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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 감림 이후 부흥과 복음 4
    율법과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4-6). 넷째로, 맹세에 대하여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3-37)고 말씀하셨다.다섯째로, 보복에 대하여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져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8-42).여섯째로, 사랑에 대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3-47)라고 말씀하신다.“살리는 것은 영이니”결국 이것은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고 말씀하시고, 사도 바울이 “율법 조문은 죽은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고 말한 대로, 현상인 육이나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본질인 영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셨다. 신약의 핵심인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기쁨의 소식’을 말한다. 그리하여 복음은 먼저 예수님께서 전한 하나님의 구원 및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가리키며(막 1:14),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강림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속죄 사역을 완성시킨 사실을 가리키며(막 1:1, 롬 1:1-4), 또한 율법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복음을 가리키기도 한다.그래서 성경은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 20:24),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 1:11),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 4:4), ‘구원의 복음’(엡 1:13)과 ‘평안의 복음’(엡 6:15)이라고 하는 것이다.옛 언약과 새 안약: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언약이라는 주제는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리하여 신약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되고 고백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분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히 10:23, 11:11).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사람이 이성과 함께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며, 그 언약의 내용은 사람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속사적으로 볼 때, 구원의 내용이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언약은 하나님의 나라와 함께 성경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다.하나님의 언약의 가장 핵심적인 약속은 성경에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는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즉 창세기 17장 7, 8절에서 아브라함의 언약, 예레미야 11장 4절에서 모세 언약, 예레미야 24장 7절에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그리고 예레미야 30장 22절에서 신약에 대한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고 성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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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7
  • 그리스도 강림 이후 부흥과 복음-2
    율법과 복음따라서 율법과 복음이란 두 기능은 동일한 말씀 곧 한 말씀의 두 기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기 때문에(롬 10:4), 칭의는 율법에 대한 인간관계를 변형시킨다. 따라서 율법이 인간을 고발하고 정죄하는 기능은 폐지되었으나, 칭의 받은 인간에게도 계속하여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폐기된 것은 의식법이지 도덕법이 아니다신학에서는 율법의 용도를 삼중적으로 이해한다. 첫째는 정치적 혹은 세속적 용어인데, 이것은 율법이 죄를 억제하고 의를 증진시키는 목적, 곧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보통 은혜의 목적을 돕는다. 둘째는 초등 교사(몽학 선생)가 되어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을 돕는다. 셋째는 규범으로서의 율법인데, 이것은 율법이 신자들의 삶의 규범으로서 신자들에게 의무를 확인시켜 주고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전통적인 개신교 신학은 율법의 세 가지 용도를, 국가와 사회의 생활과 사건들 속에서의 시민적 용도, 하나님에 대한 회심의 경험이나 과정 속에서 죄의 교사로서의 복음적 용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순종의 법칙으로서의 교훈적 용도라고 말한다. 율법의 시민적 용도는 국가의 권세에 복종해야 함을 말하고(롬 13:1-7), 복음적 용도는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하며, 교훈적 용도는 율법이 신자들의 삶의 규칙이 된다는 말이다. 율법과 복음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고, 또 율법에는 정죄의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규범으로서의 기능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올바른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생활규범인 율법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의미여기서 우리는 신자가 율법에 대하여는 죽었다(롬 7:4, 6, 갈 2:19)는 의미를 잘 알 필요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첫째로 신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길로서 의미가 없고, 둘째로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여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는 기능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셋째로 우리에게 선행을 강제하는 일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생활의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알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닮아서 우리의 품성이 어떠해야 하겠다는 표준을 준다는 점에서는, 오늘도 살아서 신자 위에 늘 작용하는 것이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의문(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 2:150라고 했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고 했다.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의문에 속한 율법 곧 속죄와 제사와 음식에 관한 의식법은 폐하셨으나, 믿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도덕(윤리)에 관한 법은 오히려 더 완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것은 다음과 같다.첫째로, 살인에 대하여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모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고 말씀하신다.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라고 한다. 이것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분노와 같은 것으로서, 심리적인 살인과 같은 것에 해당되어 마음의 살인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둘째로, 간음에 대하여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 28). 이것은 음욕을 품고서 여자를 쳐다보는 행위를 간음행위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셋째로, 이혼에 대하여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그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1,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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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0
