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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건과 예언자의 목소리-임 영 천 목사
    지난달 하순(5. 24)에 향년 80세의 백경자씨가 한(恨)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이분의 존함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는 혹시 이분이 노령에 이른 어떤 일제(日帝)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의 한 분이 아닌가 짐작해 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분은 소위 그 위안부 여성의 삶 못지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간 한국의 여성이기도 하였다.이분은 1973년 10월 19일, 당시 중앙정보부의 강압적인 수사에 의해 이른바 고문치사 당한 고 최종길 서울대 법학과 교수의 부인이었다. 당시 42세의, 앞길이 구만리 같았던 젊은 엘리트 교수를 남편으로 두고 있었던 이분에게 남편인 최 교수의 죽음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사흘 전인 16일 중정의 수사협조 요청에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던 남편이 그 사흘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렸으니, 어찌 이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있었겠는가.몇 달 뒤 다가올 올해 10월 19일은 최 교수 서거 42주기의 날이다. 42세였던 남편이 사망한 뒤 그 곱빼기 햇수(42주)가 되는 그날을 차마 살아서(눈뜨고) 맞을 수는 없었든지 그분은 이 한 많은 세상을 표표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 통탄해 마지않았던 모든 이들이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박근혜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위 과거사 문제 해결에 힘을 쏟은 결과 과거 사건들이 많이 해결(해명)되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 가장 큰 것이 아마도 인혁당 사건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의 해명 결과, 실로 8명의 목숨을 재판 직후 전격 처형해버리고 만 이 사건이 실은 날조된 것이었다는 공식 발표에 임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무슨 간첩 사건이니, 또는 무슨 간첩단 사건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거의?) 날조된 것이었다는 재판 결과 발표에 역시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음이 또한 사실이다. 최종길 교수 사건도 ‘그가 간첩이었음을 고백하고 자살했다’는 식으로 처음 발표되었던 내용이 그 후의 조사에 의해 그 사건 자체가 날조된 것이었다는 결과 발표에 우리는 분노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민사소송에 의해 몇 푼의 돈이나 쥐어주고 마는 배상 판결로 끝나버리고, 형사 재판은 시효가 끝났다는 것을 구실로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국가의 공신력에 대하여 신뢰할 수 없는 국민들이 참으로 가련하기만 할 뿐이다.이스라엘의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이 떠오른다. 예레미야,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위정자들은 떨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들은 주저함 없이 제왕들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였다. 그들의 예언은 당연히 길예연(吉預言)이 아닌 흉예언(兇預言)이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아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와 같은 직언 앞에서 속으로 떨지 않을 제왕들이 있었겠는가. 만일 그들이 오늘의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앞서 말한 그런 흉측한 일들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당연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제왕과 그 측근 권부 인사들에게 질타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예언이 발(發)해진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흉예언일 수밖에 없으리라.미국의 신학자 월터 부르지만은 그의 이름난 저서 <예언자적 상상력> 속에서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한 나라의 바람직한 정치와 경제를 이렇게 바라보았다. ‘억압의 정치 아닌 정의의 정치’, ‘풍요의 경제가 아닌 평등의 경제’, 이렇게 보았다. 정의(正義)의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백성들에게 억압의 정치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를 하수같이, 공의를 강물과 같이 흐르게 하라”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이 그 단적인 예이다.풍요의 경제가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위안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등의 경제라는 것이다. 이 평등의 경제를 지향하지 않고 풍요의 경제만을 추구할 때 모든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풍요의 경제는 결국 억압의 정치와 손잡게 되는 법이다. 불평등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입을 봉쇄하고, 억압의 정치에 반기를 드는 국민들을 잠재우기 위해 인혁당 사건도 날조하고 무슨 간첩단 사건도 조작하고 또 긴급조치법도 만들고 하다가 결국은 무너져 내린 정권이 아니었던가. 흉예언을 발하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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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9
  •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판단 오류와 교회의 정당한 대응/이 광 호 목사
