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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8
    노벨상을 타는 지혜교육(知慧敎育)의 실제이제 한국의 어머니들의 유아교육과 유대인들의 유아교육을 비교하면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바른 인간성이 살아나는 교육으로 진행되는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한국 어머니들의 유아교육한국 어머니들의 유아교육은 전무 하다시피 자기가 타고난 팔자대로 산다고 하면서 방치합니다. 개가 강아지를 키우듯이 동물적으로 그냥 먹을 것 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한국 어머니들의 유아교육 현실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지식에 눈뜨려고 하면 유아교육 전체를 텔레비전에 맡겨버립니다. 텔레비전을 봐야 말도 빨리 배우고 텔레비전을 봐야 글자도 빨리 익힐 수 있다고 하면서 유아교육 전체를 텔레비전에 맡겨버립니다. 텔레비전을 어느 교육가는 바보상자라고 합니다. 심한 말을 해보면 금쪽같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바보교육을 시키는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식(子息)들에게 우리는 텔레비전에 교육을 맡겨 놓았습니다.또다른 부류의 어머니들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텔레비전에 교육을 맡겼다가 식상할 정도가 되면 사교육 프로그램 교육이라는 경쟁교육으로 내몹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경쟁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쟁 음악교육, 경쟁 지능교육 등 돐이 채 되지도 않은 아이에게 돈으로 교육을 시킵니다.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에게 어릴 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어머니들이 자기의 자녀들에게 인성교육을 해 주질 못하고, 학원교육만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렇게 사랑하는 자녀들이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으로 멍들고 있는 데도 이 교육을 받아야 만이 가장 양식있는 교육을 사키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공부는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국의 교육은 과정보다도 결과만 좋으면 그 중간에 잘못된 것들은 모두 다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의 어머니 교육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유대인들의 어머니 유아교육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배경에는 독특한 민족을 이루는 방식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되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누누이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선민교육에서 하나님이나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무엇이든지 헌신하는 것을 가르칩니다.우리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그 아이는 분명히 한국인(韓國人)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그 사람은 혈통적(血統的)으로 유대인이 분명한데도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그 속에서 나온 자식은 혈통을 따지지 않고 유대인으로 인정하고 자라납니다.나라 없이 민족의 공통점을 찾아주며 세계의 석학들을 쏟아내며 인류문명을 발달시킨 과학자들과 세계를 움직이는 금융, 경제, 기술, 무기, 생명공학, 유전자공학 등 모든 분야에서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바로 어머니의 교육이라는 엄청난 원동력이 있습니다.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끈질기게 유대인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어머니들의 유아교육에서 기인하고 완성됩니다.한국인들은 제사(祭祀)라는 의식을 통해 가문과 혈통 의식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효(孝)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이들에게 성경의 인격을 가르칩니다. 성경의 인격교육으로 헌신을 가르치고, 헌신을 통해서 국가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는 소명의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유대인 어머니들의 유아교육은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유대인 의식을 강조하여 세계 각국을 유랑(流浪)하면서도 유대 민족의 일체감(一體感)을 갖게 하였습니다. 유대인 어머니들의 유아교육은 국가 통합을 이룩하는 데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오고 있습니다. 유대인 어머니의 교육은 젖먹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 교육은 실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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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0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7
    교회교육의 위기일주일 중에서 6일 간은 세상교육에 투자를 하고, 교회교육은 딱 한 시간으로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주일예배 한 시간으로 온전한 주일성수는 이미 오래 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교회를 다니는 학생들도 주일학교 예배 대신에 학원가고 공부하는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장년 위주로 시간과 공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부족한데 교회교육이 어찌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까?.그러나 교육만큼 커다란 열매는 없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그 영혼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타락되어 있고 강팍합니다. 저들의 마음밭은 딱딱한 돌밭이 되어 복음의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을 만큼 신앙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과감히 주일학교 교육에 일대 개혁을 해야 합니다.교회교육이 흥미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교육이 탤런트나, 연예인들 이나, 인기스포츠 선수를 초빙하여 아이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일회성 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예배 참석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효(孝)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참석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극기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3~5일간 몰입하는 교육훈련이 필요합니다. 병원과 불우이웃을 돌아보는 헌신과 봉사의 교육을 접목하여 사랑의 실천교육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방학 때에 5박6일의 특별참여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배참석을 유도하는 예절교육의 시간들을 많이 개발해야 합니다. 교회교육은 어릴 때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교육을 밑바탕에 심고, 교회와 학교에서도 믿음의 교육을 바탕으로 인간성이 먼저 확보되고 난 후에 세상의 인문과 자연의 경험교육을 가르치면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될 것입니다.노벨상을 타는 지혜교육(知慧敎育)의 실제인간성 회복 유아교육(幼兒敎育)사람은 하얀 도화지와 같다고 합니다. 푸른 물감을 그리면 그 푸른 색깔이 평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아무리 빨간색을 칠해도 그 근본이 되는 푸른색 같은 평생(平生)을 남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얀 도화지 위에 빨간 물감을 칠하면 그 붉은 사상(思想)은 평생을 남아있게 됩니다.마찬가지입니다. 노란 색깔, 검은 색깔, 온갖 색깔이 칠해져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원래의 하얀 색깔, 순수(純粹)하고 착한 색깔은 어느새 이세상의 색깔에 칠해져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유대인들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님을 칠하고 있는데, 우리는 교육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이들에게 갈등(葛藤)을 칠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재고해 봅시다. 하얀 바탕 위에 어떤 색깔을 칠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유대인의 유아교육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知慧)를 가르칩니다.교육의 특징이 하나님을 알게 하여 선(善) 과 악(惡)의 분별을 알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식적으로 가르칩니다.