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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매각 후폭풍 누가 감당할텐가?
- 금번 합동측의 납골당 매각 결정이 극히 경악스러운 것 중 가장 큰 하나는 최소한의 재고 파악이나 상황 점검이 전혀 안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이날 실행위는 그저 27억원에 납골당을 매각하는데 주력했다. 현 납골당의 가치가 27억원에 타당한지? 이득인지, 손해인지? 아니 손해라면 대체 그 규모는 얼마인지에 대한 파악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가치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단계인 납골기가 몇이나 남았는지도 몰랐다. 납골당의 매각을 논의하면서 납골당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행위를 열고, 납골당의 매각을 결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27억원이라는 금액을 책정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들도 친구끼리 물건을 사고 팔 때 가장 먼저 물건의 질을 살펴본 후 가격을 정하고, 개수를 파악한다. 그리고 서로의 조율을 거치며, 거래를 할지 말지를 정한다. 그게 초등학생도 아는 상거래의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합동측은 자신의 물건을 처분하면서 물건이 몇 개가 있는지도 모른 채 가격부터 정해놨다. 당연히 이날 실행위원 중에 ‘현재 납골기가 몇 개인가?’ 묻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박무용 총회장은 “합동총회 임원들이 납골당에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갔는데 그들이 막아서서 알 수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재고 파악을 시도하기는 했는데, 결국 실패했으니까 몇 개인지는 따지지 말고 팔지 말지를 정하자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박 총회장이 말한 합동총회 임원들이 현장 파악을 하지 못하게 막아섰다는 ‘그들(최 씨측)’에게 합동측이 27억원에 납골당을 매각했다는 사실이다. 이 뿐 아니라 문제의 최 씨는 지난 9월 총회에서 허활민 목사가 자신에게 2000만원의 뇌물을 건넸다고 지목한 당사자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징계를 받으며 교단은 완전히 쑥대밭이 됐고, 합동측은 납골당 관련 소송이 끝나면 감정을 통해 제3자에 이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총회의 모든 결의는 무시되고, 돈다발 스캔들의 당사자이자 총회장을 포함 교단 임원을 납골당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막아섰던 최 씨에 납골당을 매각하는 도무지 이해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50여분간 이어진 이날 실행위에서 매각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 발언은 최춘경 씨가 납골당 입구 주차장에 자기 부지를 갖고 있어,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납골당이 폐쇄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만약 폐쇄가 되면 300억원의 연금기금을 다 날려버릴 수 있으니, 최 씨에게 매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 이후 이어진 거수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매각이 결정됐다. 합동측은 이미 납골당 문제로 인해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었다. 합동측 교단지인 기독신문은 납골당으로 인해 200억원 이상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손실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이 손해가 목회자들의 연금기금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한 실행위원의 우려처럼 납골당을 매각 하지 않아 300억원의 연금기금을 다 날릴 수도 있던 것을 그나마 27억원이라도 건졌으니 그저 현명하다고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로써 합동측의 바램대로 납골당 문제가 교단을 완전히 떠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합동측 납골당 스캔들은 이제 더 치열해질 것이며, 내부 후폭풍이 매우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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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매각 후폭풍 누가 감당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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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작지만 주목받는 교회
- 한국교회는 선교 100주년을 지나면서 세계교회에 괄목할 만큼 성장과 부흥을 거듭해 왔다. 세계에서 열 번째 안으로 손꼽히는 교회도 여러 교회가 포함될 정도로 대형화 된 교회가 늘어났고, 그에 따른 재산과 재정적인 규모도 매우 커진 것 또한 놀라운 축복이다.그러나 최근에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에 대한 도덕성과 윤리적인 문제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교회가 교회답게 합리적으로 바람직하게 운영되고 성장해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인독주, 재정집행의 불투명, 목회자의 부도덕성, 세습목회, 교회행정의 불합리한 처리 등 수많은 문제들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 전체의 복음전도 사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교회당을 넓고 크게 대형으로 건축하고 수만, 수십만의 교인을 거느리면서 대단한 힘을 가진 교회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목회자도 있다. 대형교회 일부 목회자들은 엄청난 재정과 성도들을 이기적으로 이용하여 비난을 받는 일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않고,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되면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고 분립하는 바람직한 면을 보여주는 교회도 있다.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에 작지만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고 있는 주목받는 교회는 무엇보다 규모가 작지만 섬기는 교회로서 아름다운 실천이 있는 교회이다. 어느 교회에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목사가 부임하였다. 부임하면서 온 성도들 앞에서 장로님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친히 발을 씻어 주면서 섬기는 목사로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매우 감동적이다. 목회자가 성도를 섬기고, 성도들이 목회자를 섬기고, 성도들과 성도들이 서로 섬기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인 것이다. 나아가 이웃과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섬기는 교회로서 봉사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크고 성도들이 많고, 장로 권사가 많아도 서로가 얼굴도 잘 모른 채 군중처럼 몰려 왔다가 헤어진다면 교회의 본래적인 아름다운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또한 작지만 영적 리더십이 발휘되는 교회가 필요하다. 