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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주의 말씀을 받아 누림’(마 16:13~28)
-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3-16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겉으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묻는 질문이지만, 예수님은 사실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싶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더 분명하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오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질문입니다. 신앙은 결국,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고백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지금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고백이며 표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고백의 신실성을 금방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이시며 구원의 왕이시라고 인정하는 진정한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백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실 때 시작됩니다. 곧이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고난받아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하면서 말립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신앙이 사람의 계산과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기대에 붙잡히게 되면, 예수님께서 인도하실 진정한 길을 가로막을 수 있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고백은 우리 삶의 목표나 목적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만 살지 않으며 귀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자신의 마음의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욕심과 세상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리고 완고한 마음과 고집이 주인처럼 되는 자리를 내려놓고, 더 이상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내 인생 자리의 주인이 되시도록 순종하는 일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천국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사랑의 관계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나 손해, 인내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우리도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만, 고백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고백대로 주의 말씀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바로 그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며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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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주의 말씀을 받아 누림’(마 16: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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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⑪ 구속사와 예수 그리스도 - 2
- (롬 8:18-19)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아담의 타락은 단지 한 개인의 불순종에 그치지 않고, 온 우주를 탄식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우주적인 3대 탄식과, 그 탄식을 영원한 찬송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주적인 3대 탄식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을 통해 인간의 타락이 초래한 비극을 세 가지 차원의 탄식으로 묘사합니다. 첫째는 만물의 탄식, 둘째는 성도의 탄식, 그리고 셋째는 성령님의 탄식입니다. (1) 피조물의 탄식(만물의 탄식/ 롬 8:22) 인간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았기에(창 3:17),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노릇 하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 만물도 죄의 결과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함께’ 신음하며 구원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성도의 탄식(롬 8:23) 우리 성도들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과 죄악 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속으로 탄식합니다. 로마서 8장 23절은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에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하나님의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다린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페크데코마이’(ἀπεκδέχομαι)로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대하다, 간절히 기대한다’라는 뜻입니다. (3) 성령의 탄식(롬 8:26)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위로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3대 탄식에도 불구하고 성도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에 대해서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창세기의 족보」(43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역사가 성취되는 날, 이 우주적인 3대 탄식도 다 그치고 전 우주가 회복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2. 구속의 방법: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이 깊은 탄식의 밤을 끝내고 회복의 아침을 여는 유일한 구속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대속(代贖)’이란 우리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고 속죄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구속의 방법을 세 가지 사건으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1) '복음'의 최초 선포: 여자의 후손 약속(창3:15) 아담이 범죄 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뱀(사단)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원복음(Proto-gospel)’ 또는 ‘원시 복음(Protoevangelium)’, 즉 최초의 복음이라 불립니다. 여기 ‘여자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뱀의 머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마귀이고 사단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단 마귀의 세력이 우리 가정을 흔들려 할지라도, 여자의 후손 되신 예수님만 붙잡을 때 주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2) '속죄'의 최초 선포: 가죽옷(창 3:21) 하나님께서는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죄를 덮기 위해 누군가의 대속적 죽음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최초의 ‘속죄’ 사건이며, 장차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또한 가죽옷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시고 손수 입히신 옷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범죄 후 전적으로 무능하게 되었으므로,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가죽옷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에게 입혀주실 ‘의(義)의 옷’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장 13-14절에 나오는 흰 옷 입은 자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3)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님 구약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져낸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라고 선포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으로,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는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답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창세기의 족보」(44페이지)에서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이 인간의 죄와 고통을 해결시켜 주십니다. 