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4(월)
 
1.jpg
2015년 1월 30일 북한정부에 의해 억류된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 소식을 듣지 못해 1년 가까이 애가 탄 사람은 그의 가족과 큰빛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기독교인들과 자유를 생명처럼 애호하는 세계인들이 그의 석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2015년 12월 16일 아침 뉴스가 전해온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북한 사법당국이 임현수 목사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 종신징역형을 내렸다고 했다. 북한에서의 종신형은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다. 임현수 목사가 종신형 선고를 받고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필자는 2014년 5월 16일부터 6월 8일까지 캐나다 토론토 근교 미시시가(Missiauga)에 살고 있는 셋째딸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다. 딸의 가족은 캐나다에 이주하면서 10년 가까이 큰빛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딸의 가족 등과 함께 큰빛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임현수 목사를 만나 뵈올 수가 있었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임현수 목사를 만나게 되었지만 처음 만난 그의 인상은 부드럽고 겸손했다. 그는 아이들이나 노인이나 그리고 사회적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설교는 보수적이면서도 논리가 정연했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예화를 설교에 적절히 인용하여 설교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무조건 믿으라는 식으로 억압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식으로 협박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강단에서 아멘이나 할렐루야를 유도하거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천박한 코메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큰빛교회의 예배 분위기는 시종 경견하면서도 장엄했고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와 찬송으로 분위기가 뜨거웠다.
필자는 6월 8일 떠나오는 날 아침 1부 예배에 참석하고 나오다가 예배실 밖에서 목사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비행장으로 직행했다. 그 후 몇 달 되지 않아  북한에서 억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1년 가까이 지금까지 딸과 전화할 때마다 목사님 소식을 물었으나 딸은 그때마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다.
필자가 아는 임현수 목사는 1955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대한신학을 졸업한 후 CCC간사로 일하다가 1985년 유학을 목적으로 캐나다에 가게 되었고 토론토대 Knox College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1986년 1월부터 큰빛교회 전도사 일을 맡아보게 되었다. 그는 1989년 9월 서울에서 (수도노회)목사 안수를 받고 1989년 12월에 큰빛교회 부목사로 청빙 받았으며 1990년 12월에 이 교회 초대목사인 박재훈 목사의 후임으로 제2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임현수 목사가 이 교회에 부임할 당시 장년교인이 100여명 정도였지만 2014년 필자가 이 교회를 방문했을 당시  교인수가 3,000명이 넘었고 교회당 규모가 대규모였으며, 교회부지가 대학 캠퍼스 만큼이나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큰빛교회야 말로 한국에서 이민한 이민자 교회 중 가장 성공한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큰빛교회는 자체 성장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라고 하는 표어를 내걸고 세계 도처에 수십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었다. 필자가 이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2014 큰빛선교한마당” 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선교기금 마련을 위해 대규모 바자회를 열고 있었다. 이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지역은 경제적으로 열악하거나 정치적으로 선교가 자유롭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북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현수 목사는 1997년 7월 1일 북한을 방문한 이 후 2013년 4월 17일까지 무려 100회나 자신이 직접 가거나 대표단을 북한에 파송해서 선교사업을 독려했다고 한다. 큰빛교회가 북한에 지원한 사업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식량지원 사업으로 황해북도 황주시에 국수공장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평안북도 구장군 탄광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옥수수 600톤을 기증하는 등 수십개 처에서 식량지원을 해왔고 그밖에 병원과 고아원 양로원 등에 의료기기, 약품, 장비, 식량 등 시설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교육사업으로 평양교원강습소를 설립 운영해왔다. 이 강습소는 설립을 위해 건축자금 60만불을 투입 지상4층 지하1층 건물을 2009년 11월 2일에 준공했고 2010년 4월에 개교한 후 2013년 4월까지 매년 4기로 나누어 1기에 80명씩 지금까지 12기를 거치면서 무려 900명을 배출했다. 큰빛교회 선교부는 이 강습소의 운영비를 지원해왔고 커리큘럼을 관리하고, 캐나다 미국 호주 영국 등 영어권 국가들로부터 자비로 봉사할 수 있는 교포2세들 중에서 교수단을 90여명 모집하여 분기별로 활용해왔다.
이 강습소의 영어교육은 북한 내 영어교육 전문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실상 북한에서 최고수준의 영어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북한동포를 위해 위와 같은 사업을 주도하면서 자기의 삶과 열정을 모두 다 쏟아 온 성직자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국가전복음모죄”라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 투옥한 것은 인간의 기본양심과 상식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가난한 국민을 도와주는 일이 죄가 된다면 처음부터 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 선교가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종교인 출입을 막으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정부는 십수년간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단맛 쓴맛 다 빨아먹고 사람을 무슨 물건처럼 용도폐기하고 있으니 이같은 정부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헤겔(Hegel 1770-1831)은 “국가는 윤리적 이념”이라고 했다.
그리고 북한정부는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정치는 현실적 문제를 중요시 할 수 밖에 없지만 종교는 사람의 양심, 윤리, 영적문제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인은 정치인이나 정부의 부도덕한 처사를 보고 가만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종교인이 정부나 정치인의 부도덕을 보고도 가만 있다면 그러한 종교인은 자기 역할을 포기한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현수 목사가 설혹 북한정부나 정치인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고 해도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왕시대 “나단”이라는 선지자는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의 아내를 취한 다윗왕의 파렴치한 행동을 그의 면전에서 책망한 일이 있고 다윗왕은 자기를 책망한 나단 앞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었다. 양심적인 정치인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성직자를 오히려 존경한다. 그래서 훌륭한 정치인은 넓은 도량을 가진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북한정부는 현대국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유다.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 Baruch De 1632-1677)는 그의 국가론에서 “자유는 국가의 목표다”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지배하는 일도 공포에 의하여 구속하는 일도 아니며 오히려 각자가 될 수 있는대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누구를 막론하고 상처를 입히는 일 없이 생존의 자연적 권리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개인을 공포에서 해방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공포정치를 위해서 임현수 목사를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북한은 임현수 목사를 정치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