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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7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5. 구명운동 앞장 요청 (2) 결과로 본 구명운동 여러분! 이제 구명운동의 그 결과를 들려주고자 하는데 큰 거울 되었으면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눅 6;9). 이는 손마른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지만, 법망과 안식일 법망 때문에 구명운동을 사장할 수는 없다는 것 아닌가. 상기한 바 주님의 구명운동을 배우자. 여러분! 이승만 박사 독립운동 당시 구명운동을 아시는가? 일제가 당시 거액인 삼천만불의 현상금을 걸고 이 박사의 머리를 구했다. 그때 우리 민족은 이 박사를 관 속에 담아 들여왔고, 관 속에 뉘이어 대통령에 취임케 했으니 우리 민족의 구명운동은 세계에 자랑할 만 하지 않는가.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구명받은 이 박사는 90여 평생 독립운동과 나라건국에 일생을 바쳤다. 나라가 이만큼 선 것은 첫째, 하나님의 은덕이요, 둘째, 선진 위인들의 덕택이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 죄는 천추에 큰 과오다. 이로써 그 이루었던 그 공적이 다 불에 녹아 재가 되어버렸으니, 오호라 오호 통재! 불쌍하구나! 여러분! 영국 혁명시대 구명운동은? 찰스 1세가 처형될 때 왕국시인 따베난트도 형장에 함께 끌려나갔다. 이때 크럼웰의 비서 밀턴이 목숨 걸고 전력 다해 따베난트를 구해냈다. 그후 12년 만에 정국이 뒤집혀 역대 죄인 크럼웰의 시체를 파내어 불사르고 그 비서 밀턴도 사형장에 끌려나갔다. 그때 따베난트가 역시 목숨 걸고 전력 다해 밀턴을 구해냈으니 그래도 세계에서 영국 문명 위대성이 여기에 보이지 않는가? 여러분! 광해군 계해년 인조 반정 사건은 어떤가? 1623년 3월 13일 반정군이 자하문(창의문)으로 쳐들어와 무력으로 광해군을 퇴위시키고, 선조의 후궁 임빈 김씨 소생 원종의 아들 능양군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는데 이 사건을 '인조반정'이라 한다. 이로써 서인 정권 입각, 인조가 통치함에 광해군 계모 인목대비는 과거 원한 갚고자 수상(首相) 이원익에게 광해군 사형하라 추상같은 교지 내림에, 이원익 수상 왈, "나는 구군(舊君)을 죽일 수 없다"하고 사표를 내던지고 통곡하니, 혁명주체 서인 정권도 모두 다 감동되어 광해를 살려냈다. 이러하여 살아난 광해가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로 떠날 때 서울 장안 백성이 다 울었다 하지 않는가. 광해군 구명은 수상 이원익이 사표 내던지고 통곡한데서 왔다. 예수의 구명운둥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면 다 안다. 요한복음 8:1- 이하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붙잡혀 예수의 판결을 구하러 왔을 때다. 저희들 왈, "이런 여자는 모세 율법에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예수는 이 여자가 모세 법망에 걸려 죄인으로 죽게 된 것도 알았지만 죽여라 하지 않고,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시면서 두 번이나 땅에 글을 쓰시어 변호했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은 범죄자요, 모세의 법을 범한 자인줄 알면서도 죄를 묻는 것도, 법망으로 처단한 것도 다 덮고 구명할 때 저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씩 다 떠났다. 이로써 구사일생 이 여자는 용서받고 재생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예수는 왜 구명했느냐? 법대로 죽이지 않고! 예수는 죽이러 온 것이 목적이 아니요, 죄인을 살리려 오지 않았느냐. 범죄자들 눈에는 사람 생명 하나가 파리 목숨처럼 보이지만 예수의 정신에는 온 천하보다 더 귀한 것. 이 여자는 이 만큼 주의 구명은덕 입었으니 그 감격 눈물은 갈릴리 바다 해수요, 흐느낀 그 울음 소리는 갈릴리 파도 소리요, 평생 보답 그 성덕은 헤르몬 산을 덮었을 게다. 왜냐? 구명받고 보답없이 살아간 사람 인류 역사상 없지 않든가! 여러분! 구명, 구명운동은 예수의 운동 기독교의 운동 아닌가. 여러분은 구명운동에 앞장 서 봤는가? 구명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 하지는 않았는가? 강단에 설 때 그들이 안 보이든가? 여러분은 하나님 종인가? 바리새인 종인가? 교회, 노회, 총회, 사회, 국가 구명운동에 앞장 서라. 나도 구명이 필요할지 누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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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5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6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5. 구명운동 앞장 요청 (1) 의미로 본 구명운동 목회자의 목회 중에 교회, 노회, 총회, 국가 등 여러 곳, 여러 사건에서 뜻하지 않는 인사들이 법망과 위기에 처해 구명의 손길이 요처되는 것을 종종 보아왓다. 이 때 나의 손길이 필요한 자면 적극 다방면의 구명, 구출, 살려야 함이 목회자의 도리인 줄 아노라! 하나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 국가의 사람, 이 사람들을 구명해 놓으면 차후에 귀한 보답, 귀한 소득을 분명히 얻게 될 것 아닌가? 구명도 목회성공 교회부흥에 매우 소중한데, 보고도 못본 체 강건너 불구경하 듯 지나가버린다면? 자주있는 사건도 아닐터인데, 차후에 몹시 얼마나 후회될까? ‘구명’이란 무엇인가? 한자는 생명구명, 영어는 ‘to save life’, 헬라어는 ‘프쉬케 소조’, 히브리어 ‘네페쉬 마라트’ 등으로 일컫는데, 이는 목숨(생명)을 구출한다, 보호한다, 위험에서 피하게 한다. 완전하게 만든다 등의 뜻이다. 위기에 처한 자들 구명운동에 그 후에 선덕이 얼마나 지대하든가? 다윗이 사울왕 추격의 위기 일발 때 미갈의 구명운동을 잊지 않는다.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망하며 피하니라”(삼상 19:11~12). 