    이제 며칠 후면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서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열린다. 이는 수년 전부터 열려왔는데 해마다 그 참가자 수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라 해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직접 그와 같은 퇴폐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을 비판하지 말자는 자들도 있다. 물론 그에 대하여 무관심한 자들도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경멸하는 무서운 죄라고 지적하는 성도들도 있다, 우리 시대에는 기독교에서마저 동성애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성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하면 기독교를 앞세우는 옹호자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게 된다. 그것을 죄라고 말하는 자들이 도리어 신앙이 없는 자로 간주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동성애자들을 위하는 듯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왜곡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은 겉보기에 저들에 대한 사랑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주장은 그들을 더욱 심각한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동성애자들은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신앙을 가진 성숙한 성도들은 저들의 죄를 명확히 지적하고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동성애 이외의 다른 죄를 범하게 될 경우에도 그것을 죄라고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다. 죄를 짓는 자에게 그것이 괜찮다고 격려한다면 그로 하여금 더욱 깊은 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된다. 우리 시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인권을 앞세워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많이 있다. 저들의 죄를 일깨우고 그로부터 돌이키도록 도와주어야 할 자들이 어정쩡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저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은 죄악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성애에 대한 현대 한국사회의 입장은 불과 15년 전과 비교해볼 때 완전히 변해 있다. 2000년 당시 유명 연예인 가운데 한 사람이 동애자로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한국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동성애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닌 사악한 행위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공영방송에서는 그의 출연을 전면 금지했으며 방송국의 그런 처사를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 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지금 30대 중반이 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판단과 반동성애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그것이 성경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은 동성애가 무서운 죄라는 사실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마저 그와 같은 발언을 하면 벌떼처럼 덤벼드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복음이 불과 몇 년을 사이에 두고 그처럼 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15년 전에는 하나님이 경멸하는 악한 죄로 인식되던 것이 15년 지난 후에는 동일한 행위가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즉 성경의 진리는 시대적 환경이나 세태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수천 년 전이나 수백 년 전에 죄로 규정된 것이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죄가 된다. 인간들이 아무리 죄가 아니라고 부르짖는다 해도 그것은 죄일 수밖에 없다. 혼탁한 시대에 존재하는 지상 교회는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죄를 보고 죄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즉 세상의 눈치를 보고 우왕좌왕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세상은 점차 교회를 포위하여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현대 교회는 그에 대한 새로운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악한 세상의 편에 설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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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 봄철 속의 이 잔인한 달들 -임 영 천 목사
    서양의 어느 시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당시 그 이름난 시인이 한국의 4월까지를 염두에 두고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의 결과는 바로 적중된 표현인 것 같다. 적어도 지난해(2014)부터는 더욱더 그러하다는 판단이 앞서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0년 4월에 이른바 4·19혁명이 일어나 많은 젊은이(특히 대학생)들이 산화했었다. 정치 일선의 실권자들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고작 1년 만에 군부 세력에 의해 소위(所謂)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4·19의 의의는 역사 속에 점차 묻혀져 갔다. 그러나 T.S.엘리엇이 말한바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속에는 다분히 역설적(逆說的)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흔든다.”란 유명한 시구에서 볼 때 그 복잡 미묘한 뜻이 독자들에게 뚜렷이 전달된다. 