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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오늘에 이러한 우리의 ‘깨어진 공동체’를 보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이는 내 자신의 양심에게 던지는 비수(匕首)의 깨침이었다. 이는 실용성을 따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심과 정의가 없는 삭막한 사회를 보는 것이었다. 이 사회는 도덕성이 피폐된 위험한 사회인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신용과 신뢰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에 성직자, 법조계, 정치인, 교수, 언론인, 위정자 등등 이런 사람들의 양심이 말라버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덕을 잃은 것은 전반사회를 불신과 증오로 불태우고 있는 악의 선봉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는 양극화를 낳고 서로의 사이에 관계가 부서져 양 극단으로 갈라지며 서로 증오하는 현상을 보게 한다. 우리 사회는 수년간 지속된 양극화의 심화, 재생산으로 인한 사회적 피폐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집값 상승과 부동산 투기로 인해 발생한 소득은 토지와 주택을 과다하게 보유한 소수에게 집중된 반면 성실히 일하는 대다수 시민들은 정상적인 소득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은 매출액과 이익이 늘고 상당한 투자여력을 가지면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이익이 줄고 경영난에 처해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소득계층 간의 양극화도 확대되고 있다.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하위 20%는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다. 계층간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몰락해 가는 양상이 점차로 가속화되어 간다. 수출과 내수간, 도시와 농촌간의 양극화, 보수와 진보의 기득권의 차별화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야기(惹起) 되는 사회현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심각한 사회의 문제는 “깨어진 사회”를 보는 것이다.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의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피터 드러커는 이미 1969년에 그의 저서 ‘단절된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가 그의 유작으로 오늘날의 사회현상을 예언하였다.
그의 주장의 첫 번째는 새로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이 형성될 것을 예언하고, 두 번째로는 새로운 세계경제가 형성되어 선진국과 개발도산국 사이의 갈등이 형성될 것이며, 세 번째는 다양한 조직들에 기초한 새로운 다원주의가 등장하여 정치와 사회에 관한 전통성이 깨어질 것이고, 네 번째는 지식이 새로운 자본 겸 경제의 핵심자원으로 등장하고 조직을 경영하는 지식인들이 새로운 권력중심, 노동력집단으로 등장하여 인간을 무시하는 지식과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가 문제로 등장하리라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성장한다. 사람은 스스로가 성취하고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성장한다. 만약 자신이 되고자 하는 기준을 낮게 잡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만약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와 가치를 높게 잡으면 그 사람은 위대한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이것의 작용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양심이다.
사회의 변혁이나 혁신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직 속에서 일한다. 그래서 기존 기업이 혁신능력을 함양하려면 구성원들이나 기업가가 인간의 참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조직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중심에 두고 여러 관계들을 설정하여 보상과 인센티브, 인사결정 그리고 각종 정책이 모두 올바른 기업가적 행동을 장려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의 삶은 대부분 깨진 관계로 인해 생기는 것들이다. 개인적인 문제도, 사회적인 문제도 관계 형성의 깨어짐으로 생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양심을 인간의 마음속에 두시었다. 양심은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인간은 정직과 신뢰를 삶의 근본 자본으로 알고 사는 것이다. 신의는 대인관계의 근본이다. 신의를 지킬 때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존경할 수 있고 서로 화목할 수 있고 서로 단결할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다. 인간의 위기는 서로 불신에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