충신과 양처는 북풍한설 재난 중에 본다고! 미갈이 부왕 잘못 만난 죄로 기구하기도 했지만(부왕 때문에 발디, 아비갈, 아미노얌의 처가 되었기에) 그래도 남편 다윗 구명에는 착한 양처였다. 이때 미갈의 구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다윗은 있었을까? 없었을까? 보라! 구명운동 그 결과를? 요셉은 어떠한가? 요셉이 죽음에 처했을 때, 루우벤의 구명운동은 장하지 않든가? “루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루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자.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창 37:21~22). 루우벤은 서모 빌하를 범한 때는 천하에 불효자식이었다. 그래도 동생 요셉 구명운동엔 위인, 착한 형이 아닌가? 레20:11대로 루우벤을 죽여버렸더라면 요셉 구명운동은 누가하며, 루우벤 지파는 어디서 났겠는가? 요셉이 구명되니 애굽 총리도 되고, 기근 때 형들 모두를 다 구원하니, 이스라엘 12지파가 서지 않았던가? 여러분! 구명운동은 때가 가기 전에 하라! 지난 후엔 후회한다. 만사엔 때가 있다 하지 않던가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전 3:1). 여러분! 영국 에드워드 7세 왕이 아들 요크 왕자와 식사자리 대화시간에 되어진 말? 아들 요크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함에도 왕은 식사시간에 예절을 지키라고 화를 내며 꾸짖어 말문을 막아버렸다. 식사가 끝나자 왕은 아들에게 묻기를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애썼니? 왕자 왈 “이젠 늦었습니다. 늦었어요” “그것이 뭔데?”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었는데, 할아버지 배 속에 있을거예요!” 여러분! 옛날 상고시대 꼬오트 족에 데오도림왕 이야기를 아실게다. 데오도림이 왕위에 올라 정치를 부정하게 함에 친구 몇 명이 시정 요구 간언을 한즉 듣기는커녕 괘씸하다고 밉게보여 감금하고 학대했다. 이걸 본 다른 친구가 구명운동을 벌인즉, 그 자까지 구속, 부하시켜 왕 자신 목전에서 목을 졸라 죽이게 했다. 그때 목졸라 죽는 이들은 소리치면서 죽을 일은 안했으니 살려 달라고! 그러나 무자비하게 죽이는데 저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이를 갈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올라온 밥상을 보니 생선이 구워져 있는데 그 생선 아가리 이빨이 그 죽은 자들 이빨, 그 생선 두 눈은 죽은 자들 두 눈, 꼭 그처럼 보여 두려움이 감돌아 밥상 물리고 고민하다 삼일만에 죽었다. 세상을 온통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나봐! 그러기에 성경도 역사도 공부를 해야 해! 성경의 원인과 결과의 천리의 철학, 인간 행함의 결과인 역사의 철학을 못 배우면 그렇게 되는 법! 데오도림이 간언자들도 구명자들도 생명을 살렸다면 자신도 오래오래! 여러분! 구명운동의 요청이 여기에 있고 구명운동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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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5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5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4. 자비생활 힘쓸 요청 (2) 예증으로 본 자비생활 자비목회를 예증으로서 그 결과를 거론한다. 왜 자비생활이 목회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주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절대 순종해야 하니까. 주님 가라사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12:7).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5). 그런고로 목회자는 자비의 목회를 중심하지 아니하면 헛 목회 된다. 여러분! 하나님의 지음받은 똑같은 인생 소돔 고모라가 왜 망한 줄 아시는가? 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스라엘의 미스라쉬 제1권에 의하면 그들의 무자비한 악법 때문이란다. 그 무자비한 악법이란? 첫째, 가난한 거지에게 돈은 주되 먹을 것은 주지 말 것,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으면 돈을 도로 가질 수 있기 때문. 둘째, 손님은 절대 대접하지 말 것. 셋째, 지나가는 나그네의 모든 것은 모두 다 빼앗을 것. 넷째, 부요한 사람의 재산도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빼앗을 것. 이것이 소돔 고모라의 무자비한 악법이다. 하나님의 명령 자비의 법 어기고 무자비한 법 썼으니, 유황불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 것 아닌가? 여러분 자비성 없는 발언 자비성 없는 단체 모임, 하나님 큰 일 날 줄 알고 자비하심을 배우라. 여러분! 중국 위 나라 위문제가 누구인 줄 아는가? 삼국시대 중국의 위나라 조조가 둘째 아들 조비와 함께 사냥할 때 조조가 어미 사슴을 쏘아 잡으니 새끼 사슴이 갈 곳 잃고 애처로운 모습으로 아들 조비의 말 앞에 엎드렸다. 조조 왈 “새끼 사슴이 네 말 발 앞에 엎드렸으니, 칼로 찍어 잡으라”고 소리쳤다. 그때 아들 조비는 말에서 내려 활과 칼을 땅에 던지면서 “아버지 어미 사슴을 잡았는데 어미 잃은 불쌍한 새끼 사슴까지 잡아 죽이면 되겠습니까? 어미 잃은 이 새끼 불쌍하지 않습니까?” 하고 울었다. 조조도 그 말에 크게 감동되어 “참 네 마음이 착하다. 장차 좋은 임금이 되겠구나”. 칭찬하고 그 아들 조비에게 위나라 후계를 전하니 그가 위문제였단다. 여러분, 천도(天道)가 있는 법(法) 아닌가? 어미 잃은 새끼 사슴에 자비를 베푼 조비가 어떠한가? 부친은 감동받고 새끼 사슴은 살아나고, 조비는 왕관을 쓰지 않았는가? 자비생활에 하나님의 축복의 천도가 있음을 잊지 말고 행하라! 또한 다시 보라 옛날 신의주제일교회 안승선 장로님, 그 분의 미덕의 이야기이다. 모두 다 아실게다! 여러분은 아시는가? 안 장로님 시골생활 할 때 밭에 옥수수 따는 소리들려 들어가 본즉 한 여인이 열두 살 되는 아들과 함께 광주리에 자기 옥수수를 따 담고 있더란다. 