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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헌법 수호 의지는 민주 정치의 시금석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혼란스럽고, 가치(價値)의 상실을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마치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몸체가 송두리째 공중에 들려올려지는 것과 같은 어지럼증이 느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사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삼권분립(三權分立)을 침해하는 일들까지 서슴지 않고 벌이고 있어, 자칫하면 국가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요동(搖動)을 겪지 않나 우려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소위 ‘내란특별재판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특검에서 피의자에 대하여 영장을 청구하자, 이를 법원에서 기각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내란특별재판부를 만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즉 헌법 제101조에서 사법권은 법원에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외부나 정치권에서 억지로 다른 차원의 재판부를 만들었으나, 나중에 재판부 구성 자체가 무효가 되는 위헌 결정이 나오면, 특별재판부의 모든 결정은 무효가 되어, 국가적, 사회적 혼란을 상당히 겪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권력이 당장 힘이 세다고 하여, 무리하게 이런 일들을 추진하고 강행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합헌성, 합법성,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 하락은 물론, 전체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내란특별재판부’는 3가지의 위헌성이 있다고 한다. 먼저 헌법 제101조 1항에서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되어 있는데, 어떤 사건과 법관을 구성하는 것과, 어떻게 재판부를 꾸릴지는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므로 이를 침해할 수 없다. 또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데, 정치인 등이 자신들의 뜻대로 재판을 명령하는 것은 사법부의 영역인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 되어, 행정, 입법, 사법부의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헌법 제104조 3항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여기에 맞지 않게 정치인과 변호사 등이 추천한 사람을 내란특별 재판관으로 임명한다면, 이것도 위헌이 된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도 특별재판부가 ‘무슨 위헌이냐’고 하여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선출 권력과 간접 선출한 권력이 있다면서, 이를 마치 서열화하는 발언까지 하여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국민의 뜻으로 간주하는데,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민의 뜻’으로 포장한다면, ‘국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이 된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국가를 위하여 바른길을 가고, 정당한 결정을 해 주기를 바라지만, 지금처럼 헌법을 뛰어넘는 정치적 발상들과 일방적 개혁 주장은 오히려 국가의 근간(根幹)을 뒤흔드는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일반 서민들은 작은 법률 하나만 어겨도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헌법조차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매우 부당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 헌법 체계가 한번 무너지면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 국민들은 헌법을 파괴하면서까지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막강한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주장까지 하였는데, 이는 권력의 남용이다. 국민들은 삼권분립이 이뤄져, 어느 한쪽 권력도 전체주의, 독재주의를 못하도록 하는 것을 원한다. 권력은 삼권분립을 또렷이 하여, 견제와 균형, 협력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권은 보장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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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시 112:1~6)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1-3절) 하나님 모시기를 진정으로 귀히 여기며 주님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알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하나님을 자기 정욕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게 됩니다. 각자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경향이 많다 보니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과 지침이 있으니 바로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가지고서도 신학적인 노선이 나뉘거나, 혹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나 적용을 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환경과 마음 밭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볼거리가 많고 할 거리가 많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마음 판에 새기며, 그 말씀대로 적용하며 사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10월은 종교개혁이 진행되었던 달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습니다. 즉 개혁의 주된 배경이 된 것은, 교황청이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자금을 위해 면죄부(indulgentia)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면죄부 판매를 반재하고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인 이 사건으로 인해 루터는 로마 교황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로 주목받게 되었고, 교황인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칙서를 보내 이단 혐의를 경고했습니다. 루터는 보름스 회의에 소환됐지만,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붙들려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결국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고,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무법자로 선포됩니다. 루터는 처형당할 위험에 처하자 약 10개월간에 걸쳐 이름도 가명을 사용한 채 한 성에 숨게 됩니다. 이 은신기간 동안 루터는 거기에서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됩니다. 복음증거와 진리의 선포를 위해 핍박받는 기간은 고통의 기간이지만, 이 기간이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이며, 개인적인 은신기간이고, 우리 삶의 미래를 준비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뤄나갈 중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루터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성경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알 수 없는 말(라틴어)로 거행되는 장면을 보는 예배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인 독일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민중들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쥐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1절).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귀히 여기고 즐거워하며 지혜를 얻기 바라는 진정어린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자녀들은 땅에서 부강할 것이며, 정직한 자의 후손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집에는 부요와 재물이 있을 것이며 그의 의로운 행위는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비추시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3-4절).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에게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사람과 자기 일을 정직하게 수행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임(5절)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러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6절).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주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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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언론회 논평] 교회를 적으로 돌려 정권에 유익이 되나?