목회자는 교회를 위한 헌신을 이끌어 내는 탁월한 영적 권위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영적 리더십과 권위 앞에 스스로의 순종과 희생적인 헌신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70~80년대의 소위 교회가 성장하려면 ‘교인들을 달달 볶아야’ 한다는 성장과 부흥의 시대는 지나갔다. 성장일변도의 목회보다 작은 교회일지라도 소박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면서 얼마만큼 말씀을 연구하느냐에 따라서 영적 권위와 리더십은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작지만 투명하고 합리적인 행정을 시행하는 교회가 앞서가는 교회다. 서울 강남의 어느 대형장로교회는 교인이 수만 명이 되고, 장로가 백여 명을 넘는 교회지만 교회의 인사문제, 중요정책을 다루는 당회의 회의는 한 해 동안에 한두 번 모인다고 한다. 이 말은 교회의 재정과 중요한 정책들을 담임목사와 몇몇 사람에 의해서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대표라는 장로들도, 헌금을 하는 교인들도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교회가 작은 규모이지만 당회에서 의논하고, 제직회에서 논의하여 모든 교인들이 함께 논의하면서 교회를 원만하게 운영하는 것이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인 것이다. 투명한 재정집행이 이루어지고 모든 성도들이 공감하는 행정이 시행됨으로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면모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지만 이러한 참된 모습이 교회의 비전으로 채워지는 것이 주목받는 교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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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작지만 주목받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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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연구의 새로운 목적
- 그간 몇몇 이단연구가들로부터 이단시비를 받아온 은혜로교회와 신옥주 목사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이 열려 다시 한 번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장합신 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 소장인 박형택 목사가 주최하고, 인터넷 카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운영자인 이인규 권사가 함께한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신옥주 목사의 이단성과 피지농업의 실체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고, 특히 피해자들의 피해증언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들 이단연구가들과 은혜로교회 간의 이단시비 공방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그 내용 역시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이날 이후 나온 당사자들의 몇몇 증언들은 이날 기자회견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있어 다시금 주목하게 하고 있다. 먼저 기자회견에서 “황무지라 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된 피지의 농업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와 올해 상당의을 쌀 수확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기에 피지 농림부 관계자까지 나서 “피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옥한 땅으로 농사를 짓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이 땅을 황무지라 폄하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인사들은 심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또한 피지를 직접 방문해 총영사를 만났으며, 대사관에서 국제경찰과 협력을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한 박형택 목사에 대해서도 피지 대사관의 영사가 “박형택 목사에 대해 전혀 모르며, 만난 적도 없다”고 밝혀왔다. 특히 대사관에는 총영사란 직책이 없고, 국제경찰과의 협력과 관련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며, 대사관이 그럴 권한도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날 기자회견에 대한 의문은 곳곳에서 생겨났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 기자회견 자체에 대한 진정성과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결정적으로 왜 이토록 무리하면서까지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으며, 도대체 이 기자회견의 목적은 무엇인지도 큰 의문이다. 만약 이 기자회견이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교회의 이단성을 입증하고, 반사회적 피해를 폭로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경솔한 행동이며, 심각한 잘못이다. 기독교 내 이단이나 반사회적 집단은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이들에 대한 대책과 경계는 결코 소홀히 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를 남용해서도 안된다. 이단에 대한 규정은 무엇보다 투명하고, 한줌의 의혹도 없어야 하며, 집단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너무 많은 의혹으로 얼룩져 버렸다. 그렇다보니 은혜로교회나 신옥주 목사가 이단인지? 아닌지?에 대한 시비는 이미 안중에 없고 이제는 이들이 반드시 이단이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씁쓸함마저 든다. 신옥주 목사는 지난 한교연 바수위와의 대화에서 “잘못된 것은 고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그런데 한국교회 누구라도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교회에게 진정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수정토록 도와준 이가 있는가? 아니면 어떻게든 ‘흠’을 찾아 이단시비를 지속해 왔는가? “고치겠다”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끝없이 ‘이단’이라고만 옳아 매는 것은 결코 공교회의 자세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이단을 정죄하는데 몰두해 왔다. 이단이 되는 요건들에 대해서는 수만 가지 연구하며, 참으로 다양한 이단들을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정통교회로 돌아오도록 노력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동안 이단정죄가 이단전문가들의 역할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한국교회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해주는 새로운 역할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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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연구의 새로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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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교계단체, 소속감 확실한 진성회원으로 구성돼야