우리는 나도 모르게 금쪽 같은 귀한 아이들에게 경쟁(競爭)의 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아기 때의 교육을 우리는 너무나도 간과해 버리고 애들은 자기 타고 난 팔자대로 사는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주의로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윤회교육(輪回敎育)의 자락에 버려져 있다 보니 일찍부터 포기하는 섭성에 젖어버렸습니다.이제 한국의 유아교육을 살펴보겠습니다. 유아교육은 어머니의 품 속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도 배우면서 아이들에게 자연히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인생의 시작인 유아교육을 하나도 해 주질 못하고 있습니다.세계의 모든 지식과 문화, 교육, 화학, 생명공학, 물리, 무기, 신지식, 신기술, 금융 등 학문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2000년 간이나 나라 없이 민족끼리 뭉쳐서 같이 살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이 이렇게 성공한 이유는 어머니들의 유아교육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은 세상 경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가르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절대교육입니다. 이 교육은 아이에게 평생에 뇌리에 남게 되는 평생교육의 밑바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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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12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6
    교회교육의 위기공교육(公敎育)의 위기, 국가교육(國家敎育)의 위기에 이르도록 그 동안 교회의 교육(敎育)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요 교회의 교육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 세대 이전에는 교회가 이 나라의 공교육을 리드했습니다. 우리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상록수 같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보세요. 이 나라의 기초를 닦으신 분들의 근본을 보세요. 모두 기독교교육을 실천했던 분들입니다.모두 교회교육을 통한 실천이었고, 교회교육을 통한 근본교육이요, 교회교육을 통한 사랑교육이었습니다.그러나 현재의 교회교육을 들여다보세요. 주일학교 유아교육, 주일학교 초등 전반기 교육, 주일학교 초등 후반기 교육, 교회학교 중등교육, 교회학교 고등교육, 교회학교 대학교육.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프로그램은 있으나 모두 사문화 되고 교육은 어디에도 없습니다.흔히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를 우수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교육은 흔적만 있을 뿐이지, 사회교육(社會敎育)으로, 공교육(公敎育)으로, 학교교육(學校敎育)으로, 교육의 인적자원들을 도무 빼앗기고 교회교육은 없습니다.교회를 잘 다니고 믿음의 교육으로 무장한 분들도 자녀가 유아 때는 교회의 유아원(幼兒園)을 다니며 예수님이 좋아요 하늘보다 바다보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좋아요 하고 믿음의 교육을 잘 받습니다. 그러나 유아원을 졸업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교육에 더 힘을 쏟고 교회교육은 외면합니다.왜 그럴까요? 교회교육이 학교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가족이다 보니 믿음의 교육으로 주일학교 초등교육의 과정을 마치고, 이제 중고등부로 올라갑니다. 중고등부의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고3만 되면 교회학교에 아예 출석을 안합니다. 고3 입학시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학입학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모두 눈감아 줍니다. 심지어 교회의 목사님들의 자녀조차도 주일날 교회 나오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교회에 얼굴을 비치지만,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아예 교회조차도 발을 끊어버리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10년 후가 되면 우리의 교회를 이끌어가고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인적자원까지 부족할 것은 명약관화 합니다.세계기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교회가 이렇게 무참하게 허약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외국에서 선교사역만 하다고 돌아온 저로서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마음의 답답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 나라의 교회가 이렇게 교육에 대하여 힘을 잃었습니까?1) 교회교육의 부재입니다.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사회보다 못한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생활에 접목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세상 인본주의 교육가의 이론을 아무런 검증 없이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각 교회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경쟁교육을 무슨 금과옥조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경쟁교육은 반기독교적인 사고의 교육이론입니다. 교회말살의 교육이론입니다. 교육의 철학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교육이론입니다.교회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성경을 제쳐놓고 어떠한 프로그램이든지 온전한 교육을 성공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제치고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교육은 진실한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하나님의 성경말씀을 진리로 삼아 현실에 맞게 제대로 적용하여 가르칠 때, 인간성이 살아나고 인격이 갖추어지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2) 예배참석의 부재현상입니다.아이들에게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학원교육, 특별교육, 별별 교육을 다 가르칩니다. 그리고 주일날 오전에 딱 한 시간 예배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채 5분도 듣지 못합니다. 주일날 하루 종일 교육받는 것도 아니요, 한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온전한 기독교교육이 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교회교육의 위기공교육(公敎育)의 위기, 국가교육(國家敎育)의 위기에 이르도록 그 동안 교회의 교육(敎育)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요 교회의 교육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 세대 이전에는 교회가 이 나라의 공교육을 리드했습니다. 우리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상록수 같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보세요. 이 나라의 기초를 닦으신 분들의 근본을 보세요. 모두 기독교교육을 실천했던 분들입니다.모두 교회교육을 통한 실천이었고, 교회교육을 통한 근본교육이요, 교회교육을 통한 사랑교육이었습니다.그러나 현재의 교회교육을 들여다보세요. 주일학교 유아교육, 주일학교 초등 전반기 교육, 주일학교 초등 후반기 교육, 교회학교 중등교육, 교회학교 고등교육, 교회학교 대학교육.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프로그램은 있으나 모두 사문화 되고 교육은 어디에도 없습니다.흔히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를 우수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교육은 흔적만 있을 뿐이지, 사회교육(社會敎育)으로, 공교육(公敎育)으로, 학교교육(學校敎育)으로, 교육의 인적자원들을 도무 빼앗기고 교회교육은 없습니다.교회를 잘 다니고 믿음의 교육으로 무장한 분들도 자녀가 유아 때는 교회의 유아원(幼兒園)을 다니며 예수님이 좋아요 하늘보다 바다보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좋아요 하고 믿음의 교육을 잘 받습니다. 그러나 유아원을 졸업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교육에 더 힘을 쏟고 교회교육은 외면합니다.왜 그럴까요? 교회교육이 학교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가족이다 보니 믿음의 교육으로 주일학교 초등교육의 과정을 마치고, 이제 중고등부로 올라갑니다. 중고등부의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고3만 되면 교회학교에 아예 출석을 안합니다. 고3 입학시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학입학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모두 눈감아 줍니다. 