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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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생명나무로 하나 되는 교회
    지난 수요일 저녁에 교구를 담당하시는 김범준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김범준 목사님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텍사스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에서 성경적 상담 박사과정 코스웍을 마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우리 교회 출신인 박형욱 목사님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잘 알고 또 제가 쓴 ‘생명나무’라는 책을 읽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위한 생명나무 신학과 성경적 상담 운동"이라는 소논문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로 하나 되는 교회’라는 설교를 하는데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설교는 전교인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를 하도록 주문을 하거나 설명을 한 적도 없는데 본인이 알아서 생명나무 신학과 신앙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구약학자인 벤게메렌의 글까지 인용하여 설명을 하였습니다. 사실 어떤 분이 제 생명나무에 대한 설교를 듣고 의아한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중에 벤게메렌의 글과 설명을 듣고 “아, 이렇게 통시적으로 성경을 풀어낼 수 있고 통전적 신학을 세울 수가 있구나”하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벤게메렌이 직접 한국에 와서 생명나무 심포지엄을 할 때 “생명나무: 생명의 충만함에 대한 성경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소강석 목사님의 생명나무 신학이 개혁주의 신학과 성도의 교회론적 삶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생명나무에 대한 그의 연구와 특별히 목회 사역에서의 적용은 우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됩니다. 생명나무 주제에 대한 신본주의적 접근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아주 적절합니다. 소강석 목사님은 우리 앞에 있는 생명과 사망의 길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이 선택의 결단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선택은 우리의 삶,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의 국가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범준 목사님이 아주 노련미가 넘치고 성숙함이 배어나는 설교를 한 것은 아닙니다. 좀 앳되고 순수하고 청순하게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가 설교 후에 언급한 대로 본 바탕이 선하고 품성이 아주 착하신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설교도 그렇게 순수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명나무 신학을 구원사적으로, 기독론적으로 일괄 정리를 하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통하여 생명나무를 통해 서로 감사하며 복음의 사역에 동참하고, 성령 충만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의 종과 한마음, 한 뜻이 되어야 생명나무로 하나 될 수 있다고 강조를 하였습니다. 제가 정말 은혜 받았습니다. 제가 임직대상자들에게는 무조건 생명나무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려고 합니다. 신정주의 책에 대해서도 읽고 독후감을 내도록 할 작정인데요. 물론 제가 생명나무와 신정주의에 대해서 직강을 할 것입니다. 아무튼 김범준 목사님의 설교는 발꿈치 화상과 싸우고 있는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고무를 시켜 주었습니다. 실은 김 목사님이 베테랑이 아니라 우리 교회 사역을 한 지 한 달밖에 안 됐습니다. 세상말로 초짜 되는 분이 어떻게 꼭 제가 설교하는 것처럼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간파하고 제가 세운 생명나무 신앙과 신학을 통시적이고 통전적으로 정리해서 현장에 맞게 적용을 잘할 수 있나, 설교 들으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이런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저와 함께하는 모든 동역자들이 다 하나하나가 귀하고 또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지만 우리 김범준 목사님의 수요일 저녁설교는 참 빼어나고도 독특한 온리 원의 설교였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1-26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도척지견(盜拓之犬)과 중구난방(衆口難防), 어떻게 할까?’
