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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거대한 기도의 불을 지피다
- “한국교회”라고 하면 기도로 세워진 교회이며, 기도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로 부흥하였다. 또 기도로 교회를 지키고, 수많은 변화를 주도하였다. 19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최대 100만 명이 모여 기도한 것은 전무후무한 연합 기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후에 한국교회는 산에서, 기도원에서, 교회에서 새벽 시간과 금요 철야기도로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열정적인 교회였다. 그와 비례하여 교회들이 부흥하고, 국가적으로도 크게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하여 선교 대국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식어지므로 국가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북핵으로부터 꾸준히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국가적 부채, 개인 부채의 증가, 세대 간, 지역 간, 진영 간 갈등과 정치권의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극단적 대립과 팬덤 정치는 국민들까지 분열시켜 서로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하여, 국가 소멸의 위기까지 접하고 있다. 그뿐인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국가 정체성의 심각한 훼손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창조의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크게 위협받아 가정과 교회의 붕괴가 빨라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시급하게 연합으로 해야 할 것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주님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살려주시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빼앗는 악한 것들로부터 가정과 교회와 청소년들과 미래 세대를 지켜주시옵소서, 평화적이고 복음으로 남북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등 수많은 현안을 놓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다행히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한국교회가 이곳저곳에서 마음을 찢는 기도를 하려고 한다. 10월 3일에는 안양의 은혜와진리교회(조용목 목사)에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마약과 중독 문제를 극복하고 코비드19로 무너진 교회 역할과 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한다. 또 10월 27일에는 한국교회 성도 200만 명이 서울 광화문, 시청, 남대문 일대에 모여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전환기 앞에 선 대한민국을 위하여 종교개혁 정신으로 대한민국에 다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사모하고 기대하는 대규모 기도회를 연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이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이런 기도회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강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불일 듯 일어나며, 수많은 영혼들이 소생하게 되며,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또 모든 국가와 사회의 현안들에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강한 회복의 바람이 불어, 국가 전체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바르게 됨과 복주심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교회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예단하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좋아하시며, 기다리시며, 많은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것이다. 이에 모든 한국교회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함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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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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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거대한 기도의 불을 지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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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참된 쉼은 하나님 품에서만
- 제 인생 처음으로 휴식 기간을 가져보려 했습니다. 물론 사역적으로야 해외를 많이 왔다갔다 했고,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고향을 왔다갔다 한 적은 있지만 진정한 휴식과 쉼을 위해 휴가를 가져본 적은, 성지순례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부교역자들이 다 휴가를 갔을 때도 저 혼자 남아서 교회를 지켰고 모든 사역을 다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수련회 이후 지친 몸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번아웃되니 마음도 지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 한 주간을 쉬어보려고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고 집사람이 강원도의 한 호텔을 예약해 줬습니다. 그곳은 깊은 산속에 계곡을 끼고 있는 호텔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된 쉼과 안식은 주님이 허락해야 되고 주님의 품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는 도중에도 유튜브로 교역자수련회를 다 지켜봐야 했거든요. 게다가 도착을 했는데 세상에 설악산 그 깊은 계곡에도 무슨 찜통더위가 머물러 있는지, 바람 한 줄기도 없는 무더위가 앉아만 있어도 땀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후레시를 켜고 계곡길을 걸었는데 땀이 온몸을 적실 뿐만 아니라 땀이 눈에 들어가서 도저히 끝까지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시원해지겠거니, 에어컨 바람에 마음을 달래며 우선해야 할 철야기도 설교 원고 기초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늦게까지 늦잠을 자겠거니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어놓고 잤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이른 아침부터 요란한 경고신호 소리와 드르렁 드르렁 하는 소리가 막 들려오는 것입니다. “삐삐삐삐~ 드르르르 드르르르~” 잠시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계속 소리가 났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니까 마침 호텔이 비수기라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삿짐센터 같은 차가 와서 막 드르렁거리며 긴 사다리를 놓고 침대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 요란한 소리가 저의 심경을 거슬렸습니다. 그렇다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걸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다음 날은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은 더 이른 아침부터 삑삑 소리가 나고 드르렁 드르렁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호텔 측에 항의할 수도 없고, 게다가 띵동 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호텔 청소하는 분이 수건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고 우산을 들고 계곡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계곡길이 대부분 흙길이었고 자연 길이었는데, 얼마나 폭우가 쏟아졌는지 길이 다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 길을 새로 만들어줬는데 대부분이 돌길이었습니다. 물론 그날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목표 지점까지 다녀왔습니다. 이게 건강에 보탬이 되었는지 해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강원도까지 간 게 너무 아까워서 깡을 발휘하며 다녀온 것입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휴식과 안식의 낭만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 낭만이 깨져버린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계곡길을 완주한 것은 보람스러웠긴 했습니다만. 그날 저녁부터 강원도에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짐을 싸들고 교회로 왔습니다. 돌아오면서 어거스틴의 말이 생각 났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결코 쉼을 누릴 수 없습니다.”그렇습니다. 쉼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참된 쉼은 하나님 안에서만 있는 것입니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고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대상관계가 잘 돼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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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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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참된 쉼은 하나님 품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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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계엄령 선포 준비’ 괴담의 진원은 극단적 보수 세력이다.’