  • 그리스도 강림 이후 부흥과 복음-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후에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5)고 하셨다. 그리하여 모세는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 6:25)라고 하였고, 솔로몬은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잠 20:7)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 3:12)라고 한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열어 놓으신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말한 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고(롬 10:10)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히 10:38).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율법과 은혜가 다 필요하고, 구약(율법)에서 신약(은혜)으로 발전하여 나아온 것과 같이 율법은 은혜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 사도 요한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고, 성경은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고 있다. 그러나 은혜와 율법은 모든 세대 안에서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다.복음 : 기쁜 소식율법은 통상 모세오경을 의미하며,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서 ‘구원의 복음’(엡 1:13)을 말한다. 이 ‘복음’이라는 말은 구약의 이사야(사 40:1-11, 52:7-8)의 ‘기쁜 소식’에서 나온 말인데,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와 세계 창조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에 관한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다. 그리하여 이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다시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개혁교회는 처음부터 은혜의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의 두 구성 요소가 되는 율법과 복음을 구별했는데, 이와 같은 구분은 신약과 구약의 구분과 같은 것이 아니고 내용으로 구분한 것이다. 율법에는 명령이나 금령의 형태로 된 하나님의 뜻 전체가 포함되고, 복음에는 신구약을 망라하여 화목의 사역에 속한 것,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추구하고 구속하는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이 포괄되어 있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복음 안에 율법이 있고, 또 율법은 복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율법은 인간의 마음에 죄를 상기시키므로서 회개를 일깨우는 반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일깨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하여 율법의 사역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복음 사역의 예비라고 할 수 있다. 양자가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은혜의 방편에 필수불가결한 구성 요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언약모세의 율법에도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니며, 복음에도 요구가 들어 있다. 인간이 은혜 언약에 들어갈 때, 수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언약과 그 언약에 뒤따르는 모든 특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청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이 소유하는 언약은 인간에게 의무를 부여한다.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전에 사람의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셨는데, 타락 전의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거하며 비추던 빛이 어두어졌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음 속에 있는 선천적인 율법을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기록된 율법을 주셔야만 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율법 없는 은혜란 존재하지 아니한다.※이번 호부터 양영태 교수의 ‘그리스고 강림 이후 부흥과 복음’을 연재한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광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V.)과 대학원(ph. D.)을 마치고, 현재 광신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는 양교수는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와 순천지원장을 지내고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양교수는 ‘양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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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1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끝
    하나님 안에서 인간성이 회복되는 단계3) 자기의 패배를 인정합니다.무지한 부모를 탓하였고 주위의 환경을 탓했었고 사회를 원망하며 반항하며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상을 찾았으나 그가 머문 곳은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초라한 자기의 모습에 공허함만 남아있는 자기의 허약함을 보게 됩니다.마. 내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해야 할 인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1) 스스로의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자와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기준이 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잣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지식이고 또 하나는 저울 역할을 하는 자기의 경험입니다. 잣대는 나에게 한없이 넓고 길면서 남에게는 인색하고 철저합니다. 눈금의 경험도 생명이 없는 저울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가치관 속에 진리와 생명이 없으므로 공허와 허무한 것들뿐입니다. 내 자신의 명예심 나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하만처럼 단단히 굳어진 내 마음의 성벽을 허물어야 합니다.예수님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겠느냐? 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내 유익, 내 생명이, 내 자신이 죽어야만 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2)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인간성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얄팍한 지식 때문에 지식의 형식에 얽매여서 참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나안의 12족속의 폐해가 우리 밑바닥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데는 지식, 경험, 야망도 필요 없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면 내 자신이 진리 속에 있게 됩니다. 진리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永生)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權勢)를 아들에게 주셨음 이로소이다. 영생(永生)은 곧 유일(唯一)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1~4).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죄인 된 우리에게 생명의 구주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시었습니다. 