죄인은 십자가의 보혈로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야 하고 그리할 때 모든 죄의 수치를 온전히 가리울 수 있습니다(롬 3:25, 13:14, 갈 3:27, 엡 4:24, 골 3:10).”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탄식을 찬송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가리는 유일한 길이며 유일한 소망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계속되어 온 만물과 성도와 성령의 탄식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완전히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4, 골 3:10),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 모두(고후 5:17), 의의 옷을 입고 구속사의 완성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땅도 저주를 받고 온 우주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성도도 탄식하며 성령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주님 재림하심으로 우주의 3대 탄식이 다 그쳐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했지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셔서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옷으로 우리를 입혀주시매 감사드립니다. 이제 십자가 보혈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늘 믿음으로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사오니,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영으로 새로운 말씀의 역사에 동참케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 주심을 믿고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립니다. 아멘. 영상보기 https://youtu.be/fRaj024X8CU?si=sVeTz7bMk67D3a50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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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⑪ 구속사와 예수 그리스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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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는 왜 시를 쓰는가”
- 최근 우리 시대의 언어 오염과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하더라도, 깊고 맑은 샘물처럼 우리 시대에 깨끗하고 순수한 언어를 흘려보내야 할 교계 지도자들마저도 입에 담지 못할 폭력적 언어와 저급한 막말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언어의 오염과 폭력적 현상을 보면서, 신년에 했던 문화일보와의 인터뷰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자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왜 시를 쓰십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언어 오염과 폭력성을 정화하고 세탁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과 용서,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기 위하여 꽃씨와 같고, 샘물과 같은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시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시는 라틴어의 포에시스(Poesis), 즉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을 포에타(Poeta)라고 했습니다. ‘만드는 사람’, ‘창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나 시인은 어원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만의 명시, 위대한 시의 걸작품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여기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이 원어로 ‘포이에마(ποίημα)’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에서 ‘포엠(poem)’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우리는 명시일 뿐만 아니라 시를 쓰건 안 쓰건 다 시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명시는 항상 새로운 언어를 창조합니다. 결코 언어가 거칠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절망의 마음을 희망으로 바꾸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고대 중국 역사에서도 전설 속 상고시대 동이족의 유명한 수령, 태호로 불리기도 한 복희씨 시대 때부터 하늘의 계시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을 탐구했던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시를 언어 예술이기 전에 신전에 임한 신의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한자로 ‘시(詩)’라는 글자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寺’는 훗날 ‘절 사’로 주로 쓰이지만 원래 ‘관청 시’였습니다. 그 관청은 왕과 재상들이 백성을 다스렸던 곳입니다. 그때는 땅의 왕을 하제라고 부르고 하늘의 왕을 상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통치하는 하제는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잘 받들어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하제가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받은 것을 바로 ‘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의 원래 뜻은 상제의 말씀을 모시는 신전, 곧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왕들이 마음에 욕심의 때가 끼고 우둔해져서 권력욕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욕망으로 백성을 다스리거나 사교와 사술로 백성을 통치하며 권력을 농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신탁을 받아 왕에게 하늘의 뜻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시인(詩人)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대로 통치하고 정치하도록 가르쳐 주고 견제해 주는 사람이 시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모실 수 있는 신전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에 시인들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 역할을 하며 하늘과 땅의 가교역할을 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도 시인은 하늘의 언어를 전할 뿐 아니라 사람의 언어,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언어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욕을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함부로 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언어를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골프를 칠 때도 거의 “아이씨”라는 말을 거의 안 합니다. “에라이”도 안 합니다. “아이고, 주여”라고 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캐디가 웃는 것을 봅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에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아이고 주여, 죄송합니다”하고 언어를 고칩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언어의 꽃밭을 일구어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끔 부부간에 의견이 안 맞아서 다툼을 한 적은 있지만, 자녀들한테 욕지거리 한번 한 적 없고 성도 아니라 부교역자에게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습니다. 시인은 욕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 언어의 포에타, 언어의 꽃밭을 이루는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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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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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는 왜 시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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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승안 박사의 ‘한(恨) 많은 백성이여, 원칙(原則)으로 돌아가자’