    옛말에 ‘도척의 개’라는 뜻을 지닌 ‘도척지견’이란 말이 있다. 이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밥 주는 주인에게 무작정 굴종하며 맹종하는 개와 같은 얼뜨기를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 ‘도척(盜拓)’이란 악명높은 큰 도둑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도척에게는 졸개가 무려 2천여 명이나 될 정도로 대단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걸맞은 도척의 행패는 자심하였다. ‘도척’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유린하고 약탈하는 악마와도 같아서 그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이런 악한인 도척의 집에서 기르는 개는 도척이 어떤 놈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먹다 남은 밥 찌꺼기나 던져주는 주인 도척에게 꼬리를 흔들어 댔을 뿐아니라, 도척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냐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짖어대고 물어뜯기 일쑤였다. 그 개는 도척이 짖어라 하면 짖고, 물어라 하면 물었다. 그 알량한 밥 찌꺼기 한 덩이를 더 얻어먹고자 도척의 눈치를 보면서 꼬리를 흔들면 오로지 충성하는 개, 이 개를 지칭하여 만들어진 말이 ‘도척지견’이다. 이후 이 말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르는 채 ‘도척’의 개(犬)처럼 앞도 뒤도 가리지 못하고 그저 먹다 남은 밥찌꺼기 한 덩이 던져주는 주군에게 굴종하며 비열하고도 악랄한 개 노릇을 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를 빗대어 ‘도척지견’이라 하였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국에 이 말이 뼈를 아리는 말처럼 들려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야말로 정치는 사라지고, 어른의 조언과 권면이 천대받고, 권위와 질서가 조롱받는 희한한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는 자는 도척의 개와 같은 소인배들 뿐이다. 낮에는 험하게 싸우다가도 저녁에는 서로 만나 길을 모색하던 그 알량한 여의도 정치 풍토도 사라져 버렸다. 특히 막강한 영향력으로 당을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 말에 자신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는 도척지견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어떻게 민주사회에서 민주정치가 이런 오류와 탈법과 편법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독단의 정치가 진행되는데, 단 한사람도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지금 당 대표의 지지도 하락을 기다리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인가? 단언컨대 도척의 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고 여당은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맹종할 도척이 없기에 그의 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당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지, 뭘 하겠다는 지 모르겠다. 비대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원내대표는 뭘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고, 흐름도 주장도 소신도 안보이는 초라한 초선들의 모습, 모두 설 명절을 핑계삼아 지역구 관리에 여념이 없는 못한 소인배들, 아직 총선이 가마득한데 표밭 관리에만 정신이 없어 살아남기에 몰두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는 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중구난방이다. 야단법석인 듯한데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이런 모습으로 도대체 이 탄핵정국을 어떻게 책임지고 수습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1951년 1월에 2차 대전에서 나치에 대항하여 프랑스를 구한 삼성 장군 랄프 몽클라는 자청하여 중령 계급장을 달고 프랑스군 대대 제1진을 인솔하여 6.25에 참전하였다. 계급보다 자유 우방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은 중장을 떼고 중령 계급으로, 미군 대령 프리먼 연대장의 지휘를 받으며 진지를 지켜낸 불세출의 장군이다. 그의 군인정신은 도척지견도 아니며 중구난방도 아닌, 오직 자유의 정의를 위한 군인으로서 계급에 연연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6.25 같은 정치 난장판에 우리 정치인들에게는 왜 랄프 몽클라와 같은 제대로된 정치 인물이 없을까? 그렇게 추한 행동으로 욕을 먹고도 주인의 부스러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못난 도척지견들을 바라보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근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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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5-01-25
  • [언론회 논평]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소추 기각이 갖는 의미
    방송통신위원회는 국가기관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지상파방송 및 종편·보도PP에 대한 방송정책, 방송통신사업자의 금지행위 위반 시 조사·제재,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정책 수립·시행, 불법유해정보 유통방지, 방송광고, 방송프로그램 편성 및 평가정책 수립·시행, 미디어 다양성 정책 등에 관한 사항 등을 다루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된 지, 이틀 만에 거대 야당에서는 탄핵 소추 가결로 모든 활동을 중지시켰다. 이유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KBS 이사 등의 선임 건을 의결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 방송통신위원회에는 통신 위원이 5명이어야 하는데, 다른 위원이 없어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결의한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있다며, 국회에서 야당 주도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이다. 그 목적은 MBC의 이사가 야당 추천 인사에서 여당 추천 인사가 많아지게 되므로, 소위 노영방송(勞營放送)으로 불리는 MBC를 자신들의 방송으로 지키기 위한 것이며, 편파적인 언론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MBC의 이사는 9명인데, 문재인 정권에서 당시 여당의 추천 이사는 6명이고, 야당의 추천 이사는 3명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의 힘, 여당 몫이 6명으로 바뀐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영방송의 이사를 임명하자, 거대 야당이 태클을 걸어, 무려 174일 동안 방송통신위원회를 ‘식물 상태’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편파 방송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MBC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를 거대 야당이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이번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뿐만 아니라, 그 전의 이동관, 김홍일 위원장에 대해서도 탄핵한다고 하여, 그들이 사표를 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141개 방송국의 재•허가 문제가 불발되고, 현재 방송 허가도 없이 불법으로 방송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그래도 이것이 정상인가? 