주님은 희생제물의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네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사람,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하는 사람, 하나님이 입김으로 불어넣어주신 하나님의 생기 곧 성령의 힘을 회복하는 사람,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사람, 예수님의 희생을 닮아가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때에 진정한 인간성이 살아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이 충만하며 또 더하여 주시는 복으로 땅을 정복하며 땅위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물속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라는 복을 회복하여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복 있는 사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3)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위대한 사람일수록 희생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큰일을 하고 싶으면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희생의 대명사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희생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꼭 져야할 십자가 앞에서도 왜 꼭 내가 십자가를 져야만 하느냐고 이유를 달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자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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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24
    하나님 안에서 인간성이 회복되는 단계하나님의 말씀 안에 바로서는 인성교육이 되면 어려울 때도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 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하고”(욥1:21). 감사가 저절로 찾아집니다. 이런 감사가 찾아질 때는 상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어려운 공동체 안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2) 분별(分別)의 단계를 알게 합니다.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의를 찾게 되고 불의를 경멸하게 됩니다. 착함과 못된 것과 거짓과 진실과 정의와 위선을 경험하게 됩니다.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자신이 행한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몸과 마음의 불일치에서 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고 부쩍 양심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3) 꿈을 꾸는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변화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상상의 날개를 펴봅니다. 그리고 희망을 바라보고 위대한 꿈을 꿉니다. 논리성이 없고 체계가 없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허망한 꿈을 꿉니다. 하루저녁에 우리나라가 중국을 집어 삼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대형빌딩을 수 없이 짓습니다.다. 인격화 과정 삶을 기술을 익히는 단계입니다.1) 만남의 귀중함을 발견하게 됩니다.동질성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부모님의 존귀함을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으로 진하게 받아들이는 시기입니다. 일등보다 꼴찌의 마음을 헤아려 볼 줄 알고 사회가 요구하는 일등이라는 자리를 분석하게 됩니다.2)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세상에는 내가 들어갈 빈 공간이라고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면서 정보들을 찾아 모델로 삼고자 합니다. 불평하기 전에 고마움을 알고 감사가 인생의 진리인 것을 깨닫습니다.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목표를 설정해 두고 준수한 행동으로 모범을 보입니다.3) 관계의 일치를 찾을 때입니다.만남을 저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무엇으로 대치할 수 있는가? 도시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과 마주 대하면서도 그냥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것은 무관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내게 유익이 없으면 관심 밖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귐은 먼저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서는 동질성이나 타협점을 찾아 가거나 아니면 배타적이 됩니다.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관계의 일치를 이룰 수가 있습니까?세상에는 사귐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인내와 겸손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자기의 마음을 보여줄 수 없고 남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어진 유대인들은 이 과정에서 민족이 하나가 되고 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인 하나 속에 내가 들어갑니다.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이 찾아 주실 때만 이루어집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성막을 통해서 하나의 일치를 이루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라. 완숙한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단계입니다.1) 인격이 갖추어지는 단계로서 모순된 자기를 발견합니다.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양심의 소리가 가슴으로 들려오고 귀에 쟁쟁하고 밤에 꿈에까지 나타납니다. 불의와 타협한 양심의 가책이 가슴으로 저려옵니다. 빛의 아쉬움과 양심의 소리가 들려지던 어린 시절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세상과 손잡은 공허와 허무함과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뜬구름같이 흩어지는 자기의 본 모습을 봅니다.2) 자기의 존재를 발견합니다.자신의 나약함을 알 때입니다. 무지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무능한 자기를 알아서 무익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지식과 자기의 조그마한 지혜가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기의 주위를 넘지 못하고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고 세상을 개혁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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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11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23
    하나님 안에서 인간성이 회복되는 단계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내 자신의 모습이 차츰차츰 나 지신도 모르게 변화가 되어서 어느 날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이 자라듯이 내 자신이 변화(變化)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1. 생각은 육의생각 물질생각에서 하나님을 향한 영의 생각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2. 사상은 인본주의 사상에서 하나님 중심사상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3. 가치관은 땅의 목표에서 하늘의(하나님) 것으로 달라져 있습니다. 4. 판단의 기준은 교만한 자신의 마음에서 예수의 마음으로 새로워져 있습니다. 5. 성품은 타락한 아담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거듭거듭 태어나 있습니다.가. 인간성이 회복되는 단계 곧 자기발견의 단계1). 자기발견의 단계인간은 동질성에서 자기를 발견합니다. 자기발견은 만남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눈을 뜨고 보는 것이 가장 먼저 부모의 모습을 대하므로 부모의 모습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알게 됩니다. 이런 관계를 동질성의 관계라고 합니다. 