- 2026년의 입춘이 지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춥다. 한(恨)으로 응어리진 국민들의 마음이 좀처럼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조선 백성의 반(半) 이상이 자손 대대로 노비로 살아야 했던 설움의 역사, 중국에 잡혀간 ‘환향년’, 일제강점기의 ‘위안부’와 ‘학도병’,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들의 가슴은 한(恨)으로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해방 이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련 공산당과 김일성의 등장, 좌우 분열과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두 정부의 수립과 처참했던 6·25 전쟁. 한반도 역사에 지우고픈 천추(千秋)의 한(恨)이 또다시 새겨진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숱한 도발과 테러,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직접 위협한 미사일 발사, 전 세계의 만류에도 끝내 손에 넣은 핵무기는 한반도의 평화가 아직 요원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우려 속에서 그들의 약속을 신뢰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번번이 쓰디쓴 배신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내부는 어떠한가. OECD 가입이라는 성과 이면에 가려진 현실은 결코 밝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비롯해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 낙태 문제 등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숨기고 싶었던 민낯이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 또한 순탄치 않았다. 하야와 망명, 영부인 살해와 대통령 측근 암살, 수사 중 자살, 탄핵 수감, 뇌물 혐의 수감, 계엄령 선포와 사형 구형에 이르기까지, 한(恨)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뉴스를 통해 접하는 정치 현실 역시 암울하기 그지없다. 지난 수년간 국민적 논란이 컸던 부정선거 의혹은 여전히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가칭) 교회재산몰수법, 낙태법 등 이른바 ‘3대 악법’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소수의 인권을 내세워 다수의 권리를 짓밟는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 진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절규는 또 하나의 한(恨)으로 쌓여가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중대 사건과 관련한 일부 검사의 기소와 구형, 영장 전담 판사의 영장실질심사 결정, 재판부의 최종 판결이 과연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위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부재와 반복되는 임명 강행 역시 우려를 낳는다. 제어 장치 없이 질주하는 기차와 같은 모습은 아닌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깊어진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억울한 한(恨)으로 절규하는 이들이 그 한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해답은 원칙(原則)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공의(公義)와 자비(慈悲), 정직과 상식의 원칙이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이라는 헌정 질서의 원칙이다. 미래 지도자를 바르게 양육하고 현재의 지도자를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선출하는 원칙이다. 스스로 사고하며 행동하여 선동하지도, 선동당하지도 않겠다는 결단의 원칙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무엇보다 대통령이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사회의 시민과 함께 이러한 원칙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시민과 함께 이러한 원칙을 지키되, 심각하게 불의한 지도자와 정책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책임 있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라와 백성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다음의 영적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첫째, 예수께 항상 돌아가야 한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찬송가)라는 고백처럼,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갈 2:20)의 심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직 예수만이 한(恨)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끊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께서 마귀가 준 저주와 사망의 한에서 인류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이루셨음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역사하신다. 이미 죗값을 치르셨기에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죄책감과 한의 올무로 붙들 수 없다. 셋째, 스스로 유혹에 넘어가 한의 올무에 걸릴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마 4:1-11)은 오늘 우리에게도 반복된다. ①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유혹 ②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라는 유혹 ③ 권력과 재력과 명예를 위해 타협하라는 유혹 이 모든 것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마귀는 결국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존재다(요 10:10). 넷째, 예수께서 말씀으로 대응하셨을 때 마귀는 물러갔다. 말씀만이 승리의 무기다. 다섯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다(마 4:19-25). 영적 전쟁의 승리자이신 예수께 나아갈 때, 환경이 어렵더라도 한이 우리의 심령을 지배할 수 없다. 만일 이 땅에 여전히 한이 가득하다면, 복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 또한 돌아보아야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마귀의 저주와 한에 눌린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품자.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생명을 살리자. 한국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와 사랑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지도자들이 예수께 돌아오도록, 우리부터 기도와 예배와 선행에 더욱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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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승안 박사의 ‘한(恨) 많은 백성이여, 원칙(原則)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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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⑩ 구속사와 예수 그리스도 - 1