그(시인)에 의하면 4월이 단순히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시들어버린 뿌리에서 생명체를 일으켜 세울 봄비를 내리는 계절이라면 4월은 ‘잔인’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의미만을 지닌 계절은 결코 아니란 말이다. 4·19 의거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시 대단한 의의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정치적으로 이미 죽어버린 땅(死地,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키워보려고 젊은이들이 일으킨 일대 거사였고 이로 인해 이 땅에 일시적으로나마 시들어버린 뿌리에서 무언가 생명이 꿈틀거리게 봄비를 내려 준 의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무수한 젊은이들이 죽고 또 다쳤다면 이런 동력을 제공해 준 4월이 잔인한 달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그런데 지난해(甲午年)에 일어난 4·16 세월호침몰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 4월이란 계절을 우리나라에서 더욱 잔인한 달로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판단된다. 예부터 무슨 세계7대불가사의란 표현이 자주 사용돼 왔는데, 이 ‘세계’란 말 대신 적어도 ‘한국’이란 말로 바꾸어 사용할만한 거리는 될 수 있는 게 이 사건이 아닌가 한다. 어떻든 세월호 사건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것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하고 야릇하다.”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사건이었기에 정상적인 인간의 머리로는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이 이상하고 야릇한 사건이었다는 말인가. 이 ‘불가사의한 일’의 실체를 풀어야 할 책무가 ‘흐르는 세월의 배’ 위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얼마 전에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재가를 미루고 즉각 재협의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그 성명의 내용 가운데 그 시행령이 “사실상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공무원이 특조위의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 대문이 나오는데,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특조위의 이 시행령이 불가사의해도 보통 불가사의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 아닌가. 1961년 5월16일에 소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후에 이 세력은 피의자 8명 처형의 이른바 인혁당 재판이란 극도의 잔인한 사건까지 날조해 가면서 3선 개헌에 득의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했지만 끝내 역사의 엄중한 심판에 의해 그 세력이 소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이의 “나는 잔당이 아니고 본당이다.”라고 큰소리쳤던 것처럼 요즘 그것의 잔당 아닌 본당 세력이 재집권에 진입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불운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4월은 잔인한 달에서 이제 5월도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성싶은 일이 이어져 가는 편이다.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0년 5월18일에 이른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민중항쟁은 그 하루 전 날 있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잔인한 학살 만행 때문에 촉발된 것이어서, 그 책임을 통감한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이미 보상 절차까지 거의 끝나가는 현 시점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해 북한 공작원 개입 운운의 망발이 발해지고 있음은 매우 유감이라고 하겠다.4·16 세월호 사건, 4·19 의거 사건,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등은 한국의 잔인한 집권 세력들과 어떻게든 관련된 사건들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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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15-05-28
  • 죽었으나 산 자의 오월은 진동한다-홍 성 표 목사
    지금부터 35년전 오월 18일 광주는 억압과 폭정에 맞서 불법 신군부 쿠테타에 의해서 오직 하나 뿐인 생명을 내걸고 싸웠다. 박정희의 종말과 함께 그의 가지인 전두환의 권력욕과 파시즘적 지배 욕망이 광주의 하늘과 땅을 피빛으로 물들게 한 것이다. 필자는 그 오월의 한 해 전 79년에 기장 전국청년광주대회에 참석하여 박정희의 18년 절대 권력의 통치에 저항하는 기도를 드리며 광주의 시내 금남로를 거닐었다. 일제의 청산을 묻고 반토막의 나라 분단의 땅에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민족의 독립과 투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피의 갑을 외면한 채 권력의 욕정에 빠져 4.19의 맨 가슴에 무너지고, 무능한 민주당 정권을 짓밟고 나선 박정희의 군화 발에 민족과 민중의 꽃은 무참히도 폭압에 스러져 갔다. 그 어둠과 죽음의 가지인 신군부 전두환의 공중권세가 민주를 부르짖는 하늘의 소리를 총과 탱크와 무자비한 학살과 살육으로 붉은 선혈로 광주를 덮은 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의 세계가 무너진 지 몇 성상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분단의 무거운 벽이 둘러 선 이 땅에는 반도의 냉전으로 악한 권력과 탐욕을 유지 하고 있다.신군부가 권좌에서 형식상 물러가고 87년의 신군부 끄나풀인 거짓 보통의 정부가 민중의 요구를 수용한 87년 6.29 그날의 일이 꽤 오래 지나갔지만, 여전히 부정과 간교로 부활한 악의 세력은 민족과 민중의 눈과 귀를 속이며 조중동 더러운 언론과 아부와 아첨을 떠는 존재들과 함께 보수의 찌꺼기의 이름으로 자기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시키고 호도하며 민중의 심장과 가슴을 도려내는 사기극을 연출하고 있다. 밥벌이에 여념 없는 어용 지식인들과 비굴하고 비열한 반역사적 종교인들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여 역사의 어둠을 깊이 하고 있다. 오월의 피는 아직도 식지 않고 뜨겁게 끓고 있는데 허리 잘린 반도의 몸은 타 들어 가고 있다. 불의와 거짓에는 침묵하고 썩을 것들에는 존재와 가치를 썩고 있다. 무어라 말해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붙잡고 허덕이고 허기진 속을 채우기는 역사의 텅 빈 공간의 계곡은 수천 길 낭떠러지다. 조용히 걷고 싶은 오솔길은 역사의 심장을 두드린다. 오월의 소리를 억압하고 외면하고 등 돌리는 울음들이 내 발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요동치게 한다. 