이것은 외형적인 겉모습뿐만 아니라 세포로부터 피의 형질까지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동질성이라 함은 부모의 생활모습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과 습관에 이르기까지 닮은 것을 말합니다.2) 동질성에 대한 유한성(有限成)을 발견합니다.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지극하여 어린 시절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부 해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과 주위환경 및 사회에서 부모님의 삶 모습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는 초라한 제한성을 발견하게 됩니다.3) 배타적인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무조건적인 부모님의 사랑에 저항하게 됩니다.왜 이런 것도 못해주는 것이 사랑인가?사랑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가치의 기준을 또래의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여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단순한 부모님만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환경에 대하여 집중적인 추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부모를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고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생겨납니다. 이 시기에 믿음의 교육으로 잡아주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地境)으로 탈선할 수 있습니다. 이때 인간성회복의 신앙교육은 감사를 깨달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유대인들은 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하루에 3번 기도를 시키고 절기를 따라 금식기도를 하느냐 하면 자기들의 조상들이 나라 없이 종살이한 것을 기억하여 반항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교육과 고난에 참예하여 몸소 실천하고 참여시키는 교육을 병행하여 감사를 찾도록 훈련과 교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교육은 이때 자기 스스로 깨닫도록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 나이 때는 원래 그래하고 말입니다. 부모님들도 그 시절 그때 자기 부모님들에게 반항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나이 때는 나도 그랬어 합니다. 반항의 원인은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깨달으면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는 인간성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나. 정체감 형성 동기부여가 됩니다.1) 자신의 출생을 발견합니다.무엇 때문에 내가 태어났는가? 왜 태어나게 되었는가? 동물학적 반응에서 태어났는가? 쾌락의 찌꺼기로 태어난 휴지인가? 자기 출생에 대한 환멸(幻滅)을 가지는 시기입니다. 가치의 기준을 또래의 부모님들과 비교하면서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에 대한 평가를 한다.사는 집의 비교 아파트는 몇 평인가 자동차는 무엇인가? 주위의 환경에 대한 평가 사회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모든 것을 상대적인 가치로 따지게 됩니다. 이때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신앙교육은 감사의 근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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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28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22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나안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내가 왜 사는가? ‘왜’라는 질문에 나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이 있음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임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간성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켜 이 시대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길 수 있는 역사적인 사람으로 변모됩니다. 4) 공간을 확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사람은 삶 가운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마음의 공간을 확립했을 때 다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면서 그들의 호소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 줍니다.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도 들어주고, 싫어하는 사람의 말도 들어주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확립하면 타인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는 능력이 찾아옵니다.이 세상에는 공간의 여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메말라 버렸습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영과 시기와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 자신을 거울인 하나님 말씀 앞에 비추어 봅시다. 내 자신을 알았을 때 다른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시간의 소중성을 깨달을 때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확립될 수 있습니다.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므로 인간성이 회복되어 교만으로 가득 찬 아모리 족속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덧입혀져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5) 사회적인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차고 넘쳐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 활용할 줄 아는 독특한 무기기술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을 향한 대인관계의 기술, 자신을 관리하는 기술, 사회적 기술, 학술적 기술 등 다양한 기술들을 끈임 없이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도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과 인격을 나타내 보여주시면서 사회적 법적, 윤리적, 도덕적, 의학적 가정의 회복, 부모공경, 이웃과의 관계 등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신처럼 높이는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영접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회속의 죄 아래 끌려가는 내가 아니라 인간이 가야할 길을 당당히 갈 수 있는 빛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인간성이 회복되어졌을 때 죄악으로 물들여진 사회를 장악하고 정복할 수 있습니다.하나님 안에서 인간성이 회복되는 단계하 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돌이키지 못하고 율법 아래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신 하나님은 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고자 성막을 주시었고 예수님을 우리의 희생물로 주시면서 단절된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의 중요함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구약전체는 오실 메시야를 예고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신약은 오신 예수님의 현실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제사의 참여와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헛된 가치관과 헛된 생각들인 외형을 고백하는 예식입니다.