거대 야당이 문제를 삼은 것은,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위원 가운데 2명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야당의 책임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위원 정족수가 5명이다. 그런데 야당은 1년 넘게 통신위원을 추천하지 않아, 문제의 소지가 되도록 만들어 놓고, 그리고 위법도 아닌 2명의 통신위원이 결정한 것에 제동을 걸고 나왔던 것이다. 이것은 방송통신위원장의 잘못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이진숙 위원장에 대하여 탄핵 소추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이 사안은 명백히 거대 야당의 정략적인 탄핵 소추임에도 불구하고, 진보 성향의 헌법 재판관들 4명은 탄핵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헌법으로 모든 것을 판가름내야 하는 헌법재판관마저, 자기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헌법을 달리 해석한다는 것이 놀랍고, 기이하다. 현재 헌법재판관은 8명인데, 그중에 문형배 재판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진보 인물이고, 이미선도 같고, 정정미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천했고 중도로 알려진다. 그리고 최근에 임명된 정계선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재판관으로, 진보이며, 이들이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을 인용하였다. 특히 헌법재판소 소장의 직무 대행을 맡고 있는 문형배 재판관은 진보 판사의 상징과 같은 우리법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현재 거대 야당이 탄핵 소추한 것은 총 29건으로, 4건만이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안 모 검사와 이 모 검사에 대한 결정은 각각 252일, 270일이 걸렸다. 순 모 검사는 40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직무를 하지 못하고 있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도 174일 만에 결론을 내려 180일 기한을 겨우 면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에 의하여 심한 ‘갈라치기’가 되어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사법부, 헌법재판소와 같은 법률로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을 책임 있는 기관들은 법률로 균형 잡히고, 법률에 충실한 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 법률은 보수적 측면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률을 가지고, 이념이나 정치적 시험장으로 삼아서는 국가에 큰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를 통하여 다뤄지게 될 터인데, 헌법 재판관들의 헌법에 의한 충실한 결론을 기다린다.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기각이 기폭제가 되어,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 검사 등에 대한 탄핵 소추 사건이 헌법으로 인하여 올바른 결론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1-25
  • [언론회 논평] 사법부는 정말 ‘국민저항권’을 불러들이려는가?
    지난 19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통령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은 대통령을 구속하는 사유를 15자(字)로 적어, 마치 일개 잡범처럼 취급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유나 설명은 전혀 없었다. 참 자기들 편한 대로 하는 사법부의 형태이다. 지난 2023년 거대 야당 대표의 영장 기각을 할 때는 그 사유를 적은 것이 600자가 넘었다. 또 기각하는 사유도 ‘정당의 현직 대표인 점을 감안 했다’고 하였다. 그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어서 안 되고, 야당 대표는 괜찮다는 논리인데, 이는 사법부가 신뢰를 잃게 되는 충분한 이유라고 본다. 급기야 대통령을 구속하는데 역할을 한 서울서부지법에는 흥분한 국민들이 난입하여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했다(대부분 20~30대 청년들). 물론, 폭력은 금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사법부의 편파적인 태도가 국민들에게 크게 실망을 안긴 것으로 사법부의 책임도 크다. 이날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영장 담당 판사도 아니고, 당직 판사였다.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영장을 발부하는데, 너무나도 사법부의 진지함이 떨어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법원은 형평성이라는 의미를 알고는 있는가를 묻고 싶다. 야당의 대표는 당 대표라 영장을 기각하고, 또다른 대표는 2심에서 실형이 나왔는데도 법정 구속하지 않아서,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의원과 당 대표까지 되었다. 그뿐인가? 그의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미루기 위하여 한 판사는 자리도 옮기지 않으면서, 3년 이상을 질질 끌다가 결국 다른 판사에게 넘기는 꼼수도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선거 사범에 대해서는 ‘6•3•3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 1심까지 6개월, 2심까지 3개월, 그리고 최종심까지 3개월 이내에 모두 마쳐야 하는데, 국회의원 4년 임기가 다 되도록 미적미적하다가 끝나는 사건들도 다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3권분립’이 또렷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으로부터 선출 받은 권력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이다. 따라서 선출 받지 못한 권력이 선출 받은 권력을 심판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성, 객관성, 법의 원칙에 충실해야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부가 공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니, 국민들이 실망하고 흥분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영장 심사와 수사하는 사법부와 공수처의 불법적, 편파적인 태도는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대통령을 체포할 때도, ‘내란죄’에 대하여 수사할 자격도 없는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하여 ‘영장 쇼핑’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혐의도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으로 확신범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유일한 판단과 권한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이로 인하여 국회에서 ‘탄핵’을 받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형사소송법으로 대통령을 더 단단히 옭아매려는 것은 지나치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주장이 많다. 굳이 현직 대통령을 구속 수사한다는 그 발상 자체가 그동안 별반 실적도 없었던 공수처가 ‘법의 과잉’과 ‘권력남용’을 보여 준 것이다. 거기다가 공수처는 대통령을 공관에서 체포할 때, 공수처 수사관들이 군사보호시설인 대통령 관저 출입에 있어 그곳을 경비하는 군부대의 출입 승인을 요구하다 안 되니, 관인을 가져오도록 강요하고 자기들이 만든 공문에 관인을 직접 찍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동의를 받아 공문에 간인(間印)과 날인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대 야당은 마구잡이로 총 29건의 탄핵안을 발의했는데, 대부분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배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안을 마치 시골장의 싸구려 물건 팔듯 남발하였다. 