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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윤동주 서거 70주기에 임해-임 영 천 목사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가 세상을 떠난 지 지난 2월16일로 고희(70주기)를 맞았다. 1917년(12월30일) 태생으로 1945년(2월16일)에 서거했으니 고작 이십칠 년여를 살고 생을 마감한 셈이다. 그는 그 짧은 생애에 ‘서시’와 ‘별 헤는 밤’ 등을 비롯한 주옥같은 시 작품들을 다수 남겨놓아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십자가’와 ‘새벽이 올 때까지’ 등 이른바 기독교 시편들을 남겨놓아 문학과 종교(기독교) 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도록 해 주었다. 실제로 그의 조부 윤하현 씨는 그곳(명동) 교회의 장로였으며, 동만(주)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 목사는 그의 외삼촌이었다. 요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을미년(2015) 올해는 조국 광복 70주년의 해이고, 동시에 민족 분단 70주년의 해이기도 한데, 여기에 더해 민족시인 윤동주의 서거 70주년의 해이기도 하니, 올해는 여러 면에서 민족사적(民族史的)인 의의가 대단히 큰 해인 것 같다.서거 당일(2.16)에 해당하는 날 연세대학교 윤동주추모사업회가 주관해 루스채플에서 추도예배와 추모공연, 그리고 시·산문 창작대회 시상식 등 여러 행사들이 열렸다. 그러나 이 행사는 국내 인사들에게까지도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소 한산한 행사로 비쳐지지 않았나 여겨진다. 오히려 70주기 추모 행사는 이국(異國)인 일본 땅에서 더 성대하게 치러졌던 게 아닌가 판단된다. 당시 윤 시인의 ‘죽음’의 형무소가 자리 잡고 있었던 후쿠오카(福岡) 시에서, 또 그가 초기 한 학기 동안 재학한 바 있는 도쿄(東京)의 릿쿄대(立敎大)에서, 그리고 그가 전학[편입]해서 더 오래 다녔던 교토(京都)의 도시샤대(同志社大) 등 여러 곳에서 윤동주 서거 70주기 추모행사들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한적한 행사로 치러진 것에 비해, 오히려 일본에서는 더 성대한 행사들이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다소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윤동주의 죽음과 관련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일부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런 적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더욱 열성적이었던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행사가 순전히 일본인 자신들만의 열정에 의해 기획되거나 치러진 것이 아니란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일본 문화인[지식인]들로 하여금 윤동주 관련 문제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도록, 또는 윤 시인의 비극적인 문제를 두고두고 자신들의 양심에 따른 고통의 문제로 여기게끔 만든 한국인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일본의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문화인]들의 그 양심에 호소함으로써 오늘의 결실이 맺어졌다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에 대하여 의문이 들던 몇 가지 문제점들이 근래에 다소 해결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도쿄의 릿쿄대학 재학 시절 소위 까까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과 창씨(개명)의 사실, 그리고 겨우 한 학기 다니고는 다음 학기에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편입[전학]해버리고 만 일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방학이 되어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배우 율 브린너를 연상시키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당시 그 릿쿄대학 안에 소위 단발령이 내려졌던 때문이었다. 군국주의 교육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히라누마 도추(平沼東柱)’란 그의 창씨(개명)도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군국주의 교육의, 지시 일변도의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한 학기 만에 도쿄 지역을 떠나 교토 지역의 대학으로 옮기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릿쿄대학의 그 강압적인 군사교련 교육을 시급히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우리는 송몽규(宋夢奎)란 인물에 대해 더러 들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북간도 태생으로 윤동주와 같은 해(1917)에 태어나 같은 해(1945)에 삶을 마감한, 윤 시인의 동갑내기 형(고종사촌 형)이자 친구였던 독립운동가 말이다. 그는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역시 같은 죄목으로 갇혀 있다가 윤동주가 죽은 직후 3주 만에 불귀의 객이 된 청년 문사이다. 그가 접견(면회) 온 사람들(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에게 증언한 바에 의하면 “매일 밤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동주가 어떤 생체실험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항간에 떠돌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규슈대학 주도의 생체실험이 당시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오늘날 공인되어 있는 터이다.) 70년 전 차가운 일본 형무소에서 쓸쓸히 죽어간 윤동주 시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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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8
  •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광 호 목사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 세상이 참 어지럽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조차 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형편은 어른으로서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대개 어른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답습한다. 어른들은 곧 자라나는 세대의 거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어른들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워 익히고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이런 말을 하면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세상 어디나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른들이 본이 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지금도 이 세상의 여러 나라와 많은 지역에서는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른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한 소망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통탄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는 기독교계나 국가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는 교회의 지도자라 칭하는 자들이 세상의 욕망에 더욱 집착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치 교회 위에 군림하는 권세라도 지닌 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교권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나아가 유명한 목사들의 간음, 사기와 횡령, 폭행, 심지어는 수십억대의 거액 도박 사건에 연루된 사건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들도 설교시간에는 다양한 미사여구를 섞어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교회에 충성하라고 열변을 토할 것이다. 