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내 자신이 거듭나서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聖化)의 완성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내 자신의 모든 것들과 사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는 것을 부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나의 모양을 솔직하게 들어내어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망가진 나의 인간성 회복이 어떻게 변화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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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16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21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나안사람으로서는 가나안을 정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호수아를 앞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예수님의 부활의 표가 되신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인간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진리가 되신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교회로 의인화된 하나님의 법괴를 앞세워서 이 세상의 가나안 내 마음속에 있는 가나안을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옥토 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1) 자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자기자신을 볼 줄 모릅니다. 아무리 학식이 깊어도 아는 것이 많고 힘이 장사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볼수 없으면 짐승과 같습니다. 인간의 뇌는 감정의 교감과 지식의 교감과 경험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일체의 체험을 인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만 가지고는 사망이라는 것과 5분 후를 알지 못하는 미래의 문제에서 불가항력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므로 인간의 인격은 우상과의 교감으로 자신의 욕망으로 성취하려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과 교감을 이룰 때 비로소 사람은 자기자신이 죄인이요 가장 추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요한복음 3:1~15절 말씀에 있는 니고데모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허상의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탄생되어 인간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2) 자기관리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자기 관리는 자신의 감정과 지식과 경험들을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겪었던 감정이나 그동안 배우고 습득했던 지식이나 경험들에 대한 이해의 분별력에서 혼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만질 수도 없으며 다만 느낌으로만 알뿐입니다. 힘들여 배운 지식도 듣고 봄으로서 알 수 있으나, 앞당겨 경험하지 못한 지식은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식으로 전수받은 경험은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는 간접적인 경험이기에 소중한 내 재산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탁상에서 배운 지식도 스스로 경험할 수 없기에 지식으로만 배운 경험은 참된 진리인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그래서 인간은 불가항력적인 문제에는 어느 누구도 온 우주를 주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을 떠나서는 해결한 경험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뇌가 감정의 교감만으로 나타나게 되면 감정을 조절하는 지식의 부족함과, 감정경험의 교감이 부족하여 서로의 감정조절을 못하게 됩니다.이렇게 감정과 지식의 조절기능이 약해지면 느끼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우울과 불안으로 화를 피하지 못해 우울증 환자가 되고 정신착란의 증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지식 역시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지고 조절하는 기능이 자유스럽지 못하거나 상실했을 때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며 완고한 고집불통에 욕망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이처럼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기본이 되어 죄와 허물로 짐승 같은 삶에서 인간성을 회복하여 가나안을 정복하여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은 감정과, 지식과, 경험이 조화롭게 병행되어 아이큐와 이큐가 높아지고, 모든 지식창구 메모리 기능이 최고의 능력으로 개발되어 있을 때 정복할 수 있습니다. 3) 자기 자신의 동기부여가 있어야 합니다.인간은 조그마한 지식과 경험으로 온 세계를 경험한 것 같은 교만에 빠져있는 아모리 족속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얄팍한 지식과 경험의 교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 만나는 만남의 교감이 있어야 합니다.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만나 교통하는(출 3:1~4:17) 신적(神的) 체험을 통하여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거대한 사역을 감당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만나는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할 때 갑절의 능력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큰일을 감당 하였습니다.(왕하2:1~14).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므로(행9:1~20) 기독교진리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찾고 찾는 자에게 반듯이 만나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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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06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 -20
    한국교육의 현주소또한 학교폭력의 유형이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범죄연령이 낮아지고 비인간화 현상까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학생들의 이와 같은 폭력에 대한 왜곡된 소영웅주의와 성장과정에서 인내를 배우지 못하고 자라나는 가정교육과 학교의 공동체교육의 부재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학교 폭력의 근저에는 한 자녀를 둔 가정의 증가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 그리고 이혼과 별거 등으로 결손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정의 기능이 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4) 성적 타락입니다.최근에 성에 대한 풍조가 급격한 개방사회로 치달리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타락이 심각한 수준에 이미 와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10대 소녀 윤락이 한 해 동안 8508명이 적발된 것에서 보듯이 학생들의 윤락과 십대들의 성에 대한 감각이 마비수준에까지 오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도 해봅니다.더 이상 학교가 학생들에게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활광고지에서 조차 윤락업소를 소개하고 있으며 전화방, 폰팅, 인터넷채팅, 비디오방, 노래방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락이 우리 청소년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쾌락의 극치로 타락한 이 시대상은 원조교재라는 이상한 풍조까지 수입해서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은 인간성회복 교육만이 타락한 세계를 바로 잘을 수 있습니다.5) 술 담배의 급속한 확산입니다.청소년들의 흡연과 음주실태는 이미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담배 피우기를 시작하여 중학생들은 님녀 가릴 것 흡연과 음주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제 학교 안에서의 타락은 앞으로 마약, 약물복용으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이미 학교 안에서 동성연애, 마약복용, 총기사고 등으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공교육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교육은 이미 학원과외라는 암기기술만 가르치는 곳에 빼앗긴지 오래됐습니다.