    최근 이재명 정부가 교회에 대한 핍박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부산세계로교회의 손현보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세계 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세계침례교단 회장을 지냈고,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더니, 이제는 ‘특검’에서 출석하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왜 역대 정권에서 하지 않던, 일들이 새 정권에서는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 이는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월 25일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만나는 현장에서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새 정부에 의해 교회에 대한 급습 소식은 나쁜 소식’이라고 하였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일수록 종교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정권은 교회에 대하여,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침해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코로나로 인하여 마음대로 예배를 변형시키고, 현장 예배를 중단케 하였다. 명백히 ‘종교 탄압’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해외에서 우려하는데도,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와 인물들에게 참고인이라면서도 압수수색을 했고, 영장을 발부했다. 또 다른 다수 교회들에 대해서도 사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권력으로 종교를 억제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종교를 적으로 돌리고,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옭아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시행하려고 할 때, 정권의 몰락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손현보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선거법’ 때문이라고 하는데, 만약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하여도, 굳이 현직 목사를 구속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또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처럼 전권을 휘두르는 특검이 90이 넘은 원로 목사를 특검에 출두시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법조계에서도 과거의 정권들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종교인들이 설령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국가가 바로 되기를 바라는 양심에 의한 것이지, 특정 정치를 옹호∙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도 정권과 사법당국이 종교와 종교인을 함부로 대할 때, 결국은 정권이 막대한 부담만 떠안게 될 것이다. 헌법 제20조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원칙을 말하지 않아도, 새 정부가 보이고 있는 ‘종교관’은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정치나 권력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권력 쟁취가 목적이겠으나, 종교는 그렇지 않다. 신(神)에 의한 신성한 계시와 말씀을 따라, 세상의 불의와 불법과 부정에 대하여 옳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타협이나 명령이나 억압으로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언제나 종교에서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런데 작금에 벌어지는 행태는 종교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종교와 종교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있다.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를 자신들에게 굴복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보거나, 세상에다 종교 지도자를 ‘망신주기’식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보는 순간, 불행은 싹튼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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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별들이 풀잎의 미소로 웃어주는 밤”
    추석 시즌이 되면 저에게 두 가지 생각이 들어옵니다. 어린 시절 떫은 감을 우려먹고 떡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소년 시절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이런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그런데 목사가 되고 나서는 추석 시즌이 돌아오면 근심에 빠집니다. 대부분 추석날을 중심으로 해서 대체 휴일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아무리 대형교회라 하더라도 최하 3분의 1 이상 빠져나갑니다. 고향을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해외로 여행을 많이 가거든요. 물론 우리 교인들은 너무너무 성숙해서 주일 낮 예배는 드리고 고향을 가든 해외여행을 가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난 주일에도 큰 타격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추석날이 주일이었는데 진짜 그때는 코로나 시대를 방불케 하더라고요. 그래도 올해는 추석이 월요일이어서 꽤 많은 분들이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추석이 와도 놀 일이 없으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고 산행을 하고 그러다가 서재에 와서 책을 보는 일이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날은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날은 저희 외손주들과 함께 에버랜드를 다녀왔거든요. 특별히 지프차로 사파리를 돌고 왔습니다. 제가 그런 곳을 안 가봐서 설레고 즐거웠겠습니까? 저는 케냐 국립공원, 탄자니아의 응고롱고(Ngorongoro) 국립공원까지 다 가 봤습니다. 거기 가서 얼룩말, 사자, 코뿔소, 기린, 표범 다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케냐 국립공원에서는 사자들이 다리 밑에 있더라고요. 문을 열고 제가 사자 쪽으로 향했어요.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통 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큰일 납니다. 목사님이 사자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은 두 번째고 소 목사님의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 저는 절대로 사파리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목사님, 제발 들어와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차로 들어간 적이 있는데요. 그 선교사님이 하도 사정을 해서 돌을 딱 하나 던졌어요. 그랬더니 숫사자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숫사자가 저한테 달려오지도 못하고 피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사파리를 외손주들과 함께 다녀왔더니 애들이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저도 좋았습니다. 사파리 투어를 하면 지프차 바깥 철조망에 고기를 걸어놓거든요. 그러면 사자나 호랑이가 와서 고기를 물고 갑니다. 