그 때 이 여인은 도둑질 하다 잡혔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 아 이젠 죽었구나 했을 것 아닐까. 또 안 장로님은 어땠을까? 도둑을 잡았으니 잘됐다 했을 것 아닌가. 자,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깊이 한 번 생각해 보라. 안 장로님은 이러했단다. 책망과 꾸중도 않고, 경찰서에 끌고 가지도 않고, 광주리의 옥수수를 뺏지도 않고, 자비한 마음으로 오히려 옥수수를 가득히 따서 보냈더라 하지 않든가. 그런 후 신의주로 이주해 살 때 아들이 전기제품상사 ‘안국상회’를 운영하는데 그 당시 압록강을 막아 수력댐을 만든다는 큰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모든 전기재료를 안국상회에서 구매함으로 크게 사업이 번창해졌다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구매책임자가 한국인인데 과거 자기 밭에서 어머니와 함께 옥수수 따가던 그 아이가 그렇게 성장했더란다. 아마 계속된 가난과 어려운 생활에도 안 장로님 옥수수밭! 안 장로님의 자비한 은덕 때문에 굶어죽지 않고, 그렇게 살아 성공, 안 장로님 댁에 보답했던 것 아닐까? 여기에 하나님은 축복을 가지고 등장하신다. 이걸 믿고 자비한 목회를! 그러나 무자비한 목회자를 들어보라. 옛날 평양에 이용도에 관련된 사건으로 평양노회가 신학생은 신학교에, 숭대생은 숭대에, 교인은 해당 교회에 처벌을 명함에, 서문밖교회 목사는 김지영 집사 모자를 무자비로 처단했는데, 그 후 그 목사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목사는 강단에서 쫓겨났고, 그 목사의 자녀는 망했고, 삼천명 교인은 쪼개지고 말지 않더냐? 왜 조비와 안 장로님과 주 하나님의 자비심을 잃었든고? 죽으려면 무슨 짓은 못하는가? 아니다. 자비한 목회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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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5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4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4. 자비생활 힘쓸요청 (1) 의미로 본 자비생활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차제에 목회자의 생활에 자비의 생활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는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부분일게다. 목회자가 다른 면이 좀 부족해도 자비생활이 풍성하면 흠모받아 성공한다. 이것이 성경의 대언이다. 기억하라! 불쌍하고 어려운 자 데려다가 밥을 주고 옷을 주고 잠재워 주며, 노자까지 주는데, 그 목회자의 생활이 이러한데, 소문에 착한 목자로 자비한 참 목자로! 여기에 성공과 부흥이 있다.! 그러면 자비의 문자적 뜻은 한자로 사랑할 자(慈), 슬플 비(悲)자요, 영어로 ‘Mercy, pity, Kindness 등일 것이요, 헬라어로 ’엘레오스‘요, 히브리어로 ’카시프‘ 등을 들 수 있다. 종합적 뜻은 어려움과 슬픔 당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며 긍휼히 여겨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것 그것이다. 인자, 예수는 이 자비로서 인간구원 천국복음 전해 하나님의 뜻 나타내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의 생활 고난, 복음 십자가도 여기 이 속에 있지 않은가? 의사가 건강한 자에게가 아니고 병든 자에게, 예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이 뜻에 무슨 뜻인지 배우란 것 아닌가?(마 9: 12~14). 여러분! 배웠는가? 이 뜻을 진실로 배웠는가? 행함으로 사는가? 예수는 이 자비의 생활로 사셨는데, 목회자가 감히 주께서 다시 하신 말씀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 이 명령을 어기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교훈이 있다. 하늘나라에 미하엘이란 천사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천사더러 지상에 내려가 내가 명하는 한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 명을 받은 천사가 그 여인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 여인이 자기를 데려가려고 온 천사인 줄 알고 미하엘 천사님! 저의 죽음을 조금만 더 연장을 소원 드립니다. 왜냐하면 제 남편은 몇일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는 몇일 전에 쌍둥이를 낳았는데 기진맥진 탈진상태여서 죽을지경이요, 또한 우리는 아무 친척도 없습니다. 만일 저를 데려가신다면 이 피투성이 아이들은 누가 키워주겠습니까? 생명연장 소원에 그 천사는 측은히 여기고 또 측은히 여겨 하나님께 올라가 사정 이야기를 다 했더니 하나님은 매우 노하시면서 왜 데려오라면 데려오지 네가 명을 어기는가? 당장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 그래서 그 천사는 다시 땅에 내려가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왔으나 하나님은 명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이유로 그 천사의 금빛 두 날개를 벗겨서 날개없이 지상으로 추방시켜 버렸다는 내용이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 완고한 것은 사술의 우상과 같다(삼상 15:22~23). 자! 보라!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경우든 어길 수 없지 않는가? 천사라도, 왕이라도, 하물며 목회자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 주님은 자신만 자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자비를 원하신다고! 오늘날 현대교회의 병폐는 도덕적인 문제실격엔 심한 매룰 가하면서도, 왜 자비심없는 자에게는 말 한마디 없는가? 