-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타락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한없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구속사의 핵심인 ‘구속사의 내용’과 ‘구속의 범위’에 대해 깊이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구속사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범죄하여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죄를 덮고도 남을 만큼 더욱 풍성하게 넘칩니다. 1. 구속사의 내용은 타락한 인류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공의로운 심판 이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이 먼저임을 끊임없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신 것”(살전 5:9)이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곧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로 심판하시기보다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1) 우리는 조급하여 쉽게 포기하고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9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거룩한 씨(그루터기)를 보존하십니다.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의를 전파한 노아와 그의 여덟 식구를 남기셨고(벧후 2:5),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신령한 그루터기입니다. (2)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때로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다고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넘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5장 20절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더러운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솟구치는 은혜는 그 모든 죄를 다 사하고도 능히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니, 이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시기를 소망합니다. 2. 구속의 범위는 인간의 전인적 구속과 전 우주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단순히 한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타락이 인간의 전 인격(全人格)과 피조 세계 전체에 총체적인 파괴를 가져왔듯이, 하나님의 구원 역시 그에 상응하는 총체적이고 우주적인 회복을 목표로 하는 광대한 계획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하나님의 진노가 전 인류와 온 우주 만물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라고 선포합니다. 땅은 아담으로 인해 저주를 받았고(창 3:17),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롬 8:21)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이 온 우주와 만물의 탄식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도 전인(全人)구속과 우주의 회복을 다 포괄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전인적 구속(全人的 救贖)을 포함합니다. 이는 우리의 지정의(知情意)와 같은 내면적 인격뿐 아니라 영혼과 육체 모두를 구원하심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는 말씀처럼, 현재의 연약함 속에서 신음하며 육체의 완전한 회복을 소망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낮은 몸”(타페이노시스, ταπείνωσις), 즉 병들고 늙고 상처 입기 쉬운 이 비천한 몸이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빌 3:21) 되는 놀라운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고전 15:52)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전 우주의 회복을 완성합니다. 죄로 인해 함께 탄식하던 피조 세계 역시 구속의 은혜 안에서 온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에서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라는 말씀은 우주적 회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의 범위는 전인적인 구속이고 전 우주적 회복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속사는 우리의 지, 정, 의를 포함한 전 인격을 새롭게 하고, 더 나아가 온 우주를 회복시키는 거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죄가 더한 곳’, 즉 실패와 절망의 자리는 더 이상 수치와 낙심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곳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우주적인 은혜가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는 영광의 무대입니다. 이 은혜를 주시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고 만물이 새롭게 됨으로 타락한 온 우주가 다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소망하며,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늘 문을 여시고 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저희들의 지, 정, 의, 온 인격이 변화되고, 영, 혼, 육이 마지막 나팔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 재림하시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고 만물이 새롭게 됨으로 타락한 온 우주가 다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날마다 시간마다 내 자신이 회개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영상보기 https://youtu.be/KXyGGDIQ5EE?si=GpyDWKFI_aLJOBo8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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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⑩ 구속사와 예수 그리스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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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사법부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 코로나 당시에 교회에서 현장 예배를 드린 것에 대하여 대법원은 고등법원에서 내린 300만원 벌금을 물린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건은 부산의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코로나 당시, 부산시장의 ‘집합제한명령’을 위반한 것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를 1심과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것을 대법원(주심 오경미)에서 26일 확정판결한 것이다. 손현보 목사는 부산시장으로부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11차례의 ‘집합제한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현장 예배를 드린 죄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이는 사법부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의 자유의 범위에는 제한할 수 없는 내면의 자유(Forum internum)가 있다. 이는 신념과 양심과도 연결된다. 또한 외적 실현의 자유(Forum externum)가 있다. 여기에는 예배, 의전, 교육, 선교, 전도, 종교적 결사와 집회가 포함 된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된다는 것인가? 물론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또 국가가 제한하는 ‘전염병 예방법’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버스, 지하철, 식당, 공연장, 백화점 등은 무제한이나 조건부로 허락하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같은 예배를 막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닌가? 