심지어 교회의 목사님들의 자녀조차도 주일날 교회 나오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교회에 얼굴을 비치지만,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아예 교회조차도 발을 끊어버리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10년 후가 되면 우리의 교회를 이끌어가고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인적자원까지 부족할 것은 명약관화 합니다.세계기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교회가 이렇게 무참하게 허약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외국에서 선교사역만 하다고 돌아온 저로서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마음의 답답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 나라의 교회가 이렇게 교육에 대하여 힘을 잃었습니까?1) 교회교육의 부재입니다.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사회보다 못한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생활에 접목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세상 인본주의 교육가의 이론을 아무런 검증 없이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각 교회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경쟁교육을 무슨 금과옥조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경쟁교육은 반기독교적인 사고의 교육이론입니다. 교회말살의 교육이론입니다. 교육의 철학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교육이론입니다.교회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성경을 제쳐놓고 어떠한 프로그램이든지 온전한 교육을 성공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제치고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교육은 진실한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하나님의 성경말씀을 진리로 삼아 현실에 맞게 제대로 적용하여 가르칠 때, 인간성이 살아나고 인격이 갖추어지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2) 예배참석의 부재현상입니다.아이들에게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학원교육, 특별교육, 별별 교육을 다 가르칩니다. 그리고 주일날 오전에 딱 한 시간 예배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채 5분도 듣지 못합니다. 주일날 하루 종일 교육받는 것도 아니요, 한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온전한 기독교교육이 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교회교육의 위기공교육(公敎育)의 위기, 국가교육(國家敎育)의 위기에 이르도록 그 동안 교회의 교육(敎育)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요 교회의 교육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 세대 이전에는 교회가 이 나라의 공교육을 리드했습니다. 우리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상록수 같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보세요. 이 나라의 기초를 닦으신 분들의 근본을 보세요. 모두 기독교교육을 실천했던 분들입니다.모두 교회교육을 통한 실천이었고, 교회교육을 통한 근본교육이요, 교회교육을 통한 사랑교육이었습니다.그러나 현재의 교회교육을 들여다보세요. 주일학교 유아교육, 주일학교 초등 전반기 교육, 주일학교 초등 후반기 교육, 교회학교 중등교육, 교회학교 고등교육, 교회학교 대학교육.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프로그램은 있으나 모두 사문화 되고 교육은 어디에도 없습니다.흔히 이렇게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를 우수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교육은 흔적만 있을 뿐이지, 사회교육(社會敎育)으로, 공교육(公敎育)으로, 학교교육(學校敎育)으로, 교육의 인적자원들을 도무 빼앗기고 교회교육은 없습니다.교회를 잘 다니고 믿음의 교육으로 무장한 분들도 자녀가 유아 때는 교회의 유아원(幼兒園)을 다니며 예수님이 좋아요 하늘보다 바다보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좋아요 하고 믿음의 교육을 잘 받습니다. 그러나 유아원을 졸업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교육에 더 힘을 쏟고 교회교육은 외면합니다.왜 그럴까요? 교회교육이 학교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가족이다 보니 믿음의 교육으로 주일학교 초등교육의 과정을 마치고, 이제 중고등부로 올라갑니다. 중고등부의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고3만 되면 교회학교에 아예 출석을 안합니다. 고3 입학시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학입학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모두 눈감아 줍니다. 심지어 교회의 목사님들의 자녀조차도 주일날 교회 나오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 교회에 얼굴을 비치지만,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아예 교회조차도 발을 끊어버리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10년 후가 되면 우리의 교회를 이끌어가고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인적자원까지 부족할 것은 명약관화 합니다.세계기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교회가 이렇게 무참하게 허약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외국에서 선교사역만 하다고 돌아온 저로서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마음의 답답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 나라의 교회가 이렇게 교육에 대하여 힘을 잃었습니까?1) 교회교육의 부재입니다.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사회보다 못한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생활에 접목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세상 인본주의 교육가의 이론을 아무런 검증 없이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각 교회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경쟁교육을 무슨 금과옥조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경쟁교육은 반기독교적인 사고의 교육이론입니다. 교회말살의 교육이론입니다. 교육의 철학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교육이론입니다.교회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성경을 제쳐놓고 어떠한 프로그램이든지 온전한 교육을 성공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제치고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교육은 진실한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하나님의 성경말씀을 진리로 삼아 현실에 맞게 제대로 적용하여 가르칠 때, 인간성이 살아나고 인격이 갖추어지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2) 예배참석의 부재현상입니다.아이들에게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학원교육, 특별교육, 별별 교육을 다 가르칩니다. 그리고 주일날 오전에 딱 한 시간 예배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채 5분도 듣지 못합니다. 주일날 하루 종일 교육받는 것도 아니요, 한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온전한 기독교교육이 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프랜차이즈 영렘브란트는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인사동에서 ‘2015 세계어린이미술대회’를 열고 그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구호개발NGO월드비전(회장 양호승)에 전달했다. 올해로 2회를 맞은 세계어린이미술대회는 영렘브란트 미국 본사에서 주관했다. 참가자들의 작품을 모두 전시하여 많은 어린이들이 미술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도록 도왔으며 어린이미술대회 참가자 530명과 작품 전시회 방문객 900여 명의 열띤 참여 속에 성료했다. 특히, 월드비전과의 영렘브란트의 업무협약을 통해 참가비의 30%를 해외저소득층 아동들의 교육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월드비전은 ‘미술로 함께 세상을 치유해요’라는 주제로 참가자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월드비전 긴급구호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동보호심리센터(Child Friendly Space)에서의 미술치료 사업과 현지에서 아동들이 재난을 겪은 후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월드비전 홍성호 서울동지부장은 “아동미술치료는 재난지역 어린이들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앞으로도 영렘브란트와 함께 세계어린이들의 미술치료와 심리치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영렘브란트 오은정 대표이사는 “모든 아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영렘브란트코리아의 사훈을 실현하는 중요한 행사이며 건강하고 평등한 미술교육을 위한 첫걸음을 이제 시작하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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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30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5