다른 면 좀 부족해도 자비심만 풍성하여 살면 다 덮어 넘어가는데! 이 사람이 일등 목회자된다! 이제부터 자비생활에 투자하라! 교회재정도, 호주머니도, 밥상도, 옷장도, 신발장도, 침실도! 귀한 것도, 고운 것도, 통장도, 목회일생도! 자비 목회로 한둘하라! 계속! 계속! 또한 계속! 다시 들으라! “하나님은 자비한 자에게 주의 자비 하심을 나타내신다” 하지 않는가? 아! 하나님은 자비한 자의 목회생활에 등장 하시니 얼마나 기쁠고! 여러분! 이런 체험 해보셨는가? 하나님이 동행해주신 목회? 다시 언급하는데 “하나님은 자비한 자에게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신다”(삼하 22:26), 여러분! 여러분은 자비한 자의 목회인가? 무자비한 자의 목회인가? 어느 목회자, 먼 길을 가다가 여비는 떨어져가고, 갈 곳은 없고, 배는 고파 안다는 목회자님 찾아갔더니, 밤 9시 넘어서는 전화도 친구집도 찾아가면 안되는 것이라고, 훈계 반, 꾸중 반 미안해 어쩔 줄 몰라 생각하다 급한 핑계로 인사하고 기차역 대합실에 잠을 청하는 밤 12시경, 이름 모를 신사 한 분이 호주머니 깊숙이 봉투 주면서 쉬쉬하며 쓰리꾼들 조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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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5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3. 미움금지 중심요청(2)결과로 본 중심요청 인류 역사상 대부분은 서로 미워서 죽이고 죽는 역사이다. 이조 제6대 왕(1452~58) 단종을 보라! 그는 문종의 아들로 1855년 숙부 수양대군에 왕위를 찬탈 당하고 58년 영월에 추방된 후, 동년 12월 24일 살해되었다. 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로 단종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미움의 발로는 살인의 열매를 맺는 법!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의 “한, 맺힌 이야기는 모를 사람 없을게다” 현덕왕후 입에 피를 물고 수양대군 꿈에 나타나 네 놈이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그 후 그 아들이 죽고 세조 수양대군도 50여세 제위 10여년에 제명 못 다 살고 갔으니 미움은 죽이고 죽는 법인가? 이제 미움의 역사를 알 듯 하도다 미움이란 무엇인가? 한자에 미워할 憎(증)과 미워할 惡(오)로 ‘증오’함이요, 싫어할 嫌(혐)과 미워할 惡(오)로 ‘혐오’로 몹시 싫어하고 몹시 미워함이요, 영어로 ’hate’이다. 예수께서 증거하심(마 5:21~22)과 성경의 (요1 3:15) 미움의 거론은 매우 심각하고, 또 증오와 혐오 때문에 살인의 결과를 낳는 자는 마귀 아닌가?(요 8:44) 가인 이후로 증오하고 혐오하여 죽이고 죽임받는 것이 못된 놈 마귀의 놀아남에 그랬던 것이다.(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제외하고) 만일 목회자가 증오와 혐오심을 품고 강단에 서면 그 설교가 어떠할까? 그 날 휘두른 칼날에 수많은 교인들의 영혼은 관 속에 묻혀 나갔다. 마귀의 유혹인 증오와 혐오심을 회개로 청산하고 강단에 서라(마5:23~26), 그래야 하나님의 종이요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종 된다. 역사 이래 증오와 혐오자들의 그 말로를 알지 않는가? 로마에는 4걸이 있는데 증오와 혐오로 서로 죽이고 죽이는 자들이 4걸이란다. 폼페이는 시저에게 죽고, 시저는 풀타스에게 죽고, 풀타스는 안토니가 죽이고, 안토니는 옥타비아누스가 죽였단다. 증오와 혐오가 유명한 자들이 로마의 4걸, 사람 잘 죽인 자들이 영웅, 그 뿐인가?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동조대신, 네로는 어떠한가? 또 산헤립, 가인, 하만, 사울왕은? 헤롯 안티바스, 광해군 인목 대비는? 증오와 혐의로 죽인 자들, 사람 죽인 자들의 그 결과는 ‘행복인가? 비극인가? 어떤 자는 중병에 어떤 자는 임직 10년에 어떤 자는 죄책과 암병에 어떤 자는 자살로 어떤자는 전사에, 단두대에 어떤 자는 천벌에 갔다. 이것이 증오와 혐오로 얻은 소득이었다. 미움, 곧 증오와 혐오의 소득을 여러분은 듣고 보았다. 미움 그것이 별 것 아닌 줄 알았지만 아니다. 증오와 혐오가 마음자리 잡는 날에는 그 상대는 밤 사이에 사라지고 만다. 이것이 미움 세계 역사다.여러분! 이 증오와 혐오의 독성이란 상대를 죽이는 것이기에 미움 금지를 중심으로 간절히 요청한 것 아니냐? 우양사업 전문가의 증언을 외국에서 들어보셨을까? 전문가 왈 “소가 화내고 성질 부릴 때 젖을 짜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왜 그때 젖을 짜서 먹으면 젖 속에 독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물며 수많은 영혼들을 먹이는 목회자야 증오와 혐오, 소위 미움이란 실로 심각한 문제다. 여러분은 계시록 박사님일게다. 7대 범죄자들은 새 예루살렘성에 못 들어간다고, 또한 8대 범죄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한다고! 보라 미움의 발로에서 살인이 발생한 것 아닌가? 좋아하고 사랑해서 죽이겠는가? 미워하기에 살인했지? 그렇다면 다시 또 보라 주 예수 가라사대 “형제에게 노하는 자, 나가라 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마다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고”(마 5:21~22) 또한 성경의 증언 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1 3:15). 미움으로 살인하고 살인해서 영생이 없다면? 그건 모든 것 헛되고 또 헛되며 구원이고 천국이고 볼장 다 본 것 아닌가? 현대 뉴스에 물통에 죽이고, 구타해 죽이고, 밥 굶겨 죽이고, 가방에 죽이는 등등 증오와 혐오가 꽃피워 살인이란 열매를 맺은 것 아닌가? 이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영생이 없을까? 있을까? 신자라 해도 여러분 교인들이여! 목회자들이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미워하면 살인하고 살인하면 영생은 없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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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4