- 지금 우리는 난데없는 ‘정부의 계엄령 선포 준비’라는 정체불명의 괴담에 의해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다. 경제대국 세계 10권 나라에서 ‘계엄령’, 지나던 소가 웃을 이야기를 야당은 4성장군 출신 국회의원을 내세워 집중포화를 쏘아대고 있으니 한심한 걱정이 출구가 없다. 헌법 제77조는 계엄령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①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정리하면 계엄령은 국가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초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선포하는 긴급 조치로, 군대가 치안과 행정을, 군사법원이 사법권을 갖는다. 따라서 계엄하에서 국민은 기본권의 제약과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는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소위 선진국에서 전쟁과 천재지변 그리고 자연재해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집권당이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계엄을 선포한 예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데 계엄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거대 야당이 왜 불가능한 괴담을 확대 재생산하며, 또 이게 먹혀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일 전 우파적 시각을 가지신 몇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중에 한분이 “계엄령 선포해서 싹 다 잡아넣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필자는 “아, 이런 분들의 생각을 읽은 야당이 이를 근거로 만든 괴담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계엄령’이라는 재료를 극단적 우파 인사들이 야당에 제공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 필자는 “정부에서 ‘계엄’을 공식적으로 말하는 순간,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으로 이 땅의 우파는 폐족될 것이며,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정치적 파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으로 정치적 계엄 따위가 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우파 인사들이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절 속시원하게 반정부 인사들을 정리하고 폭력배들을 힘으로 제압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계엄령 준비 괴담의 진원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우리의 민주 사회는 힘들어도 어떤 정치적 독재와 그를 뒷받침하는 수단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정치투쟁을 해야 한다. 상하로부터의 혁명 혹은 쿠데타나 계엄과 같은 폭력적 방법은 시도하는 즉시 그 생명줄이 끊어지는 자승자박의 동아줄이다. 여야 모두 힘들어도 헌법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가치와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민주적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 거대한 야권의 일련의 행위들이 위법하고 불합리한데도 그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우파 보수의 진영논리의 충성심에 있다. 좌파 진보 진영은 상대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데, 일부 극단적 우파 보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우월감에 의한 폭력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참 불행한 일이다. 결과보다도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사회에서 정상적인 정치 투쟁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과거 민주주의 역사가 보여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하고, 거기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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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계엄령 선포 준비’ 괴담의 진원은 극단적 보수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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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새 역사 교과서, 바른 교육의 시작이 되기를
- 내년 신학기부터 사용될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여 선보였다(중학교 7종, 고등학교 9종) 교육부가 30일,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중에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결과적으로는 좌편향에서 조금은 돌아섰다는 평가이다.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는 어제·오늘이 아니라서,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아예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탄핵으로 인하여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불과 수일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검정교과서’로 바꾼 것이다. 거기에다 당시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교과서에 실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가 아니라, ‘국정홍보용’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에 새로 나온 교과서는 그런 불신을 약간은 불식시켰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멀어졌던 좌편향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편향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는 국가의 정체성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그런데 기존의 교과서에는 진보·좌파들이 사용하는 ‘민주주의’라고만 표기했었다. 둘째는 건국과 그 대통령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왕정·전제주의 국가였다. 국민은 왕의 지배를 받고, 왕을 위한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와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다. 이는 건국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셋째는 북한이 상투적으로 주장하는 일방적 내용을 표기한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내재적 접근’은 그들의 선전·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넷째는 6.25전쟁을 포함한 북한의 남침 행위와 북한 정권의 참상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간되는 7종의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하여 7종이 서술하였다. 또 보수 정권의 경제 발전에 관하여 6종이, 천안함 폭침에 대하여 2종이 서술하였다. 반면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은 1종만이, 또 북한의 지독한 3대 세습에 대해서는 한 곳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섯째는 보수 정권의 공적(功績)은 무시하고, 진보 정권의 치적만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체성 확립, 6.25 남침의 절체절명에서 국난 극복, 근대화, 경제 발전, 외교적.국제적 위상, 심지어 정치민주화 시작 등도 보수 정권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은 빼고, 오직 부정적인 것만 강조해 왔었다. 그런데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런 측면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앞으로 만들어질 역사 교과서에서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건국’과 보수 정권의 절대적인 ‘공’과 북한 체제의 잘못됨을 분명히 서술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유지되어 온 것이 이웃 나라의 큰 도움으로 된 것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넣어야 한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정치적 지형에 따라 너무 많이 한쪽으로 쏠림현상을 가져왔다. 