    어린아이의 순수성(純粹性)을 회복하라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서로가 최고가 되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말 듣지 않는 개구쟁이 일수록 이마에 종이별을 하나 달아주고 대장이라고 하면 말을 잘 듣습니다.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아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어느 누구든지 자기 아내에게 어린아이 같이 투정을 부려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이 세상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 같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체의 성공한 회장님들의 얼굴, 학문으로 최고의 분야에 오르신 분들, 심지어 정치권이든지 법조계이든지 교계(敎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의 목사님들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면 모두 다 똑같은 공통점(共通點)이 하나가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모두 성공합니다. 인생의 성공비결은 우리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심성(心性)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 부분을 많이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린아이는 누구든지 안아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고 얼러주고 달래줍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어린아이가 울고 있으면 안아주고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줍니다. 너희 집이 어디니? 하고 맛있는 거 사주고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보호해주고 도와주려고 합니다.어린아이의 얼굴을 보세요. 천진난만에 미소가 흐르면서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그냥 행복합니다. 흐뭇하고 풍요와 풍성함이 느껴집니다. 눈은 얼마나 맑고 아름답습니까? 얼굴의 볼을 보세요.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볼에 뽀뽀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집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누구든지 양보해 주고 보호해 줍니다.어느 분야에서든지 일인자가 되어보세요. 쫓기는 인생이 됩니다. 누구든지 최고가 되어보세요. 반드시 밑에서 치고 올라옵니다. 치사한 방법으로까지 치고 올라옵니다. 적이 많아집니다. 적은 나를 매장시키며 죽이려고 합니다.대장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방해하는 적들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며 곤고해집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되어보세요. 어느 누구든지 나를 보호하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어서 안타까움을 보냅니다.인생의 성공비결은 적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안아 주고 싶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나를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움에 애달픔이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서로를 위로해주고, 세워 주고, 사랑하며 공존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려면 어린아이의 부분을 정확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부분을 감추고 있습니다.인간에게는 세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때 아버지, 청년, 어린아이 세 부분을 정확히 구분해 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듯이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른, 청년, 어린아이가 한 몸이면서 세 부분이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습니다.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한다고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닦는다고 회복 되는 게 아닙니다.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하면 어느 누구든지 성공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성경에 바탕을 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지나친 이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교회에서 국가보다, 사회보다 앞서나가는 인간성 회복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간성회복에 초점을 둔 교육 프로그램으로 양육하였을 때 대한민국이 세워집니다. 그리하여 공교육이 못하는 부분을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서로가 최고가 되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말 듣지 않는 개구쟁이 일수록 이마에 종이별을 하나 달아주고 대장이라고 하면 말을 잘 듣습니다.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아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어느 누구든지 자기 아내에게 어린아이 같이 투정을 부려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이 세상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 같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체의 성공한 회장님들의 얼굴, 학문으로 최고의 분야에 오르신 분들, 심지어 정치권이든지 법조계이든지 교계(敎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의 목사님들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면 모두 다 똑같은 공통점(共通點)이 하나가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모두 성공합니다. 인생의 성공비결은 우리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심성(心性)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 부분을 많이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린아이는 누구든지 안아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고 얼러주고 달래줍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어린아이가 울고 있으면 안아주고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줍니다. 너희 집이 어디니? 하고 맛있는 거 사주고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보호해주고 도와주려고 합니다.어린아이의 얼굴을 보세요. 천진난만에 미소가 흐르면서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그냥 행복합니다. 흐뭇하고 풍요와 풍성함이 느껴집니다. 눈은 얼마나 맑고 아름답습니까? 얼굴의 볼을 보세요.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볼에 뽀뽀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집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누구든지 양보해 주고 보호해 줍니다.어느 분야에서든지 일인자가 되어보세요. 쫓기는 인생이 됩니다. 누구든지 최고가 되어보세요. 반드시 밑에서 치고 올라옵니다. 치사한 방법으로까지 치고 올라옵니다. 적이 많아집니다. 적은 나를 매장시키며 죽이려고 합니다.대장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방해하는 적들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며 곤고해집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되어보세요. 어느 누구든지 나를 보호하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어서 안타까움을 보냅니다.인생의 성공비결은 적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안아 주고 싶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나를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움에 애달픔이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서로를 위로해주고, 세워 주고, 사랑하며 공존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려면 어린아이의 부분을 정확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부분을 감추고 있습니다.