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몰트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세상에 내려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경험하게 하고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계시한다’고 하면서 이 그리스도의 헌신 속에서 아버지의 헌신을 예수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는 떠오르는 해와 같고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한 데까지 내려가는 사랑을 알게 한다.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먼저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이미 죄인 되었을 때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인간들과 나누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삶을 나누기 위해 친히 내려오신 성육신은 임마누엘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치. 선함. 공로를 보고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하시며 죄인까지도 사랑하심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는 무관한 사랑이며 오히려 죄를 용서하고 새로운 가치를 인간에게 창출하는 사랑이다. 이 하나님의 내림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까지 함께하는 사랑이며 상대적 유익을 도모하는 아가페 사랑이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는 그 사랑은 우리의 변화를 일으키며 우리가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움직이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적 사랑으로 요구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아가페 사랑의 본질을 따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절망과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시기와 다툼과 분쟁을 이기는 힘, 질병과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사랑에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배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해 나간다. 인간의 보금자리는 가정임을 알게 하고 사회적 관계로서 삶은 사랑이 성장해가는 경험을 통해 그 사랑의 힘과 에너지를 알게 한다.
사랑에는 네 가지 양상들로 보편적인 사랑, 이성간의 사랑, 부모 - 자식간의 사랑, 집단적인 사랑 등으로 그 양상을 나타낸다. 즉 보편적인 사랑은 나로부터 나와 이웃, 생물, 무생물, 자연, 우주, 신에 대하여 만유에 대한 사랑을 알게 하며 이성간의 사랑은 남녀 간의 이끌림의 사랑을 알게 하며,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종족유지를 위해 본능상의 내림사랑을 알게 하며 집단적인 사랑은 회사, 단체, 국가 등 이익과 힘을 위주로 하는 사랑의 양상으로 다양한 사랑을 알게 한다. 이는 또한 자연의 네 가지 힘으로도 이를 알게 한다. 그리고 힘의 근원으로 온갖 물건이 나고 자라는 기운은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전류에 의해 생기는 자기로 전자기력, 약효(藥效)로 힘을 얻는 약력(藥力),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양자와 중성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인 핵력(核力)으로 대응되는 것도 이를 알게 한다. 이와 같이 이러한 힘은 본질적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랑에도 이러한 힘이 솟는다. 이러한 힘은 물리적 힘과 사랑은 물질과 생명체의 존재 및 유지를 위해 이러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며 이 물리적 사랑과 힘은 물질과 생명체의 물리적 존재 본성에서 만나며 서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존재적 특성으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육체와 현실을 바탕으로 하며 계속하여 그곳에 머무르려고 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집중하려 한다는 것도 알게 한다. 이로써 물질과 육체는 하늘의 이치(理致)나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인 정신(精神)보다는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理)가 기(氣)보다 앞서야 하듯이 사랑도 참된 이치인 진리가 앞서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참된 이치인 진리를 아는 것이요 참된 진리를 아는 자는 인간의 생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역할, 실천을 몸소 제 스스로 직접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하심의 의미는 믿음, 용서, 희망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의 진리를 목표로 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그 삶을 사는 것은 존재의 옳은 길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탈피하여 스스로를 알고 바라볼 수 있는 절대적인 분에게 우리의 눈 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는 무관한 사랑이며 오히려 죄를 용서하고 새로운 가치를 인간에게 창출하는 사랑이다. 이 하나님의 내림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까지 함께하는 사랑이며 상대적 유익을 도모하는 아가페 사랑이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는 그 사랑은 우리의 변화를 일으키며 우리가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움직이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적 사랑으로 요구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아가페 사랑의 본질을 따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절망과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시기와 다툼과 분쟁을 이기는 힘, 질병과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사랑에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배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해 나간다. 인간의 보금자리는 가정임을 알게 하고 사회적 관계로서 삶은 사랑이 성장해가는 경험을 통해 그 사랑의 힘과 에너지를 알게 한다.
사랑에는 네 가지 양상들로 보편적인 사랑, 이성간의 사랑, 부모 - 자식간의 사랑, 집단적인 사랑 등으로 그 양상을 나타낸다. 즉 보편적인 사랑은 나로부터 나와 이웃, 생물, 무생물, 자연, 우주, 신에 대하여 만유에 대한 사랑을 알게 하며 이성간의 사랑은 남녀 간의 이끌림의 사랑을 알게 하며,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종족유지를 위해 본능상의 내림사랑을 알게 하며 집단적인 사랑은 회사, 단체, 국가 등 이익과 힘을 위주로 하는 사랑의 양상으로 다양한 사랑을 알게 한다. 이는 또한 자연의 네 가지 힘으로도 이를 알게 한다. 그리고 힘의 근원으로 온갖 물건이 나고 자라는 기운은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전류에 의해 생기는 자기로 전자기력, 약효(藥效)로 힘을 얻는 약력(藥力),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양자와 중성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인 핵력(核力)으로 대응되는 것도 이를 알게 한다. 이와 같이 이러한 힘은 본질적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랑에도 이러한 힘이 솟는다. 이러한 힘은 물리적 힘과 사랑은 물질과 생명체의 존재 및 유지를 위해 이러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며 이 물리적 사랑과 힘은 물질과 생명체의 물리적 존재 본성에서 만나며 서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존재적 특성으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육체와 현실을 바탕으로 하며 계속하여 그곳에 머무르려고 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집중하려 한다는 것도 알게 한다. 이로써 물질과 육체는 하늘의 이치(理致)나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인 정신(精神)보다는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理)가 기(氣)보다 앞서야 하듯이 사랑도 참된 이치인 진리가 앞서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참된 이치인 진리를 아는 것이요 참된 진리를 아는 자는 인간의 생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역할, 실천을 몸소 제 스스로 직접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하심의 의미는 믿음, 용서, 희망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의 진리를 목표로 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그 삶을 사는 것은 존재의 옳은 길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탈피하여 스스로를 알고 바라볼 수 있는 절대적인 분에게 우리의 눈 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