역사는 후대 사람들이 선대에 일어났던 것을 기록하는 것이니만큼, 가슴에 손을 얹고 바르게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면 교육이 되고 교훈이 되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뒤집고 비틀면 역사의 큰 죄인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어떤 공부보다도 바른 역사를 가르치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관과 인성을 함부로 도둑질 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를 담은 교과서는 공정과 진실적 서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내년부터 사용될 새로운 교과서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충족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국민들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통하여 나타난 역사 교과서가 바른 역사 교육의 시작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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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새 역사 교과서, 바른 교육의 시작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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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그리스도인이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되나?’(고전 8:1-13)
-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부터 10장까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우상과 우상의 제물에 대해 반복하여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고전 10: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우상과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이렇게 경계하는 것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우상 숭배로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만 마땅히 돌릴 영광을 헛된 우상들에게 돌리기 때문에 가장 큰 죄악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물질로 만든 생명 없는 피조물 곧 돌과 나무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도 단지 음식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먹는 사람들에게 자기중심적인 지식을 앞세우지 말고 절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지식은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우상 숭배를 뒷받침하고 있는 만유신론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스토아 철학의 자연학자들은 만유신론을 주장하며 만물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지식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어 결국 우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전혀 쓸모없이 우상 숭배의 죄만 짓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낫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신 6:4) 바울은 자신의 잘못된 신에 대한 지식으로 약한 형제자매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0-1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음식 자체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8절)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13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책임감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비록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4절) 아니지만,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8-21절을 보면, “육신상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그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우상은 무엇이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아울러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아울러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우상 제물에 참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귀신과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제는 서로 인격적인 만남과 나눔이기에 단순한 제사 참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숭배자 자신이 숭배의 대상에게 종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20) 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베풀어지는 성찬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단지 기념하는 제사 의미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하나님 나라의 식탁 곧 미래의 종말론적 식탁의 의미입니다.(막 14:25) 예수님의 몸과 보혈에 참여하는 성찬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령한 몸에 연합되는 것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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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그리스도인이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되나?’(고전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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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교육의 최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감들의 불명예
- 29일 대법원의 판결로 서울시에서 3선을 한 조희연 교육감이 유죄를 받아 교육감직에서 물러났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재선을 앞둔 지난 2017부터 2018년 사이에 전교조로부터 전교조 출신 퇴직 교사 5명을 특별 채용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전교조 해직 교사들을 교육감 재선 후에 채용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난 2021년 12월 기소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조희연 전 교육감은 2022년 세 번째 교육감에 출마하여, 소위 보수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38.1%의 낮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사실 자신이 기소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자에 출마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결과적으로 2008년 서울시에서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4명의 교육감이 선출되었지만 4명 모두 유죄를 받아 중도에 물러나거나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교육의 최고 수장(首長)으로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할 서울시의 교육감이 이런 식으로 중도하차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지난 16년 동안 14년을 서울시 교육을 책임졌던 인사들이 진보·좌파였는데, 진보·좌파의 도덕성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의 직선제는 지난 2006년 도입이 되었는데, 그 동안 선거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었다. 