체념과 갈등과 전쟁과 싸움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허무와 허무주의로 유혹한다. 신자본주의와 그 끝자락으로 치닫는 인간의 탐욕들이 존재와 가치의 의미들을 희석시키는데 신록은 짙푸르러만 간다. 오월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땅과 하늘을 진동시키던 날에 애절한 생명의 미소 머금고 잠벵이 걸치며 이슬 내린 논둑길을 걸어간다. 푸른 보리밭은 바람에 춤추고 수줍은 봄은 태양을 품속에 안는다. 오월은 죽지 않는다. 오월의 노래는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가 이 땅을 메아리 치고 큰 물결 새로이 잦아든다. 죽은 자여 부활 하고 산자는 춤을 추라. 제주의 한라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백두의 심장까지 부서지고 깨어진 몸을 다시금 고추 세워 살지 못한 한의 응어리들을 풀어 가리라. 존재의 깊이와 높음과 넓이를 다하여 거친 땅 갈아엎고 새로운 나라 기필코 만들어 간다. 죽은 민주 살려내고 상처 입은 나뭇가지 손등으로 막아서서 내 작은 가슴으로 호흡하리라. 일어서야 한다. 소리쳐야 한다. 살려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포기해서는 아니된다. 가쁜 숨 몰아쉬고 새벽처럼 달려가야 한다. 산과 강을 넘고 바다도 단숨에 건너 가서 잃어버린 혼을 찾아와야 한다. 허물 수 없는 벽을 허물고 잃은 땅 회복하여 다시 세상 섬겨야 한다. 아직도 더럽고 추한 이름 하여 보수언론들은 오월을 종북과 빨갱이로 매도하며 그들의 피 흘리는 가슴을 후벼 판다. 거짓과 불의를 밥 먹듯이 하여 밥벌이 욕망을 채우는 악한 세력들이 오월의 자존을 짓밟아도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다. 한 생명 바쳐 그래도 민주의 이름은 얻었지만 살아 있는 부끄러움은 여전하다. 광주의 오월, 금남로의 오월 분단의 오월, 그리고 언제인가 반드시 오고야 말 통일의 오월, 기다리던 님 그 오월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푸른 하늘과 생명의 땅을 이어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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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5
  • 이상한 아동학대죄-이 광 호 목사
    어린 아동을 학대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아동학대죄는 어른이 자라나는 아동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하거나 심하게 괴롭힘으로써 아동의 일상적인 안전한 삶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아동학대자가 있다면 국가는 당연히 그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부는 아동학대죄의 정의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적극적인 신앙 교육조차 학대죄로 간주한다. 즉 자녀가 신앙을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적극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을 일종의 범죄행위로 본다. 이는 부모의 지나친 신앙 교육은 아동의 정서를 크게 해치는 악행이라는 인식에 연관되어 있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 주변에는 여기저기 아동학대죄가 존재한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데 열심히 공부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동학대죄가 아닌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동에게 억지로 학교에 가라고 떠미는 것은 아동학대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또한 죽어도 싫은 영어와 수학 과목을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해롭지 않은가? 자기 자녀에 대한 부모의 적극적인 신앙교육이 아동학대라고 한다면 한국의 상당수 학교에서는 이미 교사들로부터 심각한 아동학대 행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공부로 인해 억압받는 아동들을 하루 종일 교실에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교사들은 학부모들을 설득해 아동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내는 일을 중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어리석은 정책입안자들은 아동들을 학대하고 있는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라는 명분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동성애가 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이 교육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정서를 엄청나게 해치고 있다. 그것은 아동들에 대한 교사들의 무서운 학대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2015년 4월 17일자 국민일보에는, 지난 달 중순 교육부가 서울시교육청 등 각 교육청에 ‘아동학대 및 신고의무자 교육 실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기사가 났다. 그 공문에는 ‘보호자의 종교행위 강요’를 아동학대의 한 유형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학교에서는 상부 기관의 요구에 따라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거기에는 ‘보호자의 종교에 대한 강요행위는 아동 학대에 해당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그와 같은 내용을 공지하고 교직원회의를 통해 연수교육까지 마쳤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이런 현실을 보면 지금의 우리나라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적극적인 신앙 교육을 시키면 아동학대죄가 적용된다는 것이 말이라도 될 법 한가? 건전한 교회와 성도들은 이에 연관된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 아이들이 아동 학대죄에 관한 학교의 지침을 핑계대어 교회에 가지 않으려는 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언약의 자녀들이 신앙 문제에 대하여 부모에게 강력하게 저항하게 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진다. 아이들은 그것을 빌미로 삼아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국가 정책이 진행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에 속한 부모들이 언약의 자녀들에게 건강한 성장을 위해 신앙 교육을 시키는 것은 학대가 아니라 도리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것을 아동학대죄로 간주한다는 것은 건전한 신앙을 기초로 한 가정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분명한 점은 이와 같은 이상한 사태가 우리 주변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면 장차 상상을 초월한 부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언약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올바르게 양육하는데 엄청난 장애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 악한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상속해 주어야만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5-08