교회는 철저하게 정부가 정한 ‘예방수칙’을 지켰고, 모든 공공장소가 완전 폐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의 예배만을 제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종결된 지도 수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재판을 질질 끌어오다가 마치 본보기라도 되는 듯, 교회 지도자에게 벌금형을 확정한 것은 사법부가 종교의 자유와 교회의 근본적인 예배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매우 유감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여러 곳에서 ‘종교의 자유’를 언급한다. 그중에 제18조에 보면,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선교, 행사, 예배 및 의식에 의하여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법부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최대의 규제보다 최광위(最廣圍)의 법률 해석을 내려야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대법원마저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종교에 대한 인식과 이해 부족으로 보여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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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사법부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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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쪼개기’ 차별금지법의 꼼수 안 된다
-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두 개 올라와 있다. 진보당의 손솔 의원과 조국혁신당의 정춘생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안에는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 발의는 10여 차례가 넘는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13개 항목의 차별금지 조항과 손해배상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처벌이 가능한 차별금지법을 예고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노회찬 의원(당시 진보신당)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금지 조항이 22개였으며, 징벌적 손해배상과 2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의 형사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2011년에는 권영길 의원(당시 민주노동당, 후에 통합진보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2개 차별금지 조항과 2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형사처벌이 가능한 것이 발의되었다. 2012년에는 김재연 의원(당시 통합진보당)이 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이 22개, 역시 2년 이하의 징역형과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한 것이었다. 같은 해 김한길 의원(당시 민주당)이 대표발의 것에서도 22개 금지 조항, 2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명시되었었다. 같은 해인 2013년 최원식 의원(당시 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 13가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명시했었다. 그리고 국회 회기가 바뀌어, 2020년 장혜영 의원(당시 정의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차별금지 조항은 23개, 1년 이하 징역과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었다. 계속하여 2021년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1개 차별금지 조항과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더욱 강화된 내용이 올라왔다. 같은 해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도 박주민 의원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 발의되었다. 또 2021년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것에서, 21개 차별금지 조항과 징벌적 손해 배상이 가능하도록 법안이 올려졌었다. 그러나 이런 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모두 자동으로 폐기되었다. 그런데 제22대 국회 들어서면서, 2026년 손솔 의원(진보당)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고, 여기에서는 차별금지 조항이 25개나 되며, 집단 소송과 2년 이하 징역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도록 하여, 가장 강력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고, 역시 2026년 정춘생 의원(조국혁신당)이 대표발의한 것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모든 법안들의 차별금지 조항에 해당하는 것 가운데,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차별금지를 빌미로 동성애를 우대하자는 것이다. 국민 다수의 양심적이고, 건강한 표현의 자유를 묶어버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와 같이 끊임없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하여도, 국민들의 열화(熱火)와 같은 반대로 지금까지 제정되지 못하자, 의원들은 ‘쪼개기’ 수법을 통하여 각 분야에서 차별금지법을 가늠하는 법안들을 내놓고 있다. 무소속의 최혁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997호)에 보면 형법 제311조의 2항을 신설하여 ‘국가, 종교, 인종 또는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집단이나 단체에 대하여 모욕 또는 혐오감 표출 등의 방법으로 차별을 선동•조장하는 행위를 처벌하자’고 한다(공동발의: 양부남, 김준혁, 송재봉, 김우영-더불어민주당, 김재원, 정춘생-조국혁신당, 정혜정, 윤종오-진보당) 그리고 처벌 조항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거기에다 상습적으로 하면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것을 반동성애, 반중(反中國), 반이슬람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출신국가 이유로 혐오표현 규제 법률안’(의안번호: 15627호)에 보면, ‘출신 국가 및 국적, 지역, 민족, 인종, 피부색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 개념을 명확히 하고,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공동발의: 이병진, 김주영, 김정호, 이재강, 김태선, 박수현, 박지원, 임미애-더불어민주당, 최혁진, 강선우-무소속) 그러나 ‘혐오의 기준’이 모호하며, 이것을 국가인권위원회와 연계시킴으로, 향후에 차별금지법의 일부처럼 되어, 개정까지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또 한 가지는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의안번호: 15374호) 제12조의2에 보면, ‘방송 등에서 제작 유통되는 콘텐츠가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차별•편견•비하 및 폭력을 조장하지 아니하도록, 문화 다양성 콘텐츠 제작 가이드 라인을 마련한다’는 것이다(공동발의: 김남근, 김문수, 손명수, 이언주, 조계원, 추미애, 황명선-더불어민주당, 김재원-조국혁신당, 최혁진-무소속) 차별금지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주장하는 약자는 과연 누구인가? 당연히 동성애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동성애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한다면, 이런 것들도 차별과 편견과 비하와 폭력으로 몰아갈 것이 아닌가? 지금 수많은 법률들이 국회에 발의되어, 거대한 여권 정당들에 의하여 언제라도 손쉽게 통과될 수 있다. 이런 법률들이 국민들도 잘 모르는 가운데, 야금야금 통과되어 우리 사회에 적용된다면, 당장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들을 우회하여 여러 분야에서 ‘쪼개기 방법’을 통하여 제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리 국민들은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하여 철저하게 감시하여 소위 ‘악법’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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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쪼개기’ 차별금지법의 꼼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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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⑨ 구속사와 구속 경륜 - 3