  • [송덕 목사]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1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2. 정죄생활 금지요청 (2) 예증으로 본 정죄금지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눅6:36~37).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높은 수준의 처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높은 교훈이다. 동양의 문언도 이와 비슷한 교훈이 있은즉 왈“他者小過겘責望他者 密겘言語 他者過去겘記憶” ‘남의 작은 허물 책망말고, 남의 비밀 말하지 말며, 남의 과거기억말라’했다. “정죄하지 말라”란 뭣인가? 한문으 로“定罪禁止”요, 영어로“Do notcondemy이요, 헬라어로 “메크리네테메카타리카제테”인데, 이는 법정 술어의 성격으로 “유죄하다”“죄인이다”“형벌 받을 자”라 선고 판결하지 말란 그것을 말한다. 프랑스의 작가 빅톨 유고 작품 “가난한 사람들(장발장)” 명작품에 19년간 옥살이 하고 나은 장발장을 다시 잡아 정죄하여 감옥에 가두려 추적하던 짜베르 형사가 프랑스 혁명 투사들에게 체포돼 죽게 됐을 때 장발장이 이를 알고 풀어 주면서 빨리 도망가라고 살려줬다. 이때 짜베르 왈 보복의 이 좋은 기회에 정죄해 나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느냐고, 장발장 왈 “저 위에 계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마음 때문에! 이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산다면 수치스러운 사람이 아닌가?”했다. 이때 짜베르는 장발장을 체포하려고 지니고 다녔던 수갑을 자신이 차고 “나는 인생의 실패자다”고 한마디 남기고 깊은 호수에 몸을 던졌다. 이것이 뭐냐? 정죄를 좋아한 자에 대한 고발이 아니냐? 보라. 정죄를 좋아한 자가 좋으냐? 정죄금지 살려준 자가 좋으냐? 여러분 솔로몬의 베푼 덕도 잘 알겠지? 부왕 다윗에게 배운 덕행으로 제사장 아비아달의 죄를 물어 정죄해 사형않고 살려준 그 은덕은 이러하다. 솔로몬과 아도니아가 왕위 계승전 할때 아비아달은 아도니아 편에 섰으나 솔로몬이 왕위 계승됨에 솔로몬 왈,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너는 마땅이 사형감이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에 앞서 “궤”를 메였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란을 받을 때에 너도 환란을 받았은 즉…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제사장직만 파면하고 내어 쫓았으니(왕상2:1~9, 26~27, 5장). 이것이 다윗 솔로몬 가문에 가흥이로다. 솔로문 폐하여 한국교계도 좀 오소서! 이런 좋은 미담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베냐민 지파에도 있지 않던가? 베냐민 지파, 레워인 윤간 범죄 때 12지파 중 한 지파 없어질 것 염려 슬퍼하며 정죄를 거두어 살려 주어서 그 베냐민 지파에서 당대 영웅 사울도 나고, 당대 구국자 에스더도 나고, 세계 복음의 사도 바울도 났단 것 아닌가? 정죄로 멸절했더라면 이들이 어데서 났겠는가? 정죄금지 역사는 이처럼 찬란한 것! 이 공부는, 반드시 해야 한다. 차제에, 김구 선생 일화도 지나갈 수 없다. 만주 중국 등지에서 암살자를 발 견 정죄 처형을 거두고 모두 살렸더니 그들 모두 고마워서 충성 약속 끝까지 헌신하더라 하지 않든가? 정죄금지로 살려주라. 다시 말하노니 정죄금지로 살려주라. 그리하면 내 사람되고, 그리하면 내 명예 소문나고, 그리하면 은공받고, 그리하면 목회성공 교회부흥, 사람마다 몰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보았네! 필자는 보았네! 갑동네 을동네 서로 정죄, 죽이겠다싸우고 싸우면서 우물도 못 먹는다 다닐 길도 못 다닌다. 금줄을 치고. 자! 보라 50-60년 세월간 후 자손대는 멸종되고, 전자 모두 눈 감으니, 찬란한 기와집들 쑥대밭 되고, 앞뒷뜰 잡초 만발 흉가가 되었도다! 이것이 만인에게 고해주는 역사서이다. 귀하도“정죄”해 죽이면 그러한다. 눈감고, 지하에 잠들어 못 듣겠지만, 50-60년 지난 후를 왜 몰랐던고! 정죄의 결과를 왜 몰랐던고! 자손대가 끊어질줄 왜 몰랐던고! 부귀영화 세력 과시 슬픔 올 줄을! 백년지고 천년지고 생존만 알고! 하나님의 심판대를 왜 몰랐든고! 그대들은 아시는가? 이걸 아는가? 예증을 다 들라면 끝이 없도다! 그러나 한 가지는 꼭 들어보소. 경북청암사의 소경스님 이야기! 과거 마부로서“말”을 부릴 때, 미끄러진“말”못 일어난다고, 괘씸하다. 정죄하고“눈”을 쑤시니. 피눈물 흘리며 소리치면서, 달아 놨다오! 달아 놨다오! 영영 그 말은 찾지 못했오! 그때부터 내 눈은 소경 되었오! 엄동설한 찬바람에 그 “말”이 선하고, 비명의 울음소리 밤마다 괴로워 어이할가요? 여러분, 말 못한 짐승 정죄 학대도 이러하거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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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1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9
    1. 용서생활 부탁 요청(2) 결과로 본 용서생활 골 3:13절을 들으라! “누가 뉘게 혐이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제 용서의 실천생활자들을 거론컨데, 주님은 십자가상에 눈감기전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하고 눈을 감으셨다. 여러분도 눈 감기 전에! 호세아는 어떻했든가? 지금 교회에서 목회자 아내가 이렇다면 목회 못했을거다. 결혼해 2남1녀를 낳고 살면서 바람 피운 고멜을 다 용납 용서했으니 그러기에 선지자요 성인이 아니었던가? 레오나드다빈치도 최후 만찬 그릴 때 미운 원수를 가룟 유다로! 그러나 그 원수 용서한즉 예수님 모습 떠올라 완성했다고. 눅 6:37, “비판, 정죄, 말고 용서하라” 했다. 그러면 너도 용서 받을 것이라고. 탕자의 부친처럼, 고려태조 왕건처럼 용서의 주체자로, 고려태조 왕건의 긍휼과 용서, 후백제 견훤이 아들들의 모반에 피란해오고, 신라경순왕(최후의 왕)도 항복해 올 때, 모두를 용서하고 좋은 집 따뜻한 생활로 왕도를 베풀어 삼국을 통일시켰다. 