서 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살아야 합니다.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역을 돕고 6.25 참전용사 행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라면서 그는 성대를 잃은 후에도 이메일로 부지런히 미국과 소통을 해서 지금까지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겨오셨습니다. 올해는 텍사스주의 달라스에서 행사를 합니다. 왜 그곳으로 가게 되었냐면 그 지역에서 우리 교회 초청을 받은 참전용사들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도 후원을 하였는데요. 그래서 그곳에서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래서 그날 인터뷰를 하고 난 후에 장로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장로님은 후두를 잃어서 전화로 통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께 “장로님 덕분에 인터뷰를 잘하고 왔습니다. 장로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할 때마다 생명보다 귀중한 게 사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또 한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강종직 장로님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장로회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한 게 아니라 장로님들의 말을 다 경청했습니다. 대부분이 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좀 약간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때 강종직 장로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입이 있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도 안 돼요. 우리 목사님은 전적으로 우리와 다른 분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목사님께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처럼 강직한 발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장래가 아주 엄숙하고 숙연해 진 것입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는 18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이라면 보훈은 한 국가의 품격이죠. 우리 교회는 적어도 보은을 넘어 보훈의 정신을 함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니 18년 동안 이어온 보훈행사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교회죠.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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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8년째 이어온 보은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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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이 더 먼저죠”
- 저는 지난주에 필리핀 선교 50주년 희년성회 강사로 다녀왔습니다. 필리핀 선교 50년째를 맞아 열린 주빌리 성회였습니다. 몇 달 전부터 필리핀 선교사 회장되신 이영석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주강사로 섬겨달라는 것입니다. 말이 주강사지 거기에 걸맞은 후원금을 담당해야 하는 부담스런 자리입니다. 처음엔 주저주저했는데, 제 신학교 입학 동기인 임종웅 선교사님이 또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바빴던지 사실 그 집회를 위해서 설교 준비할 시간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기본 틀만 정해놓고 비행기나 차로 이동 중에 세세하게 원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비행기여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잔다고 했지만 시간에 맞게 깨어나야 되는데 새벽 2시 이전에 깨버리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시간에 설교 준비를 하고 또 특강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집회장소가 마닐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클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클락은 마닐라에서 2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님들에게 “저는 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좀 누워야 됩니다. 그러니까 옆자리로 누워갈 수 있는 차를 좀 준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중에 좀 쉬겠다 싶었는데, 차에 타고 가는 사람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닐라에 들려서 또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기내식을 했거든요. 그래서 “제발 밥 먹지 말고 저 좀 쉬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교사님들이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대접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니 선교사님들 입장보다 제 입장이 더 중요한 거지, 그게 겉치레이고 불필요한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이미 예약을 해서 돈을 물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돈 내가 물어줄 테니까 그냥 가자”고 얘기까지 했습니다. 참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주강사 입장이 중요하지 밥이 중요합니까? 그런데 또 일행 중에서 “기왕 준비했으니까 밥 먹고 가시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정에 약한 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먹으러 가야 했습니다. 순간 진짜 짜증이 났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밥 먹는 게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강제로 식당에 가서 1시간 반이나 허비하고, 다시 2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찔한 것입니다. 저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습니다. 물론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유익했습니다. 여러 가지 세상 돌아가는 얘기, 총회와 교계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가면서 눕지 못하고, 펴지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서 두 시간 반을 간다는 게 보통 피곤한 게 아니었습니다. 두 시간 반이 4시간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곧바로 가서 저녁식사하고 양치하고 바로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하기 전에 개회예배와 특강 시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이 시대에 한 동역자인 고광석 목사님이 개회설교를 하시고, 그 유명하신 손현보 목사님께서 전도 특강을 하시는데, 피곤하다고 저 혼자 누워 있다가 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또 두 시간 이상을 앉아있다가 그 다음에 이어서 제가 저녁 메인 집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정말로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 머리는 띵하고 눈은 쓰리고 어깨는 무겁고요.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짧게 끝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지방에서 온 선교사님들도 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을 거 아닙니까? 선교사님들도 다들 피곤한 기색이 보이고 저도 피곤했구요. 집회가 끝나고도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정말 설교를 잘할 수 있었는데 오늘 점심 때문에 버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누워서 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그랬습니까? 제가 어떻게 온 줄 아세요? 주일 날 예배를 여섯 번이나 인도하고 쪽잠 자고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이런 사람에게 맞춰서 해줘야지 주최측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되나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강사로 오시는 분을 잘 대접해야 되겠죠. 그러나 정말 저에게 필요한 것은 ‘쉼’이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기내식을 이미 해서 밥도 먹을 필요가 없는데 끝까지 자기들의 입장과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 내 입장보다 중요한 게 상대방 입장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목사의 입장보다 교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해 줘야 되겠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내 입장보다는 그분들의 입장을 존중해 줘야 되겠구나.” 참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날 그런대로 잘 자서, 다음날 특강과 저녁집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마는. 어쨌든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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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이 더 먼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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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보람이 가득한 한 주