저들은 마치 성공한 목사인 양 어린 교인들 앞에서 거들먹거릴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겉보기에 그럴듯한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세상의 것들을 더욱 탐하고 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핑계 대며 이기적인 집단을 형성하거나 교권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교권에 맛을 들인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저항하는 행위라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가증스런 위선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권세를 가진 자들은 온갖 더러운 부패로 얼룩져 있다. 청문회를 통해 저들의 모든 부정과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배지를 단 자들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부패한 자들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를 향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요구한다면 코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아무리 더러운 부정을 저지른다고 할지라도 일단 성공한 모습을 보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묻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다음 세대를 짊어지게 될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부패한 삶과 성공한 삶을 예의 주시하며 자기의 인생을 저울질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우려가 따른다. 그렇게 되면 남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면 개의치 않는다. 이는 인간들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경향성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에게 더욱 높은 도덕성과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가들이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자들을 용납하고 저들이 활보하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장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숙한 어른들이라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자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에 처해 있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사라지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기독교계와 정계 지도자들에게 한마디 남긴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여, 이기적인 욕망에 눈먼 당신들이 다음 세대를 망가뜨리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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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6
  • 3.1 운동과 한국교회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에 일제의 강제늑약과 강제합방으로 오천년 민족의 운명과 500년 조선은 역사의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빛은 사라지고 희망은 묻혀버렸다. 생명들은 지하에서 숨을 죽이며 신음하며 미세한 탄식으로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었다. 소위 반만년을 거쳐 오는 동안 고구려의 넓은 기상으로 북방을 누비며 호령하던 기개는 다 소멸 되고 한 민족의 기개와 서릿발은 무참히도 짓밟혀 갔다. 이 민족을 지키던 장수들은 일제의 추악한 발아래 무릎을 꿇고 민족의 동맥과 생명의 피를 공급하던 민초와 민중들의 함성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정지 되고 숨 막히는 절망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에 분연히 일어서 떨치며 살아 있음을 땅과 하늘에 솟구치게 온 몸으로 부르짖은 것이 3.1의 민족 생명 운동이다. 이 운동은 단순히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소금 방염 운동과 세계 민중과 독립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역사와 하늘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침탈 정책은 무단에 문화정책으로 방향을 전화하게 되고 오히려 간교한 민족 문화 말살 기류를 타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이 민족의 살아 있음을 천지에 알리는 민족 기개와 땅과 하늘이 하나이되는 일제와 악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 아닐 수 없다. 이 민족이 그 암울한 상황에서 빛을 잃었을 때 새로운 빛 하나가 어둠을 뚫고 문틈으로 새어 오다 창문을 열고 가열 차게 흘러들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의 빛이었다. 앞과 뒤가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상황에서 그 빛은 단 하나의 죽음과 악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며 굴복시킬 수 있는 힘 이었다. 죽은 자와 사망 아래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산 자만이 소리치고 눈을 부릅떠서 악을 호령 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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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8
  • 종교 실태에 나타난 기독교의 과제-유 만 석 목사
    최근에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30년(1984~2014년)간의 한국인의 종교변화에 대한 것을 조사하여 발표하였다. 우선 종교인구의 변화를 살펴보면, 30년 전에는 53%였는데, 지난해에는 57%를 기록했다. 30년 전에 비해 종교 인구가 늘기는 했지만, 10년 전인 2004년의 63%보다는 6%포인트가 줄어든 셈이다. 주요 종교별 인구 분포와 비율을 살펴보면, 불교가 가장 많아 24%, 기독교 21%, 천주교 7%, 기타 종교가 1%로 나타났다. 그 중에 불교는 30년 전에는 19%였는데 24%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30년 전에 17%였다가 1997년 20%, 그리고 지난 해 21%로 꾸준히 상승한 모습이다. 천주교는 30년 전에 6%였다가 지난 해 7%를 기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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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6
  • 형상우상, 황금우상, 권력우상-임 영 천 목사
    구약의 출애굽기에 십계명이 나온다. 제20장(3~5절)에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가 기록되어 있다. 제1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2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계명을 받은 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모세)의 귀환이 더딤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거기에 제사를 드리고 경배하였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제2계명은 물론,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한 제1계명, 이 모든 것을 범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금송아지 상은 우상이었으며, 거기에 제사 드리고 절한 일은 그 우상을 신으로 섬겼음을 말해준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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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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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ecumenicalpress.co.kr/article_list.html?section_code=editorial&category_code=editorial_3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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