- 교단과 기관 단체에 있어서 소속을 분명하게 하고 활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소속된 노회와 총회가 있고, 총회 산하에는 재산을 관리하고 교회와 목회자를 관리 후원하는 유지재단과 각종 기관이 있다.또 교계에는 연합으로 활동하는 기관과 단체들이 많이 있다. 이는 목회자를 중심한 단체, 평신도 중심의 단체, 여성들의 단체 등으로 교계에서 나름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이나 단체에서 임원이나 회원이 되어 활동하면서 얼마만큼 소속감을 가지고 진성(眞性)회원이 되어 활동하는 것인가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우리 교계에는 대접받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특히 예를 들면 개교회는 노회나 총회 유지재단에 가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입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다 저렇다 총회를 논하고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의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소속감도 없이 말만 많이 하고 더 이기적인 면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총회의 유지재단에 재산을 가입한다는 것은 ‘내가 이 총회에 소속된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명분인데도 그렇지 못하다.그리고 기관과 단체의 임원이나 회원이 됐으면 규정된 회비와 분담금을 내고 진성회원으로서 일해야 그 단체가 발전하고 활성화 될 수 있다. 대체적으로 교계의 기관 단체를 보면 임원이나 회원들은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고 있고, 회장이나 대표회장이 개인적 으로 재정을 부담하여 예산의 대부분을 충당해 운영되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운영체계이며, 또 다른 병폐라고 여겨진다. 회원으로 가입하여 참여하면서 모두가 함께 회비내고 함께 활동하는 일체감이 있어야 다이나믹(dynamic)한 힘을 가지고 일하는 좋은 기관이 되고 단체로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우리 교계는 분명한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입만 가지고 말만 무성하게 쏟아내는 사람이 많다. 과거 어려운 시기였던 때에는 여유가 있는 회장과 몇몇 사람들이 재정을 부담하고 앞장서서 일해 왔다면, 지금은 사회가 변했고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확실하고 분명한 소속감을 가지고 전체 회원중심으로 기관과 단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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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교계단체, 소속감 확실한 진성회원으로 구성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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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운동에 ‘평신도는 없다’
-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평신도를 외면하고 목회자 일변도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고 적절하지 못하다. 개혁교회는 평신도 없이 유지될 수 없거니와, 장로교의 노회는 장로총대와 목사회원으로 구성되며, 총회는 목사 장로가 동수로 구성된다. 그런데 한국교회 연합운동에서는 평신도가 빠지고 목회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이지만 범교회, 범교단적으로 교회가 연합해야 할 행사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대사회, 대국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목회자들은 평신도를 제외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필자는 평신도단체의 대표회장을 역임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교회 연합행사에서나 모임 등에서 평신도를 제외시킨 조직에 대하여 항의도 했고, 성명서를 통해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예를 들면 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 조직이나 광복절 기념행사 등 여러 교회가 연합으로 개최하는 행사 조직에서 평신도들이 제외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지적을 하고 시정을 요구한 바도 있다. 어떻게 '한국교회‘를 말하면서 교회연합행사에서 평신도가 없는 조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를 강력하게 제기한 것이다.역사교과서 편찬 문제, 동성애 문제 등 범교회적으로 대처해야 될 연합운동에서 평신도들을 거의 제외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교회가 매우 절실한 현안들에 대하여 힘을 결집하여 대처해야 하는 일에 평신도들을 외면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 연합단체를 총합하는 이름으로 기자회견도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교회의 단합을 강조하는 일에서도 평신도단체가 빠져 있다.최근에 있었던 한 예로 지난 3월 17일 ‘한국교회총연합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떻게 한국교회총연합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모인 단체에 전통있는 평신도단체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총연합회‘란 이름이 걸맞는가를 묻고 싶다. 그것도 4.13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정립, 통일, 문화, 사회 등등의 정책을 기독교 입장에서 제안하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어쩌면 목회자가 어떤 조직이나 행사에서 재정은 교회에 부담시키면서 교회를 대표하는 평신도를 제외하고, 또 한국교회를 말하면서 구색에도 안맞는 조직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한국교회는 적어도 연합과 일치운동에서 목사와 평신도가 함께 고민하고 하나된 힘을 모아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 평신도들을 제외하거나 외면하면서 한국교회를 논하고 ‘총연합’을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교인을 무시하는 행태이기 때문에 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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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운동에 ‘평신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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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정치판의 ‘막장’