그때가 가장 스릴이 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몇 근 가지고 가서 주고 싶었는데, 규정상 안된다고 에버랜드측에서 고기를 넉넉히 준비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지프차 기사님께서 고기를 큰 통에 가득 가져다 주셨습니다. 저도 손주들과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갖다 보니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산행도 많이 하고 골프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하며 골프도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골프를 터부시한 적은 없지만, 너무 목회에 전념하다 보니까 골프장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걱정입니다. 골프를 치다 보면 너무 골프에 빠질까 봐서요. 너무 승부욕에 집착해서 교회에 있는 시간보다 골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의 몸이 건강하고 회복되는 것이죠. 물론 저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생에 대한 미련, 아쉬움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얼마나 쓰임을 받았는데요.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 볼 거 다 해봤습니다. 다만 아직 저의 사명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아서 저의 몸을 돌볼 뿐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 몸이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수시대를 꿈꾸는 것입니다. 에버랜드에 가는 걸 외손주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그 어린아이들처럼 순수시대를 꿈꾸며 제 마음속에서 언제나 동녘 하늘이 사라지지 않고 깊은 밤이 다가올수록 제 마음에는 반짝이는 별빛이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죠.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아침에는 동녘 하늘을 품고 어두운 밤에는 반짝이는 별빛을 비추며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다고 했지 않습니까?(눅18:16) 항상 저도 어린아이가 되어서 추석을 맞는 것처럼, 에버랜드에 가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밤은 별들이 바람에 스치우며 풀잎의 미소로 나를 향해 웃어 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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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10-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는 정말 아는가”
    저는 단국대 병원에서 8일 정도 입원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한 주는 외출을 하여서 제가 주일날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마는. 우리 장충식 장로님의 배려로 원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모든 간호사들이 저를 VVIP로 배려하고 섬겨주셨습니다. 저는 분당서울대병원에 VIP 고객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만, 어디를 가도 단국대 병원만큼 대우를 받고 페이션트 퍼스트로 우대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 병원에 가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는 다 받아봤습니다. 머리 MRA와 MRI, 또 머리 PET-CT, Chest PA와 전신 PET-CT 할 것 없이 다 찍어봤습니다. 최신 의료기기를 통해서 저의 머리와 전신을 다 찍습니다. 그냥 찍지 않고 조영제를 맞으며 찍습니다. 저는 공황장애나 폐쇄공포증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촬영 기간에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계를 향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네가 내 전신을 다 찍을 수는 있겠지. 특별히 네가 비록 나의 뇌 사진을 찍지만 내 생각까지 알 수 있겠니? 나의 가슴 사진을 찍는다 한들 내 마음의 열정, 내 마음의 사랑을 찍을 수 있겠느냐. 나의 생물학적 현상을 찍을 수는 있어도 결코 내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정열, 내 머릿속에서 여전히 회전되고 있는 창의적 감동과 아이디어, 그건 못 찍겠지. 더구나 나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오직 사명, 오직 교회의 삶을 살아온 것을 10분의 1이라도 알 수 있겠느냐. 광주신학교 채플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던 그 심장을 너는 기억할 수 있느냐. 5.18 광주 민주항쟁 때 목숨을 담보로 하고 금남로 길을 걸어갔던 나의 추억을 너는 기억할 수 있겠느냐. 허구한 날 무등산기도원에 가서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함으로써 내 심장에 새겨진 거룩한 낙인(스티그마타, Stigmata)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백암교회를 개척하면서 그날이 오면(이사야 26:1)이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잠 못 이루었던 그 깊고 푸른 밤을 너는 기억해 낼 수 있겠느냐. 가락동 시절, 정자동과 구미동 시절, 너는 내 머릿속에서, 가슴 속에서 나의 생애, 가슴 저리고 눈부셨던 날을 기억할 수 있겠느냐.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건축하면서 통일 한국시대에 민족의 지도자와 피스 메이커를 배출하는 꿈을 꾸었던 그 비전과 드림을 너는 100분의 1이라도 알 수가 있겠느냐. 아버지,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저 먼 남원에서 올라와 주일 사역을 하고 다시 내려갔던 일, 코로나 시절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며 일부에서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를 달랠 때는 달래고 싸울 때는 싸우고 방역본부와 협상하며 한국교회를 지키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었던 그때 나의 애간장을 태웠던 일을 천분의 1이라도 찍어낼 수가 있겠느냐.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너는 나에게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향하여 심장이 뛰고, 오히려 내 입에서는 따뜻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느냐.”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때로는 25분, 때로는 30분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 촬영을 하기 위하여 조영제를 맞고 그 조영제가 전신에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1시간 동안 암실에서 기다릴 때가 있었지만, 저는 그때에도 저의 가슴과 눈, 그리고 호흡은 그 암실마저도 따뜻하고 환한 방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진 판독 결과 별 특이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거 보시오. 내가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마 별 이상이 있다면 내 마음에 강박이 있을 뿐이고 거룩한 부담만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 강박이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해서 그렇지, 나의 몸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않소.” 성경을 보면 모세가 얼마나 심한 강박에 시달렸습니까?(민11:11-13) 신약의 사도 바울도 얼마나 마음에 눌린 눌림과 거룩한 강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까?(고후11:28) 어떠한 최첨단 기계라도 이런 눌림과 강박을 알아주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만이 알 수 있습니까? 