인간에게는 세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때 아버지, 청년, 어린아이 세 부분을 정확히 구분해 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듯이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른, 청년, 어린아이가 한 몸이면서 세 부분이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습니다.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한다고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닦는다고 회복 되는 게 아닙니다.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하면 어느 누구든지 성공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성경에 바탕을 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지나친 이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교회에서 국가보다, 사회보다 앞서나가는 인간성 회복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간성회복에 초점을 둔 교육 프로그램으로 양육하였을 때 대한민국이 세워집니다. 그리하여 공교육이 못하는 부분을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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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7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4
    청년의 본분(本分)을 회복하라한국의 교통문화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세계최고의 자랑거리였는데 이것이 박살나고 있습니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만 가르쳤지 봉사와 희생의 교육이 실천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지금 자유주의가 극대화 되어 있다는 미국사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어린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나 장애자, 또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완전히 매장을 당합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엘리트축에 들지 못합니다. 이기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우리의 청소년들이 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학교에서 봉사와 희생을 가르치는데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희생과 봉사를 실천할 나이인 청소년 때에 봉사와 희생을 가르치지 않고 서로서로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만 가르쳤습니다. 인격이 살아나는 교육이 아니라 짐승 같은, 아니 짐승보다 못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 버렸습니다.선생님이 망가졌고 학교교육이 망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위해 희생해 주신 부모님까지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어 양로원으로 현대판 고려장을 하고 있는 시대로 변해 버렸습니다.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 학교의 문제만 아닙니다. 사회의 책임은 철저하게도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마땅히 교회가 이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교회가 희생과 봉사에 인색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희생과 봉사에 앞장을 서야 하는데 자기 이기주의에 빠져서 교회가 교회다운 일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의 교육에 따라 가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교회의 덕목(德目)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는 봉사를 잘하고 희생을 했지만, 사회를 향해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정도로 교회 이기주의에 빠졌습니다.사회와 학교는 교회를 닮아갑니다. 아무리 사회가 썩어도 교회만은 그 힘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들은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희생을 한 것보다 오히려 자라나는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상급학교에 진학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희생과 봉사를 가르치지도 않았고 실천도 하지 않았습니다.교회마다 자기 성 쌓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교회의 덩치는 커졌지만 봉사와 희생에는 인색한 결과 사회가 교회를 보고 따라갔습니다. 오히려 순진하고 착한 교회의 무궁무진한 청소년들의 자원을 이용하지도 못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교육에 내몬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봉사와 희생에 활짝 문을 열어놓고 한국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청년 때의 봉사와 희생은 기본입니다.인생에서 청년 때의 봉사와 희생을 놓치면 언제합니까? 나이 많고 힘이 없으면 봉사하려고 해도 어렵습니다. 희생과 봉사는 해본 사람만이 그 기쁨을 압니다. 청소년들이 희생과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믿음직스럽습니다. 그들에게 장래를 걸어도 좋습니다.희생과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지도자도 되고 한 시대를 바뀌어 놓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잘 먹고 잘 입어서 힘이 넘쳐나 힘을 주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힙합 브레이크댄스 등과 같은 과격한 춤을 배우고 무슨 클럽이나 이상한 조직에 빠지기도 하며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 힘을 주체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봉사와 희생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회를 위한 봉사와 힘없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봉사와 희생을 유도해주면 이 나라의 교육과 이 나라의 골치 아픈 청소년 문제도 차츰차츰 해결이 되리라고 봅니다.사랑은 진정한 희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인간성회복의 교육으로 교회에서 이 부분을 개발해주고 도입해야 합니다.어린아이의 순수성(純粹性)을 회복하라어린아이는 이유 없이 그냥 좋습니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대장이 되려고 합니다. 최고의 일인자(一人者)가 되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학문에서도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의 소리를 들으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어느 분야에 있든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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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0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3
    아버지의 권위(權威)를 회복하라그러나 지금은 목사님의 권위가 실종됐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만 목사님이지 다른 교회의 목사님은 개 집사보다도 못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살려내야 합니다.소금이 소금의 본 맛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의 발밑에 짓밟히고 버림을 당하는 것처럼, 교회가 아버지의 권위를 잃어버리면 교회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간성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3.1운동 때의 일입니다. 기독교 인구가 전 국민 대비 2%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라를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서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했고 독립군(獨立軍)의 군자금(軍資金)을 교회가 마련했으며, 33인 중에 기독교인들이 16명이나 되고 불교인 1명이었고 천주교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국가 지도자들도 기독교 지도자들이 장악했었고 큰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기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전 국민 대비 30%가 넘는데도 교회의 주일 학생수는 줄어들고 교인수도 줄어듭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교회가 교회다운 맛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養育)하지 못하고 세상교육을 쫓다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이 사회에 피폐함을 초래한 결과입니다.