더군다나 헌법 제65조 2항에 의하면,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엔 국회 재적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대통령 탄핵 후에,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는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하라(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권한)고 압력을 넣으면서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작 국무총리를 탄핵할 때에는 장관(총리)의 기준에 맞춰 탄핵을 결정하였다. 이를 야당 출신이며, 그 야당 편에 서 있는 국회의장이 월권으로 미리 통과선을 명시하고(거대 당만으로도 가능하도록) 투표에 들어가는 후안무치도 서슴지 않았다. 법을 다루는 사법부의 ‘갑질’과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자기들에게 필요한 대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하는 것은 우리 사법 체계와 ‘법치주의’를 무색케 한다. 언론들은 지금의 상태를 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 민주주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 민주주의를 지키고, 법을 지켜야 하는 막강한 권력들의 타락이 국민들로 하여금 울분과 절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의 혼란은 사법부의 이념과 정파에 따른, 흔들림과 쏠림 때문으로 본다. 심지어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결정할 헌법재판소에서는 ‘국민만 바라 보겠다’고 하였다. 헌법만 바라보고 판결해야 하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올까? 척도(尺度)를 재는 자는 정확해야 한다. 잣대가 구부러지거나 짧거나 길면 잣대의 역할은 무용지물이 된다. 사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국민의 저항권을 유발시킨다. 미국 독립선언문과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불의가 법이 될 때 국민의 저항은 의무가 된다’고 하였다. 부디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법부가 정치화, 이념화, 편가르기, 화석화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하여, 외부의 주권과 손잡은 반국가 세력의 반국가 행위가 있고, 자유민주의의를 붕괴하는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부패와 부정과 대한민국을 허물려는 반국가세력의 척결을 원한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뜨겁다. 최근 여론에 나타난 민심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당시는 10%대까지 내려갔으나 지금은 50%를 넘고 있다. 또 탄핵 찬성이 처음에는 75.7%까지 올라갔으나, 지금은 50%로 떨어져 탄핵을 반대하는 47%와 비슷해져 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한 자리 수로 보여 주었던 20~30대가 46%까지 올라갔다. 지금 국민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외부 세력의 국가 침탈 현상과 야당의 정치적 폭거와 함께, 이번에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온갖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고, 이것을 물리칠 지도자를 진정으로 찾고 있다. 이제 모든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는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정치권이나, 권력을 바라보지 말고, 혹은 자신의 이념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헌법에 담겨 있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헌법의 정신과 권리가 지켜지고, 정당하게 실현되는 것을 보여 주기 원한다. 만약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미약(微弱)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며, 모든 주권의 주체가 되는 ‘국민들의 저항권’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만이 국가의 안정과 정의의 나라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국가가 어려울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와 양심의 소리로 국가가 바로 세워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공의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체성이 무너지면, 그것은 곧 기독교를 탄압하고 부정하는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을 알아야 한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1-22
  • [언론회 논평] 입틀막, 폰틀막, 여론틀막 독재임을 모르는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회에서 소위 ‘국민소통위원회 산하 허위조작감시단’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 의원 여러 명이 나와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대표적인 (우파)유튜브들을 고발했는데, 단순히 유튜브만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하고 그 생산된 허위 조작 정보를 유통 시킨 개인과 책임자까지도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하였다. 또 카카오톡을 통하여 내란 선동과 관련된 가짜 뉴스를 퍼나르는 것으로, 충분히 내란 선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의원은 내란 공범 폭동과 관련된 선전 선동에 대해서는 일절 예외를 두지 않고 철저하게, 집요하게 쫓아가서 고발하고, 그 고발 과정을 법적으로 철저하게 따져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얼핏 들으면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거대 제1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하는 말인지, 경찰 수사관들이 나와서 범죄자를 쫓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들이 집요하게 쫓아가서 고발하겠다는 사람들은, 우리 국민으로서 카카오톡은 전 국민 5000만 명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인데, 그들의 방법과 수단으로 통제하겠다는 선포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을 찾아서 자신들의 권력과 힘으로 엄단하겠다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표현의 자유마저 뭉개버린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와 같다. 이것은 단순히,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21년 12월 경북의 모 대학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소위 말하는 ‘인터넷 검열감시법’을 찬성한 바 있다. 사실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100% 진실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 최하위 수준의 기존 언론들을 신뢰할 수 있느냐? 그러다 보니 수많은 개인 유튜브가 생겨났고, 국민들은 심각하게 편향되고 왜곡되어 믿을 수 없는 언론들보다, 차라리 자유스럽게 현장의 소식을 알려주는 유튜브를 많이 보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정치권이 기존의 언론들을 장악했다면, 유튜브는 우파를 상징하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내용들이 카카오톡을 통하여 많이 전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민주당은 철저하게 유튜브, 카카오톡을 ‘가짜 뉴스’라는 프레임을 씌워 통제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언제부터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말하는 ‘가짜 뉴스’ 척결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를 묻고 싶다. 