-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태초에 인간의 시조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류의 역사는 그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거대한 한 방향을 향해 흘러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속사(救贖史)’, 즉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완성하신 전 인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흐르고 있는 위대한 구속사입니다. 이처럼 인류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크고 비밀스러운 계획, 바로 ‘경륜(經綸)’이라는 틀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구속 경륜(經綸, Administration)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구속 경륜의 의미 경륜(經綸)이라는 한자는 본래 옷감을 짤 때 세로줄인 ‘날실(經)’과 낚시를 할 때 쓰는 ‘낚싯줄(綸)’을 엮어 ‘일을 조직하여 경영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인데, ‘집(οἶκος, 오이코스)’과 ‘분배하다, 경영하다’라는 뜻을 가진 ‘네모(νέμω)’에서 유래된 '노미아'(νομία)'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경륜은 청지기가 집을 관리하고 다스리듯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경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경륜을 어떻게 펼치십니까? 경륜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 3장 9-10절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 곧 이 위대한 비밀의 경륜을 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2. 경륜과 구속사의 관계 구속사는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 땅에서 성취되고 펼쳐진 그 모든 역사로, 구속사의 핵심은 단연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성취’에 있습니다. 창조, 타락, 회복, 완성의 전체 구속사는 바로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경륜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작정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전 우주와 세상의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관리와 경영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경륜의 절대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이 경륜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시는 ‘작정(作定)’과 ‘예정(豫定)’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작정(Decree)은 ‘영원 전부터 창세전에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자신의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은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계획’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행위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영원 전부터 이미 계획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은혜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말씀과 같이 믿음조차 작정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디도서 1장 2절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는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예정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륜은 오직 그분의 작정과 예정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그분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성경은 ‘때가 찬 경륜’이라고 표현하는데(엡 1:9-10), 이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속에 정해 놓으신 뜻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때가 되었을 때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라고 증거합니다.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님은 「창세기의 족보」(41-42페이지)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때가 찬 경륜’과 ‘비밀의 경륜’이라는 구속사의 설계대로 친히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영원 전에 개입하신 자신의 뜻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실현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모두 성취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개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결론: 빈틈없는 경륜 속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악의 세력이나 인간의 교활한 권모술수, 잔꾀, 계략도 영원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그리고 그 구속 경륜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박국 2장 3절에서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는 절대 실패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위대한 경륜을 성취해 드리는 영광스러운 도구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모든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찬 경륜으로 때가 되어 이루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은 비밀의 경륜으로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고 성취가 됩니다. 저희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의 경륜에 탑승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지언정 하나님의 경륜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경륜의 장애물로 쓰임 받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저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옵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영상 보기 https://youtu.be/Y-qZgJLfim8?si=HtFvF8FWWefnk0MD 본 기고는 구속사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 박윤식 목사)를 토대로 구속사 말씀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묵상을 위해 구성한 큐티입니다. 이승현 목사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IVY College 부총장과 사)세계구속사말씀본부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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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목사의 구속사 만나] ⑨ 구속사와 구속 경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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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정부 종교 지원의 편중 실태와 공정성 논란