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3:21). 이 말씀처럼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공교육에 인간성회복을 위한 교육을 첨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했으면 합니다.교육에서 사람 만드는 것이 선생님들의 사명 아니십니까? 이 나라를 살리고, 이 민족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방법은 인간성회복입니다. 인간성회복은 기독교교육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릴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모든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교육은 질서입니다. 그래서 가정에 가장이신 아버지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가정이 바로 섭니다. 바로 선 가정은 참된 교육을 통한 인격적인 관계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좋은 환경 안에 자란 아이들은 밝고 환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性品)으로 변화(變化)됩니다.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들의 권위가 서 있을 때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훈계로 아이들을 교육했을 때 이 나라의 청소년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청년의 본분(本分)을 회복해라청년(靑年)은 희망찬 미래 국가의 자원으로서 우리 사회의 활력소의 역할을 합니다. 청년은 무한한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는 행동하는 자로 활발하고 부지런합니다. 몸에서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발산됩니다. 이러한 에너지를 이웃과 사회를 위해 사용한다면 이 사회가 청년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것입니다. 허나 이 아름다운 청년들이 너무 이기적(利己的)인 모습으로 타락(墮落)하는 것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의 눈시울이 적십니다.왜 청년들이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요? 기성세대들의 인성교육의 부재(不在)가 아닐까! 되돌아봅니다.타락이라는 것 자기 할 본분(本分)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연약한 자들을 보호할 줄 알고, 질서를 지키고, 배려(配慮)할 줄 아는 마음, 책임의식을 갖는 것 등, 인간의 기본적인 본분을 망각(妄覺)하는 미성숙(未成熟)이 타락을 가져왔습니다.버스나 지하철을 타보세요.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앉아 있습니다. 그 앞에는 할머니와 아기엄마와 배부른 산모가 서 있는 데도 말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흥 재수 없어 하고 빈정대기까지 합니다. 오죽했으면 드링크 광고에서 지하철 노약자 자리를 비워놓고 “우리는 지킬 것은 지킨다.”라고 광고까지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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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2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2
    아버지의 권위(權威)를 회복하라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으로 만드실 때 성부(聖父)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지금을 이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없습니다.아버지는 장년(長年)입니다. 장년은 성숙(成熟)한 사람으로서 정서적(情緖的)이고 엄숙(嚴肅)하고 근엄(謹嚴)하면서 권위적(權威的)인 위엄(威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버지의 권위가 다 허물어지고 없습니다.당신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있습니까? 아버지의 권위 솔직히 말해서 개털 된지 오래 됐습니다.지금은 어린아이가 최고의 어른입니다. 30여년전 만 해도 아버지의 권위는 시퍼렇게 살아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출타하시면 집에 들어오실 때까지 식구들이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늦게 들어오신다고 해도 먼저 잠자리에 누우면 야단맞습니다.특히 아버지가 아직 들어오시지 않으셨는데 잠을 자거나 하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야단쳤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온 가족이 아버지 오신다는 소리에 모두 집 앞으로 마중 나가서 “아버지 이제오십니까?” 하고 인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야단맞습니다.아버지가 상위에서 먼저 수저를 드셔야 다른 식구들이 음식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버지가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출근을 해도 챙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면 야단법석입니다. 도시락을 들고 학교까지 따라갑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따라다니면서 먹여줍니다. 반찬도 아이중심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가 아이중심입니다. 아버지는 돈 벌어다 주는 기계에 불과하여 아버지는 완전히 실종되고 없습니다.이렇다 보니 사회에서도 아버지가 실종되고 없습니다. 지금은 위 아래가 없습니다. 상하(上下)가 허물어지고 없습니다. 상관(上官)을 짓밟고 올라가는 시대입니다. 학교 역시 선생님이 실종되고 없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학생들이 잘못해서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習慣)을 바른 길로 안내하고자 매로 때리거나 훈계(訓戒)하면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언론들이 선생님이 잘못인양 보도합니다.그러나 지나간 전 세대(前世代) 에서는 학교에서 아이가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집에 오면 어머니가 선생님보다 더 무섭게 야단칩니다. “네 놈이 맞을 짓을 해서 맞았지” 하시면서 오히려 호통을 칩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어머님은 그 귀한 달걀 꾸러미에다 씨암탉 한 마리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시고 아이의 귀를 잡고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것이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러니까 선생님이 용서해주세요” 하시면서 저것이 선생님 말을 듣지 않으면 몽둥이로 죽지 않을 만큼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세요. 부모가 강청을 했습니다.이렇게 선생님, 어르신들의 권위가 살아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도리는 어떠합니까? 각 계층 간의 권위나 위엄, 서로의 신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이렇게 타락되도록 무관심으로 방치해 놓은 것 사실 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이 사회(社會)는 교회(敎會)를 닮아 갑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를 보세요.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있습니까?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권위가 살아있습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가 근엄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가정에서도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위를 살려냅니다.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지고 심지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조차도 아버지의 권위가 실종되고 없습니다.제자 어릴 때에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목사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목사님이 저 멀리서 우리 집에 오시면 저는 어머니에게 뛰어가서 “엄마 하나님이 집에 오셨어”하고 어머니에게 보고했습니다. 비록 잘 드시지 못하시고 입성이 좋지 못해도 목사님의 권위가 살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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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8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1