자신들의 진영에서 생산한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자신들이 볼 때, 유•불리를 따져서, 불리하다고 느낀 것은 철저하게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발상이 결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허물려는 책동으로 보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전 국민이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정치적 힘과 권력으로 찍어 눌러서 성공한 경우가 있는가? 현재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나라로는 대표적으로 중국이라고 본다. 중국은 지난 2017년 말 교회를 단속하여 선교사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하였고, 2018년에는 ‘종교사무조례’를 만들어 종교를 중국화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리고 2022년에는 온라인 교회 금지령을 내렸다. 지금 민주당이 하고 있는 모습은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을 답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티를 박해하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교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 인구 분포상, 커뮤니티의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문재인 정부하에서 교회를 크게 핍박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국무총리이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었던 정세균 씨는 당시에 코로나 확진자 절반이 교회에서 나온다는 ‘가짜 뉴스’를 가지고, 교회가 엄청난 비난을 받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예배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1만개) 교회가 폐쇄되는 사례를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로 커뮤니티를 통한 박해를 하려는 것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 표현, 신앙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카카오톡을 탄압한다고 국민들이 당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더불어민주당이 그렇게도 커뮤니티 탄압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 국민 5천만 명을 모두 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말고, 권력만 가지고 협박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빼앗으려 하지 말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국민을 무시해서 성공한 정당도, 정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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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1-22
  • [언론회 논평] 여론조사기관까지 고발하여 입을 막겠다는 야당
    최근에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또 공수처에서는 무리하게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여론 조사기관과 일부 언론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조사한 것들을 발표하였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야당을 중심한 국회에 의한 탄핵이 결정된 후인 2024년 12월 둘째 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최저 11%까지 떨어졌다. 그랬던 것이 탄핵 결정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이 전개되면서,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급격히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30대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가 넘고 있어, 정가(政家)는 물론 국민들도 놀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에서는 여론조사기관을 고발하겠다고 하여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야당은 여론 조사 기관들이 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즉 특정 정당이나 개인의 실명을 사용하여 여론 조사를 한 것이 잘못이란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도 그런 반응을 보였었나? 야당은 겉으로는 여론 조사 기관에 대하여 압력을 넣으면서, 사실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아진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내고, 야당 대표의 여러 가지 범죄 혐의가 판결되기 전에, 대선(大選)을 치뤄야 한다는 강박증과 함께 여론은 뜻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는 조급함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는 한 번의 조사로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친 결과이기에 야당의 주장처럼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심에 대한 부정이다. 지난 1월 5일과 6일 사이에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한 조사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6.9%로 나타났다. 역시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아시아투데이가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40%까지 나왔다. 그리고 1월 2일 더퍼블릭과 파이낸스투데이의 공동 의뢰로 여론조사공정(주)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4.3%를 차지한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0일에 조사된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36.1%를 차지한다. 그리고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주)에 의뢰하여 지난 1월 6~7일 사이에 조사한 것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42.4%까지 올라갔다. 이런 지지율은 지난해 3월 이후 근 10개월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 국민들은 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만 해도, 놀라고 당황스러웠었는데, 이제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보인다. 그것은 대통령이 중간에 (이 나라의 불법 세력들에 대항하여)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야당의 끊임없는 집착에 가까운 탄핵 강수(强手)를 보면서 입법 독주와 독재, 야당 대표에 대한 비호감이 더욱 크게 늘어나고, 무엇보다도 보수 대통령들의 연속 탄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들이 결집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여론 조사가 왜곡 되었다’ ‘응답률이 낮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런 기준이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야당에 유리하고, 대통령에게 불리한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것은 문제 삼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대통령 관저를 지키겠다는 국민들의 함성이 국가를 지키는 힘이 되어야 한다. 