첫째 교육감들은 교육의 중립성 때문에 정당의 공천이나 도움을 받기 어렵다(그러나 정치색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수십 억원이 들어가는 정치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 실제적으로 교육감은 시도단체광역단체장보다 선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둘째는 교육감은 교육 분야나 교육 행정 경험이 있어야 하기에 교사 출신이나 교수 등이 주로 출마하는데, 유권자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교육감 선거는 정치색만 따져서 ‘깜깜이 선거’를 통해 뽑기에 교육 수장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속히 각 시·도교육감 선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시·도지사와 ‘런닝메이트’ 방식으로 하여 아예 정치색을 띤 후보로 뽑든지, 아니면 시·도지사가 임명을 하게 해야 한다. 아니면 각 시·도 의회에서 교육감을 따로 선출하는 방식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선제로 선출되는 교육감마다 서울시의 경우처럼, 중도에 탈락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현재 다른 지역 교육감들도 선거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사실 교육감의 권한은 막강하다. 서울시교육감은 1,280개의 공립학교 교사 4만 3,000명과 교육 공무원 7,000명 등 5만 명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의 한 해 예산 11조 원이 넘는 것을 집행하는 자리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선출 방식이 부실한 것은 큰 문제이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물러난 후 올 10월로 보궐선거가 예고되자, 자천타천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인사 가운데는 교육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교육자의 기본 자질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교육 목표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할 때, 이를 깬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학부모 단체나 시민 단체 등이 철저하게 걸러 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감들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경도된 사람들이 많다. 교육의 본질과 자라나는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와 인성 발달보다는 자기들의 기울어진 정치색을 교육 현장에 마구잡이로 실현하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그런 사람들도 확실히 가려내야 한다. 교육감의 교육 비전이나 정책은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 행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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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교육의 최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감들의 불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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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딥페이크는 관음증(觀淫症)과 돈벌이로
- 최근 우리 사회에 음란 딥페이크(Deep Fake-AI로 만든 가짜 콘텐츠)가 만연하고 있다. 이는 인스타그램 등에서 내려받은 얼굴 사진에다 각종 음란물의 나체 사진을 합성하여 사람들끼리 돌려 보는 성범죄이다. 여기에 피해자는 대부분이 여성이며, 피의자(被疑者)의 70% 이상이 10대라고 한다. 무서운 일이다. 인공지능으로 합성한 성착취물은 온라인을 넘어, 피해 여성이나 가족들에게 그 음란물이 배송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고, 피해자들에게는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최근 미국의 보안업체에 따르면, 딥페이크의 성착취물 피해인의 국적을 따져볼 때, 한국인이 53%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능욕한다는 의미로 ‘사촌방’ ‘엄마방’ ‘누나방’ ‘여동생방’ ‘지인방’ ‘여군방’ 등 호기심과 음란성을 부추기는 여러 가지 딥페이크방들을 만들어 운용한다. 이런 음란물방을 만드는 사람들은 죄의식이 없다. 신기하고 재미가 있다고 하고, 자기가 아는 여성의 사진을 넣어서 만드는 것을 실감 나는 ‘놀이’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은 죽고 싶다는 호소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신의 인생 자체가 산산조각났다는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음란물이 성행하는 것에는 돈벌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은 일정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공개 채널에 대해서는 광고 수익의 50%를 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행위들이 ‘돈벌이’ 수단으로도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윤 대통령도 나서서 ‘딥페이크 영상물은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어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며, 관계 당국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고 하였다. 경찰에서도 향후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 단속을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런 성범죄 행위를 근절시키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첫째는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딥페이크를 신속하게 만들어 내고, 놀이문화로 받아들이기 쉬운 세대는 아무래도 10대들이다. 학교에서는 이런 행위가 심각한 성범죄이며, 타인에 대한 인격 살인임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교육 현장은 수년간 좌파 교육감들이 장악하고 나서, 성에 대한 방종을 부추겨 왔고, 자신들의 인권 보호라며, 남의 인권을 함부로 대하도록 가르쳐 왔다.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익한 사용에 대한 교육이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남을 괴롭히면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는 것을 인식 시켜주어야 한다. 둘째는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딥페이크에 의한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성폭력범죄처벌에관한특례법’이 있는데, 여기에는 피해자 동의 없이 영상 촬영을 하고 이를 편집, 합성, 가공하거나 동의 없이 반포했을 때만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것도 이런 저런 이유로 처벌이 제대로 시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딥페이크로 음란물을 만들기만 하여도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고, 호주에서도 딥페이크의 음란물을 제작할 시 징역 7년 형에 처한다고 한다. 미국도 딥페이크에 의한 피해 보상을 최대 25만 달러(한화 3억 3,400만원)로 정했다. 