  • 헤롯왕과 히틀러, 그리고 세월호/임 영 천 목사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헤롯왕(대헤롯)이 그(아기예수)를 잡아 처치하려고 하였다. 미래에 자기의 권좌를 위협할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부모와 함께 피신해버려 그를 잡아들일 수 없게 되자 헤롯은 두 살 아래의 어린아이들을 모두 잡아 죽이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을 저질렀다. 표현컨대 대학살(大虐殺)이었다. 그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린 양과 같은 힘없는 존재들이었는데, 마치 세렝게티 대평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영양(임팔라)들이 갑자기 달려드는 맹수들에 의해 속절없이 물려가 목숨을 잃는 경우처럼 학살당하고 말았다. 약육강식의 원리, 곧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연약하고도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자를 희생시키고 자기 자리(권좌)를 지키는 일이 서슴없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권력의 잔인무도(殘忍無道)함과 후안무치(厚顔無恥)함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권력자에 의해 이런 대학살의 만행이 자행된 역사적 사실 중의 가장 큰 것은 독일 제3제국의 최고권을 장악하고 있던 히틀러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들에 대한 홀로코스트(대학살 사태)였다. 대헤롯의 자리에 히틀러가 들어앉고, 학살된 어린아이들의 자리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던 허다한 유대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헤롯이 합당한 이유로 어린이들을 죽인 게 아니었고, 또 어린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학살당한 것이 아니었듯이, 히틀러는 정당한 이유도 없이 유대인들을 모아다 가스실의 희생양으로 보냈으며, 또 유대인들은 무슨 마땅한 죄목도 없이 인종소탕(人種掃蕩)이란 미명 아래 가스실의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 희생자들의 숫자가 많게 잡아 무려 6백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히틀러가 제2차세계대전의 말기에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버려 종전 이후의 전범자 재판에 그가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전범 재판에 상당히 많은 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독일 책임자들이 출석해 재판을 받고 또 처벌을 받은 것을 보면, 홀로코스트의 책임이 단지 히틀러 1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최고권자는 그 신하와 막료들의 지원에 의해 그 막강한 자리가 유지되고, 또 막료나 부하들은 그 최고권자에 충성(?)하면서 그 자리, 이를테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 같은 것을 지키게 된다는 일반적인 사실로 볼 때 그 두 계층의 사람들은 상호 공범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바로 이 비정하고 무자비한 공범자들의 만행으로 인해 세계의 역사, 아니 인류의 역사는 먹칠로 점철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무솔리니와 그 부하들의 상호 관계가 그러했으며, 일본 천황과 ‘아시아의 히틀러’ 도조 히데키[또는 현 아베 수상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연합 세력 역시 그러했다고 보겠다. 중국인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고 하는 난징(南京) 대학살의 참혹상은 아우슈비츠에서의 대학살을 무색케 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우리는 저 지난주로 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냈다. 학생들을 비롯한 일반인 수백 명의 목숨들이 이때 수장되었다. 유럽의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보여주듯이 해상에서의 조난 사건은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천재지변이나 인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불행한 선박 사건이 많이 일어난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들이 이 세월호 사태를 타이타닉호 사건처럼 하나의 불가피했던 사건으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에 처한 인명을 모두 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더 많은 수의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다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가 침몰해 가고 있던 시점부터 줄곧 TV의 실황 방송을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이런 식의 조난구조가 행해질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강한 의문을 공통적으로 품고 있었던 정황과 관련된다.대헤롯에 의해 죽은 아이들이 무구(無垢)했듯이, 그리고 히틀러나 아사아의 히틀러에 의해 죽어간 많은 이들이 무죄했듯이, 세월호 사태로 인해 죽어간 이들도 그러한 불행에 처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고의적으로 그들을 수장시킨 것은 아니라고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수장이란 대학살의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정부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4-23