야당은 대통령의 탄핵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탄핵’의 핵심이 되는 ‘내란죄’를 빼려고 하였다. 일단 탄핵시키기 위해 ‘내란죄’로 몰고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달라지니 빼려고 한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권의 그런 얄팍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내전(內戰)을 치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세력, 자유대한민국 대 대한민국을 허물려는 반국가 세력, 법치주의 대 일극(一極)체제와 독재정권을 세우려는 세력 간의 싸움이다. 치열한 이념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대한민국은 서 있다. 우리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해지고 있는가? 국회에서 야당 의원은 ‘대통령 수갑 채우고 나올 때까지 몇 날 며칠 가슴에 총을 맞더라도, 관을 들고 나오겠다는 결기를 보여주라’고 공수처장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의원도 ‘대통령은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선동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퀄리티(quality-본질적 수준)가 한참 떨어지는, 어느 시대 국회의원인가? 이제는 국민들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왔다. 여론이 조금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음을 알고, 반국가 세력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에 득세하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 북한 공산당에 의한 6.25전쟁의 암흑 속에서,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일에도 앞장서서, 이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해 왔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국가를 잃으면 우리 삶의 터전도, 신앙의 발판도 무너진다. 세계 선교를 위한 교두보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 속담에 (어떤 사람에 대하여)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아직도 모르는 국민들이 있는가? 지금은 해방정국과 비슷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는 아픔 속에서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실의 세계를 보면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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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5-01-22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비참함에서 벗어남’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위의 말씀을 하셨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을 강조한 새로운 계명을 예고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랑이 결핍된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입니다. ‘전가’(轉嫁)란, 잘못이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씌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전가한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은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않고 사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자, 안색이 변하고, 하나님께 대들었으며, 경고하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의 도리를 선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 아벨이 미운 나머지, 동생을 쳐 죽인 인물로 유명합니다. 우리는 가인을 남 보듯 하지만, 그런 기질은 곧잘 따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였을 때, 남편으로부터 ‘쿠사리’, 즉 구박을 받은 아내가 우울한 나머지, 속이 안 풀려 자식들을 향해 훈계를 핑계로 화풀이성 매를 드는 경우가 이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성경에서는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매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매를 치는 그 마음에 자기의 화를 담아서 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 매를 맞는 자녀는 어머니의 우울감과 화를 동시에 느끼게 되면서 덩달아 우울한 자녀가 되고 침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교회로 가져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의 경우 본인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삶을 살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했을 경우 시험에 들게 되는데, 그에 대한 분풀이를 교회에 나와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매사에 꼬투리를 잡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니면서 누군가를 계속 비난하거나 누군가의 행동을 자기 기준에 맞춰서 타인을 정죄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러한 모습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삶을 받지 않았던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를 왜 받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 입술에서 기도와 찬양이 나오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마음 밭이 길 가요, 돌밭이요, 가시덤불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긴 하지만, 깨닫지 못하거나, 믿음의 뿌리가 부실하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앞에 넘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우리와 같이 주를 향한 열정과 믿음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좌충우돌하거나,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음이 부족해 방황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온전한 믿음보다는 열정이 앞선 결과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자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의심많은 도마는 “주님, 저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따져 묻기도 합니다. 그런 도마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의미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천하고 비참한 인생은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비참함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기회가 있으며, 그 말씀을 통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는 은혜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자신의 누추함과 비참함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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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나님은 왜 멈추게 하시는가?”