-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할 것없이 공천 문제로 계파간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친박계(친박근혜계) 핵심인사라는 사람이 누군가와 통화 중에 자기네당 대표를 향해 "김무성 죽여버려, 공천에서 떨어뜨려" "그런 XX부터 속아내라"고 막말을 쏟아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그는 이같은 발언이 문제가 되자 "취중에 흥분한 상태에서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무슨 억울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과연 대통령의 정무특보까지 지냈다는 인사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회의와 실망이 든다. 대관절 정치판이 아무리 아사리판이라도 그렇지 자기네 당대표를 ‘이 XX’ 운운하며 ‘죽여버려’라고 말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니 국민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 국민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일전에 서울 근교의 시민이 100만명이나 되는 한 지자체장이 자기 형수를 향해 ‘야 X팔년아, 야 X팔년아’하며 통화하는 내용이 세상에 알여져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여당의 핵심인사가 시중잡배들이 찌꺼리기에도 부적절한 언사를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쏟아냈다니 정치인이란 자들의 상식과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우리 교계에도 이런 몰상식한 목회자들이 간혹 있어서 정치인들의 상식밖의 언사만을 탓할 수도 없지만, 이런 인사를 또다시 공당이라는 여당에서 공천해 유권자들에게 밀어달라고 한다면 누가 새누리당의 도덕성을 믿겠는가.여당이든, 야당이든 계파간 서로 싸우더라도 제발 그들의 막말만은 밖으로 나오게 해 구민을 실망시키지 말고 비공개로 싸우게 해야 한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국정에 반영하는 정치인이야 말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후보 공천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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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정치판의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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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 세계 박해받는 기독교인들
- 전 세계에서 기독교가 박해받고 있다. 매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지수를 조사해온 국제오픈도어선교회는 지난 1년간 7000여명의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으로 인해 살해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3000여명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같은 시기 교회당도 2300개나 방화로 불타거나 파손됐다. 그러나 북한이나 이라크 등과 같은 정확한 조사가 불가능한 국가들도 있어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국가별 기독교 박해 순위 10위에는 전년도와 같이 1위는 북한(92점)이고, 2위는 이라크(90점) 3위는 에리트레아(89점) 4위는 아프가니스탄(88점) 5위는 시리아(87점) 6위는 파키스탄(87점) 7위는 소말리아(87점) 8위는 수단(84점) 9위는 이란(83점) 10위는 리비아(79점) 순이다. 이들 외에도 40여개 국가에서 기독교 박해지수가 5점 정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인, 폭력, 방화,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새해에도 전 세계에서 기독교 박해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자유국가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독재자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기독교 박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도와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북한과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우리교회에 닥친 일이 아니라고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세계 기독교는 ‘하나’이다. 전 세계 기독교가 지금 박해받는 형제들을 생각하고 기도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유엔도 움직이고, 교황청이나 미국 및 유럽교회들도 나서야 한다.지금 한국교회가 선거에 돈쓰고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교회가 헌금 거두어 목회자 거액 퇴직금이나 지불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헌금이 박해받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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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 세계 박해받는 기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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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정을 파괴했는가?-차진태 기자
- 예장합신측으로부터 지난해 이단으로 규정된 은혜로교회의 성도들이 최근 매우 흥미로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은혜로교회는 오래 전부터 특정 이단감별사들이나 예장합신 이대위에 맞서고 있는 바, 이들의 기자회견 내용이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의 기자회견 내용에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단 문제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요 몇 년 새 가정이 완전히 파탄 난 자들이다. 부부간의 이혼은 허다했고, 심지어는 가정에서 완전히 쫓겨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밖으로는 동네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완전히 이단에 빠져버린 마치 ‘마귀’와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보면 우린 여태까지 그랬듯 “역시 이단은 무섭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단에 빠져 이혼하고, 가정에서 쫓겨나고 결국 가정이 완전히 파탄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다르다. 자신들의 가정이 파탄난 것은 자기가 ‘이단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이단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하나같이 본래 자신들의 가정은 아무 문제 없었고, 화목했지만, 이단감별사들에 의해 이단 문제가 제기된 이후, 혹은 가족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본 이후, 불화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말하는 불화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말다툼이 심해져 폭행으로 번지기도 했고, 심지어는 칼을 들이대며, 교회에 나가지 말 것을 종용키도 했다. 이런 불화는 어쩌면 당연하다. 