  • 부활절과 ‘팽목항’-이광호 목사
    추운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니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 온다. 해마다 돌아오는 기독교 절기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 일쑤다. 입술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을 언급하지만 종교적인 행사에 관심을 치중하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목적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16일 팽목항 인근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사건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300명가량의 사망자를 낸 선박침몰 사고 자체도 문제였지만 사고 직후 납득할 수 없는 무책임한 구조 활동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 이후의 후속조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 했으며, 일 년이 지나도록 사건의 원인조차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관련된 자들이 어떤 구체적인 책임을 졌는지 조차 아리송할 뿐이다. 아직도 미심쩍은 부분들을 숱하게 많이 남겨두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은 앞으로 그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정부와 관련자들은 지금이라도 백성들 앞에 모든 것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히지 않으면 국민들의 혼란을 더하게 할 따름이다. 국가는 일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직접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은 자식과 형제를 잃은 가족의 슬픈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럴 때 기독교인으로서 세월호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웃의 고통에 참여하며 약자인 저들의 편에 서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세월호 침몰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에 연관 지어 종교적인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종교인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성경은 결코 그와 같은 종교 행위를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며 참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부활절을 맞아 몇몇 기독교 단체에서는 고난 주간을 세월호 참사와 연관 짓고 팽목항을 찾아가 종교적인 행사를 한다고 한다. 4월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일주년이 될 뿐 아니라 부활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세월호 사건을 연관지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금년 부활절을 앞두고 이미 그곳에 다양한 종교적인 조형물들을 설치하고 행사를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부활절 당일이 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곳에 모여 부활절을 지킨다고 한다. 관련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홍보를 하며 교인들을 동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왜 굳이 그곳에 가서 부활절 행사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팽목항에서 부활절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성경의 교훈과 무관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란 사실이다. 그곳에서 시도하는 부활절 행사는 이미 사망한 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발생하지 않는다. 부활절을 맞아 그와 같은 행사를 하는 것은 결코 건전한 성도들이 취할 행위가 아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4월 16일에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와 천주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팽목항에서 법회와 미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저들처럼 하는 것은 세상의 시류에 편승한 억지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에 찬사를 보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건전한 교회가 취할 태도가 될 수 없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연관 지어 종교 행사를 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순수하게 따르는 성숙한 신앙인들이라면 그와 같은 행사를 주관하지 않는다. 교회가 기억해야 할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참사와 연관 지어 기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자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세월이 가면 잊혀 질 것이라 생각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자들은 도리어 나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부활절을 이용하여 그에 접근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민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4-02