    지난 수요일 낮 예배는 우리 교단 전국장로회 임원 신년하례회 예배로 드렸습니다. 당연히 제가 설교를 하기로 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입원하는 바람에 고영기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저의 공적 사역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셨습니다.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과 연합기관 통합위원장을 할 때 했던 사역 얘기를 하신 것이죠. 그분은 제 옆에서 함께 사역을 했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제가 했던 연합기관 통합 사역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한기총과 한교총이 통합을 하기로 상세 합의서까지 작성했고 사인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다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의 이견으로 인해서 지연이 된 것입니다. 그 지연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내놓고 보니까 이견을 가졌던 분들은 지연작전을 썼던 것입니다. 그분들은 자기 이해와 자기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 이견은 분명히 좁은 안목과 소아적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오직 공적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교총을 섬기면서 대사회적, 대정부적 성명서를 낼 때도 한기총과 함께 냈습니다. 사실상 정서적 연합, 내면적 연합은 다 이루어졌던 것이죠. 제가 일찍이 공적 사역을 해보니까 한국교회는 원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게 안 되니까 언제부터인가 교계 안에서도 이념적, 정치적 영향력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념적,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다 보면 한국교회의 위상이나 이미지 제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전체적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년에도 배후에서 연합기관 통합을 위해 힘써 노력했지만 또 안되었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돼서 올해는 제가 한기총 회장으로 출마를 해볼까도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유력한 지도자들과 논의를 하였고, 현 한교총 대표회장님과도 상의 된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가면 바로 올 봄에 연합기관을 통합하는 걸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정말 절호의 찬스요, 라스트 찬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발뒤꿈치 화상으로 인하여 연초에 입원을 해야 했고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사실은 지난 12월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제안을 받았는데 그 일도 다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제가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는 취임식뿐만 아니라 만찬과 무도회도 다 참석을 했습니다. 아니 저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에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런천 프레이어에서 스피치를 한 사람입니다. 참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입원한 상태에서 볼 때 잠정적으로 연합기관 통합은 물 건너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때 제가 아무런 활동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위안을 삼으려고 해도 너무나 허전하고 아쉬웠습니다. 여기에는 연합을 반대하는 악한 마귀의 시험도 있었다고 봅니다. 이 대마(大魔)를 잡는 일이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더 넓게 볼 때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그렇게도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동안을 넘게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어수선한 때입니다. 이 어수선한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뜻밖의 장소로 옮겨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멈추게 하시는가?”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이 너무나 많이 거침없이 달려오셨으니까 하나님이 강제로 쉼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정 권사님과 이재훈 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만 더 잘 아시고 하나님께서 더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지내놓고 보면 항상 그것이 더 좋고 옳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이따금씩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쉼표를 찍고 멈추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조용히 속삭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왜 저를 멈추게 하십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더 좋은 길로, 더 선한 길로 인도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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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1-19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나라를 사랑한다면’(사 32:15-20)
    지금 대한민국은 큰 위기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할 때 유대 나라는 약소국으로서 내외적인 침공으로 존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안보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영이 백성에게 부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15절)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면 파멸과 불안의 시대를 평화와 정의의 시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영은 ‘정의의 영’이며 ‘공의의 영’입니다.(16절) 여기서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고 그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즉 정의와 공의의 삶이란 약자 돌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 즉 정의의 영과 공의의 영으로 약자들을 돌보면 화평과 평안과 안전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공의의 삶, 즉 약자 돌봄의 삶이 나라에 평화와 평안과 안전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나라 안보는 공의의 열매이며, 그것은 가난한 자를 돌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주변의 약자를 돌보는 것이 나라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주신 나라 위기의 탈출구는 세상의 권력과 무기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굳건한 믿음을 갖는 것이 위기 극복의 길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9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힘을 의지하는 것은 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거역하는 자식들아, 너희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너희가 계획을 추진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동맹을 맺지만, 나의 뜻을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죄에 죄를 더할 뿐이다.”(사 30:1)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나라 안보는 강한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역을 행하실 때 성령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끝까지 공의를 이루실 분입니다. 