그리고 이런 음란물을 유통시키는 플렛폼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도 강화해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텔레그램 창시자인 파벨 두로프 CEO가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나 그런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사람이나 이런 것들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업에다 그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계에서도 AI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이런 첨단 산업과 문화는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가령 기독교계 유명 목사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이단의 교리나, 잘못된 말씀 전달을 하게 될 경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유명 목사님의 목소리로 믿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 또 딥페이크처럼 가짜가 판을 치고, 진짜처럼 교회 속에 파고들지 못하도록 선제적인 감시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죄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범죄를 모두 근절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이런 것들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비하고 대응하여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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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딥페이크는 관음증(觀淫症)과 돈벌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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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당신의 자녀가 읽어도 좋겠습니까?
- 일선 초·중·고교 도서관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또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에도 장서들이 많다. 아이들은 이런 책을 보고 학교의 수업을 통하여 다 배우지 못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책들이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인격 발달에 도움을 주고, 적령(適齡)에 맞는 도서를 공급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성인용 도서를 비치한다거나, 교육 목표와 방향이 맞지 않는 잘못된 것이라면 당연히 보급과 비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시민단체 퍼스트코리아시민연대와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 보급된 도서 가운데 아이들이 보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소위 음란 도서들이 다수 있다고 한다. 이를 찾아내어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위)에 지난해 심의를 요청한바, 올해 ‘유해성’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학부모, 시민단체들은 ‘66권의 음란 도서가 현재 전국의 공공도서관 및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고, 청소년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열람하고 있는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 책들 중에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즐기는 항문성교 방법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이를 즉각 수거하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간윤위가 유해성이 없다는 책들에 문제가 없는가? “10대들을 위한 성교육”이란 책에는 성교(性交)를 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고, 임신 중절에 대한 것까지 설명하고 있다. 즉 성적인 쾌락과 생명 경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10대를 위한 빨간 책”에는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설명하고, 자위와 변태, 성도착증, 포르노그래피를 설명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왜 이런 것들도 교육시켜야 하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들에게 지겨운 수업 시간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선생님을 교장과 교감에게 고발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는 방법과 아이들의 집단행동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교육이 아니라 고욕(苦辱) 현장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소년이 된다는 것”에서는 구강성교, 항문성교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구성애 아줌마의 뉴초딩 아우성”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그려놓고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책들이 있는데, 그 내용은 어린 아이들이 보았을 때 한결같이 성충동을 유발시키고 음란한 행위들을 따라 할 것이 분명하다.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일까?”에서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늘 똑같지 않고 때때로 바뀔 수 있다’고 성혼란을 주장하여 아이들에게 성정체성에 대하여 타격을 주는 내용도 있다. “생각이 크는 인문학”의 ‘성평등’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으며, 신체적인 차이가 남녀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것이 옳은가? 참 혼란스런 이야기이다. 이미 성징(性徵)으로 남녀가 구별되었는데, 성적 자기결정권을 말하니 성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가족”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 소개와 함께 동성결혼도 소개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담은 성교육서가 과연 아이들에게 왜 필요한가? 물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건강하고 바른 성역할과 성 발달에 대한 것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어디까지나, 성(性)에 의한 생명의 존엄성, 하나님의 축복에 따른 생육하고 번성함에 대한 의미를 살려야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성적 본능에 의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각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비치되어 문제가 되어 학부모, 시민단체에서 고발하는 66권의 도서들은 건강한 성교육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음란 도서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이를 즉각 퇴치해야 한다. 왜 학교에서는 바르고 건강한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도서물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 지구상에서 전 세계 절반을 차지하던 공산주의가 한 동안 판을 쳤다. 그러나 70년 만에 망했다. 안타깝게도 공산주의의 망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본 후대 공산주의자들은 네오-막시즘을 만들어 인간의 성욕을 사상적,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고안해 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도서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목적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속히 이런 부류의 도서들에 대하여 ‘음란물’로 분류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을 보호해야 한다. 또 간윤위 위원들을 임명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바른 성교육과 음란물의 경계를 정하여, 사상과 문화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 저작물을 통하여 어린 학생들의 정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활동 무대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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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당신의 자녀가 읽어도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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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옳고 그름을 정하지 못할 때 청탁(淸濁)은 없다
