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5(월)
 
빈 컵    
박 목 월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를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조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얼마 전 필자의 아버지 추도식이 있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까지도 생생히 내 옆에 계시던 분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당신이 안 보이니, 거실의 어딘가에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허전함으로 인하여 슬픔이 막 솟아오르려 할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다가오는 이미지가 있었다. 온유한 얼굴로 이웃에게 언제나 미소를 흐붓이 흘리시던 아버지. 당신은 신앙심이 돈독한 분이셨다.
개척 교회에 퇴직금의 일부를 털어 헌금을 하여 교회 건축에 앞장섰고,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몸에 배신 분이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신앙심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 신앙심은 오늘의 나에게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소중한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추도식 날, 이 유산으로 인하여 형제들은 우애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하늘 나라에 가신 아버지가 우리 형제에게 내려 준 행복이었다.
박목월 시인은 교회 장로였다. 시인은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우리를 채우시는 분이다. 때론 절망과 체념으로, 때론 꿈과 열정으로 채우신다. 혹 그것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화자에게는 채워질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앙의 샘물”이다. 이 신앙은 때론 장미로 비유되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창조할 수가 있다. 그것은 시가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단다.
<말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여기서 십일조는 비단 물질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십일조, 헌신의 십일조, 봉사의 십일조가 주변에 널려 있다. 이로 인하여 마음의 창고가 풍요로워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희열과 화평과 온유와 즐거움과 감동의 십일조를 이웃에게 나누자. 이는 세계에 놓은 경계를 허물고 인류 평화와 일상의 행복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계절이 순환하고, 인간도 순환한다. 생로병사의 흐름이 눈 앞에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진정한 행복은 물질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서로가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올려 놓을 때 행복은 스스로 피어나는 것 같다. 삶과 죽음 경계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신자가 찾아야 할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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