- 지난주에는 우리 교단 목사장로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목사장로기도회를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총회 스케줄을 모르고 목회팀에서 교회 내부 일정을 잡아 뒀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일정이면 변경을 해서 목사장로기도회로 가야 되겠지만, 1교구에서부터 28교구 모든 생명순장을 미팅하는 일정이어서 제가 어떻게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오전 일정을 월요일 오전 일정으로 당겨서 개회예배라도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이종민 목사님이 개회예배는 2시에 있다고 해서 개회예배만 참석하고 계속 일정을 감당하기 위해서 2시 전에 갔습니다. 그런데 웬 걸요? 사람들이 몇 명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봤더니, 개회예배가 3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회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증경총회장님들과 몇 분들만 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총 9번에 걸쳐서 적게는 90여 명, 많게는 140~150여 명의 순장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찬양으로 함께 마음을 모은 후에 제가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받아놓은 질문지를 보며 즉문즉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즉흥적으로 답을 하는 지혜,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을 잘해 주는 진솔하고 솔직한 시간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아, 우리 목사님, 철인이고 강한 줄만 알았는데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우리 목사님도 외로움을 타고 우울함도 겪고 고독감을 겪는 분이구나. 그리고 한없이 나약한 분이구나. 오히려 그런 약한 자를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 약할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고 사시는 것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아직까지 한 번도 큰 실수나 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그리고 추첨권을 뽑아 일일이 사진을 찍고 이름을 부르며 악수를 하고 그들을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멀리서만 보던 담임목사님을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다정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모든 게 부족함이 없고 만족한 줄 알았는데 목사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연약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며 목사님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을 때 울컥하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을 했지만 중간쯤 되니까 정말 피곤했습니다. 특히 목요일쯤 와서 세 타임을 연속하려다 보니까 피곤이 엄습하는 것입니다. 1천 명이 넘는 분들과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며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새에덴의 순장들은 살아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살아있는 영을 소유하고 살리는 영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새순이 나르샤’ 그 이름 자체였습니다. 목요일에는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마지막 금요일까지 다 마쳤습니다. 저는 이렇게 목회를 내실 있게 하는 한 주간이었지만 총회를 생각하면 참 죄송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중간에 어느 기사를 보니까 2천여 명이 모여서 기도회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더 많이 모여야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자리가 훤히 비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와 우리 교회 부목사와 장로님들과 함께 늦게라도 자리를 채워야 했는데 실무진들이 정해 놓은 목회 일정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주로 미룰 수 있었지만 다음 주는 또 필리핀 출국을 해야 하고, 그 다음 주는 또 미국 참전용사 초청행사건으로 준비해야 될 일들이 많아서 딱 이번 주간밖에 없었다고 하니, 저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총회를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이 더 들었지만, 개교회적으로는 내실있는 목회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시간을 순장들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심지어 저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땐,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톱스타 연예인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아쉬움과 보람이 가득한 한 주였습니다. 이 모임을 끝까지 잘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평개원 간사와 목회팀장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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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보람이 가득한 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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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골목 친분이 어떤 대세도 이긴다”
-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을 미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 국민이요, 종교 지도자로서 관전평을 하면서 우리 앞에 몇 가지 알고리즘을 던져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흔히 선거는 인물, 조직, 바람이라고 합니다. 이 세 요소가 여론을 뒤집어 엎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만 믿고 뛰는 사람은 무조건 사람을 모이게 하고 동원하여 길거리에서 화려한 유세를 합니다. 물론 유세 차량을 멋지게 장식해서 아파트 인근이나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유세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뻔한 유세와 연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 이번 22대 총선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고 악수를 하며 관계 조성을 하고 자기 확신과 비전을 심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어떤 때는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이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줌마 앞에서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아이를 축복해 주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역 발전과 정치 발전을 위한 진심 어린 약속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열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그 열 사람은 100명에게 확대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당선된 사례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당선자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대세에 밀렸습니다. 