- 얼마 전에 끝난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때아닌 성별 문제가 불거졌다. 여자 복싱 분야에 출전한 알제리의 이마네 켈리프와 대만의 린위팅 선수가 남성 호르몬인 XY염색체 검출 문제가 있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문제없다며 그들의 출전을 허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금메달을 따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국제복싱협회(IBA)는 이들에게 XY염색체가 검출되었기에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이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많은 세계인들이 보고 놀랐다. ‘저것이 어떻게 같은 여자끼리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켈리프 자신은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았다며 항변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불공정한 게임으로 보았다. 그야말로 맞붙어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켈리프와 16강전에서 경기를 치른 이탈리아의 안젤라 카리나는 1라운드 46초 만에 기권하면서, ‘살면서 그런 펀치를 맞아 본 적이 없다’는 유명한(?)말을 남겼다. 물론 여성이면서도 ‘성 발달’ 이상 질환인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10만명 당 2~5명의 아주 극소수에게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놓고 자기 의견을 말했던 사람들이 ‘괴롭힘 혐의’로 피소를 당했다. 그 피소자 명단에는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도 포함되어 있다. 또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샘 폴더도 프로그램 진행자에서 갑자기 해고되었다고 한다. 급기야 미국의 대선 후보로 활동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남성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하겠다’고 하여, 또 다시 이 문제는 주목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최근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는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LGBTQ(여성 동성애자, 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성소수자 전반-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성, 혹은 성소수 분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에 대한 행정부의 과잉 보호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성소수자’의 문제, 동성애자의 문제, 그 동성애를 옹호하고 보호하고 지지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차별’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권에서는 끊임없이 동성애를 위한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동성애자 동거인을 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여, 사실상 동성애 부부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국민들은 대법관들에 대한 ‘탄핵’ 의견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여년 간 서구에서는 기독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결혼과 가정, 성규범, 성윤리를 무너뜨리려는 역할을 활발히 해 왔다. 이것이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다. 첫 번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인간 중심의 혁명-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마구 죽였으며, 국가를 무질서 상태로 만듬)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역시 프랑스에서 1968년에 일어난 ‘68혁명’(부정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여, 전통적인 결혼, 가정을 해체)을 꼽는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들은 성규범의 해체, 가정의 해체, 기독교의 해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 활동했던 사상가나 지성인은 자신이 의도하든지, 의도하지 않든지 간에 이런 조류(潮流)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때의 인물로는 장 자크 루소, 어거스트 콩트, 샤를 푸리에,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드, 칼 융, 빌헬름 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존 머니 등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런 운동에 정신적 기원을 불어넣은 사람은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칼 막스(K. Marx)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썼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성스러운 가족(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의 비밀은 지상의 가족이다. 전자를 사라지게 하려면 이론과 실제에서 후자가 먼저 파괴되어야 한다...일부일처제는 기생충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가정을 해체하려면 동성애, 일부다처, 일처다부, 복수 연애, 다중섹스 등을 감행하는 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의도 가운데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공산혁명을 다시 주도면밀하게 완수하기 위하여 네오-막시즘을 만들었다. 이는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적 분석(노동력에 의한 자본주의 착취)과 여기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인간정신적 분석(성충동에 대한 기독교 윤리의 억압)을 융합시킨 것이다. 그래서 네오 막시즘은 인간의 성욕을 사상적,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네오-막시즘의 최고봉으로 꼽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이다. 그는 정통 공산주의에서 표방하는 프롤레타리아 하부 구조의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이 아닌, 상부 구조를 제압하여 정치, 문화, 교육, 사법, 종교, 교육, 언론, 학술 부문의 지식층에 침투하여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는 전략을 통해 기독교 신앙과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서구 사회와 좌파 세력의 전략지침서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는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 각종 인권조례, 인권선언, 퀴어축제, 심지어 퀴어신학이나 동성애 행사를 축복하는 성직자들의 행위에 대한 기독교의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또 그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근래에 심각하게 벌어지는 동성애 옹호와 반동성애 제재와 탄압에 대한 움직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저들은 이미 오랜 동안 준비해 왔으며, 이들이 각 분야에 구축해 온 진지가 견고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차지하고 있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진지들을 다시 점령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면 깨끗하고 더러움을 분간할 수 없으며, 우리가 가진 전통적 가치를 지킬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기독교 진리를 담보하고 전할 수 없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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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옳고 그름을 정하지 못할 때 청탁(淸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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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왜 건국절이 문제가 되는가?’