저의 심령을 꿰뚫고 계시고 심장과 폐부를 보시는 우리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 신령한 근심에 동참한 사람들만이 알아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주일설교를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자다가도 꿈을 꾸면 저는 분명히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있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병원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40년 이상을 그리 살아왔던 저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명의도 저의 강박을 100% 고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좀 다운시킬 뿐이겠죠. 그 강박을 완벽하게 고치신다면 하나님만이 고치시겠죠. 그렇지만 주의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강박이 있어야지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갈 때에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 주일설교를 듣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똑같은 것 같은데 성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번 주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성도들을 찾아가서 더 좋은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저의 불면을 수면으로 회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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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10-0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다윗의 선택’(삼하 24:18-21)
    오르난은 아라우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여부스 사람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 산에 타작마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설 거룩한 장소로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대하 3:1) 본문을 보면,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라고 다윗은 말하였습니다. 이 타작마당의 배경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어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삼하 24: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갓을 보내 세 가지 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년 기근을 당하든지, 원수에게 쫓겨 3개월 동안 도망다니든지, 3일 동안 전염병을 당하든지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삼하 24:13)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갓의 말을 듣고 전염병을 택하자 이스라엘에 3일간 전염병을 내리셔서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삼하 2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은 갓의 지시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아라우나로부터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그러자 아라우나는 모든 것을 다윗에게 다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삼하 24:22-23) 그러나 다윗은 내가 값없이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며 은 오십 세겔을 주고 타작마당과 소를 샀습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삼하 24:24) 이 값은 금 600세겔에 해당됩니다.(대상 21:25) 다윗이 엄청난 금액을 주고 타작마당을 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번제 드리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주님께 온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산 다윗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번제단에 불이 임하였고, 그 땅을 위한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의 재앙이 그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 24: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은 불로 현현하셨고, 다윗의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내린 전염병을 그치게 하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천사에게 명하셔서, 그의 칼을 칼집에 다시 꽂게 하셨습니다.(대상 21:27) 다윗은 회개하는 왕이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지적했을 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삼하 12:13)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회개의 눈물입니다. 우리가 후회하면서 살면 과거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면서 살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행 3: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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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소서’ (시 107:10~17)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11절) 밝고 환한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모습 속에는 자유로움과 행복함이 들어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기쁨이 성도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환경이 갖춰진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에서도 천국과 같은 분위기, 천국과 같은 환경을 닮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를 오래 할수록 쓰디쓴 경험이 많이 쌓이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 47:8-9).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고난의 여정이었으며,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부근에서 냉동 컨테이너에 실린 트럭에 39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집단사망 사건은 불법 이민을 시도하던 중 발생한 참사로, 사망자 전원이 베트남 사람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망자는 남성 31명, 여성 8명으로 모두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이었습니다. 냉동 컨테이너 내부 온도는 영하 25도 이하로, 최소 10시간 이상 밀폐된 채 갇혀 있다가 추위와 산소 부족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은 영어 사용과 일자리 기회가 많아서 불법 이민의 주요 목적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최고로 살기 좋다는 꿈의 나라로 향하기로 결정했을 그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영어도 좀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브로커에게 지불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고 그러한 길을 택한 것일까요? 