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아직까지도 교육당국과 정부에서는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루빨리 인간성회복 교육을 위한 기독교교육으로 돌아가서 인성의 회복과 인격 교육을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6) 신앙교육의 불가능입니다.현재의 제도권 아래서의 교육은 기독교재단에서 세운 학교에서조차도 건학이념에 있는 신앙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법제화 시켰습니다. 미국 교육방침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입니다. 기독교재단의 학교에서 조차도 성경을 가르친다든가, 기도를 하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막아놓은 인간성 회복교육은 공교육에서 발 디딜 곳 이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교육을 20년 이상 지속하다 보니 가정이 파괴되고, 청소년들이 파괴되고,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합니다.전국의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재단에서의 교육이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이 나라의 인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존듀이의 교육철학에서 벗어나서 한국의 초창기 인성회복의 방법으로 회귀하는 교육방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나안인간은 어느 누구든지 이 세상의 12가지 죄에 오염된 가나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과 훈련을 받아도 마음속에 있는 가나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영원한 복지가 있는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벨상을 타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성회복의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지식 가지고는 노벨상은 접근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만 노벨상 화학상 물리학상 의학상으로 대변되는 노벨과학상을 타는 인물이 됩니다.한국사람 은 특히 머리가 명석합니다. 그동안 공교육의 잘못으로 죽은 교육을 받으니 노벨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격이 살아나는 교육을 받으면 세상학문은 3-5년이면 모두 마스터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20년 이상을 투자하면서 배우고 잊어먹고 배우고 잊어먹는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는 교육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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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5
  • 노벨상을 타는 인격 교육-19
    부모는 자식들의 거울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부모 밑에는 자식들도 문제아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 중에서 제일 어렵고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자식사업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식농사는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담에 있듯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들도 첫 습관을 들이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그럼 한국사회의 현실의 가정은 과연 어떨까요?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가정일까요? 아이들이 올 바른 길로 가기가 너무 많은 문제점들이 들어나는 환경들로 얽혀 있습니다. 부 부의 이혼증가, 맞벌이 가정의 증가, 아이들이 방치되어 컴퓨터 텔레비전의 악영향 등 전자게임에 무분별한 노출, 성적타락의 온상, 부모의 권위상실, 가정주변의 유흥가, PC방, 비디오방 등 무분별한 출입, 가정예배의 실종과 신앙교육의 전무함이 가정파괴와 사회문제의 주범입니다.학교 공교육의 위기입니다.한국의 공교육의 붕괴는 미국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수업 중인 교실을 들여다 본다면 20% 미만의 학생들만 수업에 참가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제 각각 자기 하고 싶은 모습으로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도 급격하게 무너져서 이제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생활을 지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학습능력의 저하는 물론이려니와 학교가 필요 없고 학원만 필요한 학교의 존립자체가 흔들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원인과 문제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1) 인본주의 과학교육의 학습방법자연주의 인본주의 교육의 문제점입니다. 자연개방주의 교육은 존듀이의 모방교육으로 한국에서는 열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율교육, 자주교육, 민주정신에 입각하여 학생 스스로 교육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교육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교육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교육입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결코 자기를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여서 스스로 선한 것을 스스로 좋은 것을 해쳐나갈 수 없습니다.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성의 근본을 이루는 기독교교육인 성경말씀으로 사람의 품성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신앙의 반복교육을 통해서만이 성숙한 사람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신앙교육의 바탕 위에 자연교육과 인문교육을 접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거스르는 교육은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2) 교권의 상실과 선생님의 상실입니다.금과옥조(金科玉條)같이 여기는 열린교육은 모든 교육의 주도권을 학생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자기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자기 스스로 찾아서 하는 개인의 기술과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살려주는 교육입니다. 선생은 이런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여 찾아주는 보조역할 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대문에 선생님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교권이 파괴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공부를 하고 안하고는 학생 자신의 문제이지 왜 선생님이 간섭하느냐는 식으로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공교육 현장인 교실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이런 학교에서 어떻게 질 높은 교육이 가능하겠습니까? 시급히 인간성회복 교육운동으로 공교육을 살려야 합니다.3) 학원 안에서의 폭력과 폭력조직의 연계입니다.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 폭력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은 조직화되고 잔인하며 반인륜적인 범죄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자기와 같은 반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집단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학생과 또 친구를 학교 안에서 찔러 죽이는 잔인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폭력사건은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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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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