- 지난 8월 15일은 우리나라 국경일 가운데 매우 중요한 날이다. 79년 전 광복을 맞은 날이고, 76년 전 대한민국 정부를 세워 사실상의 건국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 중요한 행사에서 늘 빠지지 않던 ‘광복회’가 정부 행사에 불참하고, 자기들끼리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광복회가 만들어진 1965년 이후에 처음 일어난 기이한 사건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최근에 새로 임명된 독립기념관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광복회장인 이종찬 씨는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반대하였다. 그가 뉴라이트 친일 사관을 가졌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를 뉴라이트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광복회장은 정부의 건국절 제정 추진 불가 방침을 밝히라고 하였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건국절은 애초에 검토하지도 않았고, 그럴 의사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랬더니 김 관장의 사퇴를 들고 나왔다. 이를 정부에서 거절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부정적인 여러 언론의 보도도 눈길을 끈다. 결국 광복회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는 대신, 자기와 함께하는 단체들과 야당 국회의원 100여 명과 함께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별도의 행사를 치루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서 현 대통령을 물러나라는 타도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 대통령을 일본 총독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이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건국에 대한 시각이 달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광복회장 등은 1919년 4월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9월의 상해임시정부, 한성정부, 노령정부의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때의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정부였고, 특히 근대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한 영토, 국민, 주권이 없었으므로 제대로 된 건국(建國)의 원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가 일본에 의하여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고, 심지어 국민들의 이름조차도 일본식으로 지어지는 마당에, 그것도 남의 나라 한 모퉁이에서 임시로 세워진 것을 온전한 정부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의 강제와 침략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는가? 그런데 광복회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로 몰아세우면서,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를 발표했는데, 그중에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 1948년을 ‘건국절’로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하면, 김구 등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이 빛을 잃기 때문이다. 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으로 인정하면 그전의 임시정부 활동들이 묻힌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1919년 상해에서의 대통령도 이승만이었고, 1948년 8월 15일 세워진 건국 정부에서의 대통령도 이승만이었다. 그러므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지칭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순국선열과 애국자들이 많이 있다. 그분들 모두의 희생과 헌신을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건국에 대한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가 되려면 앞에서도 설명한 대로 국민, 주권, 영토 등을 갖추어야 하고, 또 국민들의 지지와 총의(總意)를 모아야 한다. 1948년 8월 15일 세워진 대한민국은 완전한 국가를 이루기 위하여, 그해 5월 10일 국민 총선거와 7월 17일 헌법제정과 대통령을 선출하고, 공식적으로 국가를 이룬 것이다. 이를 후에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을 받았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1948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 즉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가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왕이나 황제가 다스리는 전통적인 전제주의 국가였다.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에 공포한 국가야말로, ‘건국’(建國)이 아닌가! 광복회를 이끄는 정신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화합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동이불화(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분별없이 동조하고 이익을 좇고 반대편을 무시하고 편 가르기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의 존망 앞에 초개같이 목숨을 버렸던 선조들이 오늘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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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왜 건국절이 문제가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