그러나 조선태조 이성계 건국할 때는 최영 장군 정몽주 등 충신들 두문동 72인, 왕실일족도 전멸했으니 원수라고 다 잡아죽인 패도를 저질렀다그 결과는 어떤가? 잠 19:11,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가의 영광이라 했는데, 인조왕비 한씨 그 어머니 “광해군 세자 ‘질’이 광화도탈출 사형 처할 때” 인조에게 매어달려 용서의 호소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니 살려주시요”. 이 구명운동을 하나님은 들었을게다. 보통 목회자도 못한 이 용서의 구명운동, 그러기에 인조대왕 손이 그래도 나라를 3백년을 누렸다 하지 않든가? 여러분도 죄를 물어 죽이지만 말고 용서하여 살여라! 이것이 예수님의 본심이요 교훈이다. 1945년 해방 후 옛 진주만 아리조나호 1914년 12월 8일 새벽 폭격당한 항공모함 선장 부인이 일본인 아리조나호 폭격 주모자 가우엔 대좌를 찾아 왈 “나는 당신을 용서하러 왔오! 이 아이 아빠를 당신이 죽였오! 하고 아이를 보이면서 당신을 용서하오! 했을 때 공포에 질려 고개를 못들고 무릅을 꿇고 빌더란다. 그후 그는 진짜 회개하고 예수 신자로 신학까지 해서 복음의 사도 목사되었다. 하지 않든가? 용서하면 감화받고 용서하면 새사람된다. 김구 선생도 그의 암살미수자 용서하니 새사람으로 독립군 입대, 김구 선생을 잘 돕더라 했으며, 용서를 집필한 자는 누구나 손양원 목사, 그 두 아들 죽인 강철민을 데려다 용서하여 양아들 삼았다는 사건을 거론하지 앉을자 없을 것이다. 왜 그 사건의 종은 울렸든가? 첫째, 남한만이 단독정부 건립한다고 1948년 4월 3일 제주도부터 시작 여수, 순천 당시 14연대 소장 김지이 지휘아래 발생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로 공산게릴라 반란사건이었다. 이때 사망자 3,500명, 행방불명 500명, 지리산은 불바다 되고, 손 목사 두 아들(동인 25세, 동신 19세) 순천경찰서 앞뜰에서 공산군 총살에 순교의 길을 갔다. 둘째, 손 목사 두 아들이 공산군을 협조할 수 없다고 반항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산다고 하였기에 공산군 강철민은 총살로 눈을 감게했는데, 손 목사는 원수 그 자를 데려다 용서하고 양아들 삼았다니 다시 한번 들어보소! 독자 여러분? 여순사건 평정되어 공산군 색출한즉, 손 목사 두 아들 총살자 강철민을 잡았다오! 순천경찰서 통보 받을때, 손 목사 왈 “그 청년 죽이지 마시요 대려다 내아들 삼겠오”. “두 아들 죽인죄 묻지않고 용서하여 내 아들을 삼겠소”! 하늘아래 목사들이여! 이 용서 좀 들어보소! 손 목사는 신(神)인가? 사람인가? 천사인가? 목사인가? 이 용서 성스러워 세계의 5개국이 세계에 전파됐고 순교의 삼부자는 애양원 동산에 고이고이 잠들어 있지 않는가? 여러분에게 묻겠노라? 귀하는 죄를 물어 족치는 목회자인가? 귀하는 그냥 덮어 용서한 목회자인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고후 2:10). 상기한 바 용서가 그렇게 성스럽고 결과 다 좋지 않든가? 부디 부디 평생을 용서의 목회자로 목회의 송덕비( 頌德碑)에 남기고 가소서! 천사도 만인도 보두 다 흠모하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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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8
    1. 용서생활 부탁요청(1) 뜻으로 본 용서생활 앞서 목회자는 언제나 “성결의 요청”을 언급했다. 차제에 목사는 항상 자비해야 함을 언급하려고 한다. 목사의 성공과 교회부흥에 있어서 자비한 성자가 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자비 생활에는 용서의 생활을 또한 요청함에 “용서”로 ‘산’ 위인들을 소개한다. 원한경 박사(연세대 설립자)는 그 부인여 한국 전란시, 공산군들에게 살해 당했을 때에 왈, 내 부친 원더우드 목사와 내 부부의 몸은 한국에 드린 몸이니 내 아내 죽인 범인 사형 하지 말라. 그 은덕으로 한국교회, 또 연세대학교가 그래서 백년번영을 누린 줄 안다.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왜? 나도 용서받고 산 인생이니까! 요셉도 못쓸 형들을 용서해 이스라엘 12지파가 존속할 수 있었다(창 50:19~22). 다윗도 용서의 위인이다. 사울왕을 두번이나 용서하고, 그가 성군됨은 용서의 “덕”에도 있지 않을까?(삼상 24장). 스데반은 용서의 천사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 천사같은 그 얼굴로, 천사같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미국 잠페리아도 2차대전 당시 일본 군함 사격에 비행기 추락 40일 해상 고생, 수용소 감옥, 2차대전 승리로 해방, 맥아더 장군 허락 받고 일본 전쟁 범죄자들 감옥의 24명 찾아가 “나는 여러분을 지금 용서한다”! 그 후 몸은 완치, 세계 각국 전도자 됐으니, “용서”가 이렇게도 좋을까? 여러분! 잘 아신 바와 같이 베냐민 지파가 레위인을 윤간치사 했을 때, 죽여야 마땅하지마는 11지파 중에 한 지파 없어지면 되느냐? 11지파가 용서하며 살렸더니 거기서 당대 영웅 사울왕도 나고, 사사시대 어지러운 민족을 건진 에스더도 나고, 복음의 사도 바울도 났던 것 아닌가? 만일 용서않고 다 죽였더라면 이들이 어디서 났겠는가? 아~ 용서의 덕(德)의 힘이 이러하구나! 여러분 “용서”의 뜻을 보라? “용서(容恕), Forgive”란? 히브리어 “나싸”, 헬라어 “카리조마이”인데 “들어올린다, 가지고 가버린다, 던져버린다. 값없이 거줘준다. 죄를 사하여 준다. 죄를 면제하여 준다. 존경한다”등의 뜻이다. 이유여하 죄를 묻지 말고 값없이 죄를 면제하고, 사하여 죄 없는 자로 존경하는 것을 ‘용서’라 한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용서의 생활속에서 살지 않으면 아니된다, 왜? 용서하고 살라는 명령을 이미 받은 자들이니까? 성경 백 여곳의 구절은 용서를 거론했고, 특히 엡 4:32, 골 3:13은 그러하다.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교인, 노회 총회의 목사, 장로, 사회의 시민들, 이들의 잘못에 죄를 묻지 말고 그냥 용서 하라는 것이다. 보라! 우리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 하오리가? 일곱 번 하오리까? 질문에 그 답변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는 490번이 아니라 무한대로란 뜻인 줄 안다(마18:18-35). 