주님은 약하고 힘들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자유를 되찾아주시며 힘을 북돋워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 정의는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가능합니다. 주님은 정의를 이루실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다투지도 않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힘없고 연약한 자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뽑은 나의 종, 내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자,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것이니, 그는 이방 사람들에게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이방 사람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마 12:18-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정의를 세우신 주님을 따라가며 우리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대하 7:1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 주님께서 다시 번영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유다 왕 아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습니다.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실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조용하였고 주님께서 그 나라와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아사 왕은 백성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평안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대하 14장) 우리 민족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을 때 성령께서 평화와 평안과 안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모세는 백성의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말씀하신 재앙을 백성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출 32장) 모세야말로 백성을 사랑한 애국자이지요. 우리도 모세처럼 우리 민족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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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제가 지난 12월 2일 저녁에 잠을 자다 오른쪽 발뒤꿈치가 전기장판에 저온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날 저는 저온화상인지도 모르고 주일 낮 예배와 5부 예배 성찬식까지 다 인도했습니다. 전기장판에 화상을 입을 줄이야 저도 몰랐고 주변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화상인 줄 알고 연고를 바르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었습니다. 약간의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박순애 전도사님 초청 집회 시간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이후로 교역자 연말정책수련회와 루체비스타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CBS 설립 70주년 및 여러 교계 행사 모임에도 다 참석을 했습니다. 집사람은 빨리 화상 전문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만약 화상 전문병원에서 입원을 하라고 했더라면 교역자수련회나 루체비스타 성탄절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탄절예배와 송구영신예배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신년축복성회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그 사이에도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약도 처방하여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집회가 끝난 후 1월 5일, 첫 주일저녁예배를 마치고 이재훈 목사님을 오시게 해서 화상을 입은 뒤꿈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께서 화상 전문시스템을 잘 갖춘 대학병원에 연락을 했고, 저는 다음 날 오전 11시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제 입원을 하고 말았습니다. 화상 전문 성형외과 선생님은 저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환자분님, 큰 교회를 섬기고 목회하는 분으로 들었습니다. 이 발뒤꿈치를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 이상을 써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방치하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교수님,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도 바르고 약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다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 이렇게 병을 키워 갖고 오셨어요? 처음에 바로 왔으면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습니까?” 그러자 또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어느 교회든지 연말연시는 다 바쁩니다. 특별히 저는 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화를 내시면서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해만 목회를 하시려고 하십니까? 앞으로 10년, 20년 일을 해야 하는데요? 조금만 늦게 왔으면 뒤꿈치를 절단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시급함을 모른단 말입니까?” 병실에 누워 있자 얼마나 답답하고 하루가 긴지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경을 봐도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염증 부분을 잘라내는 아픔, 억지로 피를 나오게 해서 생살이 돋아나게 하는 처치의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가슴 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3일째가 되자 그토록 엄격하고 원칙적인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부 이식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잘 치료하면 빨리 새살이 돋아날 것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국소 마취를 하여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염증을 제거하였습니다. 제가 휠체어를 타고 가서 설교를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분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 주를 잘 참아내면 다시 후회 없이 발바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만류를 하였습니다. 병실에 앉아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고 일찍 화상병원에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로서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병실에서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도 여러분을 생각하며 인생의 새롭고도 또 다른 페이지를 써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년집회가 끝나면 쉬고 치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더 엄격하게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시네요. 성도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고 제가 더 새롭고 신선한 얼굴로 뵙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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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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