    이번호부터 김종학목사(인간성회복운동본부 대표)의 ‘노벨상을 타는 인격교육’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서언평생을 교육에 몸 담아 온 사람들이 사람을 만들려고 평생(平生)을 가르쳤으나 사람 되기보다 영악한 짐승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만들었다고 하시는 교육가(敎育家)의 가슴에 맺힌 소리를 들으면서 현직 목사의 직함을 갖고 있는 저 역시 사실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人生)의 해가 넘어가는 이 시기에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우리들의 희망인 자라나는 청소년(靑少年)들을 바라볼 때에 그냥 조용히 침묵할 수 없어서 이렇게나마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가 고침 받고 바른 길로 돌아온 회한(悔恨)의 길을 밝혀 보려고 합니다.청소년들을 보면 나라의 미래(未來)가 보인다고 합니다.청소년들에게는 희망(希望)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교육의 문제만 해결되면 세계의 일등국가,일등시민으로 자격이 있기에 감히 신앙교육(信仰敎育)의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한국의 교육은 학교교육(學校敎育)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교육은 평생교육(平生敎育)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인간성교육(人間性敎育)을 외면하고 우선 보이는 실적위주인 경쟁교육(競爭敎育)만 시키다 보니 인격(人格)이 망가지고 가르친 제자에게서 조차도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버렸습니다.이에 공교육(公敎育)의 피해자인 청소년들에게 기독교 근본교육(基督敎 根本敎育)을 접목시켜서 공교육이 살아나는 교육을 제시하고자 합니다.지금까지의 공교육은 인문과학(人文科學)에만 중심을 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교육이었습니다. 경험(經驗)이 최고의 학문이었고, 생산(生産)이 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인격이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주의와, 물질최고주의, 과학만능주의, 거기에 더하여 쾌락주의까지 연합하여 자식이 부모를 살해(殺害)하는 시대까지 진행되어 버렸습니다.교육의 흐름이 흔들리고 인성(人性)이 무너져 타락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뿐만 아니라, 최고의 가치는 생산에 두는 물질이 최고의 목적인양 몰두하게 되었습니다.이 시대의 교육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교육기관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양식(良識) 있는 교육가들은 이 시대를 보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세계화(世界化)를 꿈꾸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이 사회는 점점 부패해지고 세상은 혼탁하여 말세라고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교육이 세상의 등불이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서 정말 가슴이 답답함을 느낍니다.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분열된 이 나라를 통일시키며, 분열된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어려운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속히 일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성이 회복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이 나라를 살리고,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을 살리고, 이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그동안 국내외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독교 근본교육만이 생명력 있는 진정한 사람을 만들 수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리하여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 청소년을 살리는 지름길은 기독교 근본교육임을 알게 합니다.첫째. 인간성회복은 사람이 되는 교육입니다.둘째, 전 국민이 하나 되는 교육입니다. 국가가 필요하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단결의 교육입니다.셋째, 더불어 사는 교육입니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잘살 수 있는 봉사와 헌신과 희생이 밑바탕에 깔린 교육입니다.기본 바탕이 되는 위 세 가지를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공교육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기독교 교육(基督敎 敎育)에 접목시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교육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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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03
  • 한국교회에 고함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바른신앙수호위원회(바수위)가 “연합기관 이단 해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성명서를 내 통합을 바라는 한국교회에 찬물을 끼얹었다.주님의 지상 최후의 명령은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고향, 가족, 친지를 떠나 문화가 다른 나라에 들어가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연합기관에서는 이단을 해제할 수 없다. 각 교단에서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그들은 왜 바수위를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한교연은 한국교회 연합단체이다. 이 단체가 바수위를 만들고 그 바수위에서 이단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필요한 단체인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주장대로 각 교단만이 다룰 수 있는 이단문제를 연합체인 바수위에서 다루면서 성명서를 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중적 행위이다.현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슬며시 대형교단에 들어가 자칭 이단감별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 이들에게 대해서는 한 마디의 말도 못하면서 전혀 이단성이 없는 분에 대해 이단으로 정죄하며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있다.류광수 목사는 개혁교단에서 철저히 검증하여 ‘이단성이 없음’을 밝혔고, 연합체인 한기총에서 개혁교단의 요구를 받아드려 한 점 의혹도 없이 한국교회에 유명한 신학박사들을 통해 연구 검증, ‘이단성 없음’으로 이단해제가 이뤄졌다.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그분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사실이며, 오히려 그분은 ‘처음부터 이단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기총에서 이단해제를 한 후 2년이 지났음에도 그 누구도 류광수 목사에 대해 이단성이 있다고 밝힌 단체나 교단, 개인이 없다. 한교연에서도 분명한 이단성을 말하지 않고 한기총 이단문제 해결 이라는 어정쩡한 표현을 하고 한국교회 연합을 바라는 성도들을 속이고 있다.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이다. 우리 개혁교단의 신학 이념도 살리는 신학이다. 교회의 역할은 죽어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먼저 믿은 성도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애써 구원한 생명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이단은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이단이 아닌데도 애매하게 이단으로 몰려 어려움에 처한 분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한 번 이단은 영원한 이단’ 이것이 한국교회의 못된 습성이다.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일평생 외치며 35만 명의 제자를 육성한 시대적인 전도자를 확실한 검증도 없이 정치적인 잘 못된 몇 사람에 의해 이단으로 몰렸는데 ‘이것이 잘 못 되었다’고 밝혔다면 한국교회는 이를 받아드리고, 오히려 그분의 전도 방법을 배워 침체된 한국교회를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일전에 어느 목사님이 “류광수 목사는 이단이다”고 했다. 그래서 그분에게 물었다. “목사님 그분 설교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분의 책을 한 권이라고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라고 대답 하면서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분에게 “그런데 왜 이단이라고 하십니까? 그분은 ”총회에서 이단 이라고 해서“라고 궁색한 답변을 했다. 그때 저는 그분에게 ”목사님 총회를 그렇게 신뢰 하십니까?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도 죽고 목사님도 죽게 될 것인데 그때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전도만 한 그분에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복음 전하려고 얼마나 고생 했느냐’ 고 칭찬하시면 그 자리에서 그분을 이단 이라고 말한 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말한 적인 있다.