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스타프손(J. Gustafson)은 “목회사역이 사회정치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치의 총체적 모델과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헌신적 사역인 목회사역을 담당한 사람들의 세상 정치적 모델과 동일하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 정치의 인상을 짙게 주기 위해서, 여론을 형성시키고 재능의 다양성을 최대한도로 고려하고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소명으로서의 정치」 (Politics as a Vocation)라는 글에서 정치인의 첫 자질은 천명(天命)에 의한다는 소명감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의 자질로서 책임감과 균형감 등을 주장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체적 사역자인 목회자는 목회 기반을 튼튼히 하며 일치감을 형성시키며, 목회사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계획의 수립을 잘해야 한다. 사실 목회사역은 성도들, 성도의 가정, 아동과 청소년들, 장년층과 노인들, 교단 관계, 신학교, 이웃, 지역사회, 그리고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총체적 조절이 계속되는 실제사역이다. 총체적 목회사역의 개념은 이러한 실제적 사역을 위하여 이미 있었던 목표와 앞으로 있어야 할 목표에 대한 기대와 관련되어 있는 것과 앞으로 있어야 할 것을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하고 상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상담목회는 총체적 모델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상담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발굴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조직화하고 구체화하여 상담목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상담목회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서의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들의 구성체인 교회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상담목회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 해결의 길이며, 현대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회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담목회는 교회사를 통해서 그 역사적 모델을 찾을 수 있고 오늘의 현실교회에서도 적용 가능하며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
2. 상담목회의 역사적 사례
상담목회는 오늘에 와서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이미 실천되어 왔다. 그 중 중요한 사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개신교 목회자들의 상담목회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목회자들 가운데서 상담을 목회사역에 적용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들을 통하여 목회상담의 새로운 영역이 확장되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몇사람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 리챠드 백스터의 목회
영국의 청교도 목사였던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개신교의 상담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었다. 그는 1656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적 저서인 Reformed Pastor에서에서 신자 개개인을 돌아보는 목회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는 목회사역을 통하여 그의 주장들을 실천하였다. 그는 목회자로서 인간의 회심에 관심을 기울였고, 여기서 생기는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교구(敎區) 안에 있는 모든 가정들과 최소한 일 년에 한 시간씩 대화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백스터는 목회상담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매주 목요일에 가정 단위로 성도들을 초청하여 상담하는 일을 했으며, 그 외에도 사모와 부교역자를 동원하여 월요일과 화요일에도 교인들과 대화하였다. 그는 이렇게 하여 일 년에 800 세대의 성도들을 만나서 개인적 신앙문제에 대해서 상담하였다. 그는 이외에도 목회지에서 환자를 돌보았고, 서신상담(書信相談)도 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 평생 질병으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교인들을 돌아보았다.
(2) 죤 웨슬리의 목회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세계 선교의 역동적인 사역을 감당한 웨슬리(John Wesley)는 죄악과 부패로 가득한 영국사회를 향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파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역들을 시작하였다. 웨슬리의 설교는 새 생활과 새 경험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었고, 인간의 영혼 속에 내제하는 신성을 강조했다. 그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수들을 방문하여 힘 있게 설교하였다.
그는 아무리 회개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옛날의 관계와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 한 새 사람이 되는 길이 차단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 새로운 시도가 바로 “클래스 모임”(Class Meetings)인데 이것이 나중에 ‘속회’로 발전되어 오늘날 까지도 존속되어 오고 있다.
웨슬리는 이러한 소집단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였고, 그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양약이며,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주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하였다.
(3) 죤 오벨린의 목회
프랑스의 복스(Vosges)라는 산간 지방에서 다섯 개의 작은 마을을 교구로 하여 50년 이상 목회한 오벨린(John Frederick Oberlin) 목사의 사역은 상담목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성도들의 가계(家系), 신앙의 경향, 행동, 성격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였고, 말을 타고 교구를 순회하며 교인들을 돌보았다. 백스터의 경우처럼 교구에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성도들을 치료하였고, 사모를 훈련시켜서 간호사의 역할을 하게 했었다.
그는 이외에도 인간의 환경이 효과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효과적으로 보호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사회개선과 사회개발을 추진하였다. 또 교구민들을 교육하였고, 새로운 영농법(營農法)도 개발하였다.
(4) 헨리 드루몬드의 목회
목회 사역에서 상담을 실천한 또 다른 예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에서 사역했던 드루몬드(Henry Drumond) 목사이다. 그는 설교만으로는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돌볼 수가 없기 때문에 개개인을 돌봐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1893년에 ‘영적 진단’(Spiritual Diagnosis)이란 글을 읽고 임상적 상담훈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는 건강과 질병 속에서 고통 받는 영혼에 대한 탐구는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치료처럼 과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하며, 의사들이 육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목회자는 영적인 충고자로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그 글의 내용에 전폭적으로 찬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흥사 무디(D. L. Moody)의 요청에 의하여 상담 사역을 감당하였으며, 설교와 개인상담을 통하여 문제해결의 균형을 잡아 나갔다.
2) 현대 목회에서의 상담목회
현대교회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설교와 심방만이 아닌 돌봄과 치유가 필요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설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담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하여 목회자들이 영적 치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 치유도 하기 위하여 돌봄의 사역을 시작하고, 목회자를 훈련하는 과정으로 1930년대부터 많은 신학대학대학원에서 신학생들에게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상담 훈련을 하는 임상교육이 구체화되었다. 이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목회자들의 상담목회
목회현장에서 상담을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가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상담을 시작하고 상담을 통하여 성도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돌보는 사역을 시작했다.
미국의 포스딕(Harrry Emerson Fodsick, 1878-1969) 목사는 1903년에 침례교 목사로 안수받고 뉴욕의 유니온(Union)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리버사이드 침례교회(Riverside Baptist Church)에서 20년 동안 설교한 유명한 복음적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당대의 유명한 설교가였으나 고민하고 방황하는 개인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다가 ‘고백적 의논’(Confessional Conferences)이라는 형태의 상담목회를 시작하였다.
그가 이러한 목회적 응답을 한 것은 당시의 교인들이 안고 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인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제약성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이며, 정신위생의 선구자인 샐몬 박사(Dr. Thomas W. Salmon)의 도움으로 치료이론, 진단방법, 환자들의 종교적 태도와 영적인 차원을 연구하였다. 그는 사실상 신학생 시절에 극도의 육체적 질병과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런던의 씨티 템플(City Temple in London)의 웨더헤드(Lelie Weatherhead) 목사가 상담목회를 실천하였다. 그는 심리치료소를 개설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상담하였다. 그는 이 분야에 관한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여 상담목회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켰다. 그의 상담목회 사역의 특성은 의사와 협력하여 치료하였다는 점이며, 의사의 도움 없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한 증상을 일으키는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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