비록 적절치 못한 불법적인 방법이지만, 더 밝고 환한 인생, 자유롭고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이 처해있는 험악한 상황과 험악한 세월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더 이상 이런 슬픈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밝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 비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빛은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매여서 사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자기는 물론, 가족과 연결된 모든 죄악의 사슬이 끊어지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우리를 낮추신 것을 깨닫고 속히 순전한 주님의 뜻을 사모하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며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13절). 우리를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얽어맨 사슬을 끊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험악한 세월을 통과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외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서 건져 주시며 새로운 소망의 빛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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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불면의 밤이 숙면의 밤이 되게 하소서”
    저만큼 열심히 달려온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의 달려갈 길을 거의 한 번 쉬지도 못하고 달리고 달려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은 일반 목회자들의 100배 그 이상으로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새에덴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위하여 제가 해온 일은 우리 성도들과 주님도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일찍부터 스쿠크법을 막아내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면서도 동성애만큼은 반대하고 종교인과세를 대처하였고,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코로나 팬데믹 중에 정부와 잘 대처하며 현장예배를 지킨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저의 사역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 몸이 지치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장년여름수련회가 끝나면 저 먼 곳으로 떠나 좀 쉼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발톱 부상으로 멀리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저는 교회 강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소개하면서 검진도 받고 건강 체크도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원 가는 걸 엄청 싫어하거든요. 지난 연말 전기장판으로부터 발뒤꿈치 화상을 입고도 저는 연말 일정을 감당해 왔습니다. 루체비스타 성탄절, 신년축복성회를 끝내고 나서야 어느 대학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원칙적이고 고지식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제 마음에 큰 트라우마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가는 것이 정말 부담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님들, 저희 집사람, 자녀 모두가 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지만, 저를 사랑하는 수많은 교인들이 “제발 담임목사님이 병원에 가서 쉬며 치료를 받길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데도 왜 그런지 그런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구역질이 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밥을 잘 먹고 소화력이 좋았던 사람이었는데, 병원 가는 것을 약속했을 때 입맛이 떨어져서 식욕부터 떨어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밥을 먹자 먹은 것을 토해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월요일에 병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 이윤형 목사님 천국 환송 예배를 집례해야 하기 때문에 화요일에 왔습니다. 장충식 장로님의 각별한 배려로 병원장님과 여러 전문 교수님들의 협진으로 저의 온몸에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MRA, MRI, Chest PA, 패시트, 피검사, 소변검사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분석한 바로는 큰 문제는 없지만 남은 것은 불면 치료였습니다. 병원에 온 날은 몹시 불안하고 초조하였습니다. “꼭 이곳에 와야 하는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가...” 저에게 하소연하며 병원으로 데려온 집사람이 원망이 될 정도였습니다. 퀴블러로스가 말한 대로 병원에 온 그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하루 저녁은 아무리 약을 쓰고 주사를 놔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을 못 자니 눈이 쓰라려서 옛날 안면 마비가 왔던 왼쪽 눈이 가려워 비비고 비볐습니다. 그러자 눈을 뜨지 못할 정도가 되었죠. 당장이라도 퇴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원장님과 저를 집중 치료하시는 교수님이 제 마음을 달래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지금까지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헌신을 다 드리신 것 인정합니다. 수많은 영혼을 섬기고 한국교회를 향한 사역 그 자체를 존경하며 인정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저희들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조금만 우리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인간은 정신과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몸이 추슬러져야 정신력과 영혼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희를 믿고 제발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습니다. 원하는 기간 동안 저도 믿고 따를 터이니 주일날만큼은 외출을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오후에 돌아오겠습니다.” 그 협상은 바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에는 성도들 앞에 가서 설교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조금씩 수면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잠드는 사이에 꿈을 꾸어도 퇴원하여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미국에 집회를 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보니 현실은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제 정신력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오로지 교회이고 설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금요일인데, 두 날 밤만 지나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이걸 생각하면 가슴이 또 설레고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좀 더 잠자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불면의 밤과 숙면의 밤사이에 있는 제가 온전한 숙면의 밤을 맞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틈에 오래오래 쉬어 있다가 다시 비상하고 솟구치고 웅비하듯이 다시 한번 제 사역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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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세 가지 기도’(눅 11:2-4)