자기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가 알고 보니 무시무시한 ‘이단’이었다면 그 누구라고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에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고,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말대로 이단 시비 전까지 본래 아무런 문제가 없던 가정이었다면, 과연 이들의 가정이 완전히 파탄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공교단이 특정 교회나 인물을 이단으로 정죄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 몸을 담고 있는 성도들과 가족들 모두에 이단이라는 낙인이 새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 연구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며, 결코 정치적이나 지업적인 이유가 고려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이단 규정이 몇몇의 이단감별사들에 의해 좌지우지 돼서는 안된다. 철부지 어린애가 아무생각 없이 던진 돌멩이가 지나가는 개구리에게는 그 어떤 폭탄보다도 무섭게 내려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한국교회 공교단의 총대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발언권과 투표권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를 다시 한 번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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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정을 파괴했는가?-차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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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 1984년 한국교회100주년선교대회 이후 최대 집회로 기록될 ‘광복 70년 한국교회 평화통일기도회’가 끝이 났다. 15만명(경찰 추산)이라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서울 시청 광장부터 광화문까지 가득 메운 모습은 기독교가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국교회가 여전히 건재함을 사회에 보여준 일대의 사건이었다. 이번 기도회는 향후 한국교회 역사에 한 획으로 남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기도회가 그동안 한국교회 대형집회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재정 충당을 위한 순서자 남발, 순서자들 대형교회의 성도 동원 등 수많은 문제들이 총망라됐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번 기도회는 유난히 길었다. 순서만 해도 4부에 이르렀고, 설교자는 무려 4명이나 등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순서자들의 숫자다. 이번 기도회에 순서를 맡은 인물들은 총 54명이다. 규모가 큰 기도회라 할지라도 54명이나 순서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상식선을 한참이나 벗어난 부분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기도회가 되어버린 것일까?일단 이번 기도회는 위에서 언급했듯 한국교회 주요 연합단체부터 교단까지 다수가 참여했다. 기도회에 많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예산이 많이 걷혔다는 말이 되며 각 단체나 교단, 개교회는 주최 혹은 공동주최에 이름을 올리는데 각각의 후원금을 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순서로 직결이 된다. 물론 대형집회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후원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꼭 순서까지 맡을 필요가 있는가? 반대로 순서를 맡기 위해서는 꼭 돈을 내야만 하는 것인가?이번 기도회에 참여한 15여만명의 성도들은 54명에 이르는 엄청난 순서를 인내해야 했다. 만약 주최측이 성도들을 배려한 행사를 준비했다면 결코 이런 식의 순서는 짜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엄연한 한국교회 대형집회의 한계이자, 고질병이다. 이번 기도회를 보며 결코 담백하지 않은 이 찝찝함은 지난 1974년 엑스플로 74대회, 1984년 한국교회100주년선교대회 등 이전의 대형집회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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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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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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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멍에
- 전세계 이슬람권에서는 여성할례가 광법위하게 퍼져 있다. 15세 이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할례는 이슬람 울법에 따라 여성들이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시술이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의 자식만 낳는 도구로 취급된다. 이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성적 학대이고 인권 침해이다. 그래도 이슬람 사회에 사는 여성들은 대부분 그에 대한 불평없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또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부르카도 남성 앞에서는 온몸을 가려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다. 비이슬람 사회에서는 타인이 보기에 불편하다. 이는 모두 여성에 대한 멍에이다. 과연 여성에 대한 인권이 신장되고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고 있는 현대에도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이같은 멍에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인가?한국사회에도 이슬람이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 남성들을 만난 한국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여성들 가운데 기독교인들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기독교처럼 여성인권이 신장된 종교는 없다. 인류사회에서 기독교 복음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이 여성과 아동이다. 유교의 성리학에 사로잡혀 있던 구한말 조선의 여인들을 해방시킨 것도 기독교의 복음이었다.그런데 왜 한국여성들은 기독교를 외면하고 이처럼 가혹한 여성 차별을 요구하는 이슬람을 선택하는가. 그것도 기독교의 자유함을 맛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 인해 스스로를 어딘가에 속박하고자 하는 심리현상에서 오는 것인가.한국의 무슬림 여성들이 딸을 낳아 여성할례를 하고, 거리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한국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이겠으나 우리사회에서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동성애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타락한 성문화를 기독교를 비롯한 우리사회의 기성종교가 제어할 수 없다면, 어쩌면 우리사회가 이슬람에서 그 답을 찾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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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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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