- 우리나라의 각 종교별 지원금이 2026년도에 1,043억 5,600만 원으로 밝혀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 예산을 분석해 보니 불교가 가장 많은 849억 8,100만 원을 차지했다. 다음은 천주교로 57억 7,200만 원, 기독교는 56억 2,400만 원이다. 유교는 33억 6,300만 원, 원불교는 11억 2,100만 원, 민족종교는 15억 8,400만 원, 천도교는 7억 3,400만 원이다. 종교 공통으로 사용되는 예산은 11억 7,700만 원이다. 이를 전체 비율로 환산하면, 불교는 81.43%, 천주교는 5.53%, 기독교는 5.39%, 유교는 3.22%, 원불교는 1.07%이다. 민족종교는 1.52%, 천도교는 0.70%, 종교 공통은 1.13%를 차지한다. 이러한 지원은 지난해보다 15.6% 상승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모두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종교단체가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국민의 세금에서 지원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 대한 재정 지원이 왜 이처럼 많은 것인가? 불교에는 전통사찰 보수·정비, 전통사찰 방재 시스템, 전통사찰 방재 시스템 유지·보수, 종교문화유산 발굴 및 전승, 전통사찰 보수·정비 및 방재 시스템 구축 추가 지원등이 있다. 또한 법난기념관 건립, 불교문화원, 사찰 전통문화 체험관, 명상센터, 사찰음식 체험관, 선문화 체험관, 명상문화 체험관, 법난 기념행사등에 대해서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불교 관련 지원 예산 약 849억 8,100만 원과는 별도로, 사찰 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에 270억 원이 지원된다. 여기에는 운영 사찰 육성 및 지원, 홍보 및 마케팅, 사찰음식 대중화, 정책 연구, 기념행사, 시설 구축 및 개·보수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더해 전국 65개 사찰에 지원되는 문화재 관람료 역시 국가유산청에서 별도 항목으로 편성되어, 참배객 수에 따라 지난해 기준 566억 8,900만 원이 지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찰의 재해 복구 비용까지 국비로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계는 올해 한 해에만 약 1,700억 원에 가까운 재정을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교계에 문화재가 많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타 종교에 비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에 의한 ‘종교 편향’ 여부이다. ‘종교 편향’의 핵심은 정부가 특정 종교에 대해 행정적 지원과 막대한 재정 지원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해마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 지원이 정당한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종교 지원 확대에 국회가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들은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국회는 표 계산에만 몰두해 특정 종교의 예산을 무분별하게 늘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지원까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국가의 재정 지원을 통해 특정 종교의 포교와 종교 활동이 사실상 지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템플스테이는 그 내용과 형식만 보더라도 불교 홍보 성격이 분명한 프로그램임에도, 이를 ‘전통문화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다. 어찌하여 불교만을 전통 종교로 우대하는가? 이 땅에는 유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는 200년이 넘었고, 기독교 역시 14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불교만이 전통문화로 규정되는 현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교(國敎)가 없기 때문에 종교 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막대한 재정 지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에도 차별과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부가 해마다 막대한 금액을 특정 종교에 집중 지원하는 구조, 그리고 그 종교의 포교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후에 철저한 감사(監査) 제도 역시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종교가 지나치게 국가 재정에 의존하게 될 경우, 종교 본연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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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정부 종교 지원의 편중 실태와 공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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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시 16:8-11)
- 사람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레 20:8) 다윗은 항상 주님을 앞에 모시고 신뢰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도록다윗은 ‘내 입술을 지키소서, 마음을 지켜주소서, 귀를 지키소서’(시 141:3-5)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갑니까? 본문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항상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게 하며, 육체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스올의 문턱에서라도 생명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 수 있는지 다윗에게 배우려고 합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 삶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한 것을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윗은 주님께 “내가 출전하여 이 블레셋 사람을 쳐도 되겠습니까”(2절) 하고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 주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유다에서도 가슴 졸이며 살고 있는데,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군대와 마주치면 더 위험하다며 반대하였습니다. 다윗은 다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으니 어서 그일라로 가라고 똑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무찔렀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앞서 가시면서 싸워주셨기 때문이며, 다윗이 주님께 계속 여쭈어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주님께 모든 일을 여쭈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가시면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우리를 끝까지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신 1:30-31)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께 계속 여쭙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다윗은 찬양하는 삶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서 먼저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직접 만든 모든 악기를 총동원하여 찬양하면서 옮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 온 이스라엘 백성과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하나님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 춤을 추며 찬양하였습니다.(삼하 6장)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오직 이스라엘의 왕은 위대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시 145:1-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놀라운 행적을 항상 전파하겠다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 4:11) 셋째, 다윗은 회개하는 삶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지적했을 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 평생토록 죄를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의 눈물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를 책임졌습니다. 다윗은 죄를 용서받은 기쁨과 함께 죄로 인한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관심 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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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시 16: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