한기총 재심은 정말로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 이영훈 대표회장은 물론 해당 교단이 류광수 목사에 대해 이단해제가 이뤄졌기에 재심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이었지만 한국교회 통합을 위해 한 번 더 검증하고 털고 가자는 의견이 모아져 재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교연 바수위에서 ‘교단에서 풀지 않으면’ 라는 재심 무용론을 펴고 있으니 자신만 생각하고 주님의 뜻이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한교연 바수위는 침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당사자만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 하는 35만 명의 성도들을 이단 만들어 지옥 보내려는 처사로 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솔직히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목사님 얼마나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하고 게십니까?”라고...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이다. 진짜 이단들은 비판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는 고소 당할까봐 무서워 말 한 마디 못하고 잇다. 점점 침체 되어가는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말 살리는 목회가 필요하다. 우리의 전도대상자는 모든 사람, 모든 민족이다. 설령 그가 공산주의자라도, 타 종교인 이라도, 이단 이었을 지라도, 우리가 다 주님께 바로 인도해야 할 대상이다.이제 이단 만드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 믿고 ‘삼위일체 신앙’을 믿는 다면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완벽한자가 없다. 완벽해 지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우리끼리 쓸데없는 논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진짜 이단들은 기성교회 예배당을 매입하고 그 세력을 점점 왕성하게 늘려가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단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는데도 계속 이단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은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 양을 우리에 두고 산과 들로 나가 찾으셨고, 찾은 후 잃어버린 양 찾음을 기뻐하여 잔치까지 하셨다. 한국교회가 이런 주님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누구든지 주님 품에 돌아온 자는 받아드리고 함께 해야 한다. 사냥꾼도 자기에게 피하는 짐승은 잡지 않는다고 한다.이제 소모적인 이단 논쟁은 그만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 보길 바란다. 주님께서는 남을 판단하고 헤아리는 자는 자신도 그렇게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진짜 이단과 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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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2
  • 기고-장례비의 합리적 산출로 공정한 장례문화 만들어야
    병원장례식장이나 전문장례식장에서 부과하는 사용요금이 부당한 점이 많아 건전한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권익이 보호돼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자칫 장례식장측이 일반 이용자들이 장례식장 특유의 법규와 이용 절차를 잘 알지 못하는 맹점과 관습을 악용, 터무니없는 부당 요금을 부과해 손해를 입히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의 운영과 관련 불합리한 법적용을 개선코자 공정거래위원회측이 고시한 현행 표준약관이나 보건복지부측의 장사법도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조항만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기고란을 통하여 장례식장 이용자들의 의견을 감안, 불합리한 장례문화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 관계기관의 법적용의 형평성과 문제점, 각 지역의 소비자들의 피해사례, 장례식장 영업자의 입장을 듣고 전문가의 개선점과 기준 매뉴얼 입법기관 국회의원의 입법 의견을 개진하여 제시하고자 한다.현행 법규의 문제점사람이 사망하면 대다수의 유가족들은 병원장례식장이나 전문장례예식장에서 3일장을 선택, 장례를 치른다. 3일은 고인이 사망한 날부터 장지로 가는 발인하는 날짜까지를 3일로 한다. 처음에는 3일장이라 하여 안치실, 접객실, 분향실을 3일x1일(24시간)=72시간의 이용요금을 지불했으나 부당하다는 여론에 밀려 1일 요금을 24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한 시간만큼만 지불하도록 했었다.어느 날부터인가 장사 법 제29조 3항의 규정을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상상 적용하여 12시간이상이면 24시간의 요금을 내라는 문장을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 12. 14일자로 표준약관에 명시하여 주니 그 후로 소비자는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부당한 요금을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에 효심도 한 몫 거들어 부모님의 죽음 앞에 비용문제로 다투고 항변하는 것은 불경스럽고 불효로까지 여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소란 없이 참고 버텨 온 것이 자식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로 권익을 찾고자 한다.‘장례식장은 타 시설 보다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로 일반 임대료 보다 가뜩이나 더 비싼 임대료를 내는 것도 억울한데 사용하지도 않은 임대료까지 추가로 지불하는 것은 공정거래상 잘못 적용된 법규라고 항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약관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 측인 장례예식장 측의 유리한 점만 존중한 불합리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장례날짜의 산정이 2일간의 자투리 시간을 합산해 적용 한다거나 12시간 이상이면 24시간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법 조항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2일간의 짜 투리 시간을 1일 별로 분리해 따지면 하나같이 12시간 미만이지만 이들 시간을 모두 합산하면 12시간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합산 개념은 장례식장 영업자에게 유리해지고 소비자들의 권익은 제외되는 모순된 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장례식장측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 29조 3항에 근거를 두었다고 하나 법률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더구나 장사 법에는 장례식장 영업자는 장례식장 임대료와 장례에 관한 수수료 및 장례용품의 품목별 가격표는 이용자가 보기 쉬운 곳에 게시하라는 것은 제대로 명시도 하지 않았다. 단 오전 12시부터 다음 날 오전 12시까지 1일로 계산 한다’는 문장을 임의로 해석하여 장례식장에 유리하게 표준약관에 명시했다. 표준약관 제6조로인하여 소비자들이 보는 피해액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간단하게 12시간 이상이면 1일로 산정한다는 규정을 적용하여 12시간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작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275만원이 된다. 장례식장 등급과 평수에 따라 요금에 차이는 크게 난다. 서울시에서 하루에 약 130명 사망하니 대충 어림잡아 1인당 100만원으로 계산하여 130명을 곱하면 하루에 약 1억 3천만 원의 손해를 소비자들이 보는 셈이 된다. 전국적으로 1년에 약26만 명이나 사망하니 이를 100만원으로 곱하면 1년에 2,600억의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지만 장례식장은 사용하지도 않은 시간의 요금으로 2,600억원을 불로소득의 이익을 챙긴다. 정말 엄청난 액수다. 상조회사들도 소비자를 울리고 있다. 상조회사들은 하나같이 팸플릿 맨 위에-장례 발생시점부터 장지(화장)까지 장례절차 안내 및 지원이란 문구로 소비자들에게 다 지원하다고 해놓고 막상 행사를 진행하면 교묘하게 장례식장 측에 수시를 맡겨 이중부담을 시킨다. 이중부담이라고 따지기라도 하면 얼른 뚱땅 넘겼던 자택행사 시 수시/초혼 집도란 문구로 말도 안 되고 논리에도 어긋나는 핑계로 억지를 부린다. 요즈음 자택에서 장례행사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고인용품 란에도 명확하게 - 수시포, 칠성판, 알콜, 탈지면, 한지, 운아, 결관바, 초석 등을 제공한다고 수시용품을 기록해 났다. 정직해져야한다. 투명하고 공정성이 있어야한다. 후손들에게 떳떳할 것이다. 숨긴다고 숨겨지고 속인다고 속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바르게 잡았으면 한다. 지난 1월 개정공포 된 법률에도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한 느낌이다.장례예식장 측과 사용자들이 공평하게 인정하고 웃을 수 있는 명확한 세부규정과 분명하고 상식적인 산출 근거를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구조를 아예 장사 법에 적시했으면 좋겠다.<문의 1600-4417, 02-825-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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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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