만일 용서 안한다면 어떨 가? 하나님 말씀, 주님도 용서를 요청? 그런데 하지 않으면 불순종자요 범법자 된다. 성경에 불순종한 자들, 범법한 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됐는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게다! 여러분! 하나님께 용서(사람) 받지 못할 자들은 두 종류가 있는데 아실까? 첫째는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자요(마 18:35). 둘째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다(마 12:31). 목회자 여러분. 이 부분에 극히 조심 또 조심을 요한다. 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면 만사가 허사 아니냐. 이제 묻겠노니. 용서 받지 못한다면. 천국갈까? 못갈까? 하나님께 물어보라? 자유 해석에 맡기고. 다음 감동의 위인에게 들으러 간다. 그 어른은 오기병 장로! 오인호 군 미국 유학시절 흑인 청년에 살해되, 흑인 청년을 사형시키지 말고 살려 주시요! 살려 주시요! 이 용서에 법정이 다 울었다. 하지 않든가? 이와 같이 어떤 목사들도 예수를 본 받아 날마다 달려 가는데, 어떤 목사들은 용서를 발로 차고 입으로 찢는건! 귀로서 못 듣고 눈 뜨고 못 볼 일. 용서하면 위인 성자 천사같은 사람되고, 용서하면 많은 잊지 못 할 감동주고, 죽을 사람도 살리고, 전도자도 나고, 영웅도 나고, 민족 구원자도 나고, 세계 대 복음 전도자도 나고, 법정도 다 울리는데, 하나님은 용서하는 자에게 목회성공 교회부흥의 열쇠를 맡길 것이다. 이 열쇠를 받았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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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7
    (13) 선지처럼 성결요청 목회성공에 성결요청은 항상 필수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항상 거룩하고 성결했다.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엡3:5). 성결생활이 기초되면 하나님께서 책임진다. 다니엘을 보라. 다니엘은 음식물 생활에 성결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1:8~9). 또한 요셉을 보라. 요셉은 이성관계에 성결했다.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여…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39:7~9, 21). 여러분! 성적욕구 때문에 “다윗은 밧세바를, 유다는 자부 다말을, 르우벤은 서모 빌하를, 헤롯 안디바는 제수 헤로디아를 범했더니라! 이는 남성들의 이성관계는 장담 못한단 것을 보여준 것 아니냐? 자유롭지 못한 남녀관계에 누구든지 자신하지 말라! 혹시 실수했거둘랑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라. 그리고 겸손하라. 그러면 다윗처럼 성자가 되리라! 다시 또 부탁은 제발 남을 정죄하지 말라. 주님처럼! 나도 언제 어찌될지 몰라! 저 종소리는 누구를 위해 울린 것인가? 다니엘, 요셉을 하나님 말씀에서 꼭 배우라. 저들은 비범한 자들이요 성인들이였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총리까지 국사를 맡기지 않든가? 왕들에 의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여기에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이 있음을 다시 언급해둔다. (14) 신의(神意) 대로 성결요청“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5). 목회자들은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처럼 거룩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거룩”이란 Holy는 히브리어 “카데스, guadesh”, 헬라어 “아기오스, aycos”이다. 이는 세속의 물결에서 “분리한다. 떠난다. 순결하다, 성결하다, 거룩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4: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가신 선배들이 구름같이 무수하다. 여러분은 선배들을 본 받고 잊지 말라. 독일출신 토마스 아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The lmitation of Christ”는 문자 그대로 본인이 그렇게 살려고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읽히고 있다. 여러분! 목회자들이여. 다시 또 다시 이 책을 정독하시라. 존 웨슬리도, 톨스토이도, 디트리히 본헤퍼도 평생, 매일 죽을 때까지 성경 다음으로 읽었다 하며 “신의”에 따라 산자들 지금도 수 없이 읽고 있다 하지 않든가? “신의(神意)”에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의 정도(正導)다. 그래서 존 칼빈은 매일 제네바 시민들이 일천번씩 못을 박았지만 그 곳에 가서 목회했다. 여러분! 영국 최초 순교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영국 엠피 바루스 목사를 살리려고 숨겼는데, 발각됨에 대신 체포되어 사형 재판 때 이방신 제사와 황제숭배 강요, 회유, 협박을 받았으나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 와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주장 또 주장 하다가 간 “알반, Alban”(A.D 287년)이였다. 이런 순교의 피 때문에 영국이 복을 받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영국의 씨앗 “알반” “알반! 영국 메리 여왕 때 로렌스 선더스 목사를 비롯 수 많은 순교자들, 안디옥교회 주교 익나티우스, 평양지방 장진교회 김대운 전도사, 김종섭 참사(구세군), 이마태 전도사(전라정읍), 여기 선배들은 몸을 불로 찌저 찢고 태워 화형의 고난과 금수형, 또 혀와 귀가 잘려도,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이나, 팔이 끊어지고 다리가 부러져도, “주님의 뜻만 따르다 갈 것” 죽을 때까지 주장하다 갔다. “신의”만 따르다 가신 성자들이 어찌 이 분들 뿐일까? 그 수를 다 헤아릴수 없는 줄 아노라! 화형에 살은 찢기고 무서운 칼날에 혀는 짤리고 귀는 떨어졌고, 혹독한 고문에 팔은 끊어지고 다리는 부서졌는데! 여기서 좀 묵상하고 가면 어떠할까? 눈물에 젖은 “필봉”아 너까지 우느냐? 필자도 계속 목이 메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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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9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6