그러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그에게 낙점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거 공보물에 직접 아파트 그림까지 그리면서 다녔으며, 선거공보물에 친필로 일일이 공약을 쓴 것입니다. 지역 모든 아파트를 직접 발로 뛰며 맞춤형 공약을 발표하고 선거일이 다가왔을 때는 무박 2일 유세를 이어간 것입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눈물의 연설은 또 한 번의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예측 불허의 역전을 이룬 것입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 정말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또한 이번 22대 국회의장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한 정치인이 당선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론도 다 그렇게 예측했습니다. 저는 그분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습니다. 그래도 정치적 역학 구도나 언론 보도를 볼 때 당연히 그분이 당선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장 선거에서도 뜻밖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우원식 의원께서 예상외로 국회의장에 당선이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이변이 벌어졌을까요? 내막을 들여다보니 상대 후보가 대세였다는 것은 정말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원식 의원께서는 그 대세를 며칠 만에 꺾어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쭉 국회의원을 함께해 오던 동료 의원들, 그리고 당선자들과의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무조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무리수를 두는 스타일보다는 사람들과의 따뜻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거든요. 그 따뜻한 이미지와 온화한 관계성이 며칠 만에 역전 승리로 이어지게 한 것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당선자 역시 자기만의 골목 친분으로 대세를 꺾게 된 것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대세보다 중요한 것이 골목 친분이나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 합리적이고 온화한 이미지, 원칙적 리더십이 극단적 대세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의 대안이고 대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내부의 골목 친분과 소그룹 활성화, 교인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와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대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합을 이루려고 해도 자기중심을 앞세운 연합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연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연합의 때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흐르는 강물에서 세월이라고 하는 대어를 낚으려고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낚시질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대세보다 중요한 것이 ‘골목 친분’이라는 것입니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더불어서 자기를 내려놓고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강태공처럼 카이로스라고 하는 강물에서 세월을 낚는 낚시질을 하고 있으니 곧 때가 이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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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골목 친분이 어떤 대세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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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금까지 이런 청년들은 없었다”
- 지난주 월요일에 한탁훈 목사님 결혼 주례를 마치고 주일설교, 수요예배 설교까지 다 준비한 후, 야간 산행을 하려고 나갔습니다. 선광현 목사님을 비롯한 몇 명의 동행인들과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보니까 청년부 형제자매들로 꽉 차 있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내려가라고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목사님, 함께 타고 가시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틈에 끼어 함께 내려왔는데 그들이 뒤에서 따라오더니 “목사님, 산에 가시는 건가요? 저희들은 전도하러 갑니다. 기도 좀 해주세요”하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 밤 9시가 다 돼가는데,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전도를 간단 말인가”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보정동 카페 거리에 가면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야행성 젊은이들을 전도하러 가는 구나” 생각하면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이런 청년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오랜만에 보는 야간 젊은 전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 전달할 텐데 저 가로등과 네온사인 아래 방황하며 번뇌하는 젊은이들에게 적시적소에 할 말을 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복음이 그 사람에 맞게 전달되게 하옵소서. 가슴의 뜨거운 열정뿐만 아니라 지혜를 주셔서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이번 주에 꼭 그 영혼들을 교회로 데려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건질 자를 건지게 하옵소서. 이 저녁에 한 번 밖에 없는 청춘을 바쳐 야간전도를 하러 가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축복하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나는 이제 하루 동안 마음에 묵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산행을 합니다. 여러분, 전도 많이 할 수 있도록 산에 가서도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종일 내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군중 속에 사시다가 때로는 한적한 산으로 가셔서 기도를 하셨지 않습니까? 저도 건강관리 겸 마음을 정화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하여 야간산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땀을 흘리며 산행을 하면서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청년들은 없었습니다. 이런 전도는 없었습니다. 요즘 플로팅 스프레이드(Floating Sprayed, 유령 신자)들이 많이 떠도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들을 잡을까 하고 전략을 짜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받으면 좋죠.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정말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살아있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정지된 교회, 정체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사도행전적 원형교회는 모이면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흩어지면 전도를 하였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카페거리로 전도하러 다니는 청년들이 너무나 멋있게 보였습니다. 마치 저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다시 한번 저의 젊음의 시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시절, 낮에는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저녁에는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전도를 하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산 정상에 올라가 다시 한번 기도했습니다. “주여, 오늘 저녁에도 그들이 반드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고 영혼을 추수하는 거룩한 전도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과연 지금까지 이런 청년들은 없었습니다. 이런 전도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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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금까지 이런 청년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