  • 시인 윤동주 서거 70주기에 임해-임 영 천 목사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가 세상을 떠난 지 지난 2월16일로 고희(70주기)를 맞았다. 1917년(12월30일) 태생으로 1945년(2월16일)에 서거했으니 고작 이십칠 년여를 살고 생을 마감한 셈이다. 그는 그 짧은 생애에 ‘서시’와 ‘별 헤는 밤’ 등을 비롯한 주옥같은 시 작품들을 다수 남겨놓아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십자가’와 ‘새벽이 올 때까지’ 등 이른바 기독교 시편들을 남겨놓아 문학과 종교(기독교) 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도록 해 주었다. 실제로 그의 조부 윤하현 씨는 그곳(명동) 교회의 장로였으며, 동만(주)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 목사는 그의 외삼촌이었다. 요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을미년(2015) 올해는 조국 광복 70주년의 해이고, 동시에 민족 분단 70주년의 해이기도 한데, 여기에 더해 민족시인 윤동주의 서거 70주년의 해이기도 하니, 올해는 여러 면에서 민족사적(民族史的)인 의의가 대단히 큰 해인 것 같다.서거 당일(2.16)에 해당하는 날 연세대학교 윤동주추모사업회가 주관해 루스채플에서 추도예배와 추모공연, 그리고 시·산문 창작대회 시상식 등 여러 행사들이 열렸다. 그러나 이 행사는 국내 인사들에게까지도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소 한산한 행사로 비쳐지지 않았나 여겨진다. 오히려 70주기 추모 행사는 이국(異國)인 일본 땅에서 더 성대하게 치러졌던 게 아닌가 판단된다. 당시 윤 시인의 ‘죽음’의 형무소가 자리 잡고 있었던 후쿠오카(福岡) 시에서, 또 그가 초기 한 학기 동안 재학한 바 있는 도쿄(東京)의 릿쿄대(立敎大)에서, 그리고 그가 전학[편입]해서 더 오래 다녔던 교토(京都)의 도시샤대(同志社大) 등 여러 곳에서 윤동주 서거 70주기 추모행사들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한적한 행사로 치러진 것에 비해, 오히려 일본에서는 더 성대한 행사들이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다소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윤동주의 죽음과 관련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일부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런 적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더욱 열성적이었던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행사가 순전히 일본인 자신들만의 열정에 의해 기획되거나 치러진 것이 아니란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일본 문화인[지식인]들로 하여금 윤동주 관련 문제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도록, 또는 윤 시인의 비극적인 문제를 두고두고 자신들의 양심에 따른 고통의 문제로 여기게끔 만든 한국인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일본의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문화인]들의 그 양심에 호소함으로써 오늘의 결실이 맺어졌다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에 대하여 의문이 들던 몇 가지 문제점들이 근래에 다소 해결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도쿄의 릿쿄대학 재학 시절 소위 까까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과 창씨(개명)의 사실, 그리고 겨우 한 학기 다니고는 다음 학기에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편입[전학]해버리고 만 일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방학이 되어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배우 율 브린너를 연상시키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당시 그 릿쿄대학 안에 소위 단발령이 내려졌던 때문이었다. 군국주의 교육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히라누마 도추(平沼東柱)’란 그의 창씨(개명)도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군국주의 교육의, 지시 일변도의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한 학기 만에 도쿄 지역을 떠나 교토 지역의 대학으로 옮기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릿쿄대학의 그 강압적인 군사교련 교육을 시급히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우리는 송몽규(宋夢奎)란 인물에 대해 더러 들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북간도 태생으로 윤동주와 같은 해(1917)에 태어나 같은 해(1945)에 삶을 마감한, 윤 시인의 동갑내기 형(고종사촌 형)이자 친구였던 독립운동가 말이다. 그는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역시 같은 죄목으로 갇혀 있다가 윤동주가 죽은 직후 3주 만에 불귀의 객이 된 청년 문사이다. 그가 접견(면회) 온 사람들(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에게 증언한 바에 의하면 “매일 밤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동주가 어떤 생체실험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항간에 떠돌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규슈대학 주도의 생체실험이 당시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오늘날 공인되어 있는 터이다.) 70년 전 차가운 일본 형무소에서 쓸쓸히 죽어간 윤동주 시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3-18
  •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광 호 목사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 세상이 참 어지럽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조차 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형편은 어른으로서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대개 어른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답습한다. 