    기도는 하나님과 성도 간의 대화이자 영적 교제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름 안에 모든 복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복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거짓된 교리와 부정직한 생활을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세 가지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은 꼭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새번역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식을 위한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육을 위한 기도이면서 우리 영의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육을 위한 양식도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매일 새롭게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현실에서 무슨 의미인지 살펴봅니다. 1) 내일에 대한 염려를 잊고 오늘 하루의 삶을 감사하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마 6:34) 내일은 주님의 것이기에 매일 하루의 삶이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을 갖고 있던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하고 무익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아 물질을 얻기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3)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노력해서 정직하게 얻어야 합니다. 4)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직장도 있어야 합니다. 학교 등록금, 병원비, 사업, 취직 등을 위한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6) 매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루 먹을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는데, 하루분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분의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많이 거둬서 쌓아두고 먹으려고 했지만, 그 음식은 하루만 지나면 부패되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출 16:15-20) 둘째,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민족 등 다른 사람의 죄도 같이 통감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사람이 하나님께 지고 있는 부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값없이 용서받아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시험에 들지 말게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다양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항상 공격하며 넘어뜨립니다. 시험에는 test와 temptation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유혹’입니다. 유혹은 상대방을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즉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지요. 가룟 유다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께서 장차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마 16:21-23) 마귀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도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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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신앙에도 유전이 있는가
    제가 최근에 전립선비대증으로 소변을 보는데 이따금 장애가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그러셨기 때문에 유전이겠거니 생각하며 동네 어느 비뇨기과에 가서 처방을 받았지만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CBS 이사회를 가는 중에 연세탑비뇨기과에 갔습니다. 그 병원은 제가 요로결석이 생길 때마다 돌을 정확하게 깨준 병원이었거든요. 제가 원장님 방으로 들어가 기존에 처방받은 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장님이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걱정 마십시오. 소변을 시원하게 보도록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실제 그 약을 먹고 나니까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돌아오면서 유전이라는 걸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유전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신앙에도 유전은 있지 않을까?” 신앙에도 유전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권사님과 피 한 방울 물려받은 일이 없습니다. 성격도 많이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적으로 정 권사님의 신앙적 유전인자를 대부분 다 물려 받았습니다. 정권사님이 그러하듯 젊은 시절부터 오직 주님, 오직 교회, 오직 목회밖에 몰랐습니다. 정말 영적 역설적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한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중에 하나가 되고, 저 역시 교단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하며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잘 자라고 성도들도 모두 유순하고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수24:31) 이 말씀은 칭찬의 말씀일까요, 견책의 말씀일까요? 얼른 볼 때는 칭찬하는 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성경을 깊이 보거나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는 이 말씀에는 견책이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소견대로 행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며 죄의 길로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삿2:10, 2:13-14, 17:6) 여호수아와 장로들도 사람인지라 웬만큼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어느 정도 복을 받으니까 안주하여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목숨을 걸지 않았습니다. 즉 신앙의 유전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새길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부족하지만 저의 생명나무 신앙, 로드십 신앙, 영적 역설적 신앙의 유전인자가 우리 성도들에게 잘 이어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우리 성도들의 자녀들 역시 이런 은혜, 이런 영적 유전인자가 잘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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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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