    (11) 선거중립 권고요청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있어서 교회의 임직자 선거가 있을시, 목회자는 반드시 중립에 서야 한다. 아무리 사랑한 자라도 지지표현은 큰 화가 될수 있다. 선거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위법이 보이면 구설수에 오르고, 구설수에 오르면 시비가 발생하고, 시비가 발생하면 대개 저들은 교회를 떠나더라! 문제가 비회되면 소송사건 발생하고, 목사는 교회를 떠나야 함이 상당수 아니던가? 교인 잃고 목회지 잃고! 필자는 그런 교회 그런 목회자 종종 보았다. 사법기관은 얼마나 예민한가? 위법판단시 당선무효 벌금형도 과하지 않던가? 여러분 4·19혁명을 아시는가? 그 혁명 사건은 우리에게 대단한 교훈의 거울이 되지 않는가?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 이승만 정권 최악의 종말 부정선거다. 부정선거 항의 하는 국민시위가 대구, 부산, 서울, 마산 등 전국 대도시에서 발발 중 마산의 시위 때 최루탄에 숨진 김주열 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를 줄 누가 알았으리요? 이로서 부정선거 항거는 자유당 독재정권 타도로 고려대학생 대모가 선두에서 1960년 4월 19일 소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케 하고, 자유당 정권에 종말의 종을 울리고,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은 피를 흘리지 않았던가? 보라! 4·19혁명이 과한 예증인가? 아니다!. “교회선거 목사 중립” 잘 듣고 새겨두면 먼 훗날 지혜될 날 있을거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께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견되이 하자 말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딤전 5:21~22)고 했다. 아마 디모데는 이 심도있는 권면으로 목회시종의 아름다운 열매 거두었단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자고로 좋은 권고 좋은 충고 잘 받는 자는 성공하고 또 복 받더라! (12) 공부생활 권면요청 목사는 정말 공부, 연구 많이 해야 한다. 학교의 수학을 기초하되, 학교의 교과서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목사는 능숙한 설교가요 학자요 저술가요 교수가 되지 않으면 아니된다. 왜? 목사의 신분, 사명, 위치가 그러하기에 목사는 히브리어, 헬라어, 한학, 세계어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동서양 세계사, 전쟁사, 재앙사, 세계 및 국내 교회사, 국사 등 각종 역사에 조예가 깊어야 하며, 신학, 철학, 고전문학 등등 기타 학문에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게다. 성서 주경학에는 정통의 달인이 되어야만 한다. 성경애독 수백 독은 말하면 잔소리다. 옛날 우리의 선배 존경하는 목사님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다 한다. 목사가 히브리어 헬라어를 모르면 원문의 뜻을 알 수 없고, 한문 한학을 모르면 중국 및 동양학에 설 수 없고, 영어를 못하면 세계 진출, 선두 지도자는 어려울게다! 역사학을 모르면 세계흐름을 증거할 수 없고, 다른 학문도 모르면 벙어리 소경으로 학문생활에 얼마나 답답할꼬! 더 더군다나 주경신학 성경은 여러분 묻노니 목사된 후 성경 몇 독이나 했는가? 강한 충고이지만 성경을 적어도 1백독~2백독 하지 않고 어떻게 할까? 목회에 필요한 모든 학문에 공부 좀 하시라? 연구 좀 하시라? 골방서재에서! 주님 앞에서 골방에서 목사가 되어 나온단다. 서재에서 산설교, 익은설교, 들어도 또 들어도 듣고 싶은 생명의 교훈이 거기서 나온단다. 책을 열어 봐라, 성경을 열어 봐라! 하루에 몇 시간씩을! 거기서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온 천하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온단다!. 성 어거스턴 왈 “열어서 책을 읽어 보라” 라는 음성을 듣고 좌우를 살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고 다만 성경책이 있어서 열어본즉, 거기가 롬 13:12~14절로, 성경 하나님 말씀을 읽다가 세상에 나쁜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소중하고도 기둥같은 큰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게 하는 이 말씀을 골방에서 매일 열어보시고, 이사야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는 에돔의 심판에 대한 지적이지만 이 말의 현대적 이해는 물론 전체 성경이다. 마치 눅 24:27~44.절의 모세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이 광범위하게 예수님을 설명하고, 다니엘서가 계시록과 상통한 것 같으니 여호와의 책으로 매일 골방씨름을 하라. 교회당이 메워지게 대환영!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연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욥 1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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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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