어른들은 곧 자라나는 세대의 거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어른들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워 익히고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이런 말을 하면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세상 어디나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른들이 본이 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지금도 이 세상의 여러 나라와 많은 지역에서는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른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한 소망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통탄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는 기독교계나 국가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는 교회의 지도자라 칭하는 자들이 세상의 욕망에 더욱 집착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치 교회 위에 군림하는 권세라도 지닌 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교권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나아가 유명한 목사들의 간음, 사기와 횡령, 폭행, 심지어는 수십억대의 거액 도박 사건에 연루된 사건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들도 설교시간에는 다양한 미사여구를 섞어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교회에 충성하라고 열변을 토할 것이다. 저들은 마치 성공한 목사인 양 어린 교인들 앞에서 거들먹거릴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겉보기에 그럴듯한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세상의 것들을 더욱 탐하고 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핑계 대며 이기적인 집단을 형성하거나 교권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교권에 맛을 들인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저항하는 행위라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가증스런 위선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권세를 가진 자들은 온갖 더러운 부패로 얼룩져 있다. 청문회를 통해 저들의 모든 부정과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배지를 단 자들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부패한 자들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를 향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요구한다면 코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아무리 더러운 부정을 저지른다고 할지라도 일단 성공한 모습을 보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묻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다음 세대를 짊어지게 될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부패한 삶과 성공한 삶을 예의 주시하며 자기의 인생을 저울질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우려가 따른다. 그렇게 되면 남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면 개의치 않는다. 이는 인간들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경향성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에게 더욱 높은 도덕성과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가들이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자들을 용납하고 저들이 활보하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장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숙한 어른들이라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자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에 처해 있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사라지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기독교계와 정계 지도자들에게 한마디 남긴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여, 이기적인 욕망에 눈먼 당신들이 다음 세대를 망가뜨리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3-06
  • 3.1 운동과 한국교회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에 일제의 강제늑약과 강제합방으로 오천년 민족의 운명과 500년 조선은 역사의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빛은 사라지고 희망은 묻혀버렸다. 생명들은 지하에서 숨을 죽이며 신음하며 미세한 탄식으로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었다. 소위 반만년을 거쳐 오는 동안 고구려의 넓은 기상으로 북방을 누비며 호령하던 기개는 다 소멸 되고 한 민족의 기개와 서릿발은 무참히도 짓밟혀 갔다. 이 민족을 지키던 장수들은 일제의 추악한 발아래 무릎을 꿇고 민족의 동맥과 생명의 피를 공급하던 민초와 민중들의 함성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정지 되고 숨 막히는 절망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에 분연히 일어서 떨치며 살아 있음을 땅과 하늘에 솟구치게 온 몸으로 부르짖은 것이 3.1의 민족 생명 운동이다. 이 운동은 단순히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소금 방염 운동과 세계 민중과 독립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역사와 하늘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침탈 정책은 무단에 문화정책으로 방향을 전화하게 되고 오히려 간교한 민족 문화 말살 기류를 타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이 민족의 살아 있음을 천지에 알리는 민족 기개와 땅과 하늘이 하나이되는 일제와 악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 아닐 수 없다. 이 민족이 그 암울한 상황에서 빛을 잃었을 때 새로운 빛 하나가 어둠을 뚫고 문틈으로 새어 오다 창문을 열고 가열 차게 흘러들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의 빛이었다. 앞과 뒤가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상황에서 그 빛은 단 하나의 죽음과 악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며 굴복시킬 수 있는 힘 이었다. 죽은 